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청계천
- 596호
- 기사입력 2026.09.28
- 취재 김은서 기자
- 편집 김유림 기자
- 조회수 3270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와요
-<가을이 오면>, 이문세 노래 중-
노래 가사처럼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여름과 겨울의 중간, 나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물드는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이번 문화 읽기에선 가을에 즐기기 좋은 청계천 맞춤 코스와 함께, 청계천이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청계천의 오늘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청계천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인공하천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주기적인 보수가 필요했던 하수도에 불과했다. 1970년대에는 많은 차가 오가는 고가도로가 그 위를 덮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도로를 철거하고, 땅속에 묻혀있던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수도부터 도로, 산책로 등 많은 모습으로 변화해온 청계천은 현재 서울 시민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 청풍명월(淸風明月) 속 독서삼매경
(출처=서울야외도서관)
◈ 서울야외도서관: 책읽는 맑은냇가 ◈
기간: 2026.9.4.~2026.11.1
운영 요일: 금·토·일
운영 시간: 14:00~22:00
이용료: 무료
서울야외도서관은 서울도서관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아웃도어 도서관이다. 청계천뿐 아니라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장소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오늘 소개할 ‘책읽는 맑은냇가’에서는 청계천의 잔잔한 물소리를 배경 삼아 책을 읽을 수 있다. 현장에는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푹신한 방석과 어두운 밤에도 글씨를 비춰주는 독서등이 제공되어 있어 더욱 편리하다. ‘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읽을 책이 없는데?’라는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서울도서관에서 이런 시민을 위해 엄선한 책을 담은 ‘책 봐,구니’를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별도의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퇴근길이나 하굣길에 청계천을 지난다면, 잠시 들러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다만, 야외에서 진행되는 만큼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 여부 및 시간이 변경될 수 있다. 따라서, 방문 전 미리 운영 정보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 청계천에서 독서 중인 시민들의 모습
| 금강산도 식후경
산책에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청계천을 따라 걷다가 바위나 벤치, 계단 등에 앉아 포장해 온 음식을 먹는, 이른바 ‘청계천 피크닉’이 유행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지만, 요즘 특히 주목받는 메뉴는 바로 ‘타코’다.
◈ 올디스타코 을지로 본점 ◈
운영 시간: 11:30~21:00
메뉴: 타코, 타코 라이스 등
을지로3가역에서 가까이 위치한 타코 집이다. 청계천 타코 붐을 이끈 곳이기도 하다. 을지로지만,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멕시코에 온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매장이 크지 않아 포장해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 타코를 포장한 뒤 청계천으로 걸어가 가볍게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다. 가게에서 청계천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많은 시민이 청계천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청계천을 자주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그 이유와 함께 청계천에서의 경험을 물었다.
Q. 청계천에 얼마나 자주 방문하고 주로 어떤 목적으로 가나요?
박서현(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25): 최근에는 날씨가 좋아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청계천에 가는 것 같아요. 학교 근처에 있다 보니 수업 끝나고 가볍게 들리기 좋아서 더 자주 가고 있습니다. 저만의 ‘청계천 혼자 놀기’ 루틴이 있는데요. 어울리는 노래를 들으면서 20분 정도 산책을 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물을 보다가,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쓰고 집에 갑니다. 반대로 친구들과 가면 그냥 같이 걷으면서 수업 얘기부터 사소한 고민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배가 고프면 타코나 피자를 포장해서 청계천에 앉아 먹기도 하고요.
최한빈(국어국문학과 25): 한 달에 적어도 네 번은 가는 것 같아요. 주에 한 번은 꼭 들르는 거죠. 성균관대학교의 복지 중 하나가 청계천이 근처에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요. 역시, 우리 선비들의 배산임수는 참 탁월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청계천을 보통 삶에 공백을 두기 위해 찾아가요. 청계천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이 여유를 찾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잠시 현실을 내려놓고 여유를 누립니다. 그래서 저는 삶이 힘들면 청계천으로 떠나요.
박채의(인공지능융합전공 25): 학교와 가까운 데다 지난 학기에 기숙사에서 생활해서 청계천을 꽤 자주 찾았어요.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갔는데, 생각해 보니 날씨가 풀린 뒤에는 거의 매주 갔던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친구들과 산책하거나 쉬고 싶을 때 청계천에 가요. 별다른 계획 없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청계천 자체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산책하거나 물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특히 빌딩과 도로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에서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잠시 일상과 분리된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굳이 방문 목적으로 하나 꼽는다면, 저는 청계천에 ‘쉬러 간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연채영(국어국문학과 25): 요즘은 매주 화요일마다 가고 있어요. 이번 학기부터 종각에 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어학센터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꼭 청계천에 들려서 앉아 있다가 오곤 해요. 평일 밤 10시 청계천은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정말 별것이 아닌데 학교 수업이 끝나고 외국어를 배우러 갔다가 청계천을 산책하고 나면, 마치 내가 엄청난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넋 놓고 물 구경을 하다가 오는 거예요.
Q. 청계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궁금해요.
박서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월에 대동제가 끝난 뒤 친구들과 혜화에서 청계천까지 걸어갔던 날이에요. 축제가 끝났는데도 아쉬워서 같이 놀다가, 집에 가는 차가 다 끊겼었거든요. 그냥 카페나 PC방에 갈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친구들과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청계천까지 가게 됐어요. 청계천에 도착했을 때가 새벽 5시쯤이었는데, 평소에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저희만 있는 게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평소보다 괜히 더 넓게 느껴졌어요.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아무도 없는 청계천에 그냥 누워 있기도 했어요.
▲ 축제 후 청계천에서 밤을 새운 모습
그때 재미있었던 일이 하나 있는데요. 저희가 그렇게 밤을 새우고 청계천에 앉아서 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한 분이 러닝을 하면서 지나가시는 거예요. 저희는 놀다가 밤을 새우고 새벽 5시에 청계천에 누워 있는데, 그분은 아침부터 열심히 하루를 시작하고 계신 거죠. 순간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어요. 사실 아무도 없는 청계천을 친구들과 걷는 일이 흔한 건 아니잖아요. 늘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그날만큼은 저희밖에 없다는 게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더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 속 장면처럼 계속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최한빈: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걸어서 청계천에 가 타코를 먹었던 적이 있었어요. 근처에서 급하게 타코 집을 찾아서 포장해 와서 먹었는데, 떨어지는 새우를 주워 먹느라 깔깔댔던 것 같아요. 청계천이랑 타코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조합이었는데 동기의 추진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글로벌 시대의 산물이 참 즐거웠던 것 같아요. 서울에 앉아 프랑스어 수업을 듣고 타코를 먹는 이 국경 없는 청계천이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물론 타코도 맛있었고요.
▲ 타코를 포장해 ‘청계천 피크닉’ 중인 모습
박채의: 청계천에는 여러 추억이 있어요. 기숙사 룸메이트와 밤에 산책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와 한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축제가 끝난 뒤 친구들과 밤을 새우고 청계천까지 걸어갔던 적도 있고요. 그래도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청계천에서 ‘잠수하는 사람’을 목격했던 날이에요.
시험 기간에 친구들과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갔던 평범한 날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봤더니, 잠수복처럼 보이는 전신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청계천 물속에 엎드린 채 가만히 누워 있었어요. 청계천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물이 정말 얕잖아요. 대부분 발목에서 무릎 정도밖에 오지 않는데, 그 얕은 물에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으니, 저희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계속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어요. 더 신기했던 건 집에 돌아온 뒤였어요.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저와 똑같은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올린 릴스를 발견했거든요. 댓글에서는 “영화 촬영 중인 것 같다”, “수질 검사를 하는 것 아니냐?” 등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었어요. 추후 찾아봤더니 유명한 수중 촬영 감독님이시더라고요.
연채영: 지난 학기 한창 기말고사 주간이었던 것 같아요. 마구 밀려오는 시험과 기말 과제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동기들과 청계천으로 도망친 게 생각이 나요. 우리 학교가 청계천과 가깝다 보니 충분히 걸을 만하거든요. 항상 걷는 산책 코스도 있는데, 안국-정독 도서관-광화문 광장-청계천을 지나는 거예요. 마침, 안국에 제가 좋아하는 와플 가게가 있어서 다 같이 손에 와플을 하나씩 들고 그 길을 걸어갔던 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어둑해지는 시간에 푸르른 하늘과 초여름 저녁 날씨 한 가운데 와플을 먹으며 청계천까지 가는 길이란 상상만 해도 청춘 한 가운데 있는 것만 같잖아요.
그렇게 청계천에 도착해서 한창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도 생각이 나네요.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이 컸었거든요. 그래서 막 떠들다가 종강하면 사주를 보러 가자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면 인생 계획 세우는 데에 갈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질문 리스트를 막 짜다가 너무 추워서 이만 헤어졌던 기억이 나요.
Q. 본인에게 청계천이란? 한 단어로 표현하고 그 이유도 알려주세요.
박서현: 저에게 청계천이란 ‘틈’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정신없이 등교하고, 수업을 듣고 하다 보면 하루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럴 때 청계천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물과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잠깐 일상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어요. 머릿속에 있던 고민이나 힘든 생각도 물을 따라 같이 흘러가는 것 같고요. 일상에 틈을 준다고 할까요. 거창하게 뭔가를 하진 않지만, 바쁜 일상에서 잠깐의 휴식을 주는 공간이라 청계천을 좋아합니다.
최한빈: 저에게 청계천은 영화관입니다. 영화관은 모두가 다른 생각으로 모이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열린 공간이잖아요. 그 잠깐 흐르는 물 옆에 있는 순간에는 현실을 잠시 뒤로 하고, 앞에 놓인 여유에 집중할 수 있는 청계천은 어쩌면 거대한 영화관이 아닐까요? 모두가 1-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꼭 영화의 러닝타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쁜 사회 속에서 무언가 멈춰 있는 공간 같다는 점에서 늘 영화관 같다고 느꼈어요.
박채의: ‘족욕기’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장난이고요. (웃음) 진지하게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저에게 청계천은 ‘도피처’예요. 꼭 힘든 일이 있어야만 찾는 곳은 아니에요. 시험 기간처럼 머리가 복잡할 때도 가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친구와 걷기도 하고,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문득 생각나면 찾아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청계천을 따라 걷고 나면 머릿속이 조금 정리되고,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왔다가 돌아온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청계천은 거창한 관광지라기보다,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도피처’에 가까워요. 바쁜 일상에 지쳤을 때 한 번쯤 청계천을 천천히 걸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연채영: ‘서울’인 것 같아요.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데, 타지에 홀로 살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거든요. 서울이란 공간은 굉장히 광활하고 방대한 동시에 밀집도가 정말 높아서, 머리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작은 원룸 방 한 칸 외에는 내가 머물 곳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맞아요. 그럼에도 청계천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있을 때면 내가 이곳 서울 한가운데에 녹아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외로움과 부담감이 물을 타고 흘러가는 것만 같은 기분에 마음이 홀가분해지거든요. 그렇게 흐르고 흘러 한강에 합류해 서해까지 흘려보내 주고 나면, 서울에 좀 더 맘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겨요.
그러니까 아직 이 타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꼭 타코든 와플이든 손에 들고 청계천까지 걸어가 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특히 G하우스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거리가 가까운 만큼 청계천에 많이 가보는 걸 추천해요. 해가 쨍쨍한 날에 경복궁 근처를 지나면서 쏟아지는 해를 온몸으로 맞아보세요. 서울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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