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수사국의 경찰, 대학교수가 되다 :
과학수사학과 김기범 교수

  • 504호
  • 기사입력 2022.12.01
  • 취재 송명진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문명의 이기(利器)를 이(利)롭게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문명이 선물해준 이기는 늘 양면성을 지녀왔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무한히’ 극악무도해지는 중인 사이버 범죄 현황을 통해 이 안타까운 양면성을 목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려가는 사이버 범죄 발생률을 열심히 쫓아가는 사이버 범죄 검거율이 있으니. 이번 호 <인물포커스>의 주인공은 국내 사이버 범죄 수사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경찰 경력 23년차 대학교수, 김기범 교수다. 그럼 이제, 사이버 범죄 해결의 최전선에서 전하는 그의 이야기에 포커스인(Focus-in) 해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김기범입니다. 저는 1997년 경찰대학을 졸업한 이후 23년간 경찰로 일했고, 2014년에 경찰대학과 치안대학원에서 사이버 크라임과 디지털 포렌식 범죄 수사를 가르치며 처음 강단에 섰습니다. 좋은 기회로 2020년부터는 성균관대학교 과학수사학과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 벌써 2022년의 끝자락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은 진행중인 연구과제 마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졸업 논문도 열심히 봐주고 있고요. 저희 과학수사학과는 학부가 없고 대학원만 있다 보니 교수님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학생들 논문지도를 많이, 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고요, 그저 강의 하고 연구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주요 연구분야가 궁금합니다. 

저는 디지털 포렌식과 사이버 크라임을 연구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를 이용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범죄의 수사를 연구하는 것인데요. 많은 분들께서 종종 들어보셨을 해킹, 랜섬웨어, 다크 웹, 디지털 성범죄,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침해, 보이스피싱 등이 모두 제 연구분야에 속하는 범죄 유형들입니다. 이와 같은 범죄들의 증거를 찾아내고, 그 증거가 어떤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것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저희 연구의 목적이죠.


- 디지털 포렌식이란 무엇이며, 디지털 포렌식을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리긴 하지요? 디지털 포렌식이란 디스크나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매체에서 데이터를 추출 · 복구 · 분석 하여 유의미한 증거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법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한편 컴퓨터과학의 영역에 속하기도 하는, 상당히 융합적인 분야인데요. 과거에는 이 디지털 포렌식이 범죄 수사에만 활용이 되었지만, 이제는 행정소송 · 민사소송 등 다양한 사건에 폭넓게 활용되는 추세입니다. 이를테면, 개인정보 침해, 탈세, 회계 부정 사건 등의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데 디지털 포렌식이 사용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디지털 포렌식이 수사 방법론 그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디지털 포렌식의 연구도 발전해왔고, 발전하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성 메시지의 위조 여부를 밝히는 것을 넘어 해당 음성 메시지가 위조된 것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위조가 되었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위조한 것인지를 밝혀내는 단계까지 디지털 포렌식의 몫이 되었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디지털 포렌식의 범위는 꽤 넓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도 그에 발맞추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 ‘교수 김기범’ 이 아닌 ‘경찰 김기범’ 의 모습이 궁금해지는데요. 경찰로 재임하셨을 적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때는 2000년, 컴퓨터도 잘 알지 못하는데 서울청에서 사이버 수사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사이버 수사가 처음이었지만, 당시엔 너도 나도 사이버 수사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사이버 수사국과 같은 조직을 그때 모두 만들고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이 분야에 대해 열심히 배워가다 보니 어느새 대학원에 다니고 있더라고요. 저는  아무런 기반이 없는 분야에 ‘맨땅에 헤딩’ 한 터라, 스스로에게 공백을 많이 느꼈고 그 공백을 채우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는 대학에 사이버 수사 석사과정을 만드는 일, 조직 법제를 정리하는 일과 같은 전반적인 ‘틀 잡기’ 프로젝트를 약 8년간 진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재미있는 일도 있었는데요.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유령> 아시나요? 인터넷 및 SNS의 파급력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사이버 수사물 드라마인데요. 제가 그 드라마의 기획 과정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그때 김은희 작가, 김형식 감독님과 시나리오 설계도 함께하고, 극본이 나오면 다 같이 모여 먼저 리뷰도 했었죠.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는 경험으로 기억되는 일입니다.


- 23년간 몸담으셨던 직장을 떠나 학자(學者)가 되셨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이직’을 결정하게 되셨는지요.

글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학부는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 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술 분야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약 6년 정도 경찰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는데, 당시에는 학생들의 교육에 좀 더 몰두 해서 늘 충분치 못한 연구활동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성균관대학교에 오게 되면 보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평소 하고 싶었던 연구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생들의 스펙트럼이 넓거든요. 엔지니어들이 많은 편이긴 하나, 법학, 경찰학, 공학 등 전공이 각양각색이에요. 이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재미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 지금,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


- 앞으로 어떤 교수자,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연구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고요. 우리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 사회로 내보내는 것도 제가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교수자와 연구자의 역할을 굳이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쨌든 목표하는 바는 하나니까요. 우리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그렇게 형성된 인적 자원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사이버 수사 역량을 키우고, 해당 역량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게 되는 것. 그것이 제가 교수자이자 연구자로서 그리는 미래입니다.


- 지금껏 참 많은 성과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인간 김기범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목표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썩 주체적인 사람도 아니에요(웃음). 인사발령, 이직과 같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들은 사실 대부분 제 선택이 아니었어요. 그저 주변에서 제게 기대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내며 살아왔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목적의식이 없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늘 준비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대학원 시절, 제 지도교수님께서 저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시면 저는 항상 제 마음대로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했습니다. 당시 제가 불가능이라고 판단한 것들이 하기 싫어서 안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아직 부족해서 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도교수님께서 그런 저에게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내가 너를 알고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까 하라고 시키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러냐’는 것이었어요. 저는 나름 겸손하려 한 것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저는 예스맨이 되었어요. 무조건 받아들였고 무조건 해냈습니다. 아마 그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겠지요. 일단 도전 해보는 거에요. 특히 새롭게 태동하는 분야에서의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고, 틀리는 것도 성과가 돼요. 포석을 많이 해두면, 반드시 하나의 큰 자산이 되어 온다는 사실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 끝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말이 꽤 많은데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능력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그 능력의 허들을 일단 넘으면 그 뒤로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예의나 성실 같은 것들 말이에요. 앞서 도전을 많이 해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 말은 ‘작은 성공’을 많이 거두어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도전이라는 것이 절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일 필요 없거든요. 작은 성공이 많아야, 새로운 도전이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성공과 도전이 맞물리기 시작하면 매일이 즐겁습니다. 매일이 기대가 되지요. 여러분이 매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대 학생들 정도 되면 더이상 나 혼자의 성취와 성장만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발짝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 더 넓게는 세계에 기여하는 바를 찾아낼 수 있어야겠지요. 여러분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