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는 큰 병원으로 가서 뽑으세요?

  • 440호
  • 기사입력 2020.03.31
  • 편집 박진실 기자

글 :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최치원


사랑니라는 이름이 생긴 계기를 노랫말에서 찾아보자.


요즘 대세인 미스터트롯에서 들려주는 노래 가사가 구수하기 그지없다. <18세 순이>에서는 “나이는 십팔세 이름은 순이…”, <나는 열일곱살이예요>라는 노랫말에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살이에요…”, <낭랑18세>는 “저고리 고름 말아 쥐고서 누구를 기다리나 낭랑 18세…”.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해 묘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나이다. 사랑은 때론 달콤하고 때론 아픈데, 이 나이에 느꼈던 사랑은 아픈 사랑으로 남는 경우가 많아 그 아픔에 비유하여 치아의 아픔을 표현한 명사가 바로 사랑니다.


하필이면 사랑의 아픔을 겪는 나이에 맞춰 잇몸이 붓고 피나고 고름이 생기면서 고생을 시키는 치아를 사랑니라고 명명한 것에 별다른 이견은 없는 듯하다. 사랑도 치아도 우리에게 아픔을 주기 때문 아닐까.


사랑니가 아프면 얼굴이 퉁퉁 붓고 침을 삼키기도 힘들며, 음식을 먹는 것도 고통스럽다. 때로는 몸져누워 끙끙 앓기도 하는데, 참다못해 사랑니를 뽑고자 치과에 방문한다. 그런데 치과의사는 X-ray를 보여주면서 사랑니가 신경과 너무 가까워 위험하니 큰 병원에 가서 뽑으라고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큰 병원이라고 하면 대학병원을 의미하는데, 대학병원에 가서 사랑니를 발치할 경우 가까워서 위험하다는 신경(하치조신경)이 멀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혹시 이 치과의사 선생의 사랑니 발치 실력이 없어서는 아닐까?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의문보다는 자신의 사랑니 상태가 해부학적으로 정말 위험한 위치라서 CT도 찍어보고 실력 있고 경험 많은 대학병원 교수에게 뽑는 것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할 테다.


개인치과의원에서 치과의사들이 사랑니를 뽑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사랑니를 발치하는 입장에서는 외과적 수술이라 감염과 출혈, 신경손상 등의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의료사고라도 발생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논리로만 본다면 1시간 이상을 긴장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발치를 하기 때문에 진료시간 대비 가성비가 맞지 않기도 하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상 또한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투자할 바에는 차라리 조금 더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자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니를 발치한 다음에 생기는 후유증과 고통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환자분들의 불만 또한 치과의사로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사랑니를 발치하면서 신경이 손상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만약 신경이 손상되어 지각마비가 올 경우 환자들은 치과의사를 원망하며 신뢰도의 추락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심지어 의료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어 환자와 치과의사 서로에게 사랑니의 수술이 부담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인류의 역사가 거듭될수록 기능과 용처가 많지 않았던 사랑니가 퇴화의 길로 들어서 사랑니를 가지고 있지 않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임상에서 보게 된다. 수천 년 후에는 사랑니가 사라지지 않을까?


필자는 사랑니 발치를 ‘즐겨하는’ 편이라 불안해하는 환자분들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저는 1989년에 치과의사가 되었으니 매일 사랑니를 하나씩만 뽑았다고 계산해 보면, 31년X365일=11,315개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사랑니 발치로 인해 단 한 번도 신경을 다치게 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신경을 다쳤다고 한다면 1/11,315의 확률인데, 그 확률을 두고 치과의사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치과의사와 환자 모두 지나치게 사랑니의 공포에 빠져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