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 교수의 SAL
(확장 가능 컴퓨터 구조 연구실)
- 594호
- 기사입력 2026.08.28
- 취재 김서연 기자
- 편집 김유림 기자
- 조회수 969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컴퓨팅 인프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AI의 성능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결국 하드웨어이며, 컴퓨터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동작하려면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메모리와 컴퓨터 구조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김정래 교수의 확장가능 컴퓨터 구조 연구실(Scalable Architecture Lab, 이하 SAL)은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구조 연구를 목표로 하며, 최근 ISCA 2026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이번 연구실 탐방에서는 AI 시대의 컴퓨팅 성능을 뒷받침하는 SAL의 연구와 연구 문화를 들여다본다.
▶ Research Stories - 김정래 교수 연구팀, AI 반도체 올림픽 ‘ISCA 2026’서 대한민국 최초 최우수 논문상 쾌거
| 연구실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품질은, 그 뒤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컴퓨터가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이며 신뢰할 수 있게 동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컴퓨터의 성능은 지난 50년 동안 무려 2억 배 넘게 좋아졌지만, 모델은 계속 커지고 다뤄야 할 작업은 계속 복잡해지고 있어서, 그 성능은 앞으로 멈추지 않고 성장해야 합니다.
SAL은 바로 그 ‘멈추지 않는 성능 향상’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컴퓨터 구조(computer architecture)를 연구합니다. 컴퓨터 한 대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수천, 수만 대가 얽혀서 돌아가는 거대한 시스템 전체에서 성능과 효율, 신뢰성을 함께 높이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이름 그대로 '확장 가능한(scalable)' 컴퓨팅. 즉 시스템이 아무리 커지고, 반도체 공정이 아무리 미세해져도 흔들림 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저희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메모리와 기기들 사이의 연결입니다. 메모리는 AI가 다루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담아 두는 필수 인프라가 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담을 수 있는 용량도, 주고받는 속도도 더 커져야 하고, 무엇보다 오늘날 AI는 정작 계산 자체보다 데이터를 여기저기 실어 나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저희는 이 낭비를 뿌리부터 줄이고 시스템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앞으로의 컴퓨터 성능을 가르는 열쇠라고 보고, 메모리와 연결 구조를 새로 설계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연구실의 대표적인 연구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크게 세 갈래로 이뤄집니다.
첫째, 메모리를 더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연구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더 많이 담고 더 빨리 주고받는 메모리를 계속 내놓고 있지만, 집적도와 전송 속도가 물리적 한계에 다다르면서 메모리는 그만큼 오류에 약해집니다. 저희는 DRAM 내부부터 DRAM 제어기, 캐시로 이어지는 메모리 서브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손보아, 더 많은 데이터를 안전하게 담고 나를 수 있도록 합니다. 대표적으로 오류정정부호(ECC)를 메모리에 효율적으로 녹여 넣은 'Cerberus' 연구는 컴퓨터 구조 분야 최고 학회인 ISCA 2026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습니다.
둘째, 메모리의 역할 자체를 다시 짜는 연구입니다. 예전의 메모리가 그저 데이터를 담아 두는 창고였다면, 요즘은 Processing-In-Memory(PIM)라 하여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메모리 안에서 직접 계산까지 해내는 제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PIM을 위한 새로운 구조와 활용법을 연구해 AI와 데이터센터의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잡습니다. 그 대표작인 'Native DRAM Cache'는 DRAM 내부를 거대한 캐시 메모리로 재구성해 데이터센터의 성능과 효율을 함께 끌어올린 연구로, ISCA 2024에 발표되어 그해 컴퓨터 구조 분야 최고 논문 24편(IEEE Micro Top Picks) 중 하나로 뽑혔습니다.
셋째, 메모리 보안입니다. 수많은 공격이 메모리에 담긴 데이터를 노리고 있고, 공정이 미세해져 메모리가 약해지면서 로우해머(RowHammer)처럼 메모리의 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공격까지 생겨났습니다. 저희는 적은 비용으로 이런 공격을 막아내는 컴퓨터 구조 차원의 방어 기법을 연구하며, 대표적으로 컴퓨터 구조 3대 학회인 ASPLOS 2026에서 최우수 논문상 후보에 오른 'RowArmor' 연구가 있습니다.
*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 동적 랜덤 액세스 메모리): 컴퓨터가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고 빠르게 꺼내 쓰는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
* 오류정정부호(Error Correction Code, ECC): 데이터에 오류가 생겼을 때 이를 찾아내고 일부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추가 정보를 함께 저장하는 기술
* Processing-In-Memory(PIM):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꺼내 계산하는 대신, 메모리 안에서 직접 연산하도록 하는 기술
* RowHammer: 메모리의 특정 영역을 반복적으로 공격해 주변에 저장된 데이터에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 메모리 공격 기법
| 연구는 어떤 과정과 방법을 통해 진행되나요?
모든 연구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찾는 데서 출발합니다. 실제 데이터센터와 AI 시스템을 들여다보며 어디서 병목이 걸리고, 어디서 에너지가 새며, 어떤 오류가 터지는지를 짐작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하는 것이지요. 문제가 또렷해지면 그것을 풀어낼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시뮬레이터나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 정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능과 전력, 면적, 신뢰성 같은 값들을 하나하나 숫자로 재어 가며 여러 설계를 견주고, 더 나은 답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다듬습니다.
이렇게 다듬어진 결과는 ISCA, MICRO, ASPLOS, HPCA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학회에 투고해 전 세계 연구자들의 엄격한 동료 심사(peer review)로 검증받습니다. 또한 저희 연구는 실험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제가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실제 칩과 데이터센터를 설계하며 겪은 현실의 제약을 연구에 반영하고, 기업들과 협력하며 '실제로 동작하는' 해법을 지향한다는 점이 SAL 연구 방식의 큰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혼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부딪치며 팀으로 진행됩니다.
|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연구의 활용 사례와 향후 비전이 궁금합니다.
저희의 연구는 학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산업 현장과 긴밀히 이어집니다. NVIDIA, AMD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고, 삼성전자와 산학 과제를 다수 진행하고 있으며, AI 반도체 개발과 같은 국가 과제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인프라 전문기업과 산학협력을 맺어, 대규모 클러스터 구축과 운영 노하우를 학생들과 나누며 더 효율적인 AI 인프라를 함께 설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연구한 메모리 오류정정 기법과 데이터 압축 기법은 이미 AMD와 IBM의 프로세서에 쓰이고 있고, 최근의 메모리 연구들은 컨소시엄을 통해 표준화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비전은 분명합니다. AI가 사회의 기반 기술로 자리 잡을수록, 그것을 떠받치는 컴퓨팅 인프라는 더 큰 범위로 확장 가능하고 더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SAL은 데이터 이동의 낭비를 줄이고 메모리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만들어, 확장 가능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컴퓨팅을 실현하는 핵심 기술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AI 시대의 하드웨어 토대를 다지는 연구실이 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 연구실만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자랑은 연구 성과의 수준입니다. 저희는 ISCA, MICRO, ASPLOS처럼 컴퓨터 구조 분야 최고 학회에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ISCA 2026, DATE 2024 최우수 논문상과 IEEE Micro Top Picks 선정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연이어 냈습니다. 국내 연구실로서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 큰 긍지입니다.
두 번째 자랑은 실무와 학문을 잇는 연구 문화입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실제 칩과 데이터센터를 설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논문을 위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 실제로 쓰이는 기술을 고민하도록 이끕니다.
세 번째는 학생을 향한 지원입니다. 대학원생에게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국제 학회에 직접 참석할 기회를 제공해, 연구에만 온전히 몰입함과 동시에 세계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 ISCA 2026 수상 사진
| 연구실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나 능력이 있나요? 어떤 학생이 연구실에 오면 좋을까요?
스펙보다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컴퓨터 구조, 운영체제, AI 같은 컴퓨터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면 좋지만, 이런 부분은 연구실에 들어와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습니다. 그보다 저희가 정말 바라는 것은 '왜 이렇게 동작할까'를 끝까지 파고드는 호기심, 어려운 문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 하드웨어와 시스템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 그리고 교수가 하는 말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적극성입니다.
반도체와 컴퓨터 구조에 매력을 느끼고, AI 시대의 하드웨어를 직접 설계해 보고 싶은 학생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에 도전하고 싶은 학생에게 SAL은 그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줄 것입니다.
하나의 연구가 결실을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고민과 경험이 쌓인다. SAL을 이끌고 있는 김정래 교수 역시 산업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연구 방향을 만들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메모리의 성능만큼이나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발견했다. 그가 걸어온 연구의 여정과 연구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정래 교수
| 교수님께서는 메모리 시스템의 신뢰성과 컴퓨터 구조를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오고 계십니다. 다양한 컴퓨터 구조 분야 가운데 특히 메모리의 신뢰성과 안정성에 주목하게 되신 계기와 현재의 연구 방향을 확립하게 된 특별한 경험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산업체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이 연구 주제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성균관대에 부임하기 전,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8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프로세서를 개발했는데, 이때 메모리의 성능과 신뢰성이 전체 시스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그러다 삼성전자 학술 연수로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 유학을 가게 되면서, 고성능컴퓨팅(HPC)에서 메모리 신뢰성이 갖는 무게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성능은 화려하게 드러나지만, 그 성능을 실제로 쓸 수 있게 떠받치는 것은 결국 '틀리지 않는다'라는 신뢰성이었지요.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데이터센터 가속기를 개발하면서 그 깨달음은 더 커졌습니다. 컴퓨터 한 대에서는 아주 드문 오류라도, 수십만 대가 모인 데이터센터에서는 매일 벌어지는 일이 됩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신뢰성은 선택이 아니라 성능과 효율의 전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성균관대에 부임한 뒤에는, 그동안 경험한 메모리, 신뢰성,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가운데 무엇을 주된 연구 주제로 삼을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는 신임 교수가 시작하기에는 장비와 시설에 대한 투자가 많이 필요했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기업들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 강국이어서 산학협력과 학생들의 취업 가능성이 높았고,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메모리가 점점 오류에 취약해지며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이 커지는 분야야말로 제가 가진 자원과 환경 안에서 가장 경쟁력 있게 파고들 수 있는 방향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SAL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 모바일 프로세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 각종 연산을 처리하는 핵심 반도체
* 고성능컴퓨팅(High-Performance Computing, HPC): 매우 많은 계산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여러 컴퓨터 자원과 고성능 장비를 활용하는 컴퓨팅 분야
| 최근 「Cerberus: Cross-Layer ECC Co-Design for Robust and Efficient Memory Protection」 연구에서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성능 향상에 따라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메모리 오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오류 수정 방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 연구의 어떤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셨으며, ‘Cerberus’가 메모리 시스템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HBM처럼 대역폭이 비약적으로 커진 메모리에서는 그만큼 오류의 위험도 함께 커집니다. 문제는, 기존의 오류 정정 방식이 대개 특정 계층 하나에 갇혀 있었다는 점입니다. 메모리는 메모리대로, 제어기는 제어기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오류를 막다 보니, 강력하게 보호하려면 그만큼 많은 여분의 저장 공간과 성능을 대가로 치러야 했습니다. 신뢰성과 효율성이 서로를 갉아먹는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이지요.
Cerberus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 문제를 한 계층이 아니라 여러 계층을 함께 설계하는 Cross-layer co-design 관점에서 푼 것입니다. 각 계층이 따로 오류를 막는 대신, 계층들이 역할을 나누고 서로 협력하도록 오류 정정 구조 전체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더 적은 비용으로 더 강력한 보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연구가 '신뢰성과 효율성은 맞바꿔야 한다'라는 오랜 통념을 깨고, 둘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음을 보여 준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인프라의 핵심으로 떠오른 고성능 메모리를 안심하고 쓸 수 있게 만드는, 실질적인 밑바탕이 되는 연구라고 봅니다.
*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인 메모리
| 이번 ISCA 2026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신 것은 한국 대학 최초라는 점에서도 더욱 의미가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성균관대학교의 반도체 및 컴퓨터 구조 연구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ISCA는 컴퓨터 구조 분야에서 반세기 넘는 역사를 지닌 최고 권위의 학회입니다. 이곳의 최우수 논문상은 세계 유수의 연구 그룹이 오랫동안 경쟁해 온 자리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메모리 신뢰성 연구의 중요성과 지난 여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무엇보다 뜻깊습니다. 하지만, 이 상은 결코 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밤낮으로 함께 고민하고 실험을 반복해 준 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저는 그 노력이 세계 무대에서 정당하게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기쁩니다.
성균관대학교, 나아가 한국의 컴퓨터 구조 연구라는 관점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 분야의 최전선은 오래도록 해외 유수 대학과 기업의 몫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국내 대학에서 이룬 성과가 그 정점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우리도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이번 수상이 반도체와 컴퓨터 구조를 공부하는 후배 연구자들에게 '여기서도 세계 최고에 도전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상의 가장 값진 의미일 것입니다.
| 이번 연구를 비롯해 세계적인 컴퓨터 구조 분야 학회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오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좋은 연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연구를 진행하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연구 철학이나 원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좋은 연구의 출발점은 언제나 진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풀기 쉬워서, 혹은 논문이 될 것 같아서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출발한 문제여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늘 현상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남들이 당연하게 넘기는 지점에서 '왜 꼭 이래야 하지?'라고 되묻는 데서 좋은 연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 자신도 학회장에서 논문 발표를 듣는 것 이외에도, 회사 참석자들과 많이 얘기하면서 산업계가 겪고 있는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면 사실 답의 절반은 이미 찾은 셈입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근본에서 다시 생각하는 태도(first principles)와, 그 답이 현실에서 실제로 동작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기존 방식을 조금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뿌리로 내려가면, 오히려 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해법이 나오곤 합니다. 다만 그 해법은 이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실제 시스템의 제약 안에서 작동해야 비로소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산업 현장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지요. 정리하면, 진짜 문제에서 출발해, 근본부터 다시 설계하고, 세상에 실제로 쓰이는 답을 만드는 것. 이것이 제가 지키려는 연구 철학입니다.
|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HBM을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컴퓨터 구조 및 메모리 분야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시며, 그 과정에서 성균관대학교 연구자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의 컴퓨터가 '연산'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AI 시대의 병목은 점점 '데이터를 어떻게 옮기고 저장하느냐'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AI 시스템은 계산 자체보다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의 컴퓨터 구조가 연산 장치 중심에서 벗어나, 메모리와 연결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봅니다. 메모리 안에서 직접 연산하는 PIM처럼 연산과 저장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 그리고 커지는 시스템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신뢰성 기술이 그 중심에 설 것입니다. 결국은 '더 빠르게'와 '더 믿을 수 있게', '더 효율적으로'를 동시에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흐름 속에서 성균관대학교의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이끄는 나라이고, 그만큼 산업과 학계가 긴밀히 협력하며 실제 문제에서 출발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는 그 협력의 중심에서,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새로운 표준과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를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와 SAL도 그 길에 작은 이정표를 세우는 연구실이 되고자 합니다.
다음으로, 본 연구실 김준환 원우를 만나 연구원의 관점에서 SAL 생활을 물어봤다.
▲ 김준환 원우
| 연구원의 관점에서 연구실을 자랑해 주세요.
저희 연구실은 컴퓨터 구조와 메모리 시스템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연구실 구성원 간의 협업이 활발하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주제를 연구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서로 자유롭게 공유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학생들의 의견과 토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교수님과 학생들, 그리고 학생들 사이의 소통이 활발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얻고, 서로의 강점을 활용해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 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소개해 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랫동안 고민했던 연구 아이디어가 실제 결과로 이어졌을 때입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시작한 아이디어도 여러 번의 토론과 실험을 거치다 보면 예상과 다른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접근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실험 결과를 통해 우리가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거나, 논문으로 완성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성취감이 매우 큽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그런 과정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구가 잘되지 않을 때는 교수님이나 연구실 구성원들과 같이 원인을 고민하고,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각자 다른 주제를 연구하고 있지만 서로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연구실 생활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연구자로서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제가 연구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스템과 산업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구조와 메모리 시스템 분야는 실제 반도체와 컴퓨터 시스템의 설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연구에서 제안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향후 실제 하드웨어나 시스템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문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의미 있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실제 시스템의 성능이나 신뢰성,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까지 기여할 수 있다면 더욱 가치 있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학계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실제 산업과 시스템의 발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이후의 연구에 활용되거나, 더 나아가 실제 시스템 설계에 반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연구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것 같습니다.
| 연구자의 길을 고민하거나 꿈꾸는 학부생,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 많은 준비가 된 뒤에 시작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부생 때는 아직 배우지 않은 내용도 많고, 논문을 처음 읽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자신이 연구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저 역시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았고, 논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는 오히려 모르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가능하면 일찍 연구실을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짧은 기간이라도 직접 논문을 읽고 실험해 보면서 자신이 어떤 주제에 흥미를 느끼는지, 그리고 하나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진로를 확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보다는, 직접 경험해 보면서 연구가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천천히 판단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연구실 관련 정보
김정래 교수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반도체시스템공학과
Tel: 031-299-4398
Email: dale40@skku.edu
Lab Website: https://scalable-arch.githu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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