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커버스토리 - 2026.09.28

뜨거웠던 여름날, 푸른 물결을 일렁이다:
2026 고하노라

만경창파(萬頃滄波): 한없이 넓게 펼쳐진 푸른 물결 수많은 물결이 모여 하나의 바다를 이루듯,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한곳에 모여 하나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지난 9월 19일, 우리 대학 유생문화기획단 청랑이 주최한 2026 ‘고하노라’가 바로 그 자리이다. 고하노라는 조선 시대 유생들의 상소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우리 대학 고유의 유생 문화 행사이다. 유난히 푸르던 하늘 아래, 색색의 옷을 입은 유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마치 옛 풍속화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6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 유생들의 뜻과 오늘날 청춘의 열정이 한자리에 모인 뜨거웠던 여름날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날 행사는 크게 대의사, 소행, 소반비답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 대의사(大議事) 성균관 대성전에서 진행되는 대의사(大議事)는 한자 뜻 그대로 ‘큰 사안을 함께 논의하는 단계’로, 고하노라의 개막을 알린다. 유생들이 조정으로 향하기 전, 결의를 다지며 상소의 시작을 알리는 장이 된다. 장의가 소행을 이끌 소두를 임명하며 시작된 대의사는, 소두가 2026 고하노라의 상소문을 낭독하는 ‘독소’로 이어졌다. 이후 각 행진단 단장의 힘찬 구호가 울려 퍼졌고, 대사성이 유소를 허가하며 소행을 떠나는 유생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전했다. *소두(疏頭): 상소를 올리는 유생들의 대표 *독소(讀疏): 상소문을 낭독하는 절차 *대사성(大司成): 성균관의 으뜸 벼슬 | 소행(疏行) 대의사를 마친 유생들이 마침내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 본격적인 행진의 단계이다. 행진단은 백호단, 주작단, 청룡단, 현무단, 황룡단으로 구성되며, 각 행진단은 오방색 중 하나를 상징색으로 삼아 색에 맞는 단령을 갖춰 입는다. 성균관 대성전을 출발한 유생들은 창경궁을 거쳐 청계광장까지 걸음을 옮겼다. 거리로 나온 유생들은 행진 중간중간 그간 준비한 춤과 노래를 선보였고, 이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듯,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른 유생들의 행렬은 세대를 넘어 함께 즐기는 전통의 멋을 알렸다. | 행진유생에게 묻다. 직접 참여한 이들에게 생생한 현장의 감동을 묻기 위해 황룡단 류다은(인문과학계열 26), 현무단 김나은(인공지능융합전공 24), 백호단 단장 김태건(데이터사이언스융합전공 21) 학우를 만나 인터뷰했다. Q. 행진유생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류다은: 학교에 입학하며 성균관대학교만의 특색 있는 문화는 가능한 한 모두 즐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고하노라는 특별한 색깔의 유생복을 입어볼 수 있다는 점과 조선시대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행사라는 점에서 성균관대 학생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임할 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인 만큼 다양한 도전을 해보자는 저의 목표에 완전히 부합하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김나은: 고하노라에 참여했던 주변 친구들이 “성균관대학교 학생이라면 한 번쯤 꼭 해봐야 한다”라고 추천해 준 것이 가장 큰 계기였습니다. 특히 고하노라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성균관대학교만의 고유한 문화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유생복도 직접 입어보고, 성균관대학교의 전통인 유소문화를 몸소 경험해 보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태건: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저에게 고하노라는 성균관대학교 재학생으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졸업 전 의미 있는 추억을 남기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행사를 준비하고 실제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류다은: 조금은 전형적인 답변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앞으로도 고하노라 행사 당일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장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고생하신 청랑 단원분들부터 각기 다른 역할의 실무단 분들, 그리고 같이 걷고 춤을 췄던 행진유생분들을 포함해 모든 분이 함께한 가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 음악과 춤, 무술 등을 보여준 다양한 공연팀들 덕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김나은: 첫 OT부터 4주간의 교육, 리마인드 교육, 총리허설까지 고하노라를 준비해 온 모든 과정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매주 함께 연습하는 과정도 정말 재미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실제 행사 당일 청계광장에서의 순간들입니다. 특히 다 같이 춤을 출 때 단마다 다르게 맞춰야 했던 동작과 타이밍이 실제 현장에서 잘 맞아서 뿌듯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해 온 행사의 일원으로 직접 참여해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김태건: 청계광장에서 다섯 개의 행진단이 한자리에 모여 ‘유생의 꿈’을 췄던 순간입니다. 마지막 무대였던 만큼 그동안의 연습과 준비가 한순간에 모이는 느낌이 들었고, 마지막에 다 함께 “백호”를 외치며 마무리할 때는 끝까지 해냈다는 벅찬 감정이 들었습니다. Q. 함께했던 행진단 유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류다은: 준비하는 동안 함께 추억을 많이 쌓고, 행사 당일까지도 더 깊이 친해질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때 적었던 타임캡슐을 다시 보니 고하노라를 통해 좋은 인연을 얻고 싶다고 썼더라고요. 여러분 덕분에 그 소원을 분명히 이룬 것 같은데, 서로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길, 가능하다면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교육부터 한 팀이 되어 행진까지 함께한 황룡단 3조에게 더욱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나은: 처음 만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하노라가 마무리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매주 교육과 연습을 함께하고 실제 행사까지 같이하면서 어느새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웃고 연습했던 순간들이 많아서 좋은 추억도, 소중한 인연도 많이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단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번 고하노라가 모두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페이지를 현무단과 함께 채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모두 너무 수고 많았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학교에서 마주치면 꼭 반갑게 인사해요. 현무단 파이팅!! 김태건: 모두 끝까지 함께 잘 따라와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주 교육과 연습을 함께하며 어느새 많이 가까워진 것 같고,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행사 당일에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줘서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하노라는 끝이 났지만, 함께 쌓은 추억과 인연은 앞으로도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소반(疏班)과 비답(批答) 청계광장에 도착한 유생 행렬은 마침내 행사의 꽃인 소반비답으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이 단계에서는 유생들이 올린 상소에 대해 국왕이나 공직자가 답을 내리는 전통 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며, 공연과 함께 행사를 마무리한다. 이번 고하노라에서는 “AI 시대, 인간의 고유한 역량 교육을 위한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주제로 상소문을 낭독했으며, 이에 대해 정근식 서울특별시교육감이 비답을 진행했다. 오늘날 청춘의 목소리가 세상에 전달되고, 그에 대한 답을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어, 청랑을 비롯해 교내 동아리인 성균무도회, 대동악회와 외부 공연팀인 탈패연합의 공연이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하나 되어 선보이는 플래시몹 공연을 끝으로 2026 고하노라는 화려한 막을 내렸다. * 소반: 상소문을 올리기 위해 유생들이 갖추는 대열이나 그 절차 * 비답: 조선시대에 신하가 올린 상소 등에 대해 국왕이 내린 답서 고하노라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에는 행진에 참여하는 행진유생들뿐만 아니라, 청랑과 함께 행사를 만들어가는 실무단의 숨은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실무단에는 유소 행진을 보좌하며 유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아방사령, 조선시대 인물을 연기하며 재미를 더하는 사극유생, 행사의 생생한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화공유생, 그리고 역동적인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영상유생이 있다. 이 중,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 영상유생 두 명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 실무단에게 묻다 Q. 영상유생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송민영(사회과학계열 26): 직접 행사 현장을 기록하면서 성균관대만의 전통과 분위기를 영상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행사를 지켜보는 것보단, 현장에서 직접 참여해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김유림(사회과학계열 26): 평소 다양한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았는데, 고하노라라는 뜻깊은 행사를 직접 기록해 보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순간과 분위기를 제 시선으로 담아내고, 이를 영상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Q. 카메라로 직접 담아본 고하노라 현장, 참여하신 소감이 궁금해요. 송민영(사회과학계열 26):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규모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행사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유림(사회과학계열 26): 카메라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순간들을 직접 담아볼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멋진 행사에 영상유생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감사했어요. 제가 촬영한 영상이 고하노라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Q. 준비 과정부터 실제 행사 현장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송민영(사회과학계열 26): 본행사 때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였을 때입니다. 각자의 의상을 입고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뻐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특히 행진유생분들을 촬영할 때 자연스럽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셔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유림(사회과학계열 26): 본행사 당일 소행 과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긴 시간 이어지는 행진 속에서도 청랑, 실무단, 행진유생분들이 서로 격려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카메라에도 잘 담긴 것 같아 영상유생으로서 특히 뿌듯하네요! ▲ 영상유생 ▲ 아방사령 ▲사극유생 | 청랑의 장의에게 묻다 성균관의 유생문화를 계승하는 학생단체 청랑을 이끌어가는 대표를 ‘장의’라 한다. 2026 고하노라를 성공적으로 이끈 청랑의 장의, 한인영(철학과 25) 학우로부터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느낀 점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이번 고하노라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올해는 청계광장에서 마지막 피날레가 진행된 만큼, 행진유생분들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무대 구성이나 세부적인 요소들을 많이 신경 썼습니다. 특히 야외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행사를 처음 접하는 시민분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모습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Q. 행사 당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대성전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행진을 시작하기 위해 떠났던 순간입니다. 대성전 보수공사가 끝난 이후 처음 진행되는 고하노라이기도 했고, 행진유생분들과 실무단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행사의 시작을 함께 알렸다는 점에서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우리 대학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고하노라’라는 행사가 어떠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요? 성균관의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의 방식으로 새롭게 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전 공모전인 ‘대한민국 청년상소 프로젝트’의 수상작을 고하노라에서 실제로 활용하면서,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등 과거의 전통을 바탕으로 현재의 청년들이 가진 고민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고하노라가 가진 의미인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믿고 따라와 준 청랑 단원들과 실무단, 행진단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 이번 고하노라를 함께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청랑 단원들과 실무단, 행진유생분들이 없었다면 절대 만들 수 없었던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고하노라가 여러분의 여름날을 떠올렸을 때 함께 생각나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짙은 녹음이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여름의 끝자락 위에서, 2026 고하노라가 막을 내렸다. 변화와 혁신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옛것을 지켜가는 것은 때론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는 우리에게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일 터이다. 그러니, 쉼 없이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춤의 시간을 선사한 21세기 유생들의 뜨거운 땀방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Read More 더보기

News letter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성균웹진의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성균웹진 뉴스레터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