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담으며,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 2등상 수상
진미송 동문(연기예술 16)
- 590호
- 기사입력 2026.06.28
- 취재 정수연 기자
- 편집 김유림 기자
- 조회수 1390
영화는 타자의 이야기를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선보여주는 매개체로 이해되곤 하지만, 때로는 타자의 이야기와 감정을 가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현실의 세계를 다시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입 밖으로 쉬이 꺼내지지 않는 감정의 틈을 직접적으로 내보이기보다는, 관객이 쉽게 등장인물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연출을 통해 우리는 인물의 내면보다 그들이 놓인 세계 자체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진미송 감독(연기예술 16)의 칸 영화제 수상작 <SILENT VOICES(사일런트 보이시스)>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하며,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그들이 속한 세계의 결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중·단편 영화를 선정하여 상영하는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 중 하나인 라 시네프 부문에서 진미송 동문은 최근 2등 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사일런트 보이시스>라는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나아가고자 하는 삶 속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자.
안녕하세요, 영화하는 사람 진미송입니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와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했고, 지금은 뉴욕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작품이 칸 영화제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사실 수상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심사 위원분들이 작품의 진실성을 봐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했고, 수상을 발표하기 전에 영화와 관련해서 짧게 코멘트를 남겨 주셨는데 제가 영화를 만들며 혼자 간직하고 있었던 의도들을 정확하게 간파하신 것 같아 신기했어요. 같은 라 시네프 부문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도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을 얻어 갔습니다.
▲ 진미송 동문(오른쪽에서 두 번째)
| 동문님의 작품 ‘사일런트 보이시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 대학원 졸업 작품인 17분 분량의 단편영화입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미국에 이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인 가족 네 명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영화는 각 가족 구성원의 하루를 교차하며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작은 무력감의 순간들을 담았습니다. 감성, 극적인 사건, 서사적 변화를 최대한 배제하고 일상에서 ‘타자’로서 살아가는 감각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단순히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넘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담아낸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소속감, 혹은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소속감’이나 ‘집’은 명확히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 개인의 의지로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유동적인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 영화인들을 보면 캐리어 한두 개만을 집으로 삼고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한 직업적인 특성이 있다 보니 주변의 영화하는 친구들과도 자주 고민거리로 나오는 주제입니다.
| 1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네 가족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가장 공들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개개인에게 의미하는 바는 다르지만, 저에게 영화란 인간의 세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인간이 아무리 힘든 상황을 겪고 아무리 처참한 감정 속에 놓여 있어도 세상과 사회는 그것에 결코 반응하거나 보상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표현하는 데에 더 적합한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사실 가족의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그들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리고 그것이 관객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도록 일부러 거리를 둡니다. 캐릭터들은 침묵으로 상황을 일관하거나, 덤덤하게 외부의 자극들을 받아들이곤 하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촬영감독과 함께 이미지 구상을 할 때도 관객이 가족의 주관적 세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 대학 시절의 경험과 배움이 현재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우리 대학 연기예술학과는 연극, 영화, 연기, 연출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폭넓은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동기 배우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연기 연출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도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들이 있습니다. 윤용아 교수님의 「연기연출」, 진빛남 교수님의 「시나리오 작법」, 그리고 고규흔 교수님의 「영화의 이해」입니다. 당시 미숙했던 저에게 그 수업들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형성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 연기예술과 함께 영어영문학을 공부하셨어요. 인문학적 탐구가 동문님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시선, 그리고 예술을 만드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시에는 어학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막연하게 영미 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영문학과에서 배웠던 시들은 운율과 형식이라는 견고한 규칙을 따르는 예술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위대한 시인들은 그 엄격한 제한 내에서도 상징이나 개인적인 감정 표현을 배제하고, 고심해서 선별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당대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고, 사회와 개인의 비극적인 관계를 표현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시의 특성은 제가 존경하는 영화의 특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형식적 제한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간결한 초상을 담아낸 영화는 정말 흔치 않거든요. 또 아직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저 같은 학생으로서는 형식적 제한 속에서 오히려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치관이 문학에서 가장 크게 얻은 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기술적인 역량 못지않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또한 중요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는 결국 타인에게 닿으려는 시도, 즉 언어가 해내지 못하는 소통을 시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바깥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인문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영화처럼 공동체로 함께 작업하는 환경에 있다 보면 제 개인적인 역량이 소모되는 느낌이 커요. 혼자서 차분하게 인문학 관련 도서를 읽어보고, 읽은 것에 대해 글을 써보기 위해서는 결국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연료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 이후 이어질 행보가 기대됩니다. 차기작으로 계획 중인 작품이 있나요?
한국에서 찍고 싶은 장편에 대한 구상을 천천히 시작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제 막 30대가 되었지만,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평생 특권층의 보호 아래 살아온 한 여성이 서울 외곽에 있는 할아버지의 별장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형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편에서 장편으로 작업의 무대가 넓어지는 만큼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으신 것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선정작을 발표하면서 심사 위원분들이 쓰신 심사평이 있는데,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고 개인적으로는 단편 영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관객이나 영화 관계자들의 취향을 의식하거나, 너무나도 익숙한 영화의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관습적인 사고와 사회가 만들어온 의미를 해체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미지들이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장편은 단편보다 더 많은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포맷인 만큼, 한국 영화에서 아직 충분히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만드는 데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업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맞는 동료끼리 함께 여러 작품을 만들어 보고, 또 서로의 영화나 시나리오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면서 함께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간 본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예리한 시선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안에만 머무르기보다는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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