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 425호
  • 기사입력 2019.08.14
  • 편집 연윤서 기자

글 : 김은진


유년시절의 흐릿한 기억들 속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기억이 있다. 7살 무렵이었다. 그때의 나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에 빠져있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하드 아이스크림과는 달리 바삭바삭한 콘 과자 위에 동그랗게 올라가 있는 아이스크림의 예쁜 모양도 좋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도 마냥 좋았다. 매일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던 나는, 외할아버지 댁에 가서도 배스킨라빈스가 먹고 싶다며 엄마를 보챘다. 엄마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린 손녀가 울면서 먹고 싶다는 그 아이스크림을 외면할 수 없으셨나 보다. 당신께서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겠다며 내 손을 잡고 가게로 향하셨다. 10분인가 걸었을까, 배스킨라빈스 가게가 눈앞에 보였고 신난 나는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가 어떤 맛을 먹을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더 달콤했다.


내게 외할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여서,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입에 올리거나, 다정한 말을 건네 주시는 분은 아니셨지만, 그런 말 하나 없이도 막내손녀인 나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시는 분이셨다.


7살,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행복했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19살, 수험생이 됐다. 수험생에게 명절을 챙기는 것, 가족 모임에 나가는 것은 모두 사치였다.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모든 가족 행사에 열외 된 채 일년을 보냈다. 그때의 나에게 입시라는 벽은 너무 커서, 1년간이나 못 뵌 할아버지 생각을 할 겨를도, 의지도 없었다. 일년이 지난 후 나는 만족할 만한 수능 성적을 얻었고 원하던 대학에서 합격 통보도 받았다.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하던 스무살, 1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엄마가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불러 앉혔다. 할아버지 댁에 가자고 했다. 할아버지가 치매 초기라고 했다. 고3이던 내가 괜히 신경 쓰일까 봐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치매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댁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을 지나쳐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나를 못 알아보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괜히 평소보다 더 살갑게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심각하신 수준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저녁까지 할아버지 댁에 머무르자 할아버지는 가끔 이상한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분명 조금 전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말씀드렸는데, 학교는 언제 졸업하냐고 물으시기도 하고, 얼마 안 가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며 내게 말하기도 하셨다. 그런 말씀들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멍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였고, 직접 뵙고 난 후에는 믿고 싶지 않아서 였는지도 모른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려 잠에 들기 어려웠다. 내게는 너무나도 큰 존재였던 할아버지가 약해진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던 그때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다시는 그런 할아버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내게 할아버지는 오래된 아름드리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함께 있으면 포근하고 안정되는 그런 분이셨다. 언제나 단단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계셨기에, 내가 오랫동안 찾지 않아도 늘 같은 자리에 굳건히 나를 기다리고 계실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치매를 알게 된 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7살 때였을 때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할아버지는 변함없이 나에게 아름드리 나무다. 나무도 병에 걸리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엔 생각하지 못했다. 나무도 아플 수 있다. 지나온 삶 동안 모든 것을 바쳐 나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위로를 건네준 나무가 병에 걸렸다. 이제는 그동안 받은 사랑과 위로를 돌려줄 차례이다.


할아버지의 치매를 알게 된지도 벌써 일년 가까이 지났다. 할아버지의 상태는 그대로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뵙고도 울지 않는다. 더 이상 슬프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까지고 슬퍼하고 있을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슬퍼만 하며 보내기엔 너무나도 소중하다. 한번 더 대화하고, 한번 더 행복해하기도 짧은 시간이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깨달은 사실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함께하는 귀중한 순간들을 슬픔으로 채우지 말자.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할아버지와 산책을 나서고 싶다. 부축한다는 핑계로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늘 걸으시던 집 앞 산책길을 따라 걸어야겠다. 말도 안 되는 질문들에도 다정하게 답해드리며, 힘들면 벤치에 앉아 쉬어 가기도 하고 길을 걷다 예쁜 꽃을 발견하면 한참 동안 멈춰 서서 바라보기도 해야겠다. 그렇게 마음껏 사랑하고 넘치도록 행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