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문학도를 만나다 <br> 청랑 장의 박보연(국문 16)

꿈 많은 문학도를 만나다
청랑 장의 박보연(국문 16)

  • 374호
  • 기사입력 2017.06.26
  • 취재 신도현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8388

기자에게 작년 가장 재밌었던 추억들에 대해 묻는다면 '고하노라'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종로의 골목을 걸었고 처음으로 공모전에 참여했으며 처음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했었다. 6월의 어느 날 '고하노라' 행진유생 모집 포스터를 보았다. 올해 준비하는 행사는 어떤 모습일까? 기자는 청랑의 장의 박보연 (국문, 16) 학우를 만나보기로 했다.


◈ 청랑의 장의?

"청랑은 성균인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성균관 유생 문화를 활용하여 성대를 대표하는 대학문화를 창조하는 단체입니다." 청랑에 대한 소개를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청랑은 내부 직책의 이름도 과거 성균관의 재회(성균관의 '총학생회')의 명칭 그대로 사용한다. 장의는 쉽게 말해서 지금의 총학생회장같은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총학생회장 같은 자리면 업무 면에서 힘들지 않을까? 그에게 장의의 역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장의의 기본 업무는 내부 단원 관리와 단체의 스케줄을 조망하는 일이다. 덧붙이자면 장의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원들이 업무를 하고 활동을 할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외에도 대외협력 담당이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일을 도와준다. 외부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난다든지." 그는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처음 청랑에 들어간 계기는 3월에 열리는 신방례 행사였다.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어떤 행사인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청랑에 매력을 느껴 지원을 했다고 한다. 행사 자체도 너무 재밌었기에 그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 이겠구나'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들어갈 때부터 마음가짐이 남달랐던 그였기에 혹시 들어갈 때부터 장의가 되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때는 '나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들어갈 때만 해도 1기 장의와 2기 장의가 정말 크게 느껴졌고 내가 그런 업무를 할 수 있을지 잘 몰랐다.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장의라는 자리까지 온 기분이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더 잘나서 대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단원들을 더 잘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업무적인 면에선 아직 많이 배우고 있다. 성취감은 저절로 오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그는 "엄청난 자리는 아니다"며 미소 지었다.

◈ 고하노라?

최근 준비 중인 고하노라에 대해 물어보았다. "고하노라는 과거의 백성들과 선비들을 대표해서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문화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전통을 청랑에서 현대적으로 창조해서 우리 학교만의 대학문화축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진행 방식은 전통을 따르되 내부의 내용은 현대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고 있다." 현대적인 방식은 어떤 것일까? "첫 번째 순서인 대의사(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하지만 이후 진행되는 소행('고하노라'의 행진)은 단순히 줄을 맞추어 걷는 것이 아니라 퍼레이드의 느낌이 나도록 기획하고 있다. 유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시민들과 어울러져 축제를 만들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마지막 순서인 소반과 비답(임금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답변을 받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의견을 주고받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을 대표하는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분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

그래서 청랑에서는 같이 추억을 만들 행진유생을 모집한다고 한다. "소행 때 함께 할 학우들을 6월 말까지 모집하고 있다. 행진유생이 된다면 방학 동안 자주 보면서 노래와 춤을 배우고 소품을 만들면서 '고하노라'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공연단원과 일반참가자를 따로 뽑지 않는다. 저번에는 500명의 학생들을 두 번에 나누어 뽑았다면 이번에는 단 200명만을 뽑아 행사를 준비할 예정이다." 그는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어떻게 보면 200명이라는 숫자가 가장 이상적이다. 성균관의 정원이 200명이었다고 한다. 의미가 있는 셈이다. 청랑 단원들의 입장에서도 통솔 가능한 범위라고 생각한다. 제 2회 고하노라에서는 더 질 좋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 조금 무리했기에 의복이나 음향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지난번을 거울삼아 올해 많은 것을 바꾸려 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이어서 그는 "행진유생 이외에도 화공유생이나 길잡이 유생 같은 자원봉사자 실무단은 7월~8월쯤에 선발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고하노라 행사의 구체적인 진행에 대해 물어봤다. "9월 23일 토요일에 성균관에서 시작해서 대학로와 인사동을 거쳐 광화문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저번처럼 비슷하게 종로를 거닐지만 마무리는 대한문 앞 광장이 아닌 광화문 앞 광장이다. 올해는 종로 한복 축제와 같이 진행하게 됐다. 서로 같은 종로 행사이기도 하고 취지가 맞기에 파트너 축제로 추진해봤다. 올해 같이 해보고 어떤 효과가 나는지 살펴본 후 이후의 축제 방침을 결정할 듯하다. 우리의 무대 공연이 아마 종로 한복 축제를 여는 무대가 될 예정이다. 무대 공연에 관해서 청년을 대표하고 고하노라와 연관이 있는 유명인도 초청해 볼 기획이다."

 (사진 클릭 시 '고하노라' 모집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학교생활

청랑 이외 그는 어떤 모습일까? 기자는 먼저 국문과를 가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원래 국어를 정말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쉬는 시간에도 국어를 공부했다. 나에게 다른 과목은 공부나 압박으로 다가온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어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수험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3이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그럴 때마다 국어책을 펼쳤다. 그리고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막 읽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계속 읽고, 황만근 씨보면서 좋아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황만근 씨의 순박한 면에 매료됐었다. 그 이외 형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나라의 사투리가 사실적으로 나와 있어서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교수님이 물어보시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솔직히 고전을 좋아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현대소설이다." 국어를 좋아했던 자신이 학과를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주위에서 영문학과를 가라는 소리를 많이 했다. 성적이 잘 나오면 보통 영문학과를 가곤 한다. 그리고 사학과도 많이 고민했다. 가전공이 사학이라 관련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교수님들도 좋고 수업도 재밌었다. 그래도 여전히 국어가 강하게 잡아당겼다. 1학년 때 문학입문에서 공부한 기억도 학과 선택에 많은 영향을 줬다. 고전에 대해 공부하면서 고등학교 때 문학을 바라본 추억들이 다시 살아났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9시 수업. 아침에 일어나고 등교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저번 학기에 아주 호되게 당했다. 9시 수업이 고작 2개였는데 그 2개의 수업이 너무 힘들었다. 전공도 적성에 맞아서 정말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지만 아침이 너무 힘들다. 고등학교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땐 어떻게 일찍 일어나고 등교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공부하고 싶지 않던 과목을 수강하던 작년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공부를 즐겁게 하고 있다는 그에게 추천하고 싶은 수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전오 교수님의 사회과학 고전읽기를 정말 재밌게 수강했다. 100% 원형 토론 수업이다. 평소에 철학, 법 등을 공부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회과학고전읽기를 통해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유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공 수업은 아직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추천하기엔 애매하다. 그렇지만 이지하 교수님의 '고전소설의 이해'는 들어보고 싶다. 평이 워낙 좋아서 궁금하다. 그 이외에도 천정환 교수님처럼 유명한 교수님의 수업도 들어보고 싶다."

"취직을 하려면 복수전공을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내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를 하고 싶다. 앞으로 5년 뒤의 내 모습이 기대가 된다. 그렇지만 청랑이라는 단체에 있었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랑이 얼마나 힘든 단체이기에 그러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는 "업무가 마냥 쉽진 않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가 좋고 구성원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서 업무 스트레스도 별로 없다. 청랑에서 같이 많이 배우고 노력하고 성장하면서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오기 때문에 자신감 역시 갖게 됐다. 청랑에 들어간 일은 학교생활하면서 잘한 일 중 하나다."

학과 이외에 관심이 가는 분야에 대해 물어보았다. "요즘 관심이 있는 분야는 강연이나 무대 프로그램이다. '고하노라'의 마지막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연구하면서 많은 영상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시험기간도 겹치면서 조금 정신없게 지내고 있다. 영화 관련 동아리에도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영화 만드는 일도 있고." 그는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목표는 대학원에서 고전문학 연구이지만 영화나 무대 기획 쪽 역시 재밌어서 놓치기 싫다. 아직 2학년이라 그런가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내년부터 생각해보고 싶다."

◈ 마무리하면서

"최근 종로구청을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고하노라'는 학교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공서에 계속해서 연락을 넣어야 한다. 힘든 과정이다.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이 배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날씨가 너무 좋더라. 과제나 시험, 대외활동 때문에 많이 바쁘겠지만 우리 모두 여유를 가지고 하늘을 보도록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어색한 듯 크게 웃었다. 그의 긍정적인 면이 돋보였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6월말까지 진행되는 행진유생 모집에 많은 지원을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작년 고하노라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정말 펑펑 울었다. 그때 참가자 분들이 저에게 다가와 웃으면서 왜 우냐고, 잘했다고 다독여주고 안아주셨다. 그때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행사를 하면서 '사람'을 얻을 수 있어서 보람찼다. 이번에도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참가할 모든 분들이 좋은 추억 만들었으면 한다." 이른 저녁, 경영관에서의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