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그 너머의 가치: 법학전문대학원 이길원 교수
- 570호
- 기사입력 2025.08.25
- 취재 김연후 기자
- 편집 김나은 기자
- 조회수 9295
“국제법은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국제사회에서 국제법은 단순히 법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법 제도는 사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재고하게 하며 나아가 세계가 가져야 할 가치와 책임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의 이길원 교수는 국제법이 실질적으로 국가 간 협력을 이끌어 내며, 국제사회에 믿음과 신뢰를 가져다주는 실천적 힘임을 강조하면서 국제 법학자로서의 신념을 보여준다. 이번 570호 인물포커스는 이길원 교수의 연구 이야기를 통해 국제법의 역할과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국제법을 가르치고 있는 이길원입니다.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펠로우십을 이수하며 연구 역량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는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기구법과 국제경제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2021년 2월, 모교인 성균관대학교로 돌아오게 되어 매우 뜻깊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국제법과 법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학문적 지식과 통찰을 제공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할 예정입니다.
| 6월에 팬데믹 협정의 실효성에 대한 글을 발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최근 발표하신 연구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상반기엔 크게 두 가지 글을 발표했는데요. 먼저, 4월에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기후 정의 판결을 국제환경법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기후 법안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요. 이는 아시아 최초의 기후 관련 위헌 판결로, 정부의 기후 대응책임을 법적으로 강조한 중대한 사례입니다. 특히 청년들이 직접 청구인으로 참여해 기후 정의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위헌 결정이 내려진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은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핵심 조항인데, 헌재는 해당 조항이 2031~2049년 감축목표를 명시하지 않아 기후 정책의 일관성을 해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헌재는 해당 조항은 2026년까지 효력을 유지하지만, 입법부에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하며 강한 헌법적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헌재는 ‘과소보호금지원칙’과 ‘법률유보원칙’을 근거로 들어, 기후 목표는 정부 재량이 아닌 법률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래세대가 현재 결정 과정에서 대표성을 갖기 어려운 만큼, 입법부가 장기적 기후 목표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과 민주적 책임을 담은 헌법적 선언입니다. 이번 판결은 국제사회에서 장기적인 기후 목표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는 논의에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6월에 발표한 글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5월 19일 채택한 팬데믹 협정의 실효성과 향후 과제에 대한 분석입니다. WHO 팬데믹 협정은 첫 감염병 대응 국제 협정으로, 감염병의 예방·대비·대응을 포괄합니다. 해당 협정은 형평성, 연대, 인권, 과학적 무결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병원체 정보 공유, 기술이전, 보건 인력 강화, 재정지원 등의 수단을 제시합니다. 특히, 인간-동물-환경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One Health 접근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행 과정에서 국가 간 병원체 표본과 의료 자원 공유의 공정성, 지식재산권 장벽, 과학적 의사결정의 정치화 등 복잡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백신 기술 공유는 WTO 규범과 충돌할 수 있어 법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한, 협정 집행이 자발적 보고에만 의존하고 있어 독립적 이행감시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며 선진국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포용적 거버넌스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협정은 국제 보건 거버넌스의 큰 진전이지만, 진정한 시험대는 그 문구가 아니라 실행에 있기 때문에, 그 실행을 위한 정치적 의지와 국가 간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이번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두 논문은 국제사회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법과 관련 원칙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실현하려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첫 번째 논문은 국가가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과제에 대해 헌법적 원칙과 국제법적 책임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논문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여러 국가가 협력하여 국제규범을 만들고, 이를 실행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하려는 의지와 과제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결국, 국제법은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협력과 실천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 중요한 교훈입니다.
| 새로운 연구 주제 혹은 도전해 보고 싶은 연구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기보다는, 국제 법학자로서 꾸준히 도전하고자 하는 관심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국제법의 이행입니다. 국제법은 일종의 세계법이 아니라, 국가 간 합의에 기초하여 형성된 규범입니다. 미국 커네티컷대학교 로스쿨의 Mark Janis 교수는 “조약은 본질적으로 국가 간의 계약”이라고 표현했는데, 일부 국가는 이러한 조약의 계약적 성질에 근거하여 일정한 손해배상을 감수하면 조약 불이행도 가능하다고 인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접근은 국제법의 기본 정신과 공동체적 책임을 훼손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국제 법학자로서 국가가 왜 국제법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이행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 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처음부터 법학을 꿈꾸며 대학에 진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국제법 학술 동아리에 우연히 가입하였는데, 그곳에서 성재호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생소했던 국제법을 동아리 회원들이 이해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열강에 둘러싸인 나라이며, 총칼이 아닌 국제법이라는 도구를 통해 국가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그때부터 저는 국제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국제사회는 언제나 불확실성과 긴장이 공존하는 공간이지만, 법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그 신뢰 가능한 국제질서를 만들기 위해, 저는 국제법을 꾸준히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올 8월 정년을 맞이하신 성재호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수님의 새로운 여정이 건강과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1세기 국제사회는 다자주의와 국제규범에 기반한 협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국제법은 이러한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국가 간 관계를 조율하는 핵심적인 규범 체계입니다. 인권, 무역, 환경, 해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법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실질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국제법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법률 지식의 습득을 넘어,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 성장하기 위한 필수 역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제법은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입니다. 글로벌 역량을 갖춘 법학도, 행정가, 정책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국제법은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문득 제 학창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저를 학생들 안에서 자꾸 보게 되고, 그래서 그들에게 제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단지 전공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에 의미 있게 남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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