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균_녹농균<br><i>(Pseudomonas aeruginosa)</i> (2)

오늘의 세균_녹농균
(Pseudomonas aeruginosa) (2)

  • 559호
  • 기사입력 2025.03.12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634

글 : 고관수 의학과 교수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아껴 쓰려고” 샴푸 통에 물 넣어 쓰다간… 치명적인 ‘이 균’ 번식 위험

- <헬스조선> 2024년 6월 16일


샴푸 통에 물을 넣는 과정에서 화장실 공기 중 녹농균과 같은 여러 세균 입자가 용기로 유입될 수 있다. 녹농균(슈도모나스)은 공기, 물, 토양 등 자연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병원성 세균으로, 화장실 공기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샴푸만 들어 있을 때는 샴푸 속 보존제 덕분에 세균들이 문제 될 정도로 번식하지 못하지만, 샴푸에 물을 넣으면 보존제가 희석돼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 게다가 녹농균은 물이 좋아하는 특성이 있어 물을 넣은 샴푸 통은 최적의 번식 환경이 된다.

녹농균은 신체 거의 모든 조직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데, 귀에 녹농균이 번식한 샴푸 물이 들어가면 외이도염이 생길 수 있다. 외이도염은 귀의 입구에서 고막에 이르는 통로인 외이도에 세균감염으로 염증이 생긴 것이다. 피부에 닿으면 발진, 가려움을 유발할 수 있다. 심하면 모낭염까지 생길 수도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듯한 세균 Pseudomonas aeruginosa, 즉 녹농균을 한자로 쓰면 ‘綠膿菌’이다. 이것으로도 이 세균의 인상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 이 세균에 감염되면 감염 부위에 녹색의 농즙이 생기는데(즉, 녹농(綠膿)이다), 이 농즙에는 이 세균이 만들어내는 푸른 빛깔의 형광성 색소인 피오시아닌(pyocyanin)과 녹색을 띠는 철결합체(siderophore)인 피오베르딘(pyoverdin)이 포함되어 있다.*

* 미굴라가 명명하기 전, 1882년 처음 이 세균을 순수분리했을 때의 명칭은 Bacillus pyocyaneus였다. ‘cyan’이 푸른색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세균에 대한 첫인상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참고로, ‘cyan’이 쓰이는 예를 들면, 남세균(Cyanobacteria), 청산가리(시안화물, cyanide) 같은 것이 있다. 모두 색깔이 파란색, 혹은 푸른색이다.


그럼 학명은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일까?

Pseudomonas라는 속명을 지은 이는 독일의 식물학자 월터 미굴라(Walter Migula)다. 1894년이니까 한창 새로운 세균들이 발견되고, 이름이 지어지던 시기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Pseudo-’는 ‘가짜’라는 의미로 많은 용어에 쓰인다. ‘-monas’ 역시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데 ‘단위’를 의미한다. 이 모나스는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주장한 ‘모나드(Monad)’론과 같은 유래를 갖는다. 그런데 미굴라가 이 세균에 이름을 붙일 때 쓴 ‘monas’는 그런 철학적 의미를 갖는 게 아니었다. Monas라는 식물성 편모충이 있는데, 이것과 비슷한 것 같아서 붙인 이름이 바로 Pseudomonas였던 것이다.1) 물론 기원도 다르고, 분류 위치도 아주아주 멀고, 사실 모양도 매우 다르다.

Pseudomonas라는 속명이 세균에 대해서 별 특별한 걸 알려주지 않는 반면, aeruginosa라고 하는 종소명은 다르다. 영어로 ‘aerugo’는 라틴어 aerūgō에서 온 단어로 금속, 특히 구리의 녹을 의미한다.2) 상기시키자면 구리의 녹은 녹색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또 다른 견해도 있다. aeruginosa의 ‘ae’가 ‘오래된’ 또는 ‘늙은’을 뜻하는 그리스어 접두사에서 온 것이고, 여기에 ‘주름진’, ‘울퉁불퉁한’을 의미하는 접미사 ruginosa가 합쳐졌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세균에 대해 더 적절하게 언급하는 것은 앞의 견해 같아 보인다.

여기서 ‘녹색’은 물론 이 세균의 외양을 봤을 때의 성질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 세균의 특성, 특히 병원성과 관련한 중요한 특성을 알려준다.


앞에서 피오베르딘이 시드로포어(siderophore, 철결합체)라고 했다. 시드로포어에 대해서는 3장 폐렴간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했지만, 인체와 세균은 모두 생존을 위해서 철 이온이 필요하다. 철은 인체나 세균이나 모두 부족한 성분이기 때문에 둘의 철 이온 쟁탈전은 치열하다. 따라서 외부로 분비하여 철 이온을 결합한 후 세포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시드로포어의 존재는 병독성의 중요한 요소이다(물론 사람도 철 이온을 확보하기 위해서 락토페린이나 트랜스페린, 페리틴 같은 철결합체를 만든다).


피오시아닌은 더욱 심각한 병독성 요소다. 이 물질은 활성 산소를 만드는 물질인데, 활성 산소는 인체 내에서 조직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분자다.3) Pseudomonas 속에 속하는 세균 중에서 녹농균(P. aeruginosa)만이 이 물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물질 생성 여부를 통해 녹농균의 동정에 이용하기도 한다. 환원 상태에서는 색을 나타내지 않지만 산화되었을 때 푸른색을 띠게 된다. 하지만 pH4.9 이하의 산성 용액에서는 2가 환원 상태로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미토콘드리아가 피오시아닌의 산화 환원 상태를 조절하면서 이 물질의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이런 산화-환원 활성의 특성 때문에 활성 산소를 만들어내게 된다. 활성 산소를 만들어 인체 조직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워낙 파괴력이 커 녹농균과 경쟁 상태에 있는 그람 양성 세균에 대해 항균 활성을 나타내 생장을 억제하기도 할 정도다.


▲ 피오시아닌을 생성하는 녹농균


녹농균과 관련해서 꼭 언급해야 하는 것이, 우리말로는 ‘정족수 인식’이라고도 하는 ‘쿼럼 센싱(Quorum sensing)’이다.4) 쿼럼 센싱이란 하와이짧은꼬리오징어(Hawaiian bobtail squid, Euprymna scolopes)에 사는 알리비브리오 피셔리(Alivibrio fischri)에서 처음 밝혀진 현상으로 세균 사이의 의사 소통을 의미한다.5) 세균들끼리 주변에 자기와 같은 종류의 세균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차려 어느 정도에 다다르면(즉, 정족수를 인식하면) 더 이상 분열과 증식을 멈추거나, 혹은 다른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세균밀도-의존성(cell density-dependent) 유전자 발현 조절 메커니즘인 셈인데, 특정 저분자 신호물질(자가유도물질, autoinducer라고 한다)이 세균의 밀도와 비례해서 쌓여 특정 농도 이상이 되면 이 물질이 세균 내로 들어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게 된다.


쿼럼 센싱에 사용되는 자가유도물질은 세균마다 서로 다르다. 이것들을 구분해보면, 그람 음성균의 경우에는 N-acyl-homoserine lactone (AHL) 계열의 화합물이 자가유도물질로 이용된다. 이 물질은 호모세린 락톤(homoserine lactone)이라는 공통된 구조에 다양한 길이의 아실 사슬(acyl chain)로 이루어져 있다. 그람 양성균은 대체로 주로 올리고펩타이드(oligopeptide)와 같이 펩타이드 계통의 저분자물질을 자가유도물질로 이용하는데, 그람 음성균의 AHL과는 달리 자체로는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어 특정 수송단백질이 필요하다.6)

쿼럼 센싱을 통해서 세균들은 많은 현상을 조절한다. 하와이짧은꼬리오징어에서 맨 처음 밝혀진 것처럼 생물발광을 조절하는데, 이는 세균과 다른 생물체 사이의 공생과 관련이 있다. 또한 병독성, 생물막의 형성, DNA 수용 능력(competence), 운동 능력, 항생물질의 생산 등 유전자의 발현 조절을 통해 다양한 생리 현상을 조절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은 것이 알려진 세균 중 하나가 바로 녹농균이다.

녹농균은 다섯 개의 서로 연결된 쿼럼 센싱 시스템을 사용한다. las, rhl, pqs, iqs, pch라고 하는 것으로, 이들은 각각 고유한 신호물질을 사용한다. 이 시스템은 서로 역할이 나눠져 있으면서 조절 방식이 계층적이다. 가장 상위에는 las 시스템이 있는데, 이 las 조절자가 rhl과 같은 다른 시스템의 조절자의 전사를 활성화하면서 쿼럼 센싱 조절 시스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7)

이와 같은 방식으로 녹농균은 단백질분해효소(protease), 엘라스테이스(elastase), 과산화수소분해효소(catalase), 람노리피드(rhamnolipid), 렉틴(lectin), 시안화 수소(hydrogen cyanide)와 같은 물질의 생성과 분비에 관련한 유전자가 쿼럼 센싱에 의해 조절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얘기한 시드로포어, 외독소 A의 생성, 분비 역시 마찬가지이며 생물막 형성과 같은 현상 역시 쿼럼 센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봤을 때 전체 유전자의 약 10퍼센트가 직간접적으로 쿼럼 센싱의 조절을 받는 것이다.8)


따라서 녹농균을 비롯한 많은 세균에서 쿼럼 센싱 조절을 통해 다양한 응용을 시도하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감염과 관련해서 쿼럼 센싱을 무력화함으로써 생물막 형성을 억제하여 치료를 시도한다든가, 또는 이를 활성화하여 산업적으로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도록 한다든가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Henry R. Etymology: Pseudomonas. Emerg. Infect. Dis. 2012;18(8):1241.

2)The Free Library. S.v. Pseudomonas. Retrieved Jul 01 2024 from 

https://www.thefreelibrary.com/Pseudomonas.-a0299759539

3)Abdelaziz AA et al. Pseudomonas aerugionsa’s greenish-blue pigment pyocyanin: its production and biological activities. Microbial Cell Factories 2023;22:110.

4)Smith RS, Iglewski BH. P. aeruginosa quorum-sensing systems and virulence. Curr. Opin. Microbiol. 2003;6(1):56-60.

5)고관수.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계단)

6)Sifri CD. Quorum sensing: bacterial talk sense. Clin. Infect. Dis. 2008;47(8):1070-1076.

7)Kostylev M et al. Evolution of the Pseudomonas aeruginosa quorum-sneing hierarchy. PNAS 2019;116(14):7027-7032.

8)Schuster M, Greenberg EP. A network of networks: Quorum-sensing gene regulation in Pseudomonas aeruginosa. Int. J. Med.

Microbiol. 2006;296(2-3):7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