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의 발자취를 찾아서’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온 러시아어문학과 학우

  • 497호
  • 기사입력 2022.08.14
  • 취재 전지우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 조회수 7604

대학생에게 여름방학은 다양한 경험을 쌓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다. 이번 <성대생은 지금>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방학 동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온 학우들을 만나 보았다. 러시아어문학과 송채린(18), 안정은(20), 김시은(20), 황세윤(22) 학우는 <SKKU-BA-DIVE>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여름,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다. 서로 다른 계기로 고려인에 관심 갖게 된 이들은 고려인 역사의 자취를 따라가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뭉쳐 함께 타국의 땅을 밟았다. 선후배가 모여 함께 뜻깊은 경험을 하고 돌아온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정은: 러시아어문학과 20학번 안정은입니다. ‘고려인의 발자취를 찾아서’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했어요.


송채린: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인원 중 가장 고학번인 18학번 러시아어문학과 송채린입니다.


김시은: 성균관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20학번 김시은입니다


황세윤: 안녕하세요. 러시아어문학과 전공예약생 황세윤입니다.


왼쪽부터 김시은(20), 안정은(20), 송채린(18), 황세윤(22))



Q. <SKKU-BA-DIVE>는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안정은: 국제처에 신설된 선후배 교류 해외 체험학습 프로그램이에요. 말 그대로 해외에서 선후배가 함께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봉사활동이나 학회 참석 등 팀의 관심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서류와 프레젠테이션 면접으로 선발되면 소정의 지원금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취지에 맞게 1학년 학생이 무조건 포함되어야 하며 저희 팀은 러시아어문학과의 1, 2, 3, 4학년 네 명이 함께 참석했어요.


Q.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정은: 외국어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보고 싶기 마련인데, 코로나 학번이라 그런 기회가 없어 아쉬웠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점점 항공 길이 열리면서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하나둘씩 시작되었고 반가운 마음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어문학과 학생으로서 팀원들 모두 고려인 커뮤니티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고려인들이 한국 정착에 있어 겪는 어려움과 차별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Q.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안정은: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 어르신들을 위한 ‘아리랑 요양원’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방문객이 끊겨 어르신들이 많이 적적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리랑 요양원을 방문해 어르신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봉숭아 물들이기를 해드리며 담소를 나눴어요. 어르신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어르신들이 자주 드시는 현지화된 한국 음식도 나눠 먹었고요.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교육원에 방문해 직접 강제 이주를 겪은 고려인 1, 2세대뿐만 아니라 이미 정착한 뒤 그곳에서 나고 자란 3, 4세대를 모두 만나보려 했어요. 고려인 한국어 교사분들과 한국과 고려인의 문화, 그리고 한국어 교육에 대한 간담회를 했고, 교육원 측의 도움으로 현지 고려인 학교에 이틀간 방문해 고려인 초등학생들과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딱지치기 등의 전통 놀이와 달고나 만들기 같은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어요. 이렇게 직접적인 만남 말고도, 고려인 마을을 비롯해 고려인 정착 80주년 기념비와 고려인 작가가 전시된 박물관 등을 방문하며 고려인의 자취를 따라가 보기도 했답니다.


왼쪽부터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에서의 간담회>, <고려인 학교 학생들과 단체사진>


Q. 어떤 계기로 고려인에 관심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안정은:  아동센터에서 교육 봉사를 하는데 가르치는 학생 중 고려인이 있었어요. 정말 똑똑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많은 학생인데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채로 와 어려움을 겪는 게 안타까웠어요. 고려인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이번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현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어요.


송채린: 저는 고등학교 때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 고려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렇게 고려인의 존재와 그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운 점을 알게 되었죠. 자연스럽게 대학교도 러시아어과로 진학했고 고려인과 같은 재외 동포, 국내 외국인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이 프로그램도 그런 이유에서 참여했어요.


김시은: 고려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러시아 역사의 이해라는 수업을 통해서였어요. 러시아의 ‘카레이스키’라는 고려인들에 대해 알게 됐고 러시아어문학과 학생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황세윤: 초등학생 때부터 러시아에 흥미를 느꼈고 소련에 대한 역사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고려인에 대한 개념을 접했어요. 이후 고등학생 때 더 많은 시사 문제들을 접하면서 고려인들의 비자, 이주 문제 등에 대해 듣게 됐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됐어요.



Q. 활동하면서 가장 인상깊은 일화가 있다면?


김시은: 사마르칸트에 있는 '레기스탄 광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을 만났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한국말로 대화하고 있으면 수줍게 다가와 '카레이스키(한국인)'냐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어요.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방탄소년단의 팬이라고 하거나 본인 친척이 한국에서 근무 중이라며 반가워해 주셨어요. 당시 우즈베키스탄 현지인 친구 한 명과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했고 다음 날 놀이공원까지 갔어요.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환대해주는 분들이 많았아요. 생각보다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했어요.


안정은: 모든 경험이 새로웠고 인상 깊었어요. 고려말을 전혀 못 하시는 어르신들까지도 아리랑만큼은 모두 알고 따라 부르시던 모습. 봉숭아 물들이기를 해드리자 곱다며 고맙다고 해주시던 어르신. 팀원들의 본관을 물으시고는 같은 본관을 찾았을 때 너무도 반가워해 주시는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고려말을 가장 잘하시는 김 아나톨리 할아버지께서 당신이 머무시는 방을 흔쾌히 구경시켜주시며 고려말로 저희와 신나게 대화를 나누시던 모습도 기억에 남아요. 고려인 학교에 갔을 때 조용히 와 손에 간식을 쥐여주던 학생에게도 정말 감동받았어요.


왼쪽부터 <아리랑 요양원에서 황세윤 학우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사진>, <고려인 학교에서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Q. 이번 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안정은: 고려인들의 정착 과정을 직접 들으며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가치관을 알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어요. 고려인들이 한국인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사소하게는 국수와 국시, 김치와 짐치 같은 차이요. 요양원 어르신들이 기억하는 수십년 전의 한국의 모습으로 저희와 대화를 시도하실 때 살아있는 역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송채린: 우즈베키스탄의 문화를 많이 배웠어요. 우즈베키스탄에는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있어요. 우즈베크 사람들은 ‘гостеприимный народ (손님을 환대하는 친절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도 그랬어요. 저는 지금 러시아어권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학생 중에 고려인이 정말 많은데, 대부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이에요. 이번 프로그램이 저에게는 학생들의 고향을 경험해 볼 좋은 기회였어요. 학생들이 어떤 곳에서 태어나 자랐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공통분모를 만들게 되어 기뻐요.


황세윤: 현지인의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러시아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러시아어를 다시 배워보자는 목표 의식이 생겨 학원에 등록했고 러시아인 친구를 통해 실전 감각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도 실천에 옮겼어요.


김시은: '도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어 두려움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도전했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깨달음이에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일들도 많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번 도전 덕분에 이런 기회가 또 찾아온다면 더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왼쪽부터 <고려인 학교에서의 사방치기>, <고려인 학교에서의 달고나 만들기>



Q. 고려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시은: '관심과 지원'이요. 아리랑 요양원은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무료로 부지와 건물을 지원해준 덕분에 설립될 수 있었다고 해요. 한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과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고려인 독거노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아마 설립되지 못했겠지요.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정착하여 생활할 수 있는지, 문화와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4D 업종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고려인들을 이방인이 아닌 우리 민족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이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관심도 커지겠다고 생각해요.


송채린: 고려인들 개인마다 겪고 있는 문제가 다양해서 ‘고려인 문제’를 무엇으로 정의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한국어 공부가 어려워서, 어떤 사람은 일자리가 안 구해져서, 어떤 사람은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어해요. 하지만 고려인 모두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는 거예요. 조상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언어 문제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대인관계도 쉽지 않아요. 고려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적응 도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안정은: 한국이 살기 더 좋은 환경이라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어서,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오고 한국 정착을 희망하는 고려인들이 많아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도, 언어 문제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크고 작은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고려인을 포함한 이주민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인들의 더 큰 관심으로 요양원과 교육원같이 한국에서 재정 지원받는 기관들이 더 늘어났으면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안정은: 저희가 방문했던 한국교육원에서는 저희의 프로젝트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길 바라시며 다음에 또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아리랑 요양원에서도 아리랑 요양원이 한국에서 더 잘 알려지기를 바라셨어요. 우선은 한국인들이 고려인과 저희가 방문했던 기관들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개인적인 노력을 할 생각이고, 이 프로젝트가 자리 잡아 지속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려 해요.


송채린: 이번 경험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 삼아 앞으로 고려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


김시은: 저는 앞으로도 '러시아어문학과' 전공생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살고 싶어요. 이전에는 러시아어문학과 관련 진로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 경험으로 제 전공의 다양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황세윤: 조만간 고려인 동포 자녀 한국어 학습지도 및 기초학습 지도 봉사활동에 다 같이 방문할 예정이에요. 개인적인 목표는 내년 중순까지 토르플 2급을 취득하는 것이에요. 그 후에는 러시아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졸업 후 러시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