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문학상 단편소설부문 우수상
윤성빈 학우(사회과학계열 23)

  • 532호
  • 기사입력 2024.01.22
  • 취재 한별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삶에서, 상실은 결국 새로운 봄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글에는 여러 형태의 삶이 담겨 있다. 그 글을 읽는 것은 글쓴이의 목소리가 독자의 마음에 닿는 과정이다. 그 과정으로 공감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고의 확장을 이뤄낼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삶의 새 시대를 본다는 말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글을 읽을 수밖에 없다.


‘많이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글이 머릿속에 들어오면, 그 글자들은 나의 언어로 바뀌어 정리된다. 그렇게 머리에 쌓인 글은 배움이 되어, 다시금 글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표현된 글이 모여 문학의 발전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는 그 가능성의 길을 제52회 성대 문학상 수상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단편소설 부분 우수상을 받은 윤성빈 학우는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와 삶의 갈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번 글은 삶과 상실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상징적인 사물과 등장인물의 생각으로 풀어낸 함축적 질문들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주제를 정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글로 세상의 질곡을 읽어내는 윤성빈 학우를 만나보자.



Q. 제56회 성대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사회과학계열 23학번 윤성빈입니다. 축하 감사드립니다. 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이라는 전화가 왔었어요. 몸부림을 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지만, 애써 최대한 점잖은 말투로 답한 기억이 나요. 처음엔 무작정 기뻤는데 잠시 뒤에 부끄러움이 밀려오더라고요. 다시 제 글을 읽어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교수님들께 좋은 평가를 받았고, 상까지 주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커요. 무엇보다 상금으로 서점에 가 눈에 보이는 책들은 죄다 쓸어 담았는데, 짜릿했습니다(웃음).



Q. 단편 소설을 쓰려면 글을 쓰는 것에 능숙해야 할 텐데, 언제부터 글 쓰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쭉, 글 쓰는 건 좋아했어요.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하는 걸 부끄러워했어요. 생각은 머릿속에 머무는데, 그것이 밖으로 표출될 수 있는 건 글로 적히거나, 말로 나오거나 둘 중 하나잖아요. 그 덕분에 자연스레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단편소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썼는데, 수능을 위해 공부했던 문학이 아니라 ‘진짜 문학’을 느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소설집을 몇 권 사서 하루 종일 읽으면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접적인 방식보다, 어떤 이야기로 무언가 말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이번 소설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번 소설은 늦여름부터 썼는데,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품이에요. 2019년 무렵 실제 재개발 구역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건물이 철거된 장면을 목도한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보는데, 제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 아물거렸어요. 의지와는 무관하게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생각, 그리고 그걸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죠. 한참 생각하니, 그걸 그냥 그런 상태인 채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체념이나 거기서 오는 무기력과는 다른 결이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했어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Q.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 보이는 행위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냥 ‘글’을 쓰는 것과 ‘독자에게 읽힐 글’을 쓰는 건 조금 다른 영역이죠.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닿을까, 고민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소설 속 어떤 상황, 어떤 순서로 사건을 서술해야 더 와닿을까 고민을 가장 많이 해요. 무언가 떠오르면 ‘아 이걸 적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그런데 어떻게?’라는 질문이 따라와 멈칫합니다. 더군다나 작법에 문외한이라 이야기의 밀도나 구성을 취하는 것이 참 막막했죠. 아직 글을 쓰는 것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Q. 글에서 ‘사위다’, ‘돋다’처럼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본인이 추구하는 글의 스타일이 따로 있나요?


스스로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서, 최대한 새롭고 다양한 단어를 사용해 보려 노력합니다. 문장의 각 자리에는 꼭 맞는 최적의 단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서 ‘아 여긴 이런 느낌이겠다.’ 생각하지만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순간이 있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다가 새로운 단어를 보면 메모장에 옮겨 적는 습관이 생겼어요. 다음에 ‘아, 지난번에 메모했던 단어가 제격이겠다.’ 싶으면 그 단어를 사용하는 거죠. ‘단어의 맛’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랄까요.(웃음) 궁극적으로는 ‘시 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시처럼 함축적이되, 난해하지 않고 그 문체가 오히려 아름다움의 요소로 작용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Q. 수상 작품에, 주인공이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상세한 묘사와 함께 느낀 바를 자세히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학우님의 모습이 투영된 부분인가요?


네, 맞아요. 이 소설을 쓸 때, 몰입을 위해 작중 서술자인 시우가 되어야 했어요. ‘만약 시우라면 어땠을까?’ 고민했던 순간보다는 잠시 제가 시우가 되었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친구들이 제가 엄청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말하는데, 그런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지나가는 사소한 풍경에도 ‘저건 뭘까’ 하며 플래그를 붙여요. 느낀 것이나 떠오른 단상들을 메모하기도 하고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 그 메모장을 많이 뒤졌어요. 그 메모장 속 단상들이 합쳐져 시우가 된 거예요. 어찌 보면 저의 일부일 수도 있고요. 참고로 시우는 제 친구 이름입니다.



Q. 소설 마지막 부분에 ‘삶이란 무언가를 끊임없이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라는 문장이 소설을 정리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학우님이 생각하시는 ‘삶’과 ‘상실’은 무엇인가요?


그 문장이 소설의 핵심이에요. 열심히 설명하기보다 그냥 보여주는 소설을 써보자 마음먹었는데, 그 부분이 거의 유일하게 어떤 생각이나 깨달음을 직접적으로 성토하는 부분이거든요. 우리는 의식하면서, 때론 의식하지 못한 채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요. 제게도 삶은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상실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상실을 대하는 마음’이에요. 상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너무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죠. 저는 최근에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저장해뒀던 SD카드를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벌였습니다. 어떻게 하나 발만 동동 굴렀는데, ‘결국 어쩌겠어.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순간이 있는 거니까’ 생각했습니다. 상실은 언제나 슬프지만 그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봄’은 돌아오지 않지만 ‘새로운 봄’은 돌아오니까요.



Q. 이번 작품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소설 속에는 여러 ‘상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시우와 해찬이가 살던 동네의 재개발, 상업의 발전, 버려야만 하는 물건들, 해찬이의 죽음까지요. 이런 상실엔 이유가 없는 경우도,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경우도 다분해요.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굳이 해찬이가 죽음까지 이르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거죠. 그래서 상상의 요소를 남긴 채, 해찬이의 죽음을 애써 소설 속에서는 파헤치지 않았습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사회적인 요소도 첨가하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한 동네가 재개발되는 것이 소설의 주요한 플롯인데, 거기 세워진 아파트가 한국 사회 문제와 닿아있어요. 소설에서 해찬이가 아파트의 입주민이 되면서 사이가 멀어지게 돼요. 그 장면으로 독자들에게 ‘시우가 해찬이를 밀어내는 감정을 일개 질투심으로 치부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던진 거예요.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련의 과정은 ‘계급적 격차와’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소설을 쓰며 공들였던 장면이 있는데요, 재개발 전 그곳에 살던 이들과 아파트 관리인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부분이에요. 다툼을 목격하고, 높이 완공된 아파트 때문에 일찍 사위는 햇빛을 보던 시우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건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닌 사회 구조나 세태로부터 전이된 무력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정말 잃어버린(물건도, 장소도, 인물도 아닌)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Q. 글을 써보고 싶은 주제가 있나요? 혹은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회 참여적인 소설을 쓰고 싶어요. 더 정확히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한창 글을 놓았다가 요즘 다시 단편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참사와 애도에 관련된 이야기예요. 무턱대고 쓰면 안 되겠다 싶어 자료를 적지 않게 찾아보고 있어요. 완전한 허구가 아닌 이야기니까요. 요즘은 제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꼭 가지고 있습니다. 마땅한 정도와 마땅한 속도로 세상의 질곡을 읽는 일, 글을 통해서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비록 업은 아니지만 취미로 꾸준히 정진해 소설집을 내고 싶다는 소망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