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정과 좌절을 갈고 닦아 하나의 콘텐츠로:
이태헌 예능 PD (신문방송학과 97)
- 564호
- 기사입력 2025.05.22
- 취재 김연후 기자
- 편집 김나은 기자
- 조회수 3382
무언가를 창작해 내는 사람은 어떤 힘을 가져야 할까.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닳고 닳은 좌절 위에 성장을 쌓아 올릴 용기와 인내일 것이다. 이번 인물포커스는 불후의 명곡, 개는 훌륭하다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이태헌 피디와의 인터뷰를 통해 창작가로서 그가 갖는 신념에 관해 들어 보았다.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 내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어떤 경험과 사유가 필요할까? 함께 알아보자.
| 안녕하세요, 피디님.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97학번 이태헌입니다. 지금은 KBS에서 예능피디로 일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성균웹진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고 정말 반갑습니다.
| 불후의 명곡, 트롯 전국체전, We‘re HERO 임영웅, 개는 훌륭하다, 등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키셨는데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우선 성공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프로그램의 성공은 늘 처절하게 쌓인 실패들 위에 간신히 올려졌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들이 차가운 기획과 뜨거운 제작을 거쳐 드디어 방송으로 나갈 때까지 정말 많은 분과 고민하고 부딪히고, 심각한 상황들에 좌절도 하게 되는데요. 그 좌절들에 닳고 닳다 보면 어느새 빛나는 프로그램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물론 시청자들의 애정과 인정이 덧입혀져야 더 멋진 윤이 나게 되는데 그 과정 중의 즐비한 실패와 상처들이 쌓여야 비로소 명품 프로그램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하되 포기하지 않고 갈고 닦다 보면 볼만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하신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있나요?
제가 방송사에 입사한 지 벌써 21년 차가 되었는데요. 그간 거쳐온 많은 프로그램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5년 정도 연출한 불후의 명곡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왕 조용필 씨를 비롯해 수많은 전설과 가수들을 만나 뵐 수 있었고, 기존 문법을 벗어난 연출로 뮤지컬, 국악 등 트로스 오버 장르의 대중화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신인이던 잔나비, 포레스텔라, 국악인 김준수, 뮤지컬배우 민우혁 등 다양한 가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되었고, 덕분에 제가 상도 많이 받았기에 매우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 피디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찼던 일 혹은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예능 피디라는 직업은 늘 힘들지만, 역설적으로 늘 보람찹니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연예인들과 수십 명의 스태프를 잘 설득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야 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회사와 시청자들의 냉혹한 평가를 바탕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일이 [개는 훌륭하다]를 기획하고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 많은 펫 프로그램이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어 회사의 불안한 눈빛과 섭외 관련해서 꽤 난항을 겪었는데요. 7개월 후 첫 방송이 나갔을 때의 시청률도 1.9%로 아주 냉담했습니다. 당시는 출연자들을 달래고 작가들을 다독이며 회사의 압력 또한 견뎌내야 하는 고난과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회의와 촬영의 과정을 거쳐 9주 만에 5%, 19주 만에 9%의 시청률을 찍으며 결국은 인정받아 프로그램을 반석 위에 간신히 올렸을 때가 가장 보람찼습니다.
| 학창 시절 때부터 예능 피디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제가 KBS PD가 되고 난 후 중학교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지겨운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한 친구가 학창 시절 각자의 장래 희망을 적어둔 앙케트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다들 20년 만의 타임캡슐을 열듯이 신기해하며 살펴봤는데 거기에 제 장래 희망이 방송국 프로듀서라 떡하니 쓰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초등학생 시절 종이신문 TV 편성표에 줄 그어가며 본방 사수 하고, KBS, MBC 방청도 찾아다녔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성대 신방과에 지망한 이유도 PD가 되기 위해서였고, 흥이 넘치던 대학 생활도 피디가 되기 위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다니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TV에 폭삭 빠져 깔깔거리고 프로그램을 짝사랑했던 한 테레비 키즈가 결국 예능 피디로 살고 있네요.
|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는 언제부터 생각하셨나요?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건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어려운 상황이 생겨 가족들이 웃음을 잃어버린 시기였는데요. 그래도 [상상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만큼은 고민을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 낱말을 맞추려고 집중하다가 백승주 아나운서가 ‘공부하세요’라고 외칠 때마다 빵빵 터지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능 프로그램의 힘을 느꼈습니다. 결국 입사해서 예능 피디로서 백승주 선배와 같이 일하고, [상상 더하기] 피디로도 일하게 되자 부모님이 특히 더 기뻐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 피디가 되기 위해 한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콘텐츠에 빠져 살았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영화, 방송들을 보고 기획안을 써보고, 평가를 통해 개선안을 고민해 보는 과정들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물론 제가 언론사 지망생일 때는 방송사가 3개뿐이었지만 지금은 케이블과 종편에 유튜브 OTT까지, 미디어 생태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가득 차 넘쳐나는 콘텐츠 홍수의 시대인데요. 이럴 때야말로 넘쳐나는 것 중 내가 하고 싶은 연출의 방향성에 맞는 것들을 잘 골라 봐야 합니다. 콘텐츠의 영리한 선택을 통해 소비하고 갈무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책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주 매력적인 검은 거울(Black mirror)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물론 손안의 검은 거울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저는 여전히 종이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전으로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인문 서적으로 지식의 영역을 넓히며, 소설로 부족한 감성을 채우면서 시대를 읽어야 합니다. 책으로 기본기를 갖추지 못하면 콘텐츠 소비에도 제약이 생기고, 훌륭한 콘텐츠 생산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땐 근본이 되는 탄탄한 논리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제작할 땐 대중들의 시각과 반응을 보기 위한 눈치가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자신만의 시각을 갖되, 대중들의 호응과 흐름을 읽어야 좋은 프로그램의 시작이 가능합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여러 장르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만들었지만, 앞으로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국악을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악이라는 하나의 문화에 접근해 그 맛을 알기가 여러 가지로 힘듭니다. 국악의 본류를 클래식처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국악이 더 풍성한 크로스 오버를 통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장르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젊은 국악인들과도 만나고 새로운 기획을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는 중인데요. 이런 시도가 쉽지 않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언젠가 인정받고 국악의 멋과 맛을 한 분이라도 더 느낄 수 있다면 아주 달콤할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애정하는 600년 전통의 성균관대학교 재학생 여러분, 실감 나지 않으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가장 눈부신 순간입니다. 지금보다도 더욱더 빛나는 앞날을 꿈꿀 수 있는 오늘과 내 곁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세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고민하신다면 더 행복해질 겁니다. 여러분의 이 순간들이 명륜당에 켜켜이 쌓인 그 세월만큼 모이고 모여 여러분을 더 힘차고 밝은 미래로 이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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