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으로의 모험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독일에서 온 예테 캄프하우젠(Jette Kamphausen) 학우

  • 580호
  • 기사입력 2026.01.23
  • 취재 강나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1489

독일에서 온 예테 캄프하우젠(Jette Kamphausen)은 기회가 된다면 해외 혹은 타지로 떠나 볼 것을 강조한다. 한국으로의 방문이 그녀를 한국학으로 강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강한 끌림을 얻을 수도, 예기치 않은 변화의 키를 찾을 수도 있다. 독일에서 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예테 캄프하우젠(Jette Kamphausen)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지인들, 그리고 교수님들로부터 ‘젤리(Jelly)’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22세이며, 독일과 네덜란드 혼혈로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 본인의 고향을 소개해 주세요.

제 고향은 독일 북부에 있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주도, 아름다운 도시 슈베린입니다. 슈베린은 인구가 1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비교적 작은 도시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고 잘 알려진 편도 아니라 국제적인 방문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매력적인 곳이며 근처에 있다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도시입니다.

특히 섬 위에 자리 잡은 역사주의 양식의 성과 푸른 녹음이 가득한 성 정원은 방문객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명소입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 성의 야경은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슈베린에는 오래된 타운하우스와 교회들, 돔이 있으며, 일곱 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막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고,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습니다. 졸업 전부터 우리는 함께 서울의 어학원에 등록해 3주 동안 한국어를 배우기로 계획을 세워 두었습니다. 그전에도 혼자 한국어를 조금 공부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한국에 와서 배우는 경험은 정말 값지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을 연장하게 되어 어학원에서 총 3개월을 머물게 되었고, 그 사이 사람들과 언어, 그리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원래는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서울은 그런 저를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그 뒤로 한 달 정도 더 여행을 한 후, 대학 진학을 포함해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기 위해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떠난 뒤 마음 한편이 텅 빈 것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국 다시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몇 달 뒤 한국행 비행기표를 다시 끊었습니다. 

두 번째로 어학원에 다니던 중 한 선생님이 무심코 어떤 말을 했는데,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어머니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걸 전공으로 공부해 보는 건 어때?” 여기서 ‘이것’이란 바로 한국어였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부모님께, 이렇게 다른 언어를 배우고 한국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제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양인이 한국어를 하는 게 지금보다 훨씬 드물었고, 관광객이나 외국인도 많지 않아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일 자체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한국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그 결정은 저를 성균관대학교로 이끌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회동 일대를 걸으며 혼자 탐방하던 중 우연히 성균관대학교의 입구 표지석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인연이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튀빙겐대학교(University of Tubingen)에서는 무엇을 전공하셨나요?

항상 저를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저는 독일 튀빙겐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에서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공 과정에서는 모든 학생이 한국의 대학에서 두 학기 동안 머물며 집중적인 한국어 수업과 일부 전공 강의를 이수해야 합니다. 다만 성균관대학교의 한국어 프로그램은 매우 엄격한 편이어서, 어학 수업과 병행해 다른 강의를 듣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대학 가운데 선택할 수 있었지만, 제1지망은 바로 이곳, 성균관대학교였습니다.



| 한국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저는 정말 많은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탐방하고, 콘서트에 가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러 면에서 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적극적으로 지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저는 집에 머물며 영상 콘텐츠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한국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고, 직접 약속을 잡는 데에도 앞장섰습니다.

유럽에서는 외식 비용이 부담되는 편이어서 늘 가격을 신경 쓰게 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본국에서는 가격이 두세 배에 달하는 경우가 많아 쉽게 가지 못했을 콘서트들도, 한국에서는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가능한 모두 예매해 즐겼습니다. 목적지나 계획을 정하지 않은 채 새로운 동네를 걸으며 탐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더 즉흥적이고 여유로운 태도로 지낸 덕분에, 한국에서의 생활 자체가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특히 2학기에 함께했던 KITE 동아리 활동은 제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모임은 항상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였고, 때로는 즉흥적으로 계획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모임에 가기 전에는 망설여질 때도 있었지만, 마치고 나면 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만 어학 프로그램 특성상 4주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있었고 과제도 많아 여러 차례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동아리 리더 덕분에 계속해서 구성원으로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KITE를 통해 MT에도 참여했는데, 예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고향의 문화는 무엇인가요?

한국에 있으면서 특히 그리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제대로 된 빵이었습니다. 아직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어머니께서 매주 주말마다 빵집에 가셔서 저와 남동생을 위해 갓 구운 프레츨을 사 오시곤 했습니다. 그 작은 일상이 무척 그리웠지만, 다행히 서울에서 저만의 안식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수와 안국에 있는 ‘베커린(Bäkerin)’이라는 가게인데,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독일식으로 신선한 프레츨을 직접 구워냅니다. 그중에서도 소금만 올린 오리지널 프레츨이 가장 맛있습니다.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마다 자주 찾던 곳이라, 더 많은 사람과 꼭 나누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좌석도 넉넉해, 한 번쯤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즉흥성과 모험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꼭 세계 일주처럼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이틀이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거나 설레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루하루가 그저 지루한 시간의 묶음이 아니라,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친구와의 커피 약속, 평소와 다른 길로 집에 가는 일,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새로운 식당을 가보는 것, 혹은 수원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일까지 모두 저에게는 작은 모험입니다. 이런 일정들을 벽에 걸린 달력에 모두 적어두는데,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의 크고 작은 모험들이 한눈에 보이고, 제 시간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모험을 즐기는 삶은 하루를 더 길게 느끼게 해 주고, 저를 오래도록 젊고 장난기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미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걱정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장 앞에 놓인 다음 단계는 한 달 후 고향으로 돌아가 부전공인 일본학(Japanese Studies)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재응시해야 할 시험이 하나 남아 있거든요. 본교로 복귀하면 한국학 전공으로 마지막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어, 졸업을 위해 잘 완성된 학사 논문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학 과정을 마친 이후의 진로는 아직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지만, 분명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건과 기회가 된다면 누구에게나 유학에 도전해 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진정한 성장은 힘든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을 마친 뒤 처음으로 1년간 해외에 나갔는데, 당시 겨우 15살이었고 뉴질랜드로 가 학교에 다니며 무엇보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1년 동안의 경험은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저는 더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감정적으로도 한층 단단해졌으며,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제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난 1년간의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생활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쌓은 모든 추억과 만난 친구들, 그리고 매일 아침 9시마다 다소 지쳐 있던 강의실을 끝까지 이끌어 주신 교수님들의 노력을 저는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만약 이곳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프로그램의 빠듯한 일정 속에서 아마 완전히 번아웃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늘 곁에서 중심을 잡아 주었습니다. 해외에서의 경험은 ‘내가 과연 충분히 용감할까’라는 두려움을 없애고, 스스로가 도전을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