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의상학과 졸업작품 대상, <br>조혜리 학우

2015 의상학과 졸업작품 대상,
조혜리 학우

  • 328호
  • 기사입력 2015.07.28
  • 취재 이윤호 기자
  • 편집 김혜린 기자
  • 조회수 12632


저는 처음부터 패션이나 옷에 관심이 많아서 의상학과를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원래 그림이나 디자인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패션 쪽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림이랑 디자인을 좋아하니까 의상학과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걱정을 안고 의상학과에 입학하게 됐어요. 걱정이 많았지만 제 전공이니까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으로 수업들을 듣다보니 흥미도 생기고 재밌게 배웠던 것 같아요.



다른 학과들이 어학성적이나 졸업 논문이 졸업요건인 것처럼 의상학과도 논문이나 졸업 작품을 해야 졸업을 할 수가 있어요. 관행적으로 거의 모든 학생들이 논문 대신에 졸업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저도 졸업 작품을 준비하게 됐죠. 졸업 작품은 몇 명의 학생들이 팀 단위로 진행을 해요. 팀원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통해서 주제를 정하고 준비를 해나가는 거죠. 졸업 작품은 준비기간이 1년이에요. 작년 2학기부터 올해 1학기까지 1년 동안 준비를 해서 지난 6월에 쇼를 했어요.

개인이 아니라 팀별로 진행을 하기 때문에 회의를 통해서 팀의 주제를 정했어요. 각자 하고 싶은 주제들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조율을 해나갔죠. 저희 팀 주제는 Modern Hobo였어요. 현대사회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라는 큰 주제에 맞게 지적으로 포화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서 어떤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방황을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개인별로 의상을 두 벌씩 제작을 하는데 저의 개인 주제는 잉크 얼룩이라는 뜻의 "Ink Stain"이었어요. 인류가 지적 유산을 축적하는 데 중요한 매개였던 잉크에 흠뻑 젖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최초의 잉크가 중국의 먹이라고 하더라고요. 먹으로 염색을 했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따스한 색감도 좋아서 실제로 옷을 만들 때 대부분의 염색을 먹으로 했어요. 그런지(grunge)한 질감과 비대칭적이고 비정형적인 디자인의 옷으로 Hobo(방랑자)의 이미지를 연출했어요.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울 모직과 거칠고 해진 염색 소재, 곡선과 직선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을 한데 사용하여 복잡해 보이지만, 그 복잡함 와중에서도 조화로움을 이끌어 내고자 했어요.

제가 대상을 받게 될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의상학과를 졸업한다고 해서 다들 디자이너의 길을 가는 게 아니잖아요. 졸업 작품 대신에 졸업 논문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을 정도로 저는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일단 졸업 작품을 하게 됐으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니까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학교와 집이 통학하기에 꽤 먼 거리인데도 학교에 오래 머물러서 작업을 하다보니까 자취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까지 듣기도 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상은 받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주위의 이런 반응에 부담감도 컸고 약간의 기대를 하기도 했죠. 쇼가 끝나고 대상을 받고 나니까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보람도 느꼈고 한편으로는 부담도 됐어요. 상을 받고 지금까지 졸업 작품에서 대상을 받으셨던 선배님들을 찾아보니까 패션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대단하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지도 않던 내가 이 상을 받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패션과 관련해서는 해 온 활동이 거의 없어요. 칵테일, 우쿨렐레 동호회 활동이랑 대학생 기자단이나 서포터즈 같은 평범한 대외활동들을 했었어요. 의상학과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좋은 결과를 받고 나니까 디자이너 분야도 내가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현재는 “데무”라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디자인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요. 인턴이다 보니까 전문적인 일을 배운다기보다는 디자인실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정도로 경험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저는 조금 특이하게 의상학과랑 국어국문학과를 복수전공하는 중이에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도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처럼 하나의 창조활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수업들을 들으면서 두 학문의 접점을 나름대로 찾아가고 있어요. 그러던 중에 국어국문학과 수업 과제 준비를 하다가 우리 학교 의상학과 교수님이 쓰신 논문을 하나 보게 됐어요. 패션에 관한 진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이라 바로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죠. 제가 관심 있는 이런 분야에 관련된 직업이 있는지 어떤 분야인지 여쭤봤더니 “패션 스터디스”라는 관련 학문이 있고 앞으로 유망하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계속 공부해보라고 조언을 주셨어요. 그 분야를 계속 배워볼 계획이에요. 대학원을 바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을 해서 지금은 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경험하는 걸 더 해보면서 공부는 혼자서 차근차근히 해나가려고요.

제가 생각나는 말들이 있으면 SNS에 저만 볼 수 있게 설정을 해놓고 글을 가끔 써놓곤 해요. 최근에 다시 보면서 공감했던 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만의 삶의 속도가 있는 것 같아요. 맘대로 그 과정들을 단축하거나 건너뛰거나 할 수 없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말고 다르게 했더라면 그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막상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비슷한 과정을 겪어서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아무리 의미 없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어도 그 시간들 때문에 자기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고 다음에 뭔가를 하고 이런 과정들이 계속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한 후회를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