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에 사람 있다|공포와 경쟁 - 페스트균(Yersinia pestis)
알렉상드르 예르생과 기타자토 시바사부로

  • 575호
  • 기사입력 2025.11.14
  • 편집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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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고관수 의학과 교수

14세기의 페스트는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감염병으로 꼽힌다. 당시 유럽에서만 7천5백만 명, 즉 유럽 인구의 1/3가량이 페스트로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최초의 인문주의자인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페스트가 만연한 자신의 시대를 ‘어둠의 시대’라 부를 정도였다.

페스트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세균에 의한 질병이다. 쥐를 통해 인간에 전달된다. 정확히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서 전달된다. 쥐벼룩의 장에서 서식하다 벼룩이 피를 빨아먹으면서 배출되어 이 쥐에서 저 쥐로 옮겨간다. 설치류에서 살아가던 페스트균은 인간이라는 낯선 종과 만나게 되면서 무시무시한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농업의 시작과 더불어 도시가 생겨나면서 밀집 생활을 하게 되고, 도시가 검은 쥐를 불러들이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지금에야 항생제 치료가 가능해져서 사망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감염되었다 하면 1/3 이상이 죽는다고 봐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감염병이다. 흑사병이라는 명칭은 세균에 감염되면 혈관 내의 피가 응고되면서 신체 말단이 괴사되어 실제 몸이 검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는 페스트의 유행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 앞에서 얘기했던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에서부터 19세기 말에도 대규모로 전파된 페스트가 있었고, 192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과 아주 최근인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집단 발병한 사례가 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격리’, 혹은 ‘방역’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quarantine’인데, 이 단어는 ‘quaranta’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40’을 의미한다. 이 숫자가 격리를 의미하게 된 것도 페스트를 통제하기 위하여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의 항구가 외국으로부터 온 선박을 40일 동안 항구 밖에 머물도록 한 데서 유래한다.

페스트균 원인균을 찾아낸 인물은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의사이자 세균학자인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이다. 바로 페스트균의 학명 Yersinia pestis가 바로 예르생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대유행했던 흑사병은 사그라들었지만, 이후로도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산발적 유행은 1894년 홍콩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그곳에서 페스트균의 원인균을 발견하고자 하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졌다. 바로 프랑스의 파스퇴르연구소와 독일의 코흐연구소 간의 경쟁이었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홍콩으로 파견한 인물이 예르생이었고, 코흐연구소 쪽에서는 일본 출신의 기타자토(Kitasato Shibasaburo)가 왔다.

기타자토는 코흐연구소에서도 가장 촉망받는 연구자였으며, 제1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에밀 폰 베링과 함께 디프테리아 항독소(당시에는 antitoxin이라 불렸지만, 나중에 antibody 즉, 항체로 부르게 된다)를 개발했다. 첫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는데, 에밀 폰 베링과 함께 노벨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기타자토는 예르생보다 훨씬 명성이 높았으며 실제로 예르생보다 페스트의 원인균을 며칠 앞서 찾아냈다. 기타자토가 페스트의 원인균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당시 의학 저널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보도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예르생이 페스트균 발견의 영예를 차지하고, 또 세균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기타자토의 팀이 홍콩에 도착한 것은 1894년 6월 12일이었고, 예르생은 사흘 뒤 홀로 도착했다. 기타자토는 이미 홍콩에서 페스트를 진단하고, 환자 치료를 위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제임스 앨프리드 로슨의 도움을 받아 페스트 환자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6월 14일 페스트로 사망한 환자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간균(bacillus)을 발견한다(부검 과정에서 부검을 진행한 일본 의사 아오야마와 조수가 감염되었고, 아오야마는 살아났지만 조수는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사망 환자의 온몸에서 세균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는 그 세균이 부검 11시간 전에 사망한 환자의 진짜 사망 원인인지, 즉, 페스트의 원인균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스승인) 코흐의 4원칙대로 분리한 세균을 기니피그며 쥐, 토끼 등에 감염시켰다. 얼마 후에 기니피그와 토끼는 죽었고,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똑같은 세균을 분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페스트 사망 환자의 다양한 기관에서 똑같은 세균을 발견해 냈다. 6월 15일에 로슨은 기타자토가 페스트의 원인균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담은 전보를 저명한 의학잡지인 <랜싯(The Lancet)>에 보냈고, 일주일 후에 그 내용을 발표했다. 아직 예르생은 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예르생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예르생은 분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로슨은 예르생이 페스트로 사망한 시신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래도 예르생은 가까스로 기타자토를 만날 수 있었는데, 기타자토를 비롯한 일본 과학자들이 온갖 장기들을 다 신경 쓰고 있으면서도 림프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는 시신을 처리하는 영국 해병에게 뇌물까지 써가며 시신을 구했고, 림프절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시신의 림프절에서 그가 본 것은 “놀라운 미생물의 퓨레(une véritable purée de microbes)”였다. 그 역시 쥐와 기니피그에 세균을 감염시켰다. 동물들은 전형적인 페스트 증세를 나타내며 죽었고, 죽은 동물들의 림프절에서 똑같은 세균이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페스트의 확실한 원인균을 찾아냈다고 생각했고, 세균의 이름을 자신의 스승의 이름을 따서 Pasteurella pestis라고 불렀다.

과학자나 의사들은 처음에는 기타자토의 편이었다. 이미 기타자토의 발견을 발표한 <랜싯>은 그 사실을 다시 소개하면서 예르생의 발견을 단지 주장일 뿐이라고 하면서(예르생을 발견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학자라고 했다) 경계할 필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랜싯>과 <영국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Medicine)>은 기타자토와 로슨이 찍은 병원체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페스트균은 막대 모양으로 생긴 간균이라고 했는데(이건 맞는 사실이다), 그 모양이 비정상적으로 다양했던 것이다. 기타자토의 배양액은 오염된 것이었다. 아마도 폐렴구균(Streptococcus pneumoniae)과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세균이 그람 양성인지, 음성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하고 만 것이다. 논문 발표 후에야 그람 염색을 시도했고, 그 결과 자신이 발견한 세균이 그람 양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폐렴구균은 그람 양성균, 페스트균은 그람 음성균이다). 예르생이 발견한 세균은 그람 음성균이었다.

꽤 오랫동안 페스트균은 “기타자토-예르생 간균(Kitasato-Yersin bacillus)”라고 불렸지만, 결국엔 예르생이 발견의 공로를 거의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4년에는 페스트의 원인균에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고, 1967년 Yersinia pestis라는 학명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76년에 이르러 기타자토가 발견한 세균을 다시 조사한 결과 페스트균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기운 후였다. 로슨은 죽을 때까지 페스트의 원인균을 발견한 것은 예르생이 아니라 기타자토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기타자토는 더 이상 자신이 찾아낸 세균이 페스트의 원인균이라는 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1920년대에 일본 과학자(아마도 자신을 지칭하는 것일 게다)가 페스트의 원인균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르생은 페스트의 전파에 있어서 쥐가 중요한 역할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을 확인한 것은 프랑스의 의사 폴-루이 시몽(Paul-Louis  Simond, 1858-1947)이었다. 예르생의 페스트균 발견 4년 후 시몽은 페스트균이 설치류와 설치류에 붙어 다니는 쥐벼룩, 즉 크세놉실리 케오피스(Xenopsylla cheopis)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에게 페스트를 옮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의 연구가 인정받기까지는 4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1. ▲ (왼쪽) 알렉상드르 예르생, (오른쪽) 기타자토 시바사부로
  2. (출처: wikimedia commons)



<참고문헌>

  마크 해리슨(이영석 역),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푸른역사)

  마크 호닉스바움(제효영 역), 《대유행병의 시대》 (커넥팅) 

  산드라 헴펠(김아림 역), 《질병의 지도》 (사람의무늬)

  셸던 와츠(태경섭, 현창호 역), 《전염병과 역사》 (모티브북)

  폴 드 크루이프(이미리나 역), 《미생물 사냥꾼》 (반니)

  프랭크 A. 폰 히펠(이덕환 역), 《화려한 화학의 시대》 (까치)

  프랭크 M. 스노든(이미경, 홍수연 역), 《감염병과 사회》 (문학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