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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과 박미나 교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개최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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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과 박미나 교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개최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2023년 7월 28일부터 10월 8일까지 미술학과 박미나 교수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을 개최한다. 회화의 기본 요소인 색채와 형태에 반영된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탐문해온 박미나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일련의 조사 연구 활동을 통해 시판되는 물감과 통용되는 도안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특유의 시스템에 기반한 회화로 표현해 왔다.


박미나 교수는 회화의 기본 요소인 색채와 형상을 어느 누구보다도 집중적으로 탐구해 온 화가이다. 심지어 붓질하기를 포함한 다양한 그리기의 과정에 개인차가 기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수의 도움 없이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홀로 수행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다만 그 결과물이 어떠한 개성적인 혼색도 시도하지 않은 물감 그대로의 나열이거나 이미 존재하는 도상들을 차용한 것이기에 깊이나 주관성, 상징이나 서사 등 관습적으로 회화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충족시키지는 않는다. 대신 그의 납작하고 단순하며 대범하기조차 한 원색과 도안의 향연은 현대미술 상황에 대응하는 하나의 명료한 발언이자 회화의 형식에 대한 새로운 비평적 대안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 2023-녹색-소파, 2023, 캔버스 위에 아크릴, 257cm*290cm, 에르메스 재단 제공


1999년 이래 박 교수는 집, 하늘, 색칠공부 드로잉, 스크림(Scream), 색채 수집, 딩뱃 회화 등, 개념적으로 새로운 회화 연작을 다수 제안해 왔는데, 물감 수집은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자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의 습벽과도 무관하지 않다. 회화용 물감에서부터 가정용 페인트, 색연필, 볼펜,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안료가 수집의 대상으로 망라되고, 그 가운데 단일한 안료로는 가장 광범위한 스펙트럼으로 수집된 결과가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2023) 연작으로 드러난다.

▲ 2023-파란색-침대, 2023, 캔버스 위에 아크릴, 257cm*229cm, 에르메스 재단 제공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컬러 스트라이프와 가구 다이어그램이 쌍을 이루는 이 연작의 시작은2003년의 오렌지 페인팅이다. 2000년대 초반, 부동산 시장의 과열 이후 늘어난 유동자금이 미술 시장으로 흘러 들어와 미술투자 붐이 일었을 때, 어느 갤러리스트에게서 ‘오렌지 페인팅’이 있는지 문의를 받은 것이 작업의 단초가 되었다. 현실에서 예술작품의 한정된 용도나 색에 대한 구매자의 취향, 인테리어 트렌드가 반영된 지극히 세속적인 이 에피소드에서 작가가 보다집중하게 된 것은 ‘오렌지’로 명명되는 색에 대한 탐구였다. 학창 시절부터 가시적인 세계를 인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오류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오렌지 물감을 모두 수집해 보기로 결심하는데, 그 결과 관념화된 색의 인지가 얼마나 관행적이며 현실과 부조화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물감들은 3cm 두께로 칠해져 당시 유행하던 이인용 소파 크기에 맞는 가로형 스트라이프 페인팅으로 완성되었다.

▲ (왼쪽) 2023-오렌지색-소파, 2023, 캔버스 위에 아크릴, 257cm*133cm

(오른쪽) 2023-회색-테이블, 2023, 캔버스에 아크릴, 257cm*144cm


오렌지 색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색을 분류하는 아홉 가지 범주를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되면서 2004년 ‘아홉 개의 색과 가구’로, 그리고 이번 전시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로 진화한다. 아홉 개의 색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자주색 등 원색 계열에 흰색, 회색, 검정 등 무채색을 더한 것으로 다양한 크기의 가구 도형과 짝을 맞추어 완성된다. 수집가의 아파트 거실에 최적화된 오렌지 페인팅과는 달리 가상의 모델하우스를 구상한 이 프로젝트는 작업 당시의 주거문화와 사회상을 여실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2004년 버전의 경우, 강남의 브랜드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거로 선호되던 시점에서 이들 아파트의 통상적인 천장고 230cm를 기준삼아 세로 길이 227cm의 회화들로 완성됐다. 당시 수집 가능했던 총 632개의 물감은 제조사 순서대로 2cm 두께의 스트라이프로 칠해진 뒤, 물감 숫자의 규모에 부합하는, 다양한 크기의 보편화된 가정용 가구 도형과 결합하여 제시되었다.


박미나 교수의 작업은 현대 회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재료학에 대한 탐사이자 동시대에 대한 사회학적 리서치인 까닭에 리얼리즘 회화로 간주해야 한다는 견해는 결코 과언이 아니다. 2023년판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에는 작업이 재개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발생한 우리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가 압축적으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2004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일인당 국민소득의 지표에 걸맞게 시각 영역의 다양성도 확장되었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물감의 가짓수 역시 두배 가까이 많아졌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수집한 물감은 총 1134개에 이른다. 특히 2010년이후 SNS의 상용화로 럭셔리 소비재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고급화된 주거와 그에 부합하는 고급 가구들이 일상의 눈요기거리가 된 현실을 반영한다. 그것은 우리의 평균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미 정보로서 대중화된 우리시대의 욕망의 대상들인 것이다. 작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가인 아파트의 내부를 리서치 하면서 천장의 높이가 최소 30cm이상 높아진 점을 발견한다. 또한 아파트 분양 광고에 이미 공간에 맞게 선별된 가구들이 함께 광고되고, 럭셔리 잡지에는 컬렉션 가구가 단골 특집기사로 오르며, SNS에는 자신의 집 인테리어 디자인을 자랑하는 것이 현대인의 진정한 ‘플렉스’라는 사실을 파악한다. 그에 따라 작가는 수집한 물감의 개수를 평균 1.5cm 너비의 세로줄로 칠했을 때 (레드와 블루만 예외적으로 가로줄이다) 그 폭에 들어맞는 사이즈의 특정 제품을 고심해서 선정했다. 그 결과 옐로우 물감 234개와 옷장, 그린 물감 234개와 소파, 블루 물감 202개와 침대, 레드 물감 154개와 TV 유닛, 바이올렛 물감 81개와 체어, 오렌지 물감 72개와 소파, 그레이 물감 66개와 테이블, 블랙 물감 46개와 커피 테이블, 화이트 물감 45개와 오토만의 조합을 구성할 수 있었다. 대량생산된 가구들에 비해 곡선의 비중이 늘어난 하이엔드 가구의 다이어그램은 제품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아 실물 사이즈로 재현되며 특정 컬러 스트라이프와 짝을 이뤄 257cm 높이의 회화 아홉 점으로 완성되었다.


일련의 컬러-가구 작업에서 주목되는 것은 컬러의 명칭에 절대 부합할 수 없을 것 같은 물감의 존재들이다. 혹시라도 유사한 색들 간의 시각적 변별력을 높일 요량으로 임의로 별색을 삽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어울리지 않는 색들이 그것인데, 작가는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을 순서대로 빠짐없이 기록한 물감 리스트를 하나의 증거자료로 제시하며 이런 의구심에 대응한다. 그는 동일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물감들을 수집해 제조사와 물감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기계처럼 정확하게 캔버스에 적용했던 것이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자연을 최대한 재현해내는 것으로 알려진 인공의 물감 색이 인간의 시지각적 판단에 근거한 보편적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물감을 제조하고 판매, 유통하는 산업의 시스템이 구축한 정보를 우리가 수동적으로 학습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왼쪽) 2023-빨간색-리스트, 2023, 종이에 실크스크린, 아크릴, 84cm*60cm

(오른쪽) 색상의 명칭들, 2023(1997), 피그먼트 프린트 종이에 페인트 색상 스와치, 총 20점


박 교수의 수집 목록에는 미국의 건축자재 판매 기업인 홈디포가 DIY용 페인트를 홍보하기 위해 배포하는 색상 스와치도 포함되는데, 물감 색의 종류와 그들을 지칭하는 명칭 간의 기묘한 조합도 작가의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파란색을 지칭하는 행복의 추구(Pursuit of Happiness), 선원의 꿈(Sailor’s Dream), 부적(Talisman) 따위나 자주색에 쓰이는 엘리트(Elite), 영원(Eternity), 장엄함(Grandeur), 그럴듯함(Looking Good) 등의 추상적인 명칭들이 그것이다. 작가는 색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개인의 욕망을 활용하는 기업들의 전략이 어떻게 인간의 인지 행위를 좌우하는지 담담하게 제시한다. 색상 견본을 펀치로 조각내어 시적인 색의 명칭들과 나란히 배치한 작업은 하나의 기록물이자 추상화, 개념미술 작업으로서 현실의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반추한다.

▲ 박미나 교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전시 전경


전시장에서 작품들의 배치는 아파트의 동선을 참조한다. 현관에 해당하는 입구 쪽 분리된 공간에 물감 리스트의 아카이브를 두고, 이어서 실내로 이어져 조명이 조절된 공간에는 거실, 마스터룸, 침실, 드레스룸의 순서로 공간과 가구를 배치하듯 회화 작품을 걸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총 1134종의 물감을 붓으로 직접 칠하면서 캔버스 화면에 회화의 물리적 속성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업은 회화 매체로의 환원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화면 내부에 이미 가구가 놓이는 공간과 그 위에 그림이 걸리는 공간을 내포하는 각각의 캔버스가 실제 공간에서 가구와 그림이 어울려 배치될 인테리어 디자인을 제안함으로써 전시를 하나의 설치미술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박미나의 작업은 회화의 영역에서 매체의 특수성을 방어하면서도 ‘확장된 장’으로 나아가는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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