謀事在人 成事在天 (모사재인 성사재천)
– 제갈량의 좌절

  • 424호
  • 기사입력 2019.07.29
  • 편집 연윤서 기자

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이윤명 교수


제갈량이라는 인물은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부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재에 목말라있던 유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그를, 유명한 삼고초려의 정성을 들여 유비 진영에 합류시켰고, 그 후 제갈량은 변변한 근거지조차 없었던 유비의 세력을 착실하게 확장시키고, 적벽에서 손권과 힘을 합쳐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막아내었으며, 촉 지방을 공략하여 안정적인 나라의 기반을 확보하는 등,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을 지장(智將)으로서의 족적을 남긴다.

하지만 그에게도 좌절의 순간이 있었다. 그것도 촉나라와 위나라의 운명이 걸린 결정적인 순간에.

유비의 사후에 제갈량은 한나라를 부흥시키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한다는 유지를 받들어 위나라 공략을 위한 다섯 차례에 걸친 북벌에 나선다. 이때 제갈량을 막기 위해 위의 수비군의 사령관으로 나온 위나라의 장수가 사마의였다. 이 사마의 역시 뛰어난 지장이었던 관계로, 위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촉나라의 국력, 국내 정치의 불안함, 원정군의 불리함과 같은 제갈량의 약점을 십분 활용하여 촉나라의 대군을 훌륭하게 막아내었다.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에서는 사마의는 수비군의 이점을 살려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고 착실하게 수비에 집중하게 된다. 심지어 제갈량이 여자 옷을 보내어 모욕을 주며 도발하자 모든 장수들이 분개하여도 지키기만 할 뿐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니 진짜 중요한 목표를 위해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그의 현명함이 돋보인다.

이에 제갈량은 사마의를 유인할 치밀한 계책을 세운다. 상방곡이라는 골짜기에 도랑을 파고 불타기 좋은 장작을 쌓고 지뢰를 묻어두는 한편, 급하게 군량을 수송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사마의가 이를 습격하여 군량과 병사들을 데려가게 한다. 잡혀온 병사들이 사마의에게 제갈량이 상방곡에 군량을 쌓아놓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자 사마의는 부하들에게 제갈량의 본진을 공격하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두 아들과 함께 상방곡을 습격한다. 상방곡 입구를 지키던 촉군이 골짜기 안으로 도망치자 사마의는 정말 군량이 보관된 곳이라 판단하고 상방곡 안으로 들어와 군량을 태워버리려 한다. 골짜기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을 제갈량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뛰어난 지략으로 북벌을 번번이 좌절시키던 일생의 라이벌 사마의가, 치밀하게 계획된 함정에 걸려들었다. 이제 골짜기 입구를 막고 갇혀있는 위군을 섬멸하고 사마의를 제거하면 북벌을 성공시킬 수 있고 치명타를 입은 위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리라.

계획대로 산 위의 촉군은 횃불을 던져 불로 골짜기 입구를 막았고 마른 장작에 불길이 올랐으며 지뢰가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다. 불길이 치솟자 위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사마의는 말에서 내려 두 아들을 부둥켜 안고 세 부자가 여기에서 죽게 되었다며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한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덮이면서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치솟던 불길이 잠잠해지고 맹렬한 불길의 기세가 꺾이자 사마의는 재빨리 군사들을 골짜기 밖으로 탈출시킨다. 어렵게 성공시킨 작전이 뜻밖의 소나기로 물거품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제갈량의 심정은 어땠을까?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로구나!” (謀事在人 成事在天)


천하의 제갈량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함정을 설치하고, 거짓으로 군량을 탈취 당하고, 거짓 패배로 유인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마의를 꾀어 내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천하의 제갈량도 이러할진대 우리 같은 범인의 삶에는 더 많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많은 일을 계획하고 노력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많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은 뭘까? 어차피 안될 것은 안될 것이니 적당히 하자인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하늘이 이루어 주고(成事) 아니고는 일단 우리가 할 일을 다 한(謀事) 뒤에, 그것도 제갈량처럼 최선을 다한 후에나 따져볼 수 있는 것이다. 일을 꾸미기부터 그르쳤다면 그것은 하늘이 이루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못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면,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다음은 하늘에 맡기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갈량이 남긴 탄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필자도 어렸을 때는 내가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을 알아갈수록,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때가 안 맞아서, 장소가 안 맞아서, 여건이 안 맞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불쾌하고 좌절감이 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내게 주어진 조건은 이미 주어진 것이며, 입학 정원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직장을 구하는 것에는 내 노력과 상관 없는 때와 장소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내가 그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아쉬움은 남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 도전을 계속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 이상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하겠지만 제갈량도 그렇게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제갈량과 사마의의 상방곡 전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 저자의 상상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제갈량의 탄식이 아직도 널리 회자되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이 말이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그만큼 잘 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