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들을 글로 옮기는 시인,
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민성원 학우

  • 425호
  • 기사입력 2019.08.14
  • 취재 현지수 기자
  • 편집 민예서 기자

“누구나 가슴속에 시 한구절쯤 품고 산다” 최근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의 제목이다. 이번 <성대생은 지금>에서 만나 본 2019 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작 <늙은 노>를 쓴 민성원 학우의 가슴속에도 언제나 시 한 구절이 살아 숨쉴 것이다. 삶의 진실들을 글로 옮기고 싶어 심리와 철학을 전공했고, 부단히 사유하고 읽고 글을 짓다 보면 삶이 한 문장 정도는 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는 민성원 학우(심리 14), 지금부터 한편의 시 같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작 <늙은 노(櫓)>

너무 오래된 시입니다. 아마도 내적으로 고통스러운 와중에 썼던 거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별일 아니었을 겁니다. 그맘때 저는 시를, 마치 무언가를 쥐고 있다가 힘이 풀려서 바닥에 내팽개치듯 썼습니다. 충동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삶을 참아내다가 불쑥불쑥 시를 썼습니다. <늙은 노>는 그렇게 쓴 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세상을 대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 태도를 일컬어 정체성이나 가치관이라 말합니다. 제 가치관은, 그러니까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강경한 편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이 저에게 건네는 부조리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삶을 제 마음대로 통제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삶을 제 손으로 조종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거 같습니다. 세상은 저에게서 많은 것들을 갑자기 빼앗아 가버립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고요.


그렇게 세상에 휘둘리고 조금이나마 반항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바다 한가운데 같은 곳에 와 있게 됩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저는 어른이 돼버렸습니다. 이런 삶이 꼭 세상이라는 배에 매달린 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파도를 밀쳐내며 세상을 견디는 늙은 노 말입니다. 시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 성대문학상을 수상한 소감 

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쓴 시들은 오늘날 서점에 걸려있는 현대시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시대에 뒤쳐진 글입니다. 표현이 투박하고 주제가 케케묵었습니다. 그러니 편한 마음으로 냈습니다. 저는 해묵은 시들을 좋아합니다. 결국 사람은 삶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단순하고 정직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대시들을 잘 읽지 못합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늙은 노>가 수상을 한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기쁜 일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저는 언제까지나 단순하고 정직한 언어로 삶의 부조리와 그것을 이겨내는 인간을 적어낼 생각입니다.


◈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

아버지가 시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에도 백일장이 열리면 곧잘 써서 제출했습니다. 중학교 때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 방>을 읽고 시를 제출하라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아마 5연으로 된 시를 적어서 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국어 선생님이 교내 방송으로 저를 부르시더니 이 시를 어디서 베껴 왔느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시를 쓰지 않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를 쓰면 마음을 꽁꽁 묶고 있던 줄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 시를 쓸 때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모든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습니다. 매순간의 경험들은 우리의 기억 어디엔가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는 까닭에 빛나는 기억들 위에 먼지가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건네오는 이야기들을 지나쳐버리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만 삶에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합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는 사이 기억이 저장되고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옵니다. 어떨 때는 저에게 삶의 냉혹함을 알려주고, 어떨 때는 사람의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들을 받아 적으면 문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학을 쓴다는 건 밤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아주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역량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걸 더 정확하게 옮겨 적을 솜씨가 있었더라면, 더 좋은 문학 작품을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갈증과 비슷한 아쉬움이 크게 있습니다.

◈ 전공인 ‘심리학’과 시를 쓰는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이제 와서 누군가가 제게 “심리학에서 구체적으로 뭘 배웠어?”하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긁적거릴 거 같습니다. 사실 심리학에서 배운 세부적인 내용은 크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이 제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은 건 아닙니다. 저는 심리학을 얕게나마 공부하며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소 염세적일지 모르겠지만, 그 시각은 ‘인간은 게으르고 이기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공감 능력은 왜 외면하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습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관점을 다름아닌 제 자신에게 대입합니다. ‘나는 게으르고 이기적이다. 그러니 그러지 않으려 노력해라.’라고 말입니다. 이런 태도가 시를 쓰는 데에 아주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시를 잘 읽지 않습니다. 어쩌다 읽는다고 해도 오래된 시들을 읽습니다. 윤동주나 백석의 시들. 저는 시를 읽기보다 소설을 읽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얻은 삶의 파편들을 때때로 시의 언어로 옮길 뿐입니다. 때문에 시 대신 평소에 좋아하는 소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좋아합니다.

앞으로의 목표

꾸준히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글을 읽고 시와 소설을 쓰며 살면 좋겠습니다. 목표는 좋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