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에 사람 있다|경성제국대학 총장과 세균
- 이질균(Shigella), 시가 기요시
- 581호
- 기사입력 2026.02.10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211
글: 고관수 의학과 교수
이질(痢疾, Dysentery)은 아메바성 이질과 세균성 이질, 두 종류로 나뉘는데, 세균성 이질은 심한 설사를 동반하는 감염질환으로 시겔라(Shigella)라고 하는 세균에 의해 발병한다.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에게 병을 일으키지만, 영장류를 제외한 다른 포유동물에서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일 년에 8천만에서 1억 5천 명 정도가 이 세균에 감염되고, 이 중 대부분이 어린아이들로, 설사를 일으키는 주요 세균이자 적은 양으로도 질병을 일으키는 매우 위험한 세균으로 꼽힌다.
시겔라는 사람이 유일한 숙주인데, 주로 환자나 보균자가 배출한 대변에 존재한다. 대변에 존재하던 시겔라가 몸 밖으로 나온 후 물이나 오염된 손 등을 통해 전파된다. 결장 상피세포에 침입하여 증식함으로써 감염을 일으키는데, 특히 매우 적은 감염량(20~200개)으로도 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전파력이 매우 높다. 그래서 위생 시설이 열악하고 과밀한 환경에서 빠르게 퍼지는데, 난민 수용소나 군인 캠프 등에서 발생하면 금세 전파되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 18세기 노예선에서 이질을 비롯한 질병으로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죽어 나갔다.
시겔라는 대장균(Escherichia coli)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세균이다. 사실 유전적으로 봤을 때 시겔라를 대장균의 한 부류라고 하더라도 별로 틀리지 않은 얘기가 될 정도다. 많은 대장균과 시겔라의 유전체를 함께 분석해 보면 서로 분리가 되지 않는다. 시겔라는 시가 독소(Shiga toxin)을 갖고 있는 대장균의 한 그룹, 혹은 아종(亞種, subspecies)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이 세균이 일반적인 대장균과는 달리 심각한 감염 증상을 나타내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대장균의 Escherichia와는 구분되는 독립적인 속으로 취급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시겔라라는 이름은 1897년 이 세균을 처음 발견한 일본인 의사 시가 기요시(Kiyoshi Shiga, 志賀潔, 1871–1957)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질은 일본에서 “세키리(赤痢, red diarrhea)”라 불리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대장에 출혈, 궤양, 붕괴를 동반하기 때문에 설사와 함께 피와 점액이 섞여 나와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일제 강점기의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897년의 세키리는 일본인 91,000명 이상을 감염시키고, 18,000명 이상이 사망하면서 치명률이 20% 이상일 정도로 굉장히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시가는 당시 32명의 설사 환자를 조사했고, 설사 질환의 원인균을 찾아냈다.
▲ (왼쪽부터) 일본의 세키리 예방 포스터 (1900년대 초반), “춘천에 적리 만연” (1922년 6월 19일 <매일신보>)
시가는 1871년 일본 센다이의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2년 도쿄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하는데, 그곳에서 기타자토 시바사부로의 강의를 듣게 된다. 기타자토는 페스트균에 관한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폰 베링과 함께 디프테리아 백신을 개발하고, 예르생과 함께 페스트균 발견을 다투었던 일본 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시가는 기타자토의 강의는 물론 그의 자신감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개성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고, 졸업 후 기타자토의 연구소에서 연구 조수로 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결핵과 디프테리아에 대해 연구했지만, 1897년 그는 세키리에 관심을 집중시켰고 결국 이질균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가는 이질의 원인균을 찾아내는 데 스승의 스승인 코흐의 원리를 엄격하게 적용했다. 그는 환자들의 분변으로부터 그람 염색에 대해 음성인 세균을 분리해 냈다. 이 세균을 배양하여 개에게 먹였고, 개는 설사를 했다. 물론 설사를 하는 개의 분변에서 똑같은 세균이 분리되었다.
이 놀라운 발견의 열쇠는 단순한 응집 반응의 기술이었다. 시가는 자신이 분리한 세균이 회복기의 설사 환자의 혈청에 노출했을 때 결합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세균이 이질의 원인균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는 기타자토의 지도하에 자신의 발견을 발표했고, 세균의 이름을 Bacillus dysenterie라고 했다. 또한 이 세균이 만들어내는 독소를 발견하였는데, 이 독소를 그의 이름을 따라 시가 독소(Shiga toxin)라고 한다. 그러니까 처음엔 이 세균의 학명이 시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LPSN에 따르면 Shigella라는 속명은 1919년 카스텔라니(Aldo Castellani)와 챌머스(Albert Chalmers)가 쓴 《Manual of Tropical Medicine》 3판에서 명명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속명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30년판 버기스 매뉴얼(《Bergey’s Manual of Determinative Bacteriology》)에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질균 발견 이후 시가는 결혼과 함께 1900년 독일로 떠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연구소에서 파울 에를리히의 연구실로 들어가는데, 트리파노소마증에 대한 치료법 연구를 수행하다 1905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예르생과 페스트균 발견 경쟁을 했던 기타자토의 연구실에 합류하게 된다. 기타자토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대단하여 1914년 일본 정부가 기타자토의 전염병 연구소를 도쿄제국대학의 산하로 강제 편입시키자 사임하고 기타자토 연구소를 세운 기타자토를 따라간다. 1920년 게이오대학 의학부의 교수가 되었지만 시가는 바로 그해 정부의 요청에 식민지 조선과 인연을 맺게 된다.
◀ 시가 기요시 @위키백과
시가가 조선으로 건너와 처음 가진 직책은 조선총독부의원장 겸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정이었다. 1926년 경성제국대학이 개교하게 되는데 시가는 의학부장을 거쳐 1929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총장으로 취임하여 1931년까지 지내게 된다. 그러니까 그가 조선에서 활동한 기간은 10년이 넘는 셈이다. 그는 조선에서 서양의학의 보급을 중시했고, 조선인 의학자 양성에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통적인 한방의학자(이른바 의생(醫生))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교화의 대상으로 여기고 폄하했다. 학문의 순수성을 믿었던 그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식민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어쩔 수 없는 일본인 출신으로 정치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장 시절, 일본인 교수의 조선인 차별 발언에 조선인 학생들이 항의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고, 경성제국대학 시절 나병, 즉 한센병 치료와 관련해서 서양 선교사와 조선총독부 사이의 다툼에서 강제격리주의를 고집한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시가는 그의 영원한 스승인 기타자토의 연구소로 다시 들어가 이질과 결핵 등에 대한 연구를 1945년까지 수행하였고, 1957년 여든 다섯의 나이로 죽는다. 시가가 죽었을 때 뉴욕타임스 지는 부고에서 “그가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세균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4, 5명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참고문헌>
- 대한미생물학회 지음. 《의학미생물학》 (범문에듀케이션)
- 마쓰다 도시히코. 시가 기요시(志賀潔)와 식민지 조선. 한림일본학 2014; 25권.
- 산드라 헴펠(김아림 역), 『질병의 지도』 (사람의무늬)
- Felsenfeld OK. Shiga, Bacteriologist. Science 1957; 126:113.
- Trofa AF et al. Dr. Kiyoshi Shiga: discover of the dysentery bacillus. Clinical Infectious Diseases 1999; 29:1303-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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