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오신 Antoine Coppola 교수

  • 433호
  • 기사입력 2019.12.10
  • 취재 김보련 기자
  • 편집 심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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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의 문화를 보며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노래, 시나 산문, 춤과 같은 것들은 그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때에도, 그 존재 자체로 큰 울림을 선사하기도 한다. '영화' 또한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또 다른 '범지구적 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기쁨이나 슬픔이, 삶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외국인의 성대생활>에서는 이러한 '영화'를 탐구하는 앙트완 코폴라 교수를 만나보았다. 프랑스와 한국의 영화, 더 나아가 세계의 영화를 잇고, 이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에서 온 Antoine Coppola입니다.”

앙트완 코폴라 교수는 프랑스어문학과에서 '영화'에 대해 강의한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영화의 기술, 문화, 역사 등을 가르치기도 하고, 프랑스와 한국의 영화를 연결하는 역할 또한 완수해내고 있다.


◎한국에서의 생활

앙트완 코폴라 교수가 한국에 온 지는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에게 처음으로 한국을 소개해준 사람들은 파리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시절에 만난 한국 학생들이었다. 코폴라 교수의 절친이기도 했던 학생들은 그에게 한국 생활을 소개해주었고, 1990년에 그를 처음으로 한국에 초대했다. 이때 영화 ≪오발탄≫의 감독인 유현목 감독을 만났고,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진작에 코폴라 교수에게서 '한국인'의 면모를 엿본 유현목 감독은 코폴라 교수에게 이를 일러주었고, 코폴라교수는 여전히 그의 말들을 기억한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12년 전 프랑스에서 부교수로 영화학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고려대학교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초빙교수로써 종종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고, 이창동, 홍상수, 이준익, 박광수와 같은 유명한 영화감독들도 만나게 되면서 한국 생활의 출발을 맞게 되었다.


코폴라 교수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주었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라하면 음식이 가장 먼저 생각나요. 오래전에 조선 주간지에 한국 요리에 관련해서 기사를 쓴 적이 있거든요. 저는 혼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탈리안 태생이라 그런지 혼자 먹는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웃음) 한국에 와서는 마치 그림처럼 다양한 색들로 가득찬 식탁에 감명을 받았어요. 또한 한국 사람들이 여러 음식을 합치거나, 서로 나누어 먹고, 식사하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요리해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마치 게임이나 예술 공연 같기도 했어요.”


많은 외국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코폴라 교수도 한국의 '정직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예전에 친구와 한국 여행을 하고 파리에 있는 심포지엄에 가야할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인천공항에 가방을 두고왔다고 하더라고요. 일주일 뒤에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그 공항 카페에 갔는데 벤치 아래에 여전히 가방이 있었어요. 정말 놀라웠어요. 한국생활의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어요. 아쉬운 점은 대체로 일들이 '짧고 빠르다'는 경향이 있다는 거에요. 예전에 KBS에서 영화와 관련된 생방송을 제작한 적 있었는데, 그 때도 일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었어요. '여유'를 찾기 힘든 사회 분위기가 씁쓸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또 항상 그런건 아니니까요.”


◎코폴라 교수와 영화

코폴라 교수가 성균관대학교에 온 것은 무려 12년 전이다. 그가 성균관대학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파리에서의 한국인 친구들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난 통역사를 통해서였다. 통역사가 성균관대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BK21(Brain Korea 21)사업을 통해 프랑스에서 한국의 대학들과 교류를 했고, 이 과정에서 성균관대학교가 특히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당시 성균관대학교에서 오는 많은 자료들이 상당히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프랑스에서 교수를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다고 느낀 시기였었거든요. 새로운 도전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참이라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시험이나 인터뷰를 거쳐야 했어요. 과거 프랑스 대사관에서 교수로 근무했던 경험이나, 출판한 영화와 책, 그리고 잡지 기사들을 통해서 제 전문성과 자질을 증명했고, 이를 통해 성균관대학교의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처럼 높은 수준의 능력과 융합을 성균관대학교에 가져온 사람은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웃음)”


코폴라 교수와 영화의 운명은 그가 최우수 학생 소설상을 받은 순간부터 시작됐다. 당시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프랑스 소설가 Simenon의 아들인 유명한 영화감독을 만났는데, 그가 코폴라 교수의 소설을 읽고 대본작가로의 자질이 있음을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영화를 더 많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더 놀라운 건 그 심사위원들 중에 프랑스계 한국인 작가 Isabelle Lacamp도 있었다는 거에요. 그 때는 몰랐지만, 한국이 제 미래가 될거라는 일종의 신호가 그 때부터 있었던 거죠.”


“성균관대학교에 오기 전을 잠깐 이야기한다면, 그러니까 박사 과정을 마친 후에는 프랑스에서 부교수로 일했고, 시각예술과 작문 분야에서는 전문 자격증을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학과장을 역임했습니다. 동시에 스페인 칸 국제 영화제와 산세바스찬 국제 영화제,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고문으로 몇 년간 활동했습니다. 영화제 작업을 하면서는 배우 최민식, 전도연이 출연한 ≪해피 엔드≫와 봉준호 감독의 ≪괴물≫등의 한국 영화를 유럽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아방가르드 영화에 관한 제 작업물들은 꽤 알려진 편입니다.”


코폴라 교수는 '영화'에 대해 강의한다. 영화와 관련된 실험들도 가르치는데, 새로운 시각 기술이나 청각적 표현, 내레이션, 미디어 등에 대해서도 강의했고, 국제 잡지에도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여럿 실었다. 또한 한국, 프랑스 영화를 포함한 세계 영화들의 문화와 역사, 심미를 가르치기도 한다. “제 강의는 여러 역량과 지식을 융합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의식, 지식, 그리고 감수성은 모두 한 데서 오는 것이거든요. 또 다른 제 강의의 의미는 공자의 유명한 문장과 연관이 있는데,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직접 해본 것은 이해한다.>라는 문장입니다. 제가 진행한 예술이나 시각 문화와 관련된 워크샵들이 모두 이런 의미의 것인데, doing(직접 하는 것)에서 부터 discussion(듣고 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학습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목표 &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학생들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에요. 제 목표는 항상 학생들을 발전시키고,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해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프랑스 유명 대학들과의 교류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저 스스로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의 현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공부했으니, 앞으로는 한국의 오래된 역사, 특히 밝은 역사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어요. 또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이미 연구를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창의성'에 관한 것인데, '창의성은 무엇인가? 창의성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떻게 하면 창의적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책이나 기사, 어쩌면 영화까지도 나올 수 있을 거에요. 앞으로도 문화와 기술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전시키고, 학생들을 위해 그 길을 잘 닦아둘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Impossible is not a French word'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는 '불가능은 한국어가 아니다'라는 말을 증명해낼 능력이 있어요. 

열정, 사랑, 지식, 존경, 지성, 아름다움, 창조력이 있다면 불가능할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