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에피소드

  • 432호
  • 기사입력 2019.12.02
  • 편집 이수경 기자

◈ 에피소드 1


몇 년 전, 한 여학생이 치아우식증을 주소(主訴, Chief complaint)로 필자의 치과의원에 혼자서 내원했다. 기본적인 구강검진을 하고 치료계획을 세운 다음 진료비총액까지 산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 아무런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이렇게 얘기를 해 주었다가 필자는 순간적으로 무언가에 얻어 맞은 것 마냥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ㅇㅇ야! 진료비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엄마한테 여쭤보고 결정한 다음에 와서 치료받자~~”라고 얘기를 해 주었는데, 대뜸 이 여학생은 고개를 떨구면서 “저 엄마 없는데요!”라고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학생에게는 내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누구나 엄마 없이 이 세상에 오는 사람이 없으니.. 이 학생의 나이에 나는 엄마가 계셔서 엄마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랐었던 경험을 그 여학생에게 그대로 요구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면목이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 여쭤보라’는 의미는 통상적인 최종결정권에 대한 위임의 의미로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단어이지만, 무심코 던지는 나의 언어습관이 어떤 이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공유해 보고자한다.


2019년 현재 이혼이나 배우자의 사별, 별거, 미혼모 등의 사유로 ‘한부모가족’의 비율이 전체가구의 11%인 약 50만 가구에 이를 정도로 이제는 새로운 가족 형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치과의사가 과연 필자뿐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한부모가정’을 ‘결손가정’이라고 스스럼없이 표현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큰 거부감이 없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결손’이라는 의미는 정상에서 뭔가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로의 사회적 편견이 내포된 단어이다.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면서도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구사하려는 노력들이 우리 치과의사들에게도 필요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환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일 것이다. 변화가 주도하고 있는 현 사회적인 현상에 걸맞게 사소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될 자신만의 언어적습관을 독자들께서도 한번쯤 뒤돌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 칼럼의 소재로 삼아보았다.


그 날 이후 필자는 자기결정이 힘든 환자분들에게는 ‘엄마께 여쭤보세요’ 대신 ‘보호자와 상의하고 오세요'라는 다소 딱딱하고 사무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데 때로는 사무적인 표현이 애정어린 표현보다 앞설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 에피소드2


필자는 1992년(28세) 개원을 하였으니 올해로 만 27년(55세)을 넘어섰다. 저만치 서서 나를 돌아보자니 언제 여기까지 왔는 지..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실감이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생일만으로는 가늠할 수가 없고, 주변 사람들의 나이듦을 듣고서야 내 나이를 실감할 수 있는 듯하다.


소위 충성환자의 자녀였던 6살 김ㅇㅇ어린이 환자의 1993년 이야기이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왔지만 행동조절이 안되어 전신을 그물로 묶어 놓고 진료를 해줬던 환자 녀석이 엊그제 진료실을 들어왔는데, 어느덧 서른네살 성인으로 성장하여 와이프와 아들 녀석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말을 올리기도 그렇고, 말을 내리기도 그렇고..


6살배기 어린이에게 대했던 내림말을 33세가 되어 온 성인에게 25년전의 언어로 내려야 할 지, 어엿한 성인에게 대하는 언어로 올림말을 사용할 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혼란스럽다.


마침 성균관에서는 예절을 공부하시고 연구하시는 어르신들이 여러분 계시기에 송구스럽지만 이러한 경우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