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으로 상상하라, 공성훈 교수

  • 407호
  • 기사입력 2018.11.09
  • 취재 한이현 기자
  • 편집 주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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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공성훈 교수가 제19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다. 이인성 미술상은 한국근대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서양화가 이인성(대구, 1912-1950)의 작품세계와 높은 예술정신을 기리고 한국 미술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구시가 제정한 상이다.


“풍경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으로 인간의 길을 통찰하고, 시대의 불안과 모순을 표현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공성훈 교수는 국내외 갤러리 및 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인물포커스에서는 공성훈 교수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바로 만나보자.


(버드나무1,2,3)



☞ 먼저 대구미술관 제19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들으셨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추천된 후보자가 자료를 제출하면 심사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자료제출 요구를 포함한 아무런 사전 연락이 없어서 후보가 된 줄도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통보를 받고 나서야 선정 과정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의외였지만 기쁨과 함께 내년의 수상전시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국내외 갤러리 및 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시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처음 미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학교에 입학해 미술반에 들었고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습니다. 3년 동안 매일 1장씩 그렸으니 1,000장도 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술가에 대한 낭만적인 꿈을 꾸게 된 것 같습니다.


☞ 교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작품이 궁금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제 그림을 아낍니다. 작품의 성패를 떠나서 제 그림들을 다시 꺼내 보면 그것들을 그리면서 했던 생각들과 경험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마치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을 되새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제 그림이 팔리기라도 하면 인생의 한 토막을 누가 쏙 뽑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파도, 무궁화와 비행기구름)



☞ 교수님께서 가장 존경하는 화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너무 많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고야입니다. 자신이 살던 시대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진실을 담아내려 노력했던 작가적 태도를 늘 존경합니다. 그 외에도 엘 그레코(El Greco)라든가 현재 활동하는 여러 동료 작가들도 제게 항상 자극을 줍니다.


☞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는 학생들이 자발성과 도전정신으로 작품의 표현방법을 실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요즈음 학생들은 디지털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몸 쓰는 일에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예술은 대상, 매체(재료), 몸 사이에서 작가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오감을 통해서 대상을 경험하고 매체에 노동을 가해서 질적 전환을 실현하는 주인공이 바로 몸이라는 것입니다. 미술공부는 다른 존재를 만나는 순간 즉 자연이나 현장(site), 타인과 작품들, 물질과 사물에 내 몸이 부딪히는 순간에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똑같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인데 새로운 해답이 도출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저는 ‘영감’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치 벼락 맞듯이 하늘에서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계시처럼 내려오는 느낌을 주는 단어라서 그렇습니다.


화가도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만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현실 속에서 작품화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여행을 간다든가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또는 영화나 전시회를 보면서 실마리라도 잡아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작품은 자연 풍경으로부터 사회의 의미를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작품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중시하는 교수님만의 철학이 있으신가요?


저희 학과 1학년 수업에 가끔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초중고 미술교과서에서 6·25전쟁을 그린 한국 작가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느냐. 아마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적 사건을 직접 경험한 화가들이 아무도 그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 또는 지워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미술은 현실을 초월하는 영역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술의 초월성은 'to'의 문제가 아니라 'from'의 문제입니다. 상상력은 현실이 결핍되고 누락된 것이라 작동합니다. 충만한 현실 속에서는 무언가를 갈망하거나 꿈꿀 필요가 없습니다. 'from'이 빠진 상상은 망상입니다. 저는 땅을 디디고 있는 제 발바닥의 감각이 고개를 들어 멀리 별을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일단 눈앞에 닥친 개인전을 해결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내년 6월에 제주도의 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고 이번 이인성 미술상 수상 기념전이 9월에 있습니다. 큰 규모의 개인전을 두 개나 준비해야 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네요.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대해서 독립적 인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현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독립적이면 창의적으로 됩니다. 천칭의 양쪽 접시에 세계와 내 존재를 올려놓으면 균형을 이룰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뱃길, 아침바다)



공성훈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서 화가로서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교수로서 추구하는 교육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땅을 디디고 있는 발바닥의 감각이 고개를 들어 멀리 별을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공성훈 교수의 답변에서 ‘from’에서 출발하는 상상력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할 공성훈 교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