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에서 온 유전공학도,
세실리아 히메네즈

  • 404호
  • 기사입력 2018.09.28
  • 취재 이희영 기자
  • 편집 양윤식 기자

 이번 <외국인의 성대생활>의 주인공은 파라과이에서 온 세실리아 라켈 실바 히메네즈 학우이다.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유전공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세실리아입니다. 이름이 좀 길어서 그냥 세실리아라고만 부르면 되고요, 유전공학과입니다. 사실 유전공학 학과명이 융합생명공학과로 변경되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기존 학과명이 더 좋긴 해요. 15학번이라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고요, 한국에 온 지는 5년 됐습니다.”


 그녀가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계기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파라과이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세운 학교에 다녔어요. 한국 학생들도 많이 다니고, 선생님들도 한국인이셨던 곳이었죠. 파라과이 사람들이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국어 수업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과라니어 말고 다른 외국어를 배워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는 고등학교 선배가 한국어를 같이 배우자고 이야기해서 얼떨결에 배우게 됐어요. 원래는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우려다가 선배와 함께 수업에 들어가게 됐죠. 그런데 글씨가 너무 예쁜 거예요. 한자는 글씨가 복잡하고 어려워서 힘들겠다 싶었는데, 한글은 간단하고 쉬워 글자도 하루 만에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저 재미있어서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물론 그때만 쉬워 보였지 지금은 너무 어렵죠(웃음).”


 그녀가 한국어 공부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어를 공부하며 제일 어려웠던 건 기사나 뉴스에서 나오는 고급 시사 어휘였어요. TOPIK(한국어 능력 시험)을 볼 때, 고급 단계 시험에서 제일 마지막에 보는 시험이 읽기 시험이었어요. 그 파트에는 일기 예보나 정치·사회와 관련된 글이 나와서 정말 어려웠죠. 이건 여담인데요, 생명공학 전공 수업을 듣다 보면 처음 접하는 한국어 단어가 영어로 뭐냐고 물어보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저도 몰라서 찾아봐야 해요(웃음). 동양인이 아니어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항생제 같은 건 영어로 뭐지? 하면 어려워지죠.”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많은 외국인 학우처럼, 세실리아 학우도 정부 초청 장학 제도를 통해 한국에 오게 됐다.


 “파라과이에는 한국과 달리 수능 같은 시험이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고 싶은 대학교의 입학시험을 보는 시스템이죠. 학교마다 시험이 다른데, 아순시온(파라과이의 수도) 대학교는 서울대학교처럼 합격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원래는 의대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가고 싶었던 학교는 입학시험을 6과목이나 치러야 했어요. 해부학, 수학 등등 여러 과목이 있었죠.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입학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통 입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고2 때나 고3 때부터 학원에 다녀요. 시험은 6개월에 한 번씩 있으니, 그 안에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는 거예요. 그런데 떨어지면 6개월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거죠. 게다가 학원은 너무 비싸고요.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 정부 초청 장학 제도를 알게 됐어요.


 당시 KGSP(Korean Government Scholarship Program) 선발은 지금만큼 어렵지 않았어요. 한국어 능력 시험 결과만 있으면 되었죠. 하지만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먼 외국에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지내고 소통하려면 영어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6개월에서 1년 정도, 학원을 두 군데 다니며 영어를 배웠어요. 하나는 미국 대사관에서 하는 고등학생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어요. 주말 동안엔 다른 영어 학원에 다녔죠.


 그렇게 공부한 게 선발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면접 단계까지 올라갔던 사람이 저와 다른 여학생 둘이었는데, 셋 다 TOPIK 3급을 취득했어요. 그땐 국가마다 두 명만 선발했는데, 그때 합불을 가른 기준이 영어 가능 여부였다고 해요. 영어로 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정도를 요구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이 제도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선발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 같아요.


 장학 제도 덕분에 한국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등록금, 생활비, 그리고 비행기 표까지 지원해 주거든요. 한국 유학에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제도를 잘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세실리아 학우는 2014년 2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14년 2월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도착하자마자 이화여대 어학당에 1년 동안 다닌 뒤 성균관대에 입학했죠. 사실 한국의 첫인상은 별로 안 좋았어요. 겨울이었잖아요. 너무 춥고, 거리의 나무도 다 죽어 있는 것 같아서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가족들이랑 처음으로 떨어지게 된 거니까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녀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 사회는 치안이 좋아서 좋아요. 파라과이에 잠시 돌아갔을 때 밤길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사실이 약간 슬펐어요. 한국에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아예 없었으니까요. 파라과이에서는 길을 걸으며 휴대폰을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휴대폰을 카페 테이블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죠. 그게 너무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파라과이에서 그걸 깨닫고 나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더라고요.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영어가 필수인 것 같아요. 대학 입학에도, 그리고 취직에도요. 한국에서는 어떤 멋진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그걸 갖고 있으니 멈추지 말고 더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동기들과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자꾸 신경 쓰이고, 불안해지더라고요. 부모님은 그런 걸 잘 이해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냐, 파라과이에선 어디에서든 취직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하세요. 근데 한국에서 그런 건 별 것 아니다, 여기서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와 다른 언어를 배우고 유학도 다녀온다고 말하면 부모님은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반응하시죠. 파라과이는 그렇게 경쟁적이지 않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족한 것 같은 경쟁적인 분위기는 어디를 가나 있긴 하죠. 그렇지만 한국이 조금 심한 것 같기도 해요.”


 또 그녀는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했다. “인종차별을 심하게 당한 적은 없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경험이 몇 번은 있었어요. 언젠가는 한국인들이 옆에 서 있던 외국인을 한국어로 욕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 무슨 말인지 들리는데 그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너무 불편하게 느껴져서 돌아보는데, 그들이 제게 너 얘기 아니야, 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그런 일을 직접 당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만약 이런 입장이었다면 내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외국인 학우들에게 꼭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라고 이야기해요. 아무도 네 편을 들어주지 않으니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요.”


 세실리아 학우가 전공을 선택한 이유에는 아주 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의대에 다니고 싶었어요. 생후 8개월, 아주 어렸을 때 수술을 받았거든요. 다리와 허리 사이의 뼈가 제자리에서 빠졌었거든요. 사고는 아닌데, 태어났을 때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걸을 수 없었을 거예요. 또 허리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양다리의 길이가 서로 달라 걸음이 잘 맞지 않고 허리가 기울어졌어요. 열두 살 때 그 진단을 받고, 중학교 때 치료를 받아 보자. 만약 그 치료가 잘 안 되면 열여덟 살까지 기다려보고 그때 수술하자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허리가 정상보다 많이 휘어져 있었대요. 결국 철근을 넣어 허리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고 두세달 정도 학교를 쉬었어요. 허리 모양은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허리의 위치가 바뀌며 그 위치에 맞추어져 있던 신체 장기들이 압박을 받게 되었죠.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부위는 폐였어요. 그래서 겨울 때마다 입원하고 감기 때문에 고생해야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그런 문제는 전혀 없어요. 이렇게 아팠던 일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꾸게 됐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겪었던 일은 사고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유전적 문제이기도 해요. 그래서, 치료보다 예방을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 해서 유전공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렇게 유전공학도가 된 그녀는 성균관대에서 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긴 한데, 3학년이 시작되기 전 세포공학 연구실에 학부연구생으로 들어가 림프부종을 치료 개발하는 연구에 참여했어요. 외부 센터에서 개발한 약으로 세포 실험이나 동물실험을 하고, 치료 효과를 확인하면 다른 단체로 연구 과정을 전달하죠. 이번 학기 동안에는 졸업 논문과 '잼보리'라는 생명공학대학 학술 대회에 집중하고, 내년부터 석사과정 공부를 시작하려고 해요.


 세실리아 학우는 두 개의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2학년 때부터 라이폼(Lifeome)이라는 학술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 과에서 진행하는 일종의 스터디 그룹이죠. 특정 강의에서 A나 A+를 받으면 튜터가 되어 튜티를 가르칠 수 있어요. 지금 저는 실무단에서 홍보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튜터도 하고 싶었지만, 언어의 한계가 있어 못 하게 됐어요. 우리 과 학생 대부분은 라이폼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학생만 90명이랍니다.”


 “또, 이번 여름방학부터 ‘RAVE’라는 동아리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답니다. 원래는 아는 선배들과 즐겁게 디제잉을 하고 음악을 즐기려고 시작한 건데 다른 동아리에서 사람들을 더 모으며 문화기획 동아리가 됐어요. 벌써 30명이 넘어간답니다. 이번 학기 첫 파티로 지난 9월 5일 개강 파티를 열었어요. 매주 금요일 학교 앞 술집에서 음악을 틀고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요. 매주 토요일엔 칵테일바에서 하고 있고요. 큰 파티는 한 학기에 두세번 정도 할 예정이에요. 20일엔 생명공학대학에서 체육 대회가 있었어요. 오후엔 디제잉 부스를 운영하고 저녁엔 ‘생공인의 밤’ 행사에서 디제잉을 했어요. 이번 축제 때 저희가 EDM 파티를 열려고 하는데, 그 때 제가 디제잉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제 주 활동 분야는 여기서도 홍보팀이에요. 포스터 만드는 걸 좋아해서요. 이런 활동을 1, 2학년 때 했어야 하는데 못 해서 지금 열심히 하고 있죠. 동아리 단원들끼리 서로 돕고 배우며 행사를 기획하니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마지막 학기를 끝낸 뒤에는 6개월 동안 파라과이에서 지내다, 2학기 때 대학원에 진학해서 생명 공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그때 연구실에 다시 들어가려고 해요.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싶은데, 박사 과정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할 생각이에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싶거든요. 대신 또다른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호주 아니면 캐나다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서로에게 친절했으면 좋겠어요. 한국 분들이든 외국 분들이든 자기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친절함은 상대방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제겐 그런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를 한국으로 이끌어 준 선배부터 선생님, 부모님.. 다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전 여기 없었겠죠. 모두 즐겁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세실리아 학우. 그녀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이든, 그 앞에 꽃길이 펼쳐져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