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분석하고 뜨겁게 겨룬다,
한국대학연맹회장기 펜싱대회 우승 정원이 학우

  • 566호
  • 기사입력 2025.06.25
  • 취재 박명준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1480

지난 5월 충남 청양에서 개최된 제43회 한국대학연맹회장기 전국남녀대학 펜싱 선수권대회 사브르 남자 개인전(생활체육 부문)에서 정원이(응용AI융합학부 산업인공지능전공 24학번) 학우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하고, 2025 서울특별시장기 동호인·클럽 펜싱대회 사브르 남자 개인전 1위를 거머쥐는 등 꾸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원이 학우는 지난해 입학하자마자 펜싱 준중앙동아리 ‘조선제일검’을 창립해 부장으로서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펜싱에 대한 그의 열정 덕분이다. 지방에서 열리는 대학배 대회에 동아리원들과 함께 참가하기 위해 사비로 직접 버스를 전세하기도 했다.


20살에 포스코에 입사했다가 24살에 성균관대에 입학해 배움에 정진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취미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는 정원이 학우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 제43회 한국대학연맹회장기 펜싱대회의 사브르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 24학번 응용AI융합학부 산업인공지능전공 정원이입니다. 사실, 대학배 대회보다 전국 대회가 상대적으로 난도가 훨씬 높아서 대학배 대회 개인전은 비교적 수월하게 우승했던 터라,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어색하고 신기하면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를 창설하고 1년 만에 이런 좋은 성적 거두어 우리 학교 이름을 펜싱계에 알릴 수 있어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부족한 부장이 이끄는 동아리지만 힘들어도 묵묵히 도와주고 항상 열심히 참여해 준 우리 펜싱부원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늘 성심껏 부원들 지도해준 중원대 재빈이, 대가 없이 늘 동아리를 지원해 주시는 베스트 펜싱클럽 표정우 원장님, 그리고 최고의 스승인 강길원 코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단체전에서는 꼭 부원들에게 금메달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제가 더 안정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리스크 있는 동작들은 최대한 줄이려고 하다 보니 몸이 평소보다 굳어서 더 잘하지 못한 것 같아 못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합니다. 다음 기회엔 꼭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 모두 우리 성균관대가 차지하고 싶어요.



| 이번 대회를 우승하는 데 어떤 전략을 사용하셨나요?

늘 실력엔 자신이 있었던 터라, 컨디션만 좋다면 이번 대회는 무조건 우승한다는 저만의 확신이 있었어요. 예선전은 5점 내기라 자칫 방심하면 질 수도 있어서, 경기 시작과 동시에 틈을 주지 않고 최대한 공격적으로 운영했습니다.

본선 토너먼트는 15점 내기라 초반 3~4점 정도는 상대에게 점수를 뺏기더라도, 상대의 자세와 동작을 보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동작을 자신 있어 하는지 파악하는 데 집중했어요. 이후 그에 맞춰 카운터를 잡을 수 있도록 경기를 조율했습니다. 다행히 분석이 잘 통했는지 좋은 결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여러 동호인 펜싱선수권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는데, 본인의 펜싱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어울릴까요?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자니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유연함'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다양한 상황을 미리 준비해 두고, 그때그때 상대가 자신 있어 하고 자주 사용하는 동작을 빠르게 파악해 카운터로 대응하는 스타일입니다.

어떤 선수는 경기 템포를 천천히, 차분하게 가져가면서 들어오는 상대 공격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또 어떤 선수는 빠른 발을 활용해 템포를 끌어올리며 상대를 당황하게 하기도 해요. 이렇게 스타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흐름에 맞춰 대응하려면 결국 두 가지 방식 모두 소화해 낼 수 있어야 하더라고요. 대회에 많이 참가하고 다양한 선수들과 겨루다 보니, 저도 이제는 어느 정도 노련함이 생긴 것 같습니다.


| 현재 성균관대학교 펜싱부 '조선제일검'의 부장으로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24년 처음 만들어져 현재 자연과학캠퍼스 준중앙동아리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5시 건대입구역 부근 베스트 펜싱클럽에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졸업생, 대학원생, 휴복학생 및 재학생 모두 가입 가능하며 가입비 2만 원, 월 회비 3만 원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종목은 에페, 사브르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펜싱은 칼을 사용하는 종목이라 상체 운동으로 생각하실 수 있지만, 스텝과 거리 조절이 가장 중요해서 훈련은 주로 하체운동을 진행합니다. 3시간 운동 중 2시간은 체력 단련, 1시간은 자율 게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 각종 대회를 준비하면서 동아리에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대학배 대회는 보통 전반기는 충청도 청양, 후반기는 전라도 해남에서 열리는데, 한 번 대회가 열릴 때마다 10~15명의 부원이 함께 참가하다 보니 이동을 위해 버스 전세가 필수적이에요. 학생단체가 아닌 동아리는 학교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기에, 결국 제 사비로 최대한 저렴한 20인승 버스를 빌려 청양 대회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대회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사건이 있었어요. 기사님께서 휴게소에서 버스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시며 잠깐 내려보라 하셨고, 우리가 내린 지 30초 만에 버스 시동이 완전히 꺼져버려 죽전 휴게소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했던, 아찔하면서도 웃긴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대회 참가처럼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동아리에는 재정적, 운영적인 면에서 학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부분에서 학교 측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펜싱부 단체 사진


| 펜싱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동아리 가입이 힘들까요?

저도 펜싱을 2023년 말에 처음 시작해서 이제 1년 반이 조금 지났어요.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 체육을 전문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 운동신경으로 열심히 해왔을 뿐인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걸 보면, 다른 학우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전국 대회 결승에서 우리 부원과 만나 승부를 가리는 게 제 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잘 알려드리겠다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 가입해 주시고 열심히 참여해 주시면 여러분 모두 좋은 성과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렇게 펜싱 대회 경력이 출중하신 것을 고려할 때, 전공이 응용AI융합학부라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해당 전공 진학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원래 개발자로 일했었고, 대학 졸업 후 대학원까지 진학한 뒤 앞으로도 개발자로 살아갈 예정이에요. 취미는 직업과 정반대인 게 좋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완전히 다른 분야인 펜싱을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군 복무 중에 도쿄올림픽을 보다가 펜싱이 너무 멋있어서 나중에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계기였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너무 재밌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아요.

응용AI융합학부에 진학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던 중에 전망에 한계를 느껴 AI 개발로 전향하려 했었어요. AI 개발 분야는 인터넷에 찾아봐도 정보가 많이 없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깊이 있게 공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체계적으로 배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성균관대학교에 응용AI융합학부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건 두 번 다시 없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한쪽에 늘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갈증을 해소하고자 했던 부분도 큰 것 같아요.



| 펜싱과 AI, 언뜻 보기엔 전혀 달라 보이는 두 분야를 동시에 다루는 삶에서 얻는 가장 큰 배움은 무엇인가요?

AI를 비롯해 모든 개발 분야가 그렇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필수입니다. 반면에 펜싱은 타인과 1대1로 승부를 겨루는 운동이라 심리전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 안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모두 담겨있어요. 펜싱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땀 흘리며 친해지다 보니 업무를 할 땐 느끼지 못했던 인간적인 면들을 많이 경험하고 찾아가는 제 모습이 즐겁고 소중한 것 같습니다.


| 펜싱 훈련이나 전략을 짤 때, 데이터 분석이나 알고리즘적 사고 혹은 AI를 활용해 본 적이 있나요?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업무 시간 외에 철저하게 일 생각을 안 하려고 해서 한 번도 펜싱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업무에서 개발을 하며 사용했던 사고방식들이 펜싱을 할 때도 자연스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예를 들어,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구조를 분석하고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지 고민한 뒤 실행에 옮기는 것처럼 펜싱도 마찬가지로, 상대를 먼저 분석하고 동작을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며 상대가 주로 어디를 자주 노리는지, 어떤 출발 동작이 어떤 동작으로 이어지는지 등을 머릿속에 넣어놓고,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해 보고 게임에 들어가거든요.

뭐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태반이지만요. 예상대로 경기가 흘러가지 않을 때는 흐름을 잃고 실점을 연달아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이제는 저도 기본 실력 자체가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고 경기 중에도 끊임없이 분석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도 제가 프로그래밍 할 때랑 똑같은 것 같아요.

올해 서울시장기 전국펜싱대회 결승전에서 그런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9대13으로 뒤지고 있을 때, 예전 같았으면 큰 차이고 가망이 없겠다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다가 흐름을 잃은 채 무기력하게 졌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가 본인이 자신 있다고 느끼는 동작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맞춰 뛰었어요. 결국 14대13으로 역전한 뒤, 마지막 한 포인트에서 상대가 당황한 틈을 노렸습니다. 상대가 자신 있어 하던 동작을 제가 오히려 더 빨리 구사해서 우승할 수 있었어요.


▲ 역전의 순간


| 향후 자신의 진로나 꿈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우선, 제 몸이 허락하는 한 펜싱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하고 싶어요. 모든 펜싱인들 사이에서 동호인 남자 사브르 하면 정원이라는 이름이 대명사처럼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엔 전문체육 선수 자격으로 각종 대회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물론 프로 펜싱 선수들에겐 상대도 안 되겠지만 도전한다는 건 언제나 재밌고 멋진 일이니까요. 혹시 아나요, 언젠가 제가 대회에서 오상욱, 박상원 선수랑 만날 수도 있을지.

직업적으론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AI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 목표예요. 중학교 3학년, 일반계 고등학교와 마이스터고 사이에서 진학을 고민하다 결국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고, 20살에 포스코에 입사했다가 퇴사 후 백엔드 개발자로 전향했습니다. 그리고 24살이 되어 성균관대에 입학해 AI를 배우고 있다니. 지금까지는 그냥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참 무겁고도 모험적인 선택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도전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조금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한 번 사는 인생,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면 다 된다”가 제 인생의 신조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졸업할 때까지 대학배 펜싱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은 모두 성균관대가 차지할 거라고 자신 있게 약속드립니다. ‘펜싱 한 번 해볼까’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시고, 한 번 뿐인 대학 생활 즐거운 추억들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아프고 정말 재밌습니다.

장비(피스트, 심판기, 도복, 칼 등)는 저희 동아리 측에서 모두 지원할 수 있으니 많은 학생이 펜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학교에 교양 펜싱 과목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펜싱부 가입은 인스타그램 @skku_fencing으로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응용AI융합학부 학생들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지식과 배움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이에요. 부정적인 시선보다는 같은 학생이라는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고 아껴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좋은 인터뷰에 좋은 기회로 함께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균관대학교 펜싱부 '조선제일검' : @skku_fenc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