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관람의 올바른 매너를 위해,
‘관크’와 ‘스포’

  • 419호
  • 기사입력 2019.05.13
  • 취재 이서희 기자
  • 편집 민예서 기자

지난 24일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개봉됐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영화라 그런지 영화 제작사 측에서 대대적으로 ‘스포’를 금지할 정도로 유독 ‘스포’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너도나도 극장내 비매너 관람객 ‘관크’에 대한 일화를 풀어 내렸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가 ‘스포’, ‘관크’ 등 작품 관람 비매너를 가리키는 말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개인의 경험담을 공유하기 더욱 쉬워진 환경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작품 관람 비매너가 만연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관크’, ‘스포’에 민감한 것일까? 과연 ‘관크’와 ‘스포’의 주범들이 이 기사를 볼지는 의문이지만, ‘관크’와 ‘스포’의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관크’와 ‘스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관크’? ‘스포’?

‘관크’란 ‘관객 크리티컬’이라는 신조어를 줄인 말이다. 사전에 의하면 관람을 칭할 때 쓰이는 한자 ‘觀(볼 관)’과 ‘비난하는’을 뜻하는 영어단어 ‘critical’을 합친 신조어라고 한다. 실제로는 작품을 함께 관람하는 ‘관람객’과 게임 내에서 겪는 데미지를 가리키는 ‘크리티컬’ 각각의 앞 글자를 따 ‘관객크리’라는 의미로 더 쓰인다. 어느 쪽이든, 극장 관람시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비매너 행위를 일컫는다. 한편, ‘스포’란 ‘스포일러’의 줄임말이다. ‘스포일러’란 ‘망치다’를 뜻하는 영단어 ‘spoil’에 무엇을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는 ‘er’를 더한 단어다. 영화, 소설 등의 줄거리 혹은 결말을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리 밝히는 사람 혹은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 ‘관크’ 관객 주의?!

‘관크’는 대부분 극장 내에서 사전에 고지된 관람 매너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일이 많다. ‘관크’의 종류야 헤아릴래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폰딧불이’ 유형이 아닐까 싶다. ‘폰딧불이’란 관람 중 핸드폰을 켜 핸드폰 불빛으로 다른 관람객들의 시야를 방해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에 전화 통화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관람 도중, 벨소리가 울리거나 스마트폰 불빛이 관객석에서 빛나 다른 관람객들의 몰입을 깨뜨리는 일이 많다. 당연하지만, 관람 중 앞좌석을 발로 차거나 일행과 수다를 떠는 행위 역시 ‘관크’에 해당된다. 연인과의 과도한 애정행각 역시 누군가에겐 ‘관크’일 수 있다. 


 ‘관크’는 최근 문화 흐름을 따라가기도 한다. 극장내 허용 음식의 범위가 늘어나며 냄새가 심한 음식을 먹거나 흘리는 등 음식과 관련된 ‘관크’ 가 늘고 있다거나, ‘싱어롱’의 여파인지 극장 내에서 노래를 따라 중얼거리는 ‘관크’가 발생한 것이 그 예이다.


 스포 주의?!

우리는 인터넷에 작품 후기를 올릴 때 제목과 함께 ‘스포 주의’라는 말을 달곤 한다. ‘스포’로 인해 작품의 재미를 맛보지 못할 예비 관람객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스포 주의’ 표시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작품의 결말을 쓰거나, 관람을 앞둔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결말을 이야기하는 ‘스포’ 행위가 다른 관람객들에게 적잖은 피해를 주고 있다.


영화나 소설의 결말을 미리 말하는 정석적인 ‘스포’만이 ‘스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스포’ 역시 다양하다. 일부러 잘못된 결말이나 반전을 퍼뜨려 관람 내내 잘못된 ‘스포’를 의식하게 하는 것도 맞는 ‘스포’ 못지않게 관람 피해를 주곤 한다. 간혹 영화가 끝난 후 상영되는 ‘쿠키 영상’에 대해 잘못된 ‘스포’가 돌아 소소한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결제를 통해 선공개분을 볼 수 있게 된 웹툰 시장의 흐름에 따라, 미리 선공개분을 본 독자들이 무료공개분에 ‘스포’ 댓글을 다는 등 스포의 범위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는 왜 ‘관크’와 ‘스포’에 민감한가?

우리가 ‘관크’와 ‘스포’에 민감한 이유는 작품의 재미를 맛볼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모든 관람객들은 정당한 비용과 대가를 지불하고 작품을 감상할 권리를 얻는다. 함께 관람하는 이상,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몇 달전부터 기대해온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 다른 누군가의 ‘관크’에 의해 몰입이 깨져버린다면 그것만큼 화나는 일은 없다. 작품 그 자체를 그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겐 말그대로 스트레스일 테다.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그조차 불가능하다면 비싼 돈을 내고 작품을 감상하는 의미가 없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야기를 따라가며 주인공들과 함께 맞이하는 반전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전이 중요한 작품일수록, 서술 트릭이 중요한 작품일수록 그렇다. 그 생경한 충격과 감동은 작품 전체의 재미와 의미를 좌지우지한다. 이 때문에 ‘스포’는 관객 혹은 독자뿐만 아니라 작품에 참여한 제작진들의 노고와 수익과도 관련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피해에 따른 제보가 이어지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일부 관람객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관람 행위에 대한 지적이 관람 문화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민감한 반응에 관람 문화가 지나치게 엄숙해지는 역기능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관크’와 ‘스포’가 법이 아닌 개개인의 매너와 배려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이 발생한 원점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은 경계하더라도, 타인을 위한 최소한의 매너는 꼭 필요한 것이다. 예민과 배려,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관람 매너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