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을 수 있다면 같이 울 수 있기에
- 박주영의 『법정의 얼굴들』

  • 546호
  • 기사입력 2024.08.29
  • 취재 이준표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450

<법정의 얼굴들>은 제목처럼 법정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피해자의 얼굴, 관심 밖에 있는 피고인의 얼굴, 이들 가족들의 얼굴, 그리고 판결을 선고하는 자의 얼굴 속 그림자를 비춘다. 저자는 <어떤 양형 이유>에서 판결문 뒷면의 눈물을 담았다면 <법정의 얼굴들>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하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의 기록을 들어보자.


저자 박주영은 법학과 졸업 후 7년간 변호사로 근무했고 판사로 재직하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을 지내고 있다. 형사재판과 소년재판 등 다양한 재판을 진행해 오며 그가 맡았던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내 『어떤 양형 이유』와 『법정의 얼굴들』을 집필했다. 최근 『괄호 치고』를 출판하며 박주영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2022년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했으며 책과 편지를 선물하는 판사로 알려져 있다.



| 슬픔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규정해선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할 순 있지만, 일단 뛰기 시작한 심장은 그 누구도 멈춰세울 수 없다.”

-지체장애인을 홀로 키우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한 어머니에게-


삶의 끝에서 길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40대 노동자, 지체 장애인을 키우며 사회의 모진 힐난과 차별을 겪다 동반자살을 시도한 어머니, 성폭력 경험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 한 여성, 어머니를 살해한 심신상실 지적장애인, 마약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마약중독자와 사회 시스템의 한계와 부재가 낳은 비행 청소년들.


작가는 조심스럽게 이들의 삶을 비춘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슬픔, 고통, 분노를 지닌 채 하루하루를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독자는 마주한다. 가난, 폭력, 사기, 강간 등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해지는 공통의 피해가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우리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게 된 이상 여러분은 이제부터 마음대로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됩니다.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여러분의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략)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와 말도 못할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도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홀로 견디며, 

여동생을 살갑게 보살피고 번듯하게 출가까지 시킨 훌륭한 청년은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나서는 안됩니다.”

-동반자살을 시도한 피고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장면 中-


저자는 책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슬픔과 고통을 나누고, 이들에게 진심이 담긴 관심을 보내길 촉구한다. 그 응답을 거부할 수 없게 하는 힘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고인과 피해자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위로가 독자를 멈춰 서게 한다.


| 외면은 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컴포트 존 외부에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본래 지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증오와 혐오로 확장될 수 있다. 특히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법정에서는 그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정신질환자 사건이 그렇다.


“정신질환 범죄를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뿌리 깊은 혐오와 공포다. 

그러나 범죄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이는 말도 안되는 편견이다.”


정신질환자의 중범죄에 대해서 국민과 법관의 양형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책임능력이나 형벌과 보안처분에 대한 몰이해,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면책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정신질환 핑계를 대는 피고인과의 구별 불가, 재범 위험성” 등을 그 이유로 꼽는다. 이러한 법감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한 차원 깊이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롭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법원, 의료진, 지역사회가 연계해 이들을 치료하고 격리 조치할 시설이 있다면 해결되는 문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치료감호 시설 여건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하며 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 대한 법감정이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신질환자 지원책에 대한 싸늘한 반응, 응보주의에만 머물러 있는 시각은 앞선 해결책을 어렵게 한다.


“영화 조커를 보면, 연약한 애벌레인 아서가 화려하고 거대한 나방인 조커로 변이되는 지점이 몇 군데 있다. 

지하철에서 자신을 이유 없이 폭행하는 남자들을 우발적으로 사살하는 순간,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가 자신을 학대했다는 서류를 본 순간, 

흠모하는 코미디언 머레이의 본심을 알고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등이다. 

아서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자도 단 한 번의 상황으로 격발되지 않는다. (중략) 

오늘도 형사합의법정에는 광대분장을 하고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조커들이 있다. 

그 옆 형사단독법정은 슬픈 눈을 한 채 ‘하하하하’ 괴롭게 웃고 있는 수많은 아서로 붐빈다.”


어떤 집단을 악으로 표상하여 증오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편리하다. 그 집단의 서사를 알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악으로 비춰지는 이들은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다양하며 우리 관심 바깥에 퍼져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치료와 보호, 사회 보장 시설은 최소한의 권리이며 마땅히 필요하다.  



|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다행히 <법정의 얼굴들>은 불행과 슬픔의 존재만을 남기고 떠나지 않는다. 1장 <회복 불가능한 상실을 견디는 사람들>에서 우리 사회의 상처를 보여준다면, 2장 <세상은 매일매일 더 좋아지고 있는가>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를 얘기한다. 3장 <사람을 살리는 이념과 정의>에서는 저자가 사건을 맡으며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다. ‘판사를 간 보려 한 피고인 이야기’,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사이’, ‘조폭들의 법정 희극’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마지막에는 ‘법이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판사로서 작가가 가지는 고뇌’를 그리며 책을 마무리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생존 방식은 더불어 사는 건데, 몇몇 사람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장담 역시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아픈 이들의 삶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점은 이들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 매일 걸어가는 길모퉁이, 카메라 초점 밖에서 흐릿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들이 당신에게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나아가 ‘관찰의 대상’으로 넘어올 때 이 한권의 책이 당신 곁에 있을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작가가 온기 있는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선한 독자가 있으니 그런 글이 되는 거다. 

문장이 아름다워서 우는 게 아니다. 같이 울어줘서 글이 빛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