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밤

통영의 밤

  • 399호
  • 기사입력 2018.07.13
  • 편집 김규리 기자


글 : 최윤서 경영학과 (17)

”이번 황금연휴도 놓치면 절대 둘이서 여행 갈 기회는 없을 것 같네.“ 이른바 ‘황금연휴’라 불리는 추석 연휴를 약 2주 앞둔 시점에 전화기 너머 들려온 어머니의 음성이었다. 통영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이 뒤따라왔다. 나는 곧장 노트북을 켜 동서울터미널에서 통영 터미널로 향하는 왕복 버스표를 두 장 예매했다. 이번 휴일마저 집에서 송편이나 집어 먹는 것으로 보냈다가는 정말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운 마음, 나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합쳐져 나의 나태함을 밀어낸 순간이었다.


숙소는 ‘마르코 앤 벨라’라는 이름을 가진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시설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은 숙소가 얼마 없는 상황에서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야경투어가 무료라는 사장님의 코멘트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후기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교통편과 숙소를 모두 정한 후 드디어 휴일이 우리를 찾아왔고, 버스는 무려 4시간 하고도 30분을 달려서야 통영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짐이 꽤 무거워서 바로 숙소에 들리기로 했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 내려 ‘마르코 앤 벨라’의 간판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지도에서 본 위치에는 ‘송화 모텔’이라는 낡은 간판만 있었다. 무엇인지 모를 직감으로 모텔 뒤편으로 돌아가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르코 앤 벨라’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정식 간판도 아니고, 현수막만 덩그러니 말이다. ‘사기를 당한 것인가’와 같은 온갖 잡념들이 내 머릿속을 빙빙 돌고 있는 채로 나는 숙소의 입구에 들어섰다.

주인아저씨가 아직 청소가 완료되지 않았으니 입구에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2층에서 소리쳤다. 체크인 시간은 3시였고, 그때의 시각은 3시 30분이었다. 나는 부정적인 느낌이 엄습해올수록, 그 상황에서 털끝만큼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으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애써 엄마에게 ‘아날로그적인 건물에서 재즈 음악이 나오니 색다른 기분이 든다.’고 말하며 조그만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10분 후, 우리가 이틀간 머무르게 될 202호에 들어설 수 있었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풍경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다. 영롱함이라고는 전혀 없고 촌스럽기만 한 에메랄드빛의 벽지, 방 안의 물건 중 가장 최근에 비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2층 침대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진상을 부려대면 아저씨가 반액이라도 환불해주지 않을까, 하는 나쁜 생각도 잠시 들었다.

원래 집 밖보다는 안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최대한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높았던 통영 동피랑 마을의 언덕은 나를 꽤 빨리 지치게 했고, 해가 막 지기 시작했음에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셨나 한참 찾았네! 빨리 오세요, 우리 이제 출발해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의 주인아저씨가 목소리만은 다급하다는 듯이 우리를 반겼다.

입구에는 두 명의 프랑스인과 한 쌍의 커플, 그리고 혼자 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네 명의 사람들이 이미 야경 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모두 우리와 똑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동병상련이네.’라는 생각을 하니 간사하게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사실 야경투어라고 할 것은 이름만 거창했지 그 내용물은 별 것 없었다. 진짜배기 여행은 그 후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사람들과 서로를 소개하며 옥상에서 한잔하는 자리’ 정도로 받아들였던 애프터 파티의 시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의 담소와 고백이 내 가치관마저 흔들어놓을 줄은 몰랐다.


아저씨는 원래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서둘러 귀국했는데, 이곳에서 결혼하게 되며 게스트 하우스 업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한때 연봉 1억이 넘는 샐러리맨이 정말 그 이유로 이 작은 도시인 통영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순대와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밤이 조금씩 깊어가자 우리는 마음속에 자리한 속 깊은 이야기를 한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실리콘 밸리에서의 똑같은 일상에 신물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매캐한 연기보다는 통영 바다의 내음이, 끊임없이 불어나는 통장 잔고보다는 매 순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지금이 더 만족스러운 삶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세상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빙빙 돌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대충이나마 정해둔,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의 계획들의 철자 하나하나가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겉으로는 사회적 기업가가 되어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나의 진로를 소개해왔다. 이 말이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남부럽지 않은 자산을 축적해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자본주의적 사고가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의 내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희망하는 미래와 비슷한 노선을 걷던 사람이 아무 미련 없이 이 작은 마을에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니, 당연하게 여겨 왔던 나의 가치관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만 것이다.

아저씨의 사연을 듣고 즉시 나의 지향점이 크게 바뀌었다거나, 삶의 목표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과 같은 목표만을 쫓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하나가 내 마음에 제대로 박혔다는 사실이다. 심드렁하고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이던 아저씨가 나에게 이러한 깨우침을 가져다줄 것이라고는 누가 예상했겠는가. 단순히 마음을 비우고자 떠난 통영에서, 나는 마음 한구석을 가득히 채워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