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F 패션디자인 공모전 수상,
정진규(의상 19) 학우
- 545호
- 기사입력 2024.08.13
- 취재 오채연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4121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 속,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패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패션 디자인의 진수이다. 정진규(의상 19) 학우는 지난 7월 17일 진행된 제5회 MDF 패션디자인 장학 공모전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발상을 담은 두 착장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차세대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MDF 패션디자인 공모전은 1차 스타일화 심사, 2차 실물 제작 심사를 거쳐 매년 14명 내외의 최종 수상자에게 2년간 등록금과 생활지원비 전액을 지원한다. 정진규 학우는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연간 1000만 원의 장학금 수상자에 선정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의상을 통해 재밌게 풀어내는 정진규 학우의 패션 세계를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보자.
| MDF 패션디자인 공모전 수상을 축하합니다. 소감을 듣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결과 발표가 있던 공모전 최종 심사 당일, 너무 쟁쟁한 분들이 많아 수상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름이 불려 정말 얼떨떨했어요.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도해주신 임은혁 교수님과 허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믿고 응원해 준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정말 고맙고 좋은 결과로 보답할 수 있어 뿌듯한 마음입니다.
| 공모전에 참가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사실 공모전이 올해로 5회째이고, 늘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기에 올해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학과 게시판에 포스터가 붙었을 때도 오며 가며 봤지만, 졸업작품으로 너무 바쁜 나머지 차마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임은혁 교수님께서 공모전 참가를 권유해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단 공모 요강을 한 번 자세히 읽어 보기라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확인해 봤어요. 마침 제가 좋아하고 자신 있는 주제임을 알고 자신감이 생겼고, 무엇보다 재밌고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참가했습니다.
| 공모전에 출품하신 작품의 컨셉이 무엇인가요?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은 제 졸업작품으로 총 두 착장입니다. 운이 좋게도, 졸업작품과 공모전 모두 ‘Streetwear’라는 개념을 주제로 가지고 있었어요. 교수님께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고, 저는 ‘Poser(실제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지 않지만 스케이터’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동경하지만 실제로는 타지 않는 저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하위문화의 대중화 흐름과도 맞물린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Feigned Spirit(거짓된 영혼)’로 컨셉을 확정하고, 이런 상황을 키치하게 풍자하는 옷을 만들면 Poser의 이미지를 비롯해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컨셉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동시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컨셉 포토
| 출품작에 관해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두 착장 모두 스케이터들이 기능적인 차원에서 즐겨 입던 데님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편안한 움직임을 위해 찾던 오버 사이즈 실루엣으로 제작하여 스케이터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했어요. 옷 위에 착용한 빨간색 구조물이 Poser를 풍자하는 방식이자 제 작품의 핵심입니다.
각각 풋볼 보호장비와 구명조끼에서 착안한 과장된 Heavy-Padded Protectors는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즐겨본 적 없는 사람들, 즉 ‘수박 겉핥기’로 아는 사람들이 상상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어요. 실제로는 타본 적이 없는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보호 장비를 착용한 모습을 표현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두 착장 모두 Contrast Stitch*을 통해 옷의 구조와 디테일이 돋보일 수 있도록 했어요. * Contrast Stitch: 원단과 대비되는 색상의 실을 활용한 상침
바지는 Look 1의 경우 허리 밴드가 총 3개로 이루어져 있고, Look 2의 경우 거꾸로 입은 것처럼 제작했어요. 스케이터의 바지를 아래로 처지게 입는 스타일에서 착안했습니다. 바지 뒷주머니 자수는 스케이트보드 관련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와 좋아요 버튼으로 마치 스케이터처럼 자신의 SNS에 올리는 Poser를 풍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체인으로 연결되어 매달려 있는 것은 라이터 케이스예요. 실제로 라이터도 들어가 있어요. 스케이터는 격한 움직임이 많아 지갑을 허리 벨트 고리에 걸고 탔다고 해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 마찬가지로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체인을 착용해서 보기만 해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데 불편해 보이는 스타일링 요소로 활용했어요.
▲_순서대로 Look 1, Look 2의 앞, 뒤 모습
|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공모전 1차 접수 과정에서 있었던 ‘타임 어택’ 비하인드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공모전 1차 접수가 졸업작품으로 바쁜 와중에 진행되었어요. 큰 규모의 공모전이다 보니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어요. 제출 마감일 당일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날 졸업작품 수업이 있었어요.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수업 시간에도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고, 수업 중 옥상으로 올라가 급하게 1분 자기소개 영상도 찍었습니다. 다행히 마감 1분 전에 메일을 발송 완료했어요. 학교 와이파이가 잠깐이라도 끊겼다면, 혹은 아이 클라우드 동기화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이렇게 소중한 경험은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최종 심사를 위해 필요한 온갖 짐을 짊어지고 학교와 집, 영등포를 오갔던 것은 제 어깨와 다리가 평생 기억할 순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 의상학과를 전공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졸업작품 패션쇼가 가장 인상 깊습니다. 특히 믿고 응원해 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제가 만든 옷을 선보이고 디자이너로서 인사할 기회는 어쩌면 인생에 두 번 다시는 없을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졸업작품 패션쇼 당일보다 1년 동안 준비했던 과정이 모두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패션쇼 당일이 아닌 준비 과정에서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확신을 얻기도 했고요. 하나의 에피소드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은 수선관 별관 9층에서 이루어졌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함께한 친구들과 질리도록 들었던 힙합 플레이리스트, 축제 당일 멀리서 데이식스의 공연을 보며 만들었던 도록, 특히 별관 9층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우고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던 순간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따스한 햇살과는 달리 초조했던 마음과 채 3시간도 자지 못하고 다시 학교에 와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던 순간들은 다른 의미로 인상 깊은 순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함께 1년간 졸업작품을 진행한 모두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성공적인 쇼를 만들어준 졸업작품 위원회와 각 팀 팀장님들, 멋진 도록 만들어준 우리 팀원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 평소 의상을 디자인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옷을 디자인해 보지 않아서 아직 ‘영감’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끄럽지만, 돌아보면 결국 ‘제가 좋아하는 것’에서 모든 디자인이 출발했습니다. 스케이트보드, 힙합, 데님, 빈티지한 색감, 키치한 그래픽, 재미있는 캐치프레이즈, 옷을 뒤집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디테일 등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경험하며 쌓인 많은 것들이 현재 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아하는 이유는 없어요. ‘그냥’ 좋습니다. 무엇보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옷을 디자인하기보다는 제가 입을 수 있고,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옷을 디자인할 때 ‘제가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패션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디자이너 Alexander McQueen의 “It’s Okay, It’s Only Clothes.”라는 말이 지금 저의 스타일과 패션에 대한 생각을 모두 아우른다고 생각해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옷은 결국 옷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옷은 입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판매의 차원을 벗어나 제작하는 옷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특수한 소수의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결국 옷은 사람이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그저 독특하고 특별하고 무겁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저에게는 잘 와닿지 않아요.
저는 라이프 스타일이 결국 취향을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옷을 살 수 없고, 아무리 멋지게 차려입고 싶어도 자신이 하는 일이 밤을 새우며 재봉틀을 다루고 옷을 재단해야 하는 것이라면 불편한 옷을 입고 있을 수 없죠. 이렇게 제가 직접 경험하며 느꼈기에 누구보다 저 자신에게 해당하는 “It’s Okay, It’s Only Clothes.”라는 말은 지금은 물론 제 최종 목표인 브랜드 런칭에도 큰 영향을 주는 패션 철학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출품한 작품 외에 학우님께서 가장 아끼는 작업물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 착장의 빨간색 시그니처가 독보적으로 애착이 가요. 풋볼 선수들의 보호장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앞서 설명한 ‘Poser’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했고, 실제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에는 너무 크고 거추장스러운 형태이며 충전재는 스펀지로 이루어져 있어 전혀 보호장비로서 역할도 하지 못하는 풍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했습니다. 주제를 끌어내는 순간부터 가장 먼저 생각했던 방향성이자 디자인이고, 제 졸업작품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고 임팩트 있게 보여줘서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애착이 가는 이유는 애증의 관계에 있는 작품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도안을 그리고 생각할 때는 참 쉬웠지만, 꼬박 7개월간 4번에 걸친 제작 끝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옷이 아닌 어떤 것을 만드는 과정은 옷을 만드는 과정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디자인, 충전재, 봉제 순서, 퀄리티 등 어느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어요. 이 과정에서 후회하는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 작품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시그니처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4번의 도전 끝에 완성할 수 있었어요. 이런 과정 속에서 나머지 작품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감정이 첫 번째 착장의 시그니처에 생겼습니다.
| 향후 의상디자인 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종 목표는 제 브랜드를 런칭하고 옷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이렇게 옷을 좋아한다며 진행한 이 인터뷰가 흑역사가 될 만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습니다. 부디 런칭하는 그 순간까지 제가 좋아해 온 다양한 요소를 담아 옷으로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추가로 욕심을 조금 내본다면, 엄청난 성공보다는 오래오래 즐겁고 행복하게 ‘모든 옷을 직접 디자인하며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작품을 비롯해 어떤 것이든 내가 만든 결과물로 누군가와 경쟁하고 평가받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그런 과정을 즐긴다고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은 넓더라고요. 이번 공모전을 통해 여실히 느꼈습니다. 공모전을 마치고 제가 가장 크게 배운 순간을 떠올려보니, 제 옷을 만들던 순간이 아니라 함께 참가한 사람들의 포트폴리오와 작품을 보던 때였습니다.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타인으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나의 꿈을 먼저 이룬 사람은 현재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아는 것은 큰 동기부여가 되고 동시에 빠르게 성장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도전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된다면 자신을 믿고 도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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