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웠던 사람:
나의 영원한 베프

  • 431호
  • 기사입력 2019.11.12
  • 편집 연윤서 기자

글 : 현지영



5월 한낮의 짱짱한 햇볕은 따가웠다. 나는 눈을 한껏 찌푸리면서도 착실히 흙을 팠다. 내 옆에는 1.5L짜리 페트병이 놓여 있었다. 약수터에서 길러온 물이 페트병의 목구멍까지 차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나름의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었다. 개미들이 마음껏 목을 축일 수 있는 호수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러 개의 굴을 이었다.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옆구리에 양손을 짚고는 구멍들을 내려다 봤다. 그것들은 마치 달의 크레이터 같았다. 어느 교육 방송에서 보았던 '달의 구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외계인의 기지는 존재하는 걸까?' 라는 주제가 생각 났다. 하늘로 턱을 치켜들었다. 해가 쨍하니 빛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UFO를 찾고 있니?” 낯선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하회탈 같았다. 웃고 있지만, 미취학 아동이 보기엔 어딘가 괴기하고 무서웠다.


“처음 보는 사람하고 말 섞는 거 아니랬어요.”

“누가 그래?

“울 엄마가요.”

“잘 배웠네.”


남자가 씩 웃었다. 꺼림칙했다. 나는 다섯 살 때 유괴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 성인 남자가 가까이 오면 몸이 굳어 버렸다. 그에게 내가 느끼고 있는 긴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태연한 척 행동했다. 페트병을 단단히 잡고 몸통을 기울였다. 내가 만든 땅굴이 점점 호수가 되가고 있었다. 남자가 나의 호수를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가벼워 보였다. 나는 한 발자국 더 떨어졌다. “유치원은 안 다녀?” 나는 침묵으로 응했다. 남자는 입술을 안으로 꾹 물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친구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롭겠네.” 미간 사이를 잔뜩 좁혔다. “제가 불쌍해 보여요?” 남자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빈 페트병을 옆구리에 끼고 뒤를 돌아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속으로 말들이 솟구쳐 올랐다. 황철수네 피자, 지코바 치킨, BHC 치킨. 내가 사는 빌라 앞에 죽 나열된 프랜차이즈점 딸들이 내 친구였다. 유치원은 다니지 않지만, 글을 읽고 쓰는 건 할 줄 알았다. 남자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불쌍하게 여긴다고. 나는 동정심이 죽어도 싫었다. 빌라의 주차장에는 작은 수도꼭지가 나 있었다. 물이 시원찮게 나왔지만, 뼛속이 시릴 만큼 차가워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페트병을 헹구면서 흙 묻은 손을 씻었다. 손톱 밑으로 들어간 흙 알갱이를 빼내고도 계속 이물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페트병을 뒤집어서 화분 옆에 두었다. 티브이를 틀었으나 볼 만한 게 없었다. 평일 오전은 늘 이렇게 시시했다. 엄마는 마룻바닥에 물개처럼 누워 자고 있었다. 조금 이르게 꺼낸 선풍기는 탈탈거리며 돌아갔다. 베란다에서 풍겨오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포근했다. 나는 어느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막 잠이 들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뒤척이며 공 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엄마가 앓는 소리를 내더니 몸을 일으켰다. 내 정신 좀 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엄마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인사를 주고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기지개를 켜며 현관 앞으로 다가가자, 엄마에게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하회탈처럼 웃는 얼굴. 좀 전에 놀이터에서 만난 남자였다. 난 엄마 뒤로 몸을 숨겼다. 얘가 낯을 좀 가려서. 들어 와, 준영아. 친절한 목소리의 엄마. 나는 낯선 기분에 감싸인 채, 엄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 누구야 엄마?"

" 네 사촌오빠야. 인사해."

" 안녕."


나의 사촌오빠라는 사람이 웃으며 인사했다. 난 서둘러 눈길을 돌렸다. 사촌오빠는 델몬트 한 박스를 손에 쥐고 있었다. 엄마는 팔 아프게 이런 걸 들고 왔냐며 나무라면서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목이 마르지 않냐고 물으면서, 답을 듣지도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신발장 옆에 몸을 기대고 서서 발끝만 노려 보았다. “아까는 미안해.” 사촌오빠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그가 애쓸수록 나는 정수리만 보여주었다. “내일 나랑 롯데월드 갈래?” 나는 아까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돌았다. 들어와요. 나는 짧은 말을 남기고 엄마가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뒤통수 너머로 신발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 밤 동안 같이 있을 거야. 오빠 불편하게 하지 말고, 손님이니까 친절하게 대해 줘.” 통통통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엄마는 내게 주방 축객령을 내렸다. 사촌오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검은 베낭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주위를 맴돌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이다 먹을래요?”


나는 사촌오빠와 베프가 되어 있었다. '베스트프렌드'라는 단어는 그가 알려주었다. 친한 친구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제법 잘 맞았다. 나는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촌이 마음에 들었다.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진지하게 UFO를 봤다는 말을 했다. 나는 믿지 않으면서도, 그가 맹렬하게 토해내는 과거의 경험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사촌오빠에게 방명록을 내밀었다. 한창 싸이월드를 꾸미던 시절이었다. 나는 파도타기를 하면서, 내가 방문했던 모든 미니룸에 방명록을 남겼다. 누군가에게 내 흔적을 남기는 게 좋았다. 그 반대도 좋아했다. 나는 방명록을 현실에서도 반영했다. 우리 집을 오고 갔던 손님들은 내 방명록에 사인을 휘갈겨야 했다.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라든가, 가끔 집안을 소독하러 오시는 아주머니 까지.


프랜차이즈점 딸들은 아직 사인이 없어서 이름만 적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사촌에게 내 방명록을 내밀었다. 그는 흥미로운 얼굴로 공책을 펼쳐 들더니 첫 장부터 천천히 넘겨 보았다. 너 되게 좋은 일 하는구나? 나는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 사인이라도 받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더니 스프링에 꽂혀 있는 볼펜을 꺼내 들었다. 그런 다음 낙서같은 사인 대신 이름 석 자를 정갈하게 적어 내려갔다. 오빠도 사인이 없어? 입안의 살점을 지그시 깨물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됐을 때 사인을 만들거야. 그럼 오빠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됐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사인하는 것으로 하자. 그는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준 영. 나는 사촌이 적은 글자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오빠는 왜 나랑 성 씨가 달라?”

“우리 아빠가 최씨니까.”

“그럼 엄마는 누군데?”

“네 고모. ...난 고모가 싫어.”


시집살이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앓았던 엄마가 떠올랐다. 내게 등을 돌린 채 울고 있는 엄마. “나도 울 엄마 싫어.” “왜? 네가 싫어하니까.” 나는 오빠가 더 좋아졌다. 우리는 이튿날, 롯데월드 대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놀이터로 갔다. 그는 내게 목마를 태워주었다. 나는 어린아이답게 좋아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껑충 높아졌다. 우리는 그 상태로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난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저녁 하늘은 맑았다. 사촌을 내려다 봤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큼지막한 보름달이 기이할 정도로 노랬다. 나는 어제 내가 팠던 땅굴로 오빠를 데려갔다. 흙은 약간 축축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개미가 다 마시고 갔나봐.” “사실 나도 어제 살짝 마셨어.” “정말?” 나는 경악하며,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게 짧게 반응했다. 오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촌이 돌아가는 날, 나는 신발을 고쳐 신는 그에게 물었다. “고모는 정말 나쁜 사람이야?” 오빠는 드물게 말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해.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못 될지도 몰라.”


사촌은 잘 지내라며 내 정수리를 쓰다듬고는 집을 떠났다. 커다란 베낭을 메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작아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수업을 듣다가 교무실로 불려갔다. 입학식에도 오지 않던 아빠가 새카만 정장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기차를 좋아했지만 신나지 않았다. 기차 안은 무덤같은 적막이 깔려 있었고 기묘한 불안이 자꾸만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떠나온 철로만 기다랗게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부산에 도착했을 땐 비가 바닥을 뚫을 기세로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어깨가 추웠다. 나는 몸을 작게 움츠리며 절 안으로 들어갔다. 고모가 누군가의 사진 앞에서 울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액자 속의 사진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회탈처럼 웃는 얼굴. 나의 사촌 오빠였다. 그제서야 향불 냄새가 코를 마비시킬 것처럼 몰려 들기 시작했다.


나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오빠는 직업 문제로 고모부와 싸우다가 밖으로 뛰쳐 나갔다고 했다. 그 날도 이렇게 폭우가 내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마구 달리던 순간,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트럭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가 났다. 누군가 헛기침과 함께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거 들었나? 준영이가 원했던 직업 말이오. 혀를 끌끌 차며 사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나름의 추측을 해댔다. 탤런트라도 하고 싶다 했나? 그림에 재능 있다고 들었는데 화가 그런 거 아냐? 돈도 못 버는 화가 될 바에야 미술 선생님 이런 게 낫지. 안정적이고. 웅성웅성 장례식장 한 구석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다 틀렸으니 조용히 해 봐. 그것이... 우주 비행사래. 우주 비행사!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먹먹한 귓가로 깔깔거리는 높은 웃음소리가 불화살처럼 박혀 들었다. 나는 귀를 틈없이 막고 한참을 울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촌오빠는 방명록을 남기러 오지 않았다. 보름달을 바라보던 그의 옆얼굴이 생생하다. 우주에 대해 얘기할 때 생기있게 반짝이던 눈동자도. 오빠를 만나게 된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이 이미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린 시절 내 베프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