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왕택영 학우

  • 434호
  • 기사입력 2019.12.31
  • 취재 김지현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 조회수 7681

“안녕하세요 ! 저는 중국에서 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18학번 왕택영이라고 합니다. 

왕택영은 제 중국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읽은 이름이에요.”


유학을 비롯한 동양 철학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덕분인지, 유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의 성균관대학교가 유난히 잘 어울렸던 왕택영 학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한 권의 책과 같이 느껴져서 더 많이, 더 깊이 그 속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싶다는 그녀에게도 한국에서의 생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바다를 좋아하는 그녀인 만큼, 바닷가 특유의 여유를 주변인들에게 한 가득 전해줄 것만 같은 왕택영 학우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한국과의 우연한 만남, 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2016년이었는데, 그때는 반 년 동안 부산에 위치한 신라대학교에서 교환 학생 생활을 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교환학생을 와야겠다는 굳은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오빠의 권유로 4명을 선발하는 교환학생 시험을 어찌어찌 통과해서 한국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환학생 시험을 보기 전에는 제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전혀 없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여서, ‘안녕하세요.’만 할 줄 아는 상태로 교환 학생을 시작했어요. 언어부터 이렇다 보니 막막했던 점이 많았죠. 부산에 와서 대학교의 어학당에서 한국어도 처음부터 배우고 모든 적응을 새로 시작했는데, 제게 교환학생 생활은 학업적인 의미보다는 반년 동안 추억도 쌓고 쉰다는 느낌이 대부분이어서 여유로운 느낌의 부산에서의 일상은 제게 막막했던 기억이 아닌 여전히 너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아직도 종강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혼자 부산 여행 가기일 정도로요!


그렇게 반년 동안 부산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나머지 반년 동안은 그곳에서 학교생활을 마쳤습니다. 한국이 제게 너무나 큰 즐거움으로 남아서였을까요? 한국에서의 대학 생활을 잊지 못한 저는 중국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2017년에 다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된 한국에서 저는 서울 소재의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 들어가 6개월 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생활에 다시 한 번 적응하는 시간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계열 18학번으로 입학해 올해(2019)에 경제학과로 진입하게 되어 현재까지 공부중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에서의 학기를 마치고 했던 결정으로 인생을 다시 선택한 셈이죠.


◎ 금강산도 식후경, 그러나 쉽지 않았던 첫 한국식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입맛에 맞지 않았던 음식들이네요.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저였지만, 김치는 처음에는 입에 대지도 못할 정도로 도저히 입에 맞지 않더라고요. 처음 왔을 때는 일주일동안 정말 그나마 입에 맞는 삼겹살, 콩나물, 밥만 먹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다양한 음식을 접하기도 힘들었던 게, 한국은 모든 음식에 거의 다 김치가 들어간 느낌이더라고요. 김치볶음밥부터 시작해서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부대찌개 등 ... 한국에서는 정말 대중적인, 어느 식당에 가도 대부분 있는 요리들인데 당장 김치를 먹지 못하니 밥 먹을 때마다 정말 힘들었어요. 물론 한국 생활에 대부분 적응한 지금은 김치를 먹을 수는 있을 정도가 될 만큼 나아졌습니다. 아, 그렇지만 부산에서 먹었던 돼지국밥은 처음 먹었을 때도 정말 맛있었어요. (웃음)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중국 음식인 마라탕이나 마라샹궈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먹는 편이에요. 중국 현지의 음식과 비교하자면 어쩔 수 없이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많이 맞추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더라고요. 중국의 한식당에서 한국인이 밥을 먹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


◎ 성대에서의 가장 큰 낙(樂), 도서관

저는 성균관대학교의 도서관, 중앙학술정보관이 성균관대의 큰 메리트라고 느껴요. 한국어 책부터 시작해서 영어책, 중국어책까지 각종 원서나 자료가 잘 구비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이 도서관과 가까워서, 거의 매일일 만큼  자주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는 편이에요. 제가 느끼기에도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있고 교수님께서도 도서관에 투자를 아끼지 않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도 잘돼서 너무너무 좋은 것 같아요. 수원에 있는 율전 캠퍼스의 삼성학술정보관도 가본 적이 있는데 혜화에서 거리가 먼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유가 사상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유학 책을 읽다 보면 제가 직면한 세상의 각종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번 학기에도 동양 사상 입문 수업을 너무 감명 깊고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한국어로 들은 수업이라 조금 힘든 수업이 될 줄 알았는데, 교수님께 질문하거나 따로 궁금한 점을 찾아보며 공부하다보니 좋은 성적까지 받게 되어서 지금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알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홀로든 함께든 어디든, 한국에서의 여행

한국에서의 여행 하니까 대구? 전주? 로 갔던 여행이 역시 가장 생각나네요. 대구는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의 고향으로 이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라 익숙했고, 전주는 비빔밥이 입에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아, 닭갈비로 유명한 춘천도 이웃친구와 당일치기로 RTX 타고 바로 어제 다녀왔어요. 춘천에 가신다면 산토리니 카페는 꼭 방문해 보세요.


제가 중국에서는 광저우의 내륙 지방 쪽에서 살았는데, 주변에 강만 있고 바다가 없어서인지 바다를 정말 정말 좋아해요. 부산에 있는 웬만한 여행지는 다 가봐서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참 많은데, 하나 꼽자면 태종대가 생각나네요. 말하다 보니까 바닷가 이야기밖에 없는 것 같은데 바다의 빛깔이 너무 예뻐서 그런지 자주 가던 해운대보다 기억에 선명히 남아요. 부산에  많이 갔던 바람에 늘 들리는 맛집도 생겼는데, 서면에 있는 남자곱창이라는 곱창 전문점이 있어요. 종업원 분들이 모두 남자들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대요. 서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곱창집을 검색해서 직접 찾아 갔었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한국 음식 중에서도 야채곱창은 입에 맞고 맛있어요. 


숙소는 에어비엔비에서 주로 예약하는 편이에요. 언젠가는 에어비엔비에서 알게 된 한국인 언니 집에서 몇 달을 함께 즐겁게 살았던 경험도 있어요. 역시 저는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가봐요. 그렇지만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1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내 모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처럼 종강하고 중국인 친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는 시간이면, 늘 해운대 바닷가에 가서 삶의 목표를 다시금 그려보곤 해요. 한두가지라도 뚜렷한 곳을 보고 달려가는 삶, 너무 멋있지 않나요?


◎ 미우나 고우나 고마운 성균관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서울에서 생활하게 될 때, 신촌에서 1년 반 동안 자취방 계약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의 기억만큼은 좋은 기억이 아니었던 게 방 주인분과 두 달 내내 보증금 문제로 싸워야 했거든요. 아주머니께서 계속 보증금을 안 주시려고 해서 너무 억울했는데 외국인이라 신고하기도 쉽지 않아서 정말 막막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여덟시 반에 갑자기 열시에 당장 만나자고 문자가 왔었는데, 저는 그날 아침 열시에 시험을 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교수님께 죄송함을 무릅쓰고 “혹시 제가 이 시간에 시험을 봐야한다고 저 대신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봤는데, 교수님이 흔쾌히 해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놀랐고 감사했어요. 그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는데, 주인 분이 한 시간동안 죄 없는 교수님께 욕을 하셨더라고요. 심지어 교수님은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으셨는데, 한 시간 동안 그걸 계속 들어 주시기 까지 하셨어요. 아마 문제가 생길까봐 그러셨던 것 같아요. 말로 다 못할 만큼 감사하고 죄송한데, 학생 신분으로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잖아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학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A 등급을 맞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밖에 없었어요. 지난 학기에도 장학금을 받았다고 연락을 따로 드렸는데, 아직 감사한 마음이 너무도 크지만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요.  크게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만, 교수님께도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보증금은 다 못받았어요. 보증금이 총 1,000만원이었는데 850만원만 돌려받았어요. 그렇지만  의사소통 교수님,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인생은 한 순간 한 순간이 다 소중해요.”


지금 2학년이 끝난 상태인데, 졸업 후에는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싱가폴 또는 일본 지역의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되 계속 접해왔던 경제학이 아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어요.  지금도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한국 친구들을, 싱가폴로 가면 싱가폴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소통하면서 제가 그곳에 존재하는 의미를 더해가고 싶어요. 성대생 여러분 다른 시간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십대의 대학교 시절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둘도 없이 소중한 시간이니 최대한 재미있게, 이 순간에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아른거려 대학을 두 번이나 진학한 제가 그랬듯이요.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은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소중하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