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커버스토리 - 2024.10.01
찬란하게 빛난 유생들의 여름,
2024 고하노라
지난 9월 25일, 성균관대학교의 전통적 행사인 ‘2024 유소문화축제 고하노라’가 거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성균관 유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던 유소를 재현하고, 종로구 일대를 행진하며 우리대학의 유생문화를 널리 알렸다. 고하노라는 크게 성균관에서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대의사, 성균관에서 출발해 종로구 일대를 행진하는 퍼레이드인 소행, 다시 명륜당으로 돌아와 유생들의 상소에 공직자가 답하는 소반과 비답 세 절차로 구성되었다. 2024 고하노라 행진을 함께 걸으며, 생생한 소감을 모두 담아왔다. 유달리 더웠던 날, 행진길을 걸으며 흘린 유생들의 땀방울과 그럼에도 그들의 입가에 맴돈 밝은 웃음. “멋지다, 자랑스럽다”는 행인들의 격려가 모두 모여 올해 고하노라를 빛냈다. 이날만을 위해 3개월을 달려온 유생들이 2024년 여름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기사가 되었으면 한다. ◈ 대의사(大議事) ◈ 2024 고하노라는 본격적인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식인 대의사로 시작되었다. 성균관 문묘에서 진행된 대의사는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러 가기 전에 의지를 다지고, 유교 성현들께 인사를 드리는 절차이다. 상소문 낭독 및 허가의례로 구성된 대의사 의례는 조선시대 전통 방식을 그대로 살려 진행됐다. 대사성*을 맡은 이준상 학생처장은 유생들이 유소를 떠나는 것을 허락하고, 유생들의 희망찬 발걸음을 응원했다. *대사성: 성균관의 으뜸 벼슬. ◈ 소행(疏行) ◈ 소행이란 과거 성균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리러 성균관부터 궁궐까지 행진 하는 것을 말한다. 행진길은 유생들의 오색빛깔 단령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백호단, 주작단, 청룡단, 현무단, 황룡단으로 구성된 5개의 행진단은 우리 고유의 오방색을 하나씩 나눠 맡았다. 유생들은 성균관, 창덕궁, 인사동, 종묘 등 우리 전통문화가 보존된 문화재 곳곳을 활보했다. 퍼레이드 도중 멈춰 다양한 노래를 안무와 함께 선보이는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우리 문화재와 유생들의 단령이 어우러져 관광객들,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진풍경을 자아냈다. | 행진 유생 인터뷰 주작단 박정호(인문과학계열 24), 청룡단 조예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23), 현무단 이소현(국어국문학과 23) | 행진유생에 지원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정호: 저는 그동안 오랜 수험생활을 하면서 소속된 곳이 없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었는데요, 성균관대에 입학하면서 성균인으로서 다시 한번 소속감을 되새기는 의미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조예은: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성균관대에 왔으면 유생 문화를 이어가는 행사를 한 번쯤은 참여해 보고 싶었어요. 더 늦기 전에 얼른 참여해야겠단 생각에 지원했습니다. 이소현: 학교 사람들을 더 만나보고 싶었어요. 또 졸업 전에 이 단령을 한 번쯤은 입어보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 본인 행진단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박정호: 빨간색 하면 떠오르는 정렬, 열정, 화끈함이라 생각합니다. 단원들 모두 텐션이 높고 활발합니다. 조예은: 단합력이요. 가족 같은 끈끈함이 있습니다. 이소현: 현무단의 남색 단령이 가장 예스럽고 고풍스럽다고 생각해요. 남색 단령이 저희만의 특별한 시그니처인 것 같아요. | 고하노라 행진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정호: 고하노라 행진을 통해 성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인사하고, 행인들에게 응원의 함성을 받으며 걸으니 성균관 유생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조예은: 고하노라 행사를 준비하며 좋은 인연들을 많이 사귄 것 같습니다. 단원들과 꽤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학교에 아는 얼굴들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에요. 단령을 입고 환호성을 들으며 걸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소현: 프로 아이돌의 삶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다들 저희를 보며 촬영하고, 손 흔들며 반겨주시니까 아이돌이 된 기분이에요. 이렇게 반응해 주시니 기분도 좋고 걸을 힘도 나는 것 같아요. 유생들의 행진 이면을 함께한 주역들이 있다. 실무단인 아방사령, 사극 유생은 유생들의 안전한 행진을 돕거나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며 행진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했다. 화공 유생, 영상 유생은 소행길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아름답게 담아냈다. | 실무단 인터뷰 사극 유생 박인영(유학동양학과 20), 정수은(사회학과 23) 아방사령 이민종(한문학과 23) | 실무단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박인영, 정수은: 현재 연극 동아리에서 배우를 하고 있어요. 이번 고하노라에서 연기하는 역할인 사극 유생을 모집한다고 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종: 작년에는 행진 유생으로 참여했었는데요,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서 이번에는 실무단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했습니다. | 맡고 계신 역할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인영: 저는 현방상인 임정옥 역할을 맡았습니다. 현방상인이란 성균관 유생들한테 소고기를 공급해 주는 일을 하는 백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정수은: 제 콘셉트는 한석방이라는 캐릭터인데요, 주로 글을 짓는 인물입니다. 한석방은 자신의 글에 자부심이 있고 성격이 드센 양반이에요. 이민종: 소행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군관인 아방사령입니다. 행진단 사이에 껴서 도로 통제를 돕거나 단 행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 행진 유생들과 소행길을 함께 걸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박인영: 행진 유생분들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말을 받아주시고, 콘셉트도 잘 맞춰주셔서 큰 무리 없이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수은: 날이 더운데도 다들 열심히 춤도 추고 걸어 다녀서 힘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열심히 하시는 분들 보면 저도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끝까지 안전하게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민종: 행진 유생이었을 때와 달리 안전과 도로 통행에 신경 쓰면서 다녀야 하는 점이 힘들기도 하지만 뿌듯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 좌측 사극 유생, 우측 아방사령 ◈ 소반(疏班)과 비답(批答) ◈ 종로구 일대를 걷는 퍼레이드 이후 성균관 명륜당으로 돌아와 '소반과 비답' 본행사가 진행되었다. 소반은 유소의 성공을 기원하는 유생들의 입궐 플래시몹 공연과 청년 대표 소두의 상소문 요약 낭독으로 구성됐다. 소반 의례 이후, 유생들의 상소문에 대한 공직자의 답변인 비답 의례가 이어졌다. 이번 고하노라 행사는 대한민국 청년상소 프로젝트와 연계되어 진행되었다. ‘대학과 지역 사회의 상생 방안’을 주제로 지역과 지역 속의 대학이 함께 성장하기 위한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마케팅을 통한 지역 특산물 홍보와 학식에 질 좋은 특산물 납품이라는 상생 방안이 발탁되었다. 비답 의례에서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참여해 위 상소문에 응답하는 등 청년과 공직자의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졌다. 소반과 비답 의례를 마치고, 교내 댄스동아리 와이낫과 청랑, 합창단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행사는 고하노라 준비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시청으로 2024 고하노라의 막이 내렸다. ◈ 청랑 장의 허서영(경제학과 23) 인터뷰 ◈ | 장의로서 고하노라를 이끄셨는데요, 장의 역할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의란 과거 성균관의 재외 임원 중 우두머리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과거 성균관의 학생회 회장, 현재는 청랑의 대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작년과는 다른 올해 고하노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청계광장에서 피날레를 진행했던 작년과 달리 성균관 문묘로 다시 돌아와 피날레를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성균관 문묘가 가진 전통성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부각하고자 피날레 장소로 선정했습니다. 문묘가 가진 아름다움 덕분에 피날레를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올해 고하노라 행사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더운 날씨임에도 긴 시간을 걸어야 하는 행사라 참가자들, 함께한 실무단, 귀빈들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모두 즐겁게 소행길을 걷고 끝까지 웃는 얼굴로 행렬을 마무리해서 기뻤습니다. | 2024 고하노라를 무사히 끝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아까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니 살짝 울컥하더라고요. 후련하기도 하면서 다시는 주최자로서는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아련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청랑 단원들, 행진 유생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던 그 기억은 제게 좋은 추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3개월 동안 함께했던 행진 유생들, 실무단, 그리고 당일 축제를 빛내주신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보냈던 석 달의 시간이 그냥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10년 후에 펼쳐봐도 즐거웠다고 기억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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