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넘어 사람을 잇는 일,
국제회의통역사 송민재 동문(행정 11)
AI로 글도 쓰고, 예술 작품도 그리고, 음악도 작곡하는 시대. 단순히 언어를 넘어 맥락과 문화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뉘앙스까지 전달해야 하는 통역은 여전히 사람의 분야다. 그중에서도 국제회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동시통역하는 국제회의통역사는 언어능력은 물론, 배경지식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는 전문직이다. 그리고 여기 큰 노력으로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통역을 구사해내는 통역사가 있다. 이번 인물포커스 593호에서는 국제회의통역사이자 대학 강사, 그리고 블로거로 활발히 활동 중인 송민재 동문을 만났다. 현장에 몸 담은 현직자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듣고 싶다면, 이번 인물포커스를 읽어보자.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11학번 송민재입니다. 현재 국제회의통역사 겸 국제행사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도부터는 중앙대학교에서 대학강사로 임용되어 통번역사 후학을 양성하고 있어요.” ▲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UN 산하 한국지부 행사 동시통역 스탠바이 모습 | 학부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하셨지만, 이후 국제회의 통역사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각종 글쓰기, 논술 상을 받곤 했습니다. 중학생 때에는 아버지의 직장을 사유로 잠깐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요. 미국인 친구들과 너무도 값진 학교생활 추억을 쌓던 과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라는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도 언어 영역(국어)과 외국어 영역(영어) 모의고사 백분위가 가장 이변 없이 우수했고, 장래 희망이 외교관, 국제변호사, 기자, 통역사 등이었을 정도로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크게 봤을 때는 청소년기에 염원했던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국제통상학, 그리고 대학원 과정인 전문 통번역학과에서의 배움이 현재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제 원전공이 행정학이라는 것이 통역사라는 직군과 무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로스쿨과 마찬가지로, 통번역대학원에는 정말로 다양한 학부 전공 출신분들이 진학하게 됩니다. ‘영어영문학 전공을 해야 통번역대학원 진학에 유리한 것 아니냐’라는 발상은 마치 ‘국어국문학 전공을 해야 로스쿨 진학에 유리한 것 아니냐’라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법조문을 해석하고 판례 공부를 하는 것이 ‘한국어’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국어국문학 전공이 필수인 것이 아닌 것처럼요. 통역을 하려면 단순히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것을 떠나서 ‘세상의 모든 지식과 학문’을 자연스럽게 옮길 역량을 길러야 하며,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학부 전공은 통번역 업계에서 ‘본인만의 필살기’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간호학과를 졸업해 간호사 면허가 있는 채로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해 의료 업계 통역을 휩쓴다거나 하는 사례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저는 현업에 있어서는 국제통상학 복수전공 이력이 오히려 원전공보다 더욱 큰 도움이 되고 있기는 한데요. 기업 재무제표 번역, 기업공시 번역, 국내 상장사-외국인 기관 투자자와의 비공개회의 등에서는 상경계 배경지식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출강 중인 중앙대학교에서도 매년 2학기 때 개설되는 제 전담 과목인 ‘글로벌 비즈니스 번역’ 수강생들을 상대로 국제유가, 원자재, 무역, IR 보고서, 기업공시 등을 다룰 때 학부 시절의 배경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원전공 행정학 또한 통역과 무관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행정학은 학제적인 사회과학 학문임과 동시에 조직이론, 인사행정론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경영학 전공과도 상당한 유사점을 지닙니다. 차이점은 경영학은 사익을 추구, 행정학은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덕분에 정치/사회/문화 통역을 하는 데는 행정학도로서의 배경지식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분들의 실무 회의 통역에 투입이 되었을 때는 행정학도 출신으로서의 배경지식이 정책 관련 통역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강점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전문통번역학과에서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커뮤니티 통역사는 4년제 학사 학위만 있어도 활동에 지장이 없지만, 전문 통역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제회의 통역사’ 타이틀을 따려면 반드시 통번역대학원 석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학원 진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전문대학원으로서의 통번역대학원에서는 주 5~6일 전공수업을 학기당 약 7~9 과목씩 들으면서 동시통역, 순차 통역, 릴레이 통역, 위스퍼링 통역, 수행 통역, 전문 번역 등 다양한 통번역 스킬을 훈련합니다. 이와 더불어 공강 시간마다 추가적인 통역 스터디를 하며 소위 ‘통역하는 인간병기’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아침 1교시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 전공수업을 듣고, 저녁부터 심야까지는 번역 과제와 시역 훈련(sight translation: 영어 신문을 눈으로 읽으면서 입으로는 한국어를 술술 내뱉고, 한국어 신문을 눈으로 읽으면서 입으로는 영어를 술술 내뱉는 ‘눈으로 통역하는 훈련’) 및 추가 통역 스터디를 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2년 간의 전문대학원 생활 끝에 엄격한 졸업시험에 통과하면 비로소 국제회의통역사 타이틀을 취득하게 됩니다. | 국제회의 통역사로서 지금까지 통역하셨던 회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을 소개해 주세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방송국 생방송 동시통역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부터 이재명 대통령까지 3대 연속으로 대통령 해외순방 때 국내 방송국에서 생방송을 맡게 된 것이 현재 저의 대표적인 통역 이력이기도 하고요. 스포츠에 빗대자면 월드컵 시즌 때 방송국마다 캐스터/해설자를 각각 섭외하는 것처럼, 대통령 해외순방 생방송 또한 국내 방송국 별로 국제회의 통역사를 2인씩 섭외합니다. ▲ 송민재 통역사가 통역한 회의들 일반적인 국제회의 행사는 몇 주 전에 미리 섭외가 진행되곤 하지만, 대통령급 해외 일정 생방송 통역은 VIP의 동선 및 일정 보안 차원에서 방송국 통역 섭외가 매우 촉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국제행사 통역 대비 배경지식이나 전문용어를 미리 공부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고, 국내 방송국 방송실에 앉아 모니터링하는 해외 현지 중계 화면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섭외가 확정되면 생방송 시작 직전까지 국내외 언론사 최신 보도자료를 다 섭렵하며 벼락치기를 합니다. 또한 국내와 해외 간 시차가 존재하기에, 생체리듬 차원에서도 체력 소모가 큽니다. 통역이 끝나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뇌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실 통역 시간은 1~2시간 남짓이지만 앞뒤 시간을 포함해 36시간 동안 깨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온 국민이 집중하는 바로 그 순간. 내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TV 생중계로 송출된다는 심적 압박, 그리고 화면에 함께 송출되는 수화 통역사의 손동작 하나하나가 내 통역에 의해 결정된다는 부담감. 방송실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은 그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습니다. 방송국 뉴스 앵커가 오프닝 멘트를 한 뒤, ‘지금부터 OOO 대통령의 현장 발언을 들어보겠습니다!’라는 대사와 함께 TV 화면에 우리나라 대통령, 미국 대통령, 혹은 UN 사무총장의 원샷이 잡히고 내가 드디어 입을 떼기 시작할 때.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제 심장이 박지성의 심장이요, 손흥민의 심장이었습니다. 약 6년 전에 진행했던 도쿄올림픽 내규 번역, 그중에서도 패럴림픽 국가대표 참가 동의서 약관 번역도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 스포츠 행사는 공식 언어가 영어인 만큼, 일본 조직위원회에서 본인들의 일본어 원문을 공식 언어인 영어로 번역해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및 국가패럴림픽위원회(NPC)에 배포했습니다. 이를 각국 위원회가 다시 각자 현지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도쿄패럴림픽 국가대표 참가 동의서 약관을 번역할 때 특히나 책임감을 느꼈는데요. 대한민국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 제가 번역한 약관 한글본을 읽고, 그 문서 하단에 서명한 뒤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도핑테스트 규정, 경기 결과 불복 시 소청 절차, 스포츠 재판 절차, 법적 행위능력이 있는 태극전사뿐 아니라 미성년자/행위무능력자의 부모/후견인 위임대리 서명란 등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패럴림픽 국가대표분들이 해석의 오류로 억울한 상황을 겪지 않게끔 노력했습니다. 이후 모든 패럴림픽 태극전사가 제가 번역한 약관에 서명하고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졌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스포츠 규정집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쌓게 된 배경지식, 그리고 그 어떠한 신체적 불편함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해 낸 스포츠 정신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던 그날의 경험은 뒤에서 얘기할 시각장애인마라톤회(VMK) 가이드 러너로 참가하게 된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긴 호흡의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통역해 내는 모습이 매우 대단해 보이는데요.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통역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시거나, 가진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순차통역을 기준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전문 통역사들은 순차통역을 할 때 기억술 및 노트테이킹 기법을 사용합니다. 통번역대학원에서 순차통역은 최대 6분까지도 훈련을 해냅니다. 즉, 통역 대상인 화자가 6분 동안 끊임없이 발화를 하면, 그 발언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 통역사가 그때부터 6분에 걸쳐 통역을 해내는 것입니다. 단, 6분 동안 말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걸 순전히 암기력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노트테이킹 기호술이라는 보조 수단을 사용합니다. 영화 ‘인셉션’에 빗대면 마치 통역사가 본인만의 팽이 토템을 여러 개 미리 만들어 두는 준비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번역대학원 재학 시절 실제로 활용했던 ‘한국어 영어 노트테이킹’ 예시) *노트 해석: […기업, 노조, 사회 구성원들의 협심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또한 중요하며, …] 다만 이 같은 기술적인 역량은 국제회의통역사가 갖추어야 할 극히 기본값일 뿐이며, 실제 통역 품질은 배경지식 공부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통번역 업계에서는 ‘통역 실력은 30%고, 배경지식이 70%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통역 실력이 부족해도 과락,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과락입니다. 사전 배경지식 공부를 철저히 해 내야지만 미리 해당 업계의 전문용어에 대한 기호를 만들고, 본인이 대학원에서 갈고 닦은 노트테이킹 실력을 ‘그저 보조 수단으로서’ 훌륭히 사용해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현재 네이버 어학 분야 인플루언서로 선정될 만큼 영향력 있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세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2,000편에 가까운 글을 꾸준히 올리며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블로그 전성기 시절에 꾸준히 글을 연재할 수 있던 원동력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에 대한 만족감이었습니다. 수년간 별다른 대가나 성과를 바라지 않고 일기장처럼 기록해 오다 보니 결국 ‘무식한 정면 돌파’로 알고리즘이 쌓이고 쌓여 네이버 인플루언서로 선정이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요새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이 존재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토리’로 흘려보냈을 시시콜콜한 내용조차도 블로그 소재가 되었기에 2천 편이 넘는 게시물이 쌓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누적 방문객 800만 명 달성 순간 포착 블로그는 학부생 시절에 ‘예륜의 잡동사니’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단순히 추억 보관용으로 시작했습니다. 초중고 학창 시절 한창 즐겨 했던 ‘바람의 나라’ 게임 플레이 스크린샷들이 본가 컴퓨터에 그냥 쌓여 있는 게 아까워서 온라인 세상인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더니, 알고리즘이 쌓이고 쌓여 점점 많은 네티즌들이 추억을 되새기려 제 블로그를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린샷 소재가 떨어진 이후에는 영화 리뷰, 영자신문 리뷰, 맛집 탐방 등 주제의 제약 없이 정말 다양한 포스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유입량이 늘어났습니다. 통번역대학원 입시생 시절에는 수험 일기를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고, 입학시험 합격 후 통번역대학원생 시절에는 대학원 생활을 연재하면서 입시 수험생분들의 꾸준한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는 ‘영어 어학시험 도장 깨기 시리즈’를 시작해 토익 그랜드슬래머 마스터 인증서 취득(토익 990/990, 토익 스피킹 200/200, 토익 라이팅 200/200), OPI S 등급 취득(오픽 AL보다 3단계 높은 ACTFL 인증시험 최고 등급) 등을 인증하며 시험 공략법 및 후기를 연재하자 영어에 관심 있는 취준생/사회인 분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같이 여러 어학시험 만점 인증 연재글 덕분에 2021년도에는 네이버 어학 인플루언서에 선정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유행이 옮겨가며 블로그는 트래픽이 많이 꺾이기도 했고, 현직자가 된 현재는 ‘통역사 예륜’이라고 블로그명을 변경하며 기존 카테고리들은 상당수 정리하면서 방문객 수는 더더욱 줄어들었습니다. 때문에 5년 전에 선정되었던 네이버 인플루언서 타이틀은 ‘과거의 영광’이 되었긴 합니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학부생, 석사생, 초년생 시절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 보관소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 블로그 Q&A를 통해 통역사를 꿈꾸는 많은 분과 꾸준히 소통하고 계시는데요. 블로그 운영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이웃과의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언젠가 통번역대학원 입시설명회가 끝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 있던 모 수험생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블로그 글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를 주었던 때도 있고, 제가 출강 중인 중앙대학교 3월 신학기 수업 쉬는 시간 때 “통역대학원 입시생 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라며 소위 ‘팬밍 아웃’을 하는 1학년 제자들이 있을 때마다 민망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혹은 학교 포털 과제 제출란을 통해 ‘제가 사실 입시생 때 고민 상담을 드렸던 닉네임 OOO 이었다’며 인사를 해주는 학생들도 가끔 존재합니다. ▲ 중앙대 1학년 신학기 때 종종 일어나는 해프닝 한편, 학부 모교인 SKKU 카테고리 게시글에 성대 동문님들이 댓글을 달아 주실 때에도 상당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를테면 2016년도에는 성균관대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개편되며 수많은 학생들이 UI 이용 방법에 상당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저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껴 신규 수강신청 시스템 공략 강의 영상을 촬영해 공유했습니다. 그 덕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성대생들에게 무수한 감사 인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블로그에 감사 인사를 주었던 수많은 성대 후배님들이 지금쯤은 모두 어엿한 사회인들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감회가 새롭네요. ▲ FG 출신으로서 불특정 다수의 성대 신입생들에게 수강신청 상담을 해주던 모습 ▲ 수강신청 공략 동영상 게시물에 대한 성대 동문 후배들의 감사 인사 | 블로그에 SKKU 카테고리가 따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수 졸업생에게 수여되는 총장상도 받으셨는데요.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저는 학부생 시절을 정말 열정 가득하게 보냈는데요. 정말 다채로운 경험을 쌓은 덕분에 참으로 감사하게도 국제품 특품(영어 어학능력), 인성품 특품(봉사활동), 창의품 특품(전국구 공모전 및 국제 대회 수상)을 인정받아 총장 표창장인 ‘성균명품’을 수상했습니다. 2월 졸업식 날 수천 명의 졸업생 중 성균명품 6인(문과 3명, 이과 3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 ‘대학 생활 참 열심히 했구나’ 하며 뿌듯했던 기억이 있으며, 20대 때의 열정이 30대인 지금까지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FG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지원을 나가던 모습 교내에서는 프레시맨 가이드(FG), 행정학과 학생회, 행정학과 실전 행정 연구반 학회원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다수의 인원 앞에서 퍼블릭 스피치, 아이디어 회의, 정책 찬반 토론 등을 꾸준히 진행한 경험이 훗날 언어 발화 및 논리력 훈련에 큰 양분이 되었습니다. 원전공과 복수 전공 둘 다를 최대한 국제어(영어) 수업으로 들으며 전공 발표 및 과제/보고서 작성을 모두 영어로 진행했던 경험 또한 대학 수업의 학술적인 내용을 구술 및 서술하는 연습에 큰 양분이 되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국제하계학기(ISS) 조교 활동 당시 단체 사진 국제하계학기(ISS) 조교(TA) 활동 역시 매우 추천하는 교내 활동입니다. 전 세계 유수 대학의 외국인 초빙교수 및 다국적 학생들이 여름 계절학기를 가르치러/들으러 오는데, 이 프로그램의 조교 역할을 하면 짧고 굵게 알찬 교환학생 느낌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계절학기 수업 일과가 끝나고 나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한 뒤풀이도 값진 추억입니다. 단순히 수다를 떠는 경우도 많았지만, 때로는 외국인 학생들의 각 출신국과 관련된 정치나 외교 이슈에 대해 진지한 토의를 하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여러 국가 출신 외국인들의 각양각색 억양에 익숙해지는 과정 또한 결과론적으로 훗날 통역사로 일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인들이 영어 하면 미국, 영국, 호주 정도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영어 통역사는 정말 다양한 억양을 잘 소화해 낼 줄 알아야 하니까요. 대학 생활 도중 교외 대외활동은 총 21개를 진행했는데요. 저는 20대 시절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던 청년임과 동시에 한번 맡은 바는 영혼을 갈아가면서 끝까지 책임지는 성격이었습니다. 당시 열정 과다로 대상포진까지 걸려 가면서 정말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는데요. 이를 통해 훗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뿐 아니라, ‘어떤 직업은 상상했던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 진로 선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만약 교내 동아리 활동 2개를 할 여력이 있으면 차라리 교내 동아리 활동 1개, 전국구 대외활동 1개를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국구의 각 대학교에서 가장 PR, 마케팅, 스피치 역량이 우수한 학생들과 교류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고, 교내 활동만 했던 게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치관이 확장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은 넓고 뛰어난 인재는 많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학생들을 지도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궁금해요. 통번역대학원 재학생들은 이미 영어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최상위권인 분들이 약 1년 단위의 수험생활을 거쳐 입학하는 만큼, 그러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물론 통대 출강은 영어 수업이 아닌 통번역 수업(이미 한국어와 영어가 일정 수준 이상 완성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 전문 통번역 훈련)이기에 단순 외국어 어학 교육과는 수업 방식도, 다루는 텍스트의 종류도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요. 그렇게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그 학생들이 한데 모이면 당연히 또다시 상대적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있고,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얻어 가는 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중위권이던 학생이 피땀 어린 노력으로 한 학기 동안 폭풍 성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입니다. 모 중하위권 학생이 학기 중 스스로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매주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실에 남아서 학습방향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의 장단점을 기준으로 학습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대학원생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줬습니다. 당장 이번 학기 우수한 학점은 힘들다는 현실에도 전혀 좌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노력해 보겠다고 한 학생이 훗날 2학년으로 올라간 뒤 성적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상위권 실력으로 우뚝 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정말 뿌듯하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강단에 서있는 송민재 통역사의 모습 | 국제회의 통역사, 교육자, 파워 블로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만큼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나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대학생 시절에는 교육봉사, 사무봉사 등 지식을 쓰는 위주의 봉사활동을 주로 선호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몸을 쓰는 봉사활동을 선호하고, 또 이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업무적으로 전두엽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다 보니, 몸을 쓰는 봉사활동을 하면 업무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져 선순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1월 첫 주말부터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회(VMK)에서 가이드 러너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빛나눔’ 가이드 러너는 시각장애인 러너분들과 가이드 끈인 ‘테더(tether)’로 서로의 손목을 연결한 채로 마라톤 대회를 함께 달리는 활동입니다. 26년도 상반기에는 시각장애인 러너분들과 수백 킬로미터를 함께 달렸고, 이번 하반기에도 빛나눔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공식대회 가이드러닝 중인 모습 통역사, 국제행사 사회자, 그리고 대학강사로서 일하기 위해서는 ‘언어 발성’이 상당히 중요한데, 업무적으로 길러 둔 발성 역량이 시각장애인 분과의 동반주자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가이드 러닝은 공식 대회에서 1시간 내외 혹은 그 이상을 달리면서 시각장애인 동반주자분에게 쉴 새 없이 음성 안내를 해주어야 해서, 함께 달리는 시각장애인 주자보다 심폐지구력과 달리기 역량이 압도적으로 우수해야 합니다. 남산 정기훈련, 트랙 정기훈련 등에서 처음 매칭되는 시각 주자 분마다 저에게 ‘민재 선생님은 목소리가 깔끔해서 들으면서 달리기 너무 편하다’라며 목소리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실 때마다 너무도 뿌듯하고, 감사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통역사 역할의 제1 원칙은 절대로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닌, 통역 서비스 대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고위급 인사의 발언이 외국인 분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게끔 하되, 통역사의 존재감이 절대로 고위급 인사의 존재감을 덮어서는 안 됩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인 주자와 끈을 연결해 함께 달리며 시각 주자의 안전을 책임지되, 시각장애인 주자를 앞서 달려서도, 가이드 러너 본인의 기록 욕심에 그분들을 앞에서 끌어당겨서도 안 됩니다. 저는 주말마다 통역과 가이드 러닝의 공통점을 몸소 겪으며 다채로운 인생철학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태 수차례동안 10km 종목에 한정해 공식 대회 동반주를 해보았는데요. 올해 하반기 중으로 하프마라톤 공식대회 시각장애인 동반주라는 새로운 한계를 극복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는 개인 하프마라톤 공식대회 기록증도 만들어 뒀습니다. 시각장애인 주자와 함께 10km의 두 배가 넘는 21.097km라는 거리를 함께 달리면 또 얼마나 세상이 넓어 보일지, 어떠한 인생 교훈을 얻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 마지막으로 통역사를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TV 프로그램 시청자들의 우스갯소리 중에서 "드라마는 작가의 지능을 넘을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역 업계에서는 “본인이 구사하는 언어 2개 중에서 더 부족한 언어 실력이 본인 통역 실력의 상한선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 실력은 원어민이지만 한국어 실력이 매우 어눌한 재미교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그 재미교포가 한국어 사자성어를 유창하게 이해하고 영어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흔히 통역사라고 하면 외국어 실력만이 중요하다고 착각하기 쉬운데요, 외국어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한국어 실력입니다. 만약 성대 후배님들께서 진심으로 통역사가 되고 싶으시다면, 한국어 신문과 영어 신문을 편식하지 말고 최대한 다독하며 ‘느린 글’에 대한 독해력을 충분히 길러 두시기 바랍니다. 국제회의통역사는 통역 현장에서 두뇌 활용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장기 집중력과 순발력 모두를 잡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활자 신문을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 정독을 하는 습관은 통역사가 되기 위한 기초 체력 다지기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편식하지 않고 쌓아두는 것 또한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통역사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이 세상에 무가치한 경험은 결코 없습니다. 하다못해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보는 경험은 훗날 게임회사 통역에 도움이 될지 모르고, 각종 드라마에 푹 빠져보는 경험은 팬미팅 통역 혹은 엔터테인먼트사 협상 통역에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통역사는 세상의 끝없는 변화에 바로바로 적응할 줄 알아야 하는 직업임과 동시에, 세상의 끝없는 변화에 따른 불안감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내가 당장 지난달의 중요한 행사를 잘 통역해 냈다고 해서 이번 달의 중요한 행사를 똑같이 잘 통역해 내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통역사는 전성기 시절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을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따라서 저는 누군가가 그저 외국어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통역사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변화하는 국제사회의 최전선에서 말을 통해 지구촌을 계속 굴러가게 하는 것이 사명이라 느끼고, 때로는 공공부문 종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때로는 민간부문 종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이를 즐길 수 있는 분들이라면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혹여나 여러분께서 훗날 한국통번역사협회(KATI) 세미나 혹은 연례행사에 현직자 혹은 통번역대학원 재학생으로 참석해 제게 성대 학부 동문이라고 인사를 주신다면, 저 또한 너무도 반갑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역사를 꿈꾸는 후배님들의 무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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