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건너, 기억을 남기다
『작별하지 않는다』-『We Do Not Part』 번역가
페이지 모리스 원우
- 587호
- 기사입력 2026.05.11
- 취재 김한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976
"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치환이 아닌
글의 독창성, 그 속의 깊은 의미를 다른 세계로 옮기는 일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영어판 『We Do Not Part』 공동 번역가 페이지 모리스는 번역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제주 4·3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담아낸 이 작품은 최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번역 문학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이야기를 전세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번역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깊은 이해의 작업으로 확장된다.
미국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한국에서의 생활과 연구를 바탕으로 문학 번역의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의 범주를 오가며 의미 전달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번역가 페이지 모리스 원우를 만나, 한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깨달음,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뜻에 대해 들어보았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온 작가이자 번역가 페이지 모리스입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학업 외에는 한영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고, 주로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과 한국 SF소설을 즐겨 읽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축하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어요. 문학계에서 번역가의 노력이 이렇게 인정받는 경우가 많지 않고, 특히 미국에서 번역 문학이 상을 받는 일은 더더욱 드물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한강 작가의 중요한 이야기를 영어권 독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더 큰 의미가 있었어요.
▲『작별하지 않는다』 영어판(이미지 출처:알라딘)
하단에 번역을 맡은 페이지 모리스 원우의 이름이 적혀있다.
| 『작별하지 않는다』 영어판 공동번역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사실 조금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공동 번역가인 이예원 번역가께서 연락을 주셔서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늘 존경해 온 번역가라서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는데, 이후에야 그 작품이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걸 알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자신 없었지만, 저를 믿어주셨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냈고, 이 작품을 영어로 잘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 특히 ‘어멍’, ‘아방’ 같은 제주 방언을 그대로 살린 선택이 인상적인데, 이런 번역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방언이나 비표준어를 번역할 때는 이를 단순히 영어식 방언으로 치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제주어를 하와이 피진어나 아일랜드식 영어로 대응시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대신 저희는 제주어의 고유성을 살리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그 때문에 특정 단어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언어가 가진 독창성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어요.
|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떠올린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제주 4·3 사건을 접한 적은 있었지만,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슬픔과 아픔을 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으로서 저 또한 역사적으로 폭력과 억압을 겪은 공동체에 속해 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가자지구, 수단, 우크라이나 등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번역하는 동안 고통스럽더라도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작품 특성상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다루는 문장이 많은데, 번역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품 속에서 국가 권력의 만행을 상세하게 다루는 구절들은 번역하며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실제 사진 자료를 참고하면서 묘사된 장면의 정확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글과 이미지를 통해 그 끔찍한 장면들을 계속 마주하는 느낌이었거든요. 특히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발견된 유해들이 분류되어 담겨있는 장면을 번역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에는 중학생들의 교복 단추도 있었는데, 그 자세한 상황 묘사를 읽고 사진을 보는 순간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이처럼 번역 작업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는 다음 문장을 마주할 힘을 되찾기 위해 평소보다 더 오래 쉬곤 했습니다.
|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작품은 한국의 특정한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핵심 주제는 훨씬 더 보편적입니다. 결국 이 소설은 역사적 폭력이 개인과 공동체에 남기는 지속적인 영향,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고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주제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것 같아요.
| 수정 과정에서 한강 작가님과 직접 소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강 작가님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번역본을 세심하게 검토하시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작은 표현 하나까지도 꼼꼼히 확인하면서,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계속 점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단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대한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자신이 글에 담은 의미가 조금도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가 느껴졌고, 저희도 그 의도를 충실하게 전달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 번역가로서 ‘좋은 번역’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번 작업에서 특히 중시한 기준이 있다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은 원문의 문학성과 문화적 맥락, 그리고 그 작품만의 고유한 특성을 잘 살리는 것입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제주 방언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한국적인 요소를 보존하는 선택을 했는데, 이 또한 번역된 작품의 ‘맛’을 살리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영어권 독자들이 작품에 깊이 몰입하면서도, 이것이 한국 작가의 소설이고 한국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처음 한국에 오신 이후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봤을 때, 번역가로서 가장 큰 전환점은 언제였나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 모두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 아직 가장 큰 전환점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겠다는 목표를 이루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그 여정의 초입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요.
| 서울을 ‘제2의 고향’이라고 표현하셨는데, 한국에서의 생활이나 성균관대에서의 경험이 번역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문학을 통해서 한 문화를 알아갈 수 있지만, 그 문화가 실제로 살아 있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경험은 이해의 차원을 확장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운 것 대부분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에요. 그런 경험들이 번역 작업에서도 말투, 표현 등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앞으로 번역하고 싶은 한국 작품이나 작가, 그리고 한국문학을 세계에 전하는 데 있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정말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이 많아요. 영어권 독자들도 이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특히 서장원, 조우리, 김희진, 위수정, 백수린 같은 작가들은 퀴어성이나 장애 등 비교적 덜 다뤄진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어서 특히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더 많이 번역해서, 영어권에서도 더 넓은 스펙트럼의 한국 책들이 많이 읽히도록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생으로서, 또는 번역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관심과 열정을 이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문학과 번역, 스토리텔링은 모두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고, 앞으로도 더 많은 분이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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