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아트포영 공모전 수상
김유빈(미술학과 20) 학우

  • 515호
  • 기사입력 2023.05.13
  • 취재 유영서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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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품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다. 해가 저물 때 방 안에 들어오는 그림자, 사람 간의 사랑처럼 당연한 것들을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단조로운 세상을 다채롭고 생생하게 만든다. 이 힘을 믿고 당연한 개념에 의문을 품으며 작업하는 미술학과 김유빈 학우는 <사랑의 유통기한> 작품으로 천만아트포영 공모전에서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유빈 학우가 세상에 던진 질문과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파생된 문제들을 설문, 인터뷰를 통해 아카이빙하고 이를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가 김유빈입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20학번 미술학과에 재학중입니다.


Q. 천만아트포영 공모전 수상 축하드려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천만 아트 포 영(ChunMan Art for Young)’ 은 삼천리그룹 공익법인인 천만장학회에서 국내 시각예술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해 개최한 공모입니다. 시각예술 전분야의 학부, 대학원 재학 중인 전공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요. 공모 수상자 30명에게 총 1억 원의 상금을 수여하며 작품전시 기회도 주어지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지원했습니다.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시가 중요한데 신진 작가나 학부생에게 그런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천만 장학회의 취지가 좋다고 느꼈고 2차 심사에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큐레이터 켈리 롱(Kelly Long)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 로라 브레이브먼(Laura Braveman)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저의 작품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발된 12명은 큐레이터와 1:1 대면 크리틱을 진행했는데 저도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Q. 작품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한 설명과 작업과정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사랑’은 쉽사리 정의하기도 언제까지 효력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상품의 유통기한은 '◯◯◯◯년 ◯◯월 ◯◯일 까지’로 정확히 명시되어 있어요. 모든 상품에 유통기한이 있듯이 사랑에도 기한이 있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자 설문부터 인터뷰, 영상, 설치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우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연애 경험과 기간, 헤어진 이유 등과 같은 질문으로 설문을 진행했고 인터뷰 참여에 동의한 5명의 참여자를 모집했습니다.


5명의 참여자에게 그들의 연애 기간에 상응하는 유통기한이 있는 물품과 보증서를 주고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습니다. 보증서는 [보증 물품, 보증기간,연애 기간, 결별(연애) 사유, 제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과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었어요. 현재 연애 중인 참여자에게는 연애를 지속하는 이유와 현재 사랑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남은 것 같냐는 짓궂은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단지 연애기간만 같은 유통기한이 있는 물품을 주며 이것이 당신의 사랑을 보증한다고 한 것입니다. 참여자들은 보증서를 적고 그 상품을 사용하며 그 상황에 몰입하게 돼요. ‘사랑을 보증한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참여자들에게 그 물품은 단순 상품이 아닌거죠. 연애 중인 참여자는 보증 물품인 트러플 소스로 남자친구 캐릭터의 머리카락을 그리는데 사용하고, 전 연인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참여자는 보증 물품을 매장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그 상품은 그들의 사랑의 보증물품, 상징물로서 작용하고 이는 사용방식에서 드러났습니다.


▲ 김유빈 <사랑의 유통기한> / 160 x 140 / 설치, 단채널비디오(8분) / 2022


Q. ‘사랑에 유통기간이 존재하는 것이 보편적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 이유와 그 질문에 답을 내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중경상림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중경상림의 남자 주인공이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대사를 해요. 그 대사를 듣고 세상에 이런 로맨틱한 말이 어디 있나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 사랑을 못 해봐서 항상 기한이 있는 연애를 해왔나 싶기도 했고요. 연애를 하면서도 내가 하는 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나 스스로 생각하는 사랑은 뭔지 고민하다 보니 되게 답답했어요. 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랑을 실체화하면 이 답답함이 해소될 것 같아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랑에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것이 보편적인가?”라는 질문에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O), 없다(X)로 대답하기보다는 “사랑에는 기한이 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부재 대상의 기억은 남는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우리가 헤어짐을 말하며 관계를 끊어냈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만난 시간과 기억이 사라지진 않잖아요. 한쪽에서 미련이 남을 수도 있고 몇 개월, 평생을 못 잊을 수도 있죠.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처럼 아무 관련 없는 사물을 주며 사랑을 보증한다고 했을 때, 다시금 기억 속에 있었던 전 연인에 대한 감정을 사물에 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감정은 그리움, 미련 뿐만 아니라 분노, 괴로움일 수도 있겠죠.


▲ 사랑의 유통기한 설치 전경


Q. 모마 큐레이터인 로라 브레이브먼과 1:1 크리틱을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뉴욕 현대 미술관은 세계에서 현대미술로 가장 영향력 있는 곳으로 미술 전공자 누구나 꿈꾸는 곳이라 생각해요. 이 공모에 지원한 이유도 모마, 휘트니 큐레이터가 작업을 평가한다는 점이 컸어요. 1:1크리틱을 앞두고 많이 긴장했는데 따뜻하고 편한 분위기였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하는지, 어떻게 작업을 전시했는지, 작업 하나하나에 대한 제 생각을 들어주려고 하셨어요.


로라 브레이브먼이 작업을 다 듣고 마지막에 해준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소피칼이라는 작가를 아냐고, 관객에게 물리적인 개입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와 매우 유사하고, 그가 짓궂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면, 저는 더 유머스럽고 시적(은유)이라는 말을 해줬어요. 소피칼이라는 작가를 아주 좋아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그렇게 말해 주시니 영광이었죠.


▲ 소피칼, 베니스에서의 미행, 1980: 우연히 만난 남자의 일상을 카메라로 추적하며 미행하는 작업


Q. 자신의 작품 중 마음 깊이 담아둔 작품이 있나요?

저의 첫 작업인 <아지트로 도피하다>라는 작업이 생각나요. 서울 미디어 시티 비엔날레(2021) <하루하루 탈출한다>와 성균관대학교와의 연계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SMB에서 제시한 도피주의의 정의에 대해 반추하며 도피의 물리적인 공간인 아지트를 주제로 선정하고 2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현대사회 속 도피주의를 들여다보기 위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도피처(아지트)가 변화한 모습을 살펴보고 일련의 활동을 통해 아지트를 현대 사회에 맞게 재정의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0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도피와 아지트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엮어 ‘사회적 도피기술 연구’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가 코로나19가 발생한 시기와 일치하는데 이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침체되고 도피하게 된 시기였던 것 같아요. 20학번인 저도 첫 학기부터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으니까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개인이 도피하게 된 맥락들을 들어볼 수 있었고 도피라는 개념을 사람들의 실질적인 공간(아지트)으로 연결시키며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예술, 미술이라는 것은 이처럼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시적으로 은유적으로 때론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실체(시각)화 시키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도피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디서 어떻게 왜 라는 말들이 뒤따라옵니다. 이를 아지트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연결시키며 도피를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2년 동안의 프로젝트 경험이 저의 작업방식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아 기억에 남습니다.


▲김유빈 <아지트로 도피하다> / 단채널 비디오 (24분) / 2021


Q. 김유빈 학우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해요. 관심 있는 것과 그것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영상, 회화, 사진, 설치, 공예 등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주제도 작업마다 다르다 보니 "나는 특정한 시각(개성)이 없는 작가인가" 항상 고민했어요. 그래서 이번 공모를 계기로 작업을 하나하나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주제는 다르지만 제가 상황을 연출하고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을 참여자로 끌어드리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거의 일관된 작업방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항상 설문, 인터뷰와 같은 아카이빙이 수반되고요. 제가 인간과 인간사이의 경계를 넘거나 넘지 않는 미묘한 경계선들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기작인 <아지트로 도피하다>에선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도피하게 된 맥락을 다루고 <사랑의 유통기한>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가, 그 경계를 허물 수는 없는가를 질문합니다. <Put_[?]_pocket>을 통해서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상에 있는 소매넣기라는 행위를 통해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권위적 공간에서 벗어나 일상적 공간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려 했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경계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 경계를 만들어낸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Q. 설문, 인터뷰를 통한 아카이빙에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아요. 그 과정이 김유빈 학우에겐 어떤 의미입니까?

아카이빙을 하는 이유는 제 작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작업에 있어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경험이 밸런스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주 재미있는 개인적인 일화를 다뤄도 이것이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면 관람객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어요. 그렇기에 작업 초기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업을 기획해요. 그러다 보니 작업이 너무 중립적이고 관조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지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 작업에 항상 참여자로 등장하곤 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유통기한 작업에서도 제가 참여자로 나와요.


아카이빙을 할 때, 참여자와 설문 대상을 모집하는 과정은 현재까지도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재까지는 제 또래인 20대였기에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자료가 필요할 때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Q. 그동안 작업 과정에서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 중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제 작업은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해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작업의 참여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예로 <Put_[?]_pocket>을 소개 드리고 싶어요. 이 작업은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쉽게 타인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 작업이 담긴 휴대폰을 ‘소매넣기’한 프로젝트입니다. ‘소매치기’의 빼앗는 특성과 ‘소매넣기’의 강제적 제공이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작품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취지였습니다. 관객들의 시공간을 빼앗기 위해 휴대폰에서 제작된 앱을 실행하고, 메뉴얼 대로 행동해야 휴대폰을 돌려줄 방법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추후에 참여자와 인터뷰하는데, 모르는 휴대폰이 자신의 가방이나 소지품안에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을 훔친건가? 내가 도벽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작업을 위해 관객을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 김유빈 <Put_[?]_pocket> 단채널 비디오(7분) ,2022

 

Q. 좋아하는 작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프라시스 알리스라는 작가의 작업을 굉장히 좋아해요. 프란시스 알리스는 미술가에게는 사회가 허락한 시적 면허가 존재한다고 말해요. 이때 시적 면허라는 것은 기자, 과학자, 정치 운동가와 달리 어떤 증명 없이도 선언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알리스는 발전과 퇴보, 생산성과 비효율성이라는 이분법적 틀안에서 ‘걷기 하지 않는 행위’를 하며 기존의 노동의 원칙을 벗어납니다. 그의 작업은 그저 걷는 일로 이루어져요. 알리스의 시적 면허로서 허용된 자유와 정치적 개입을 대표하는 작품인 <그린라인>은 중동전쟁이후 예루살렘 휴전선을 따라 초록물감을 흘리며 걷는 것이에요. 그의 행위는 시적인 행동이자,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저의 작업 역시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경계, 모순점을 찾는 작업이기에 그의 작업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예술이 사회 문제를 지적할 때 사회운동가처럼 직설적으로 이를 표현하거나 문제상황을 극복할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은유적인 행위들을 통해 기존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균열을 만드는 것이고 이 또한 전복적인 정치성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프란시스 알리스 <green line>, 2004


Q. 김유빈 학우의 예술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저는 ‘White shadow’로 정의하고 싶어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자가 검정색이기에 White와 Shadow라는 단어의 조합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거예요. 왜 우리는 빛과 그림자는 흰색, 검정색이라고 정의하는지, 하얀색 그림자라는 말은 왜 어색한지? 이와 같은 엉뚱한 질문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의 개념들을 다르게 보려고 하는 것, 이것들이 제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들인 것 같아요.


실제로 <White Shadow Series> 작업을 했는데, 이 작업은 수선관을 지나다니다가 우연히 1층 난간의 구조물에 의해 빛 형체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고 그 형체를 관찰한 사진 작업이에요. 날씨, 시간, 조형물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매일 관찰하며 기록하다 보니 이건 단순한 빛의 형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자도 아닌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하얀색 그림자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현대 미술을 난해하고 어렵게 느끼는 학우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미술관에 가는 것이 낯설기에 망설이는 분이 많은데 가서 보고 맘에 드는 한 작품만 고른다고 생각하면 편한 것 같아요. 전시 서문이나 텍스트를 보지 말고 전시장을 쭉 둘러본 후 맘에 드는 작품이 생기면 자세히 보다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고 작업 설명을 보는 걸 추천해 드려요. 작가의 의도를 100%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교집합이 생기는 지점들을 찾아내는 거죠. 공감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면서부터 점차 작품 감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메시지에 집착하고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해석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작품, 즉 대상과 나의 순간적인 경험에 집중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적 표현이 아닌 시각적 조형언어, 예술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각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