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폭풍, 별들의 해일 - <br> 김연지 학우의 몽골 여행기

모래 폭풍, 별들의 해일 -
김연지 학우의 몽골 여행기

  • 327호
  • 기사입력 2015.07.13
  • 취재 유준 기자
  • 편집 김혜린 기자
  • 조회수 9999

누구에게나 한번쯤 인적이 드문 머나먼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특히 대학생들에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시 로망은 로망이기에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어학성적, 자격증 등 ‘스펙 쌓기’ 도 생각해야 하며, 봉사활동도 가야 한다. 또한 인적 드문 곳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걸리는 것도 많다.
‘현실’이라는 벽이 꽤나 높다.

그러나 이 벽을 뚫고 과감히 실천에 옮긴 김연지 (신문방송 14) 학우를 여러분께 소개하려 한다. 몽골에서 무려 3주의 시간을 보낸 연지학우의 여행기를 멋진 사진들과 함께 칼럼 형식으로 전한다.

“왜 하필 몽골이야?”

몽골 여행을 떠난다고 말 할 때마다 모두들 한결같이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했던 질문이다. 내 대답은 항상 달랐다. ‘별을 보고 싶어서’, ‘사막의 모래를 밟고 싶어서’, ‘유목민들을 만나고 싶어서’ 한창 메르스가 유행이었을 땐 엉뚱하게 ‘낙타를 타고 싶어서’ 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했다. 모두 사실이다.

그래도 이 모든 이유를 통괄하는 이유를 하나 찾자면, 그것은 ‘그냥 답답해서’ 이다.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드넓은 초원 위에 지친 나를 뉘이고 싶었다. 한창 아르바이트와 막 시작한 전공 공부에 심신이 지쳤던 3월 막바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게르위에 별이 총총 떠있는 사진을 본 다음날 바로 울란바토르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 후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몽골 여행정보 공유카페 ‘러브몽골’을 드나들며 동행을 구했고, 현지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6박 7일의 고비 사막과, 7박 8일의 홉스굴 호수 투어 일정을 짰다.

한 학기는 빨리 흘렀고, 결국 난 그 한 장의 사진 덕에 6월 20일부터 약 3주간 평생 잊지 못할 치열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중 고비 사막에서의 나날들이 참 ‘몽골스러웠고’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어, 사막을 달리던 하루하루를 사진과 곁들여 조금 풀어 놓을까 한다.

Tip) 몽골은 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자동차가 없으면 거의 여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대부분 현지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운전기사와 가이드를 구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팀을 꾸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팀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주 동안 동고동락할 운명공동체가 된다.

몽골 여행은 인내의 연속이다. 목적지까지는 하루에 평균 6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길이 대부분 비포장도로라 멀미라곤 느껴 본적이 없는 나도 처음 며칠간은 꽤나 고생을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차의 움직임에 잠이 들기는 고사하고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걸려 차 천장에 머리를 박기 일쑤였다. 자세를 바꾸려다 앞으로 고꾸라져 앞사람의 무릎에 코를 박기도 했다.

차 안에서의 유일한 낙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말 그대로 ‘윈도우배경화면’ 같은 초원의 풍경이다. 고지대라 지평선에 구름이 맞닿아 있어 꼭 하늘을 달리는 기분이다. 가끔 염소나 양떼들을 뚫고 지나가야 할 때가 있는데, 자동차를 피해 도망가는 새끼 양들의 엉덩이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이동할수록 차창 밖 풍경이 점차 황량해지는 것을 보고 사막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Tip)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싶다면 목배게를 준비하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목을 든든히 지탱해줄 것이다. 하지만 자는 것 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창 밖 풍경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참을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경치가 좋은 곳에 내려 쉬기도 한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자갈소보로’ 라고 들렸던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일행은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로 펼쳐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연갈빛 장엄한 대지. 그 광활한, 압도적인 자연 앞에 아무도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저마다의 시선으로 이토록 놀랍고 아름다운 지구의 한 부분을 가슴에 새길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멈춰있다 이곳이 한때 바다였던 곳 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서야 각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날 저녁 피곤에 절어 게르 안에 누워있는데, 웬 몽골아이가 게르 안을 빼꼼 내다보았다. 그러더니 까르륵거리며 도망간다. 아이를 따라간 곳엔 땅따먹기가 한창이었다. 누나로 보이는 아이는 열심히 동생들에게 규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내게로 와 땅따먹기를 하던 돌을 쥐어주었다.

발갛게 탄 적토빛 볼이 참 예쁘던 아이였다. 나는 아이가 하던 놀이를 어설프게나마 따라 해보았다. 아이는 내가 발을 맞게 움직이면 박수를 쳐주고 틀리게 움직이면 고개를 젓는 것으로 열심히 규칙을 가르쳐줬다. 몸치인 나 때문에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땅따먹기 놀이를 했지만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Tip)몽골 유목민들은 사람을 반긴다. 유목민 게르에서 묵게 된다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해보라. 말은 잘 통하지 않겠지만 눈빛과 표정, 몸짓만으로도 소통은 충분하다.

울란바토르에서 차를 타고 내달린 지 넷째 날, 드디어 고비 사막의 중심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고비 사막 최대의 모래언덕인 ‘홍고르엘스’ 가 보이는 현지인 게르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찜질방같이 훅훅 찌는 게르를 박차고 나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언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상상 속 사막은 생명이라곤 한 톨도 찾을 수 없는 척박하고 막막한, 극한의 지역이었는데, 고비 사막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곡선을 가지고, 유연하게 움직이며, 하이얀 알갱이들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났다. 그 아래론 낙타무리가 모래언덕을 닮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일정상 모래언덕 등반은 다음 날이었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홍고르엘스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모래언덕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풀이 거의 없는 척박한 땅을 지나, 조그마한 샛강을 건너고도 한참을 걸어야 사막의 모래알갱이를 밟을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모래언덕은 언덕이 아니라 산이었다. 북한산 정도의 높이는 되어 보였다. 잠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걸어온 게 아깝기도 하고 모래언덕 뒤편으로 펼쳐져있을 ‘진짜 사막’이 궁금해 발걸음을 옮겼다. 30분을 쉬지 않고 올랐는데도 반도 못 올라갔다. 뒤를 돌아 앉자, 말도 안 되는 풍경에 다리에 힘이 풀려 대자로 누워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드넓은 대지 위로 풀이 드문드문 나있고, 저 뒤에 게르들이 콩알, 아니 쌀알만하게 보였다. 세상에 태어나 느껴본 적이 없는 적막한 고요. 더운 바람을 타고 내 몸 위를 구르는 모래알갱이들. 비로소 나는 사막에 와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지평선 쪽이 회색 빛으로 물들었다. 게르로 돌아가려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데, 저 아래에 우리 일행들이 모래언덕을 기어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일행들을 조금 기다렸다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언니 오빠들은 모래언덕에서 비닐봉지를 타고 보딩을 할 거라며 잔뜩 들떠있었다. 확실히 혼자 오르는 것보다 함께 오르는 게 덜 힘들었다.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며 웃으며 오르다 보니 벌써 중턱에 다다랐다. 날도 점점 어두워지고 다들 지쳐서 곧 내려가기로 하고 앉아 쉬는데, 지평선 쪽의 회색 빛이 점점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 모래언덕에서 웬 남자가 허겁지겁 아래로 내달리며 우릴 향해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난 그 몸짓이 우리에게 인사 하는 건 줄 알고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때의 난 그 신호가 어서 도망가라는 뜻인 줄 몰랐다. 왜 갑자기 손을 흔든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어 다시 지평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회색 빛이 아니라 무슨 거대한 먼지덩어리가 끝에 있는 게르부터 하나씩 집어삼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빠, 저거보여? 먹구름 같기도 하고…점점 이 쪽으로 오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근데 좀 더 있다가 저게 뭔지 보고 가도 안 늦을 것 같아.”

난 그 때 일행들을 설득해 최대한 빨리 모래언덕을 내려갔어야 했다. 재난 영화에서도 그렇지 않던가. 안일함이 결국 폐망의 길로 이끌곤 하는 것이다. 그 때였다. 먼저 정상에 올라갔던 다른 일행이 뛰어오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어서 내려가! 저거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

해질녘의 어스름이라 생각했던, 혹은 거대한 먼지 덩어리라 생각했던 그것은 알고 보니 모래폭풍이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모두들 바짝 얼었다가, 풀을 뜯어먹던 야생마들이 필사적으로 폭풍 반대 방향으로 뛰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야 우리도 온 힘을 다해 모래언덕을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 할 때는 너무 늦은 때였다. 사방에서 모래알갱이들이 미친 듯이 온몸을 때리고, 전방 1미터 정도 밖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당연히 방향 감각도 없었다. 그저 서로 옷자락을 꼭 쥐고 개 한 마리를 뒤쫓아갈 뿐이었다. 동물의 감각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 만큼 걸었으면 우리의 게르가 보일 법도 한데 게르는 커녕 돌아올 때 보았던 경관과는 조금 다른 곳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고 배는 고파오고 이 드넓은 사막가운데 우리 4명 정도 사라진다 해도 아무 이상할 것 없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이따금 죽음이 코앞에 왔을 때를 상상하곤 한다. 그러곤 누구의 얼굴부터 떠오를까 하며 내 생에 중요한 사람들을 꼽아보곤 했다. 하지만 정작 ‘정말 죽겠구나’싶을 때가 오자 오직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리에 감각이 무뎌오고 주저앉고 싶을 때쯤 희미하게 게르의 불빛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내달려가 우리 가이드로 보이는 실루엣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가이드가 아니었고, 그 게르는 우리의 게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몽골인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많이 무서웠냐고 서툰 영어로 위로해주었다. 그러고는 손짓을 하며 저 쪽으로 가면 다른 게르가 있으니 그리로 가보라고 했다. 절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마을 쪽으로 왔으니 죽지는 않겠다고 안도하며 다시 한 번 힘을 내 몽골인이 가리킨 쪽으로 다시 하염없이 걸었다. 그 때였다. 두 개의 자동차 불빛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조난 된 사람인 양 손을 흔들며 달려가 격렬하게 창을 두드렸다. 다행히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은 우릴 찾아 헤매던 가이드 바이라와 운전기사 빠기, 그리고 게르 캠프의 주인장이었다.

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온 몸이 녹아 내리는 듯한 안도감에 빠기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함께 헤맸던 언니는 바이라의 품에 안겨 훌쩍였다. 오빠 둘은 그런 우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덜컹거리는 자동차에 몸을 맡겼다. 주인장은 이 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이런 모래폭풍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가이드는 우리끼리 게르에 묵게 하긴 불안했는지, 다 함께 현지인 게르에 들어가 쉴 것을 제안했다. 그날 밤 우리는 몽골노래와 한국가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번갈아 부르고, 보드카를 나눠 마시며 이것도 다 추억이 될 것이라며 애써 서로를 위로하며 생존을 자축했다. 모두가 웃고 있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고, 모두들 잠자리에 누웠지만, 그 누구도 잠들 수 없었다.

고비 사막을 떠나 다시 울란바토르로 향하던 어느 날이었던가,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날이 있었다. 그날 바이라는 아침부터 오늘 같은 날은 별이 많이 뜰 것이라며 내게 기대를 불어넣어 주었다. 몽골의 여름은 해가 11시쯤에야 저물어서 별을 보려면 새벽 1시까지는 안 자고 버텨야 한다. 고단한 하루에 그 때까지 버티기란 쉽지 않았지만, 별을 보고 싶었던 초심을 떠올려 기를 쓰고 버텼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촛불을 하나 켜놓고 다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사이 게르 지붕 사이에 난 구멍으로 진짜 우주가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는 컵라면을 끓여 게르 밖으로 나왔다. 난생 처음 보는 수 많은 별들에 라면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라면은 맛있었다. 이제와 감상에 젖어 회상해보면, 발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저 하늘의 수 많은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까 조심스러웠던, 그런 밤이었다.

Tip)별 사진을 찍고 싶다면 DSLR이나 미러리스가 필요하다. 캐논 700D 기준으로 셔터스피드는 30초, ISO는 800정도가 적당했던 것 같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고비 사막 투어와 홉스굴 호수 투어가 모두 끝나고, 울란바토르의 pc방에 앉아 옆자리 몽골인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나는 몽골에 왜 왔는가.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 사실 여행이 끝날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행을 떠나는 데엔 거창한 이유는 없으며, 여행 후 얻는 뼈저린 교훈 같은 건 없었다. 그 동안의 여행은 새로운 공기, 낯선 풍경에 가슴이 뛰는 그 자체로 좋았었다.

하지만 3주간 푹 몸 담았던 몽골이라는 이 애증의 나라는 내게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일상을 새로이 보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몽골은 차를 타고 장시간 이동을 해야 진 풍경을 만날 수 있고, 진짜 몽골을 만날 수 있다. 하루 눈 뜨고 있는 시간의 절반을 차 안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실패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 방법을 터득하는 순간, 하늘의 구름 한 점도 다르게 보이고, 벌판에 나뒹구는 바위들이 진귀하게 보이는 것이다.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에서의 시간을 목적을 위해 연소시키면 안 된다. 목적을 향해 걷는, 준비하는 순간 순간마저 다 여행임을 느끼며, 다른 방향도 보고, 하늘도 한 번 보며 즐겨야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을 새로이 보기 위한 것인 게 아닐까.

신방 14 김연지 -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