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온
Kőrösi Nikolett 학우

  • 512호
  • 기사입력 2023.03.24
  • 취재 최윤아 기자
  • 편집 김민경 기자
  • 조회수 5612

여말선초의 삼봉 정도전의 정치철학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은 몇 명이나 될까? 짐작건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정도전의 정치 철학을 연구하고 있는 헝가리인이 있다. 이번 호는 유학에 대한 애정으로 언어의 장벽을 극복해낸 니키(Kőrösi Nikolett) 학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헝가리에서 온 니키라고 합니다. 한국 나이로는 서른 살이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 동양 한국철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이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엘떼(ELTE) 대학교에서 한국학 학사와 석사 공부를 했어요. 제가 정도전의 정치 철학을 연구한 이유는 퇴계, 율곡, 다산 등이 더 잘 알려진 학자들인데 제가 개인적으로 유럽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한국 유학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헝가리에서 한국사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여말선초 시대가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여말의 다양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삼봉 정도전의 유교 정치사상이 특히 흥미롭다고 봤어요. 그런데 정도전에 관한 연구가 서양에 없으니 논문이나 책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이러한 흥미로운 인물이며 위대한 유학자가 유럽에서, 혹은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잘 연구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제가 참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정도전의 철학, 특히 정치 철학과 조선을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해 정말로 더 많이 알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정도전에 대한 논문을  영어와 헝가리어로 작성하고 그의 저술도 번역하고자 해요.


제 취미는 운동이에요. 공부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많진 않지만, 틈틈이 에어로빅과 러닝을 즐긴답니다.  친구들과 분위기 좋은 예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매우 좋아해요. 메이크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나름 실력이 좋아서 친구의 결혼식 메이크업을 맡아 해준 적이 있었는데 정말 뿌듯했답니다.


Q.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해요. 하지만 헝가리에는 부다페스트 말고도 매력적인 도시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제 고향인 오로슬라니(Oroszlány)가 있답니다. 오로슬라니는 아주 작은 도시예요. 유명한 곳으로는 광산 박물관과 카말돌리회 수도원 유적 박물관이 있어요. 오로슬라니는 19세기에 헝가리에서 가장 중요한 탄광 지역 중 하나였는데 탄광 박물관에서 이에 대한 역사를 공부할 수 있어요. 카말돌리회 수도원 유적 박물관에서는 수도회의 역사와 수도사들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으며 흥미로운 전시회들도 열린답니다. 오로슬라니에는 예쁜 숲이 있어 산책을 즐길 수 있어요. 사계절마다 바뀌는 숲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현지인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곤 해요. 주변에는 헝가리 전통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아 굴라시(gulyás), 퍼프리카시 치르케(csirkepaprikás)를 맛볼 수 있어요. 케이크 가게도 많은데 특히 제르보(zserbó), 도보시케이크(dobostorta)를 먹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Q. 어떤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됐나요?

한국에 처음 왔던 때는 2016년이었어요. 관광 목적으로 왔었는데 그때 한국이 매력 있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느껴 다시 오고 싶었어요. 그러다 2018년에 정부 장학금을 받고 다시 한국에 올 기회가 생겼어요. 1년 동안 다른 대학교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2019년 9월부터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어요. 벌써 한국에 온 지도 4년이 넘었답니다.


Q.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헝가리와 많이 다른가요?

원래 한국학을 전공해서 한국에 오기 전부터 이미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크게 문화적 충격을 받지는 않았답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데 전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해서 헝가리 음식을 자주 먹지 못해도 괜찮답니다. 한국과 헝가리의 다른 점을 꼽자면 빠른 속도인 것 같아요. 사소하게는 물건이나 음식 배달 속도부터 크게는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까지 헝가리보다 훨씬 빠르다고 생각해요. 한국은 치안이 좋아서 밤늦게 돌아다녀도 무섭지 않아 좋아요.


Q. 한국 여행을 해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어디가 제일 인상깊었나요?

어학당에서 공부할 때 룸메이트들과 자주 여행을 다녔어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계령산이에요. 헝가리에는 높은 산이 많이 없어서 등산하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가파른 산에 오르는 것이 조금 어려웠지만 친구들과 함께해서 무척 재밌었답니다. 등산하면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 간식거리를 나눠 주신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Q. 전공으로 유학동양한국철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교시절부터 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대학 입학 당시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서 한국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때 유교에 대해 배우면서 유학이 정치와 사회의 조화와 균형을 위한 철학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서양철학에 대해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제 생각에는 동양철학, 특히 유교가 더 현실적인 철학 같았어요. 유학이 한국의 역사와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기때문에 더 깊게 배우고 싶었답니다.


Q. 서양인으로서 동양사상을 배우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언어 때문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지만 동양사상을 전공하기 위해 필요한 어려운 개념과 어휘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처음 수업을 들을 때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어 매우 슬펐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전에 모든 단어를 검색해보고 공부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학과 교수님들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Q. 성균관대 대학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행사가 많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창경궁 바로 옆에 있는 기숙사에 살았어요. 방이 9층이라 창문 밖으로 창경궁이 보였는데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기억에 남습니다. 매일 아침 창밖의 창경궁을 보면서 공부하느라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인도인 룸메이트와 함께 영화나 코미디쇼를 보면서 저녁을 먹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소소하지만 기숙사에서 보냈던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답니다.


Q.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박사를 졸업하면 유럽으로 가서 강사나 연구자가 되고 싶어요. 요즘 유럽에서 동양,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싶어한답니다. 제가 직접 그들에게 한국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요. 더 나아가, 유교철학의 독특성도 가르치고 싶어요. 아직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것이 제 목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