근사한 도심 속 정원의 주인,
조경학과 이명희 동문

  • 490호
  • 기사입력 2022.05.02
  • 취재 송명진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4376


서울시 강남구의 주택단지 한편에는 누군가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빚어진 생경한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 귀여운 새 생명들이 나고 자라는, 노곤한 새들이 쉬다 가는, 누구든 메마른 마음을 축일 수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도심 속 정원이다. 이번 호 <인물포커스>의 주인공은 우리 대학 조경학과에서 조경을 배워 근사한 정원의 주인이 된 이명희 동문이다. 그럼 이제, 그녀와 그녀의 정원에 포커스 인(focus-in) 해보자.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이명희 입니다. 저는 세 아이의 엄마고 꽃이 너무 좋아 조경학을 공부하러 쉰셋에 대학원에 갔고 그렇게 조금씩 알게 된 꽃을 지금도 열심히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꽃을 공부하다 보니 책도 쓰게 되었고 그러다가 연이 닿아 방송에도 몇 번 출연하게 되었고 잡지에 글도 싣게 되었어요. 평범한 주부지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꽃을 진심으로 좋아해 정원을 정성스레 가꾸고 있답니다. 

 

Q2.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셨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오래 전부터 꽃을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워낙 꽃을 좋아했으니까요. 그런데 고집이 별나게 센 우리 아이들 셋을 키우느라 시간이 도저히 없었지요. 머리는 좋은데 공부는 참 안하던 우리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날, 드디어 내 육아가 끝이 났어요. 그 고집쟁이를 키운다고 고생을 많이 했는데 막상 끝이 나니 어찌나 마음이 허하던지요. 그래서 공부가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쉽게 용기가 나질 않는 거에요.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할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났지요. 고민을 좀 더 하며 오래된 집을 고쳤어요. 집을 고치면서 함께 작은 정원을 꾸미게 되었고요. 우리 딸이 제가 꾸며놓은 정원을 보더니 크게 감동해서 제 등을 막 떠밀었어요. 엄마 재주가 너무 아깝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공부 꼭 했으면 좋겠다고. 딸의 열렬한 지지 속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에 찾아가게 되었답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재미있었어요. 제가 딱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Q3. 아주 근사한 도심 속 정원의 주인이세요. 언제부터 ‘나만의 정원’을 가꾸어 오신 건가요?

글쎄요, 나만의 정원이 뭘까요?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제 삶에는 늘 꽃이 있었어요. 정원이 있는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서울에 올라와 대학에 다닐 때는 작은 화분에라도 정을 붙이곤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게 나만의 정원은 항상 있어온 셈이지요. 정원같은 정원을 가지게 된 것은 지금 살고있는 집의 담장을 허물고 나서부터예요. 담장이 높으면 해와 바람이 잘 들지 않아 꽃이 예쁘게 자라기 힘들거든요. 혹시라도 도둑이 들까 걱정이 태산인 남편을 강력하게 설득해서 담장을 허물고 본격적으로 우리집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꽃들을 위해 낮춘 담장 덕에 재미있는 일도 있었어요. 하루는 강남구청 조경과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시에서 꽃이 예쁘게 핀 집을 찾는데 우리 집이 괜찮아 보여 임의로 후보등록을 해 두었다는 거에요. 당시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관계자 분들이 우리집 정원을 보러 오셨더라고요. 그렇게 어쩌다 보니 우리집 정원이 2013 ‘꽃피는 서울상’을 수상하게 되었답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Q4. 정원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꽃과 가장 미운 꽃을 하나씩 소개해주세요. 

가장 사랑스럽게 여기는 꽃은 물망초에요. 4월만 되면 물망초의 하늘빛으로 정원이 물들거든요. 잔잔하게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신경 쓰지 않아도 저희들끼리 화목하게 잘 피어 있으니 기특하지요. 물망초는 보기와 다르게 강인한 꽃이에요.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물망초는 나있고, 가끔 보면 돌 틈에서도 머리를 비집고 나와 피어 있어요. 저 귀여운 애들이 우리집 환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에요.  미운 아이들은 욕심이 많은 아이들이에요. 보기에는 예쁜데 생명력이 너무 강해서 한번 자리를 잡으면 다른 애들을 모조리 밀어내 버리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이지풀이 딱 그런 아이에요. 예쁘지만 말썽을 좀 부리는 꽃이지요(웃음).


 

Q5. 선생님께 정원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인 것 같아요. 이 정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중하고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꽃들은 무척 착하잖아요. 자연에 순응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요. 지금 한창 춤추듯이 날아오르는 저 나무는 가을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낙엽을 떨어트리겠지요. 착하고 선한 꽃들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악해질 수가 없어요. 사람은 꽃을 보면 웃잖아요. 웃으면 행복하고요.  이것을 꽃과 정원이 사람 안의 선한 마음을 자극한 것이라고 이해해요. 누구나 마음속에 정원을 품고 살아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Q6.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것에 몰입하는 모습이 멋지세요. 건강하고 멋진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한 팁이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가꾸세요. 이왕이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베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베푸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에요. 무언가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돼요. 이 정원을 가꾸면서 이웃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정원을 보게 해줘서 고맙대요. 그런데 제가 더 감동적이고 고마워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 취미로부터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Q7. ‘당신에게 정원이란?’

정원은 내 유토피아이고 안식처이고 추억이고 자식같은 것이에요. 남편이랑 싸우고 나면 화원에서 꽃을 사다 막 심어요. 정원을 가꾸는 데 몰두하면서 마음도 함께 가꾸지요. 그러니 정원은 내 안식처에요. 어릴 적에 구경하던 오랑캐꽃, 앞마당에 있던 감나무. 정원에서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으니 정원은 내게 추억이지요. 이제 내 자식들은 내 손을 떠났어요. 저는 꽃을  자식처럼 키워요. 그냥 키우지 않고 고민하고 애쓰며 정성을 다해 키우려고 해요. 꽃이 없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요? 참 무미건조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정원이 나에게 모든 걸 다 주는 것 같네요. 


 

Q8. ‘이명희 작가’가 되어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책 출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어요.

저는 꽃이 귀여워요. 꽃이 아이 같다는 말이 절묘하게 느껴진답니다. 역시 생물이란 다 한 가지죠. 꽃도 애들과 마찬가지로 너무 가까이 가려고 하면 도망가고 너무 멀어지면 사랑을 원해요. 그러니 얼마나 재미있어요? 이 재미있는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때마다 사진을 많이 찍어 두었어요. 우리 교수님이 그런 제 모습을 보시더니 사진만 찍지 말고 글로 기록해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렇게 더듬더듬 기록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 기록을 한참 쌓아가다 보니 이걸 나만 두고 보는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책을 한번 내보자’ 결심하게 된 거에요. 


더 자세한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꽃을 잘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어요. 그늘에 가 있어야 할 꽃이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있고 여기 심으면 훨씬 예쁠 꽃이 엄한 곳에 심어진 모습을 그동안 많이 봐왔어요. 좋아하는 꽃들이 예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거든요. 그래서 내 경험을 책에 열심히 담았지요. 꽃들은 굉장히 섬세한 아이들이어서 다루는 법이 제각각 이에요. 책을 봐도 답답하고 화원에 가도 답답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혹시나 나와 같은 고충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제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 글로부터 누군가 도움을 받아 꽃에게 잘해주면 좋잖아요. 꽃을 위해서 꽃을 보살피는 사람을 위해서 책을 쓰게 된 거에요.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냥 잔잔한 이야기에요. 꽃에 관한 다른 책들을 보면 마치 공식을 적어놓은 것 같아요. 이 꽃은 키가 몇 센티까지 큰다, 이 꽃은 이렇다 저렇다 적혀 있는 책들이 많은데 경험상 그런 건 없거든요. 나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말도 못하는 꽃이 어떻다 함부로 말하면 되나요. 같은 꽃도 매년 키가 달라지고, 물먹는 양이 달라지는 걸요.  책에 그런 내용은 적지 않았어요. 그저 잔잔한 이야기를 싣고 싶었어요. 


 

Q9. 마지막으로 성균웹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여러분 모두 각자 하고 있는 공부가 있겠지요? 그것이 시험 공부든 세상 공부든 뭔가를 배우며 세상을 살아가는 중일 것 같아요.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직접 부딪히며 얻어내 보라는 것입니다.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몸소 행하며 얻을 수 있는 것의 가치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죠. 지금도 꽃을 손으로 만지며 꽃을 배우고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