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낭만부', 'Ho!'의 작가
억수씨, 남준석 동문

  • 426호
  • 기사입력 2019.09.02
  • 취재 이서희 기자
  • 편집 연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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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의 끝, 혹은 하루의 시작을 웹툰과 함께한다. 잠 들기 전, 좋아하는 웹툰의 업로드를 기다리고, 이른 아침 학교로 가는 길에 웹툰을 읽는다. 어떻게 보면 소소한 행복이지만 그 소소한 행복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다채롭게 꾸며준다. 모니터 너머로 보는 웹툰을 통해 행복, 슬픔, 때로는 교훈을 얻는 우리는 이미 웹툰 세대다. 그 웹툰 시장을 이끌고 지켜온 웹툰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는 <오늘의 낭만부>, <Ho!>등을 그려온 웹툰 작가 남준석(중국철학 99. 필명 ‘억수씨’)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만화가를 꿈꾸던 대학생 남준석


어려서부터 남준석 작가는 만화가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인문계 학생이었던 그에게 입시 미술을 시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는 그는 어떻게 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철학 공부를 하다가 만화가의 길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하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처음부터 만화가가 되기 위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공부하다가 다른 길을 가게 된 게 아니라, 이 길을 가고 싶어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인문계 학생이다 보니 미술을 못했었죠. 입시 미술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만화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인기가 좋았던 신문방송학, 역사학, 철학 중 철학을 선택했어요. 그림 실력이 안된다면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어려서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전략적으로 생각 했던 것 같네요.”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만화로 제출할 정도로 만화에 대한 애정이 컸던 학생이었다. 그는 학교 오르막길을 내려오던 중 불현듯 ‘만화가가 되야겠어!’ 결심이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한순간 떠오른 열정에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프로 지향 만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 하기도 하고, 졸업 후에 한겨레 만화 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 만화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배움과 만남을 이어가던 중, 기회가 닿아 잡지에서 데뷔 해 만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과는 달리 만화와 웹툰에 대한 인식도, 시장 환경도 좋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도 꿈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그는 부모님과 주변 인물들을 답했다.


“부모님께서 저를 자주적으로 대해주셨어요. 부모님의 삶과는 다른, 저만의 삶을 살라고 하셨었죠. 또, 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모두 꿈을 따라가기도 했고요. 주변 세계가 취업보다는 꿈을 좇는 분위기여서 저 또한 제 꿈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웹툰 작가 억수씨


그렇게 연재를 시작하며 그는 작가 ‘억수씨’가 되었다. 때로는 이야기가 막히기도 하고, 술술 풀리기도 하며 어느덧 웹툰 시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중견 작가가 되었다. 웹툰 시장의 초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만큼, 변화된 웹툰 시장에 대한 남다른 감회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꿈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는 한창 만화에서 웹툰으로 넘어가던 시대였어요. 그 사이의 암흑기에 제가 있었죠. 만화는 항상 천대 받았고, 잡지는 없어지고, 사람들은 책을 하나도 안사고… 온라인으로 사람들이 많이 넘어갔지만 플랫폼이 많지도 않고…. 운 좋게 온라인 플랫폼에서 웹툰을 시작하게 되고, 점점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웹툰 시장이 커지는 걸 보며 만화를 사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게 기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로선 고무적인 일인 것 같아요.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미리 보기 위해서 혹은 다시 보기 위해서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진 걸 보면 웹툰 산업의 생태계가 많이 개선됐구나 느껴요.”


 웹툰 작가로서의 삶을 묻자, 그는 자율적인 시간 활용이 장점이자 단점이라 답했다. 자율적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시간을 잘 못 운용하면 건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매력적인 직업이다. 그에게 만화가가 된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자아 실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해요.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데에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지만, 캐릭터라는 인격체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거든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중요해서 남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리면서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가진 자신만의 철학으로 그는 이야기가 전하는 감정을 말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전하는 감정선, 그를 통해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울림. 이야기 자체가 강렬하거나 파격적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 전달되는 의미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재미있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를 꿈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강렬하고 파격적인 이야기보다는 작은 이야기를 선호해요. 그 안에서 이야기가 가지는 정서나 울림을 중요시하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그린다면 재미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단순히 사전적인 재미만이 아닌, 개그, 슬픔, 역함, 공포… 다양한 감정의 재미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요. 너무 의미 전달에 치중해서 매몰된 작품보다는 의미 못지않게 재미를 전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만화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변화하는 웹툰 시장을 오랫동안 봐 온 만큼, 그는 만화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작품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것을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언젠가 자신의 작품을 그릴 것을 꿈꾸는 우리 대학 학우들에게 그의 격려와 조언이 와닿기를 바란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혼자만의 수련이 필요한 일입니다. 학원, 학교에서 얻는 배움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와의 수련이 필요하죠.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길이 많이 열린 만큼, 어떻게 작품을 이어가고 유지하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꾸준한 작가가 되기 위해 데뷔에 초조해하기보단 여유를 갖고 어떤 작품을 그려야 할지 고민을 함께 이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