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옷, 청금복

  • 415호
  • 기사입력 2019.03.11
  • 취재 권은서 기자
  • 편집 고준서 기자

2019년 3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신입생들은 교복을 벗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자유복을 입게 되어 설렜을 것이다. 옛날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았을까? 1398년에 개교한 성균관에서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청금복’이라는 소위 ‘교복’을 입도록 했다. 신학기를 맞아서 현재는 ‘신방례’, ‘고하노라’ 등의 본교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성균관의 ‘교복’에 대해 알아봤다.


<청금복의 유래>


“靑靑子衿(청청자금) 悠悠我心(유유아심), 푸르고 푸른 님의 옷깃 기나긴 것은 이내 마음이로다” 『시경』, 「정풍(鄭風)」


시경의 한 구절이다. 청금이란 말은 시경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유생을 달리 이르는 말이 되었다. 청금복의 출현은 ≪태종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균관 5부 유생들이 처음으로 청금을 입었으니, 조정의 제도를 따른 것이었다.” 이처럼 성균관 유생들은 조정의 제도에 따라 청금복을 착용하게 되었다.

 

<청금복의 종류>


청금복은 태종 때를 시초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형태와 종류가 변화하고 다양화되었다. 태종 때의 ‘청금’은 청금 난삼을 의미했다. 여기서 난삼이란 푸른 옥색빛을 띠고 있는 옥색포견에 흑선을 두른 것이다. 이후, 성종 때의 ‘청금’은 ‘청금단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때 ‘단령’이란 깃을 둥글게 만든 의복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에 큰 혼란이 찾아왔고 사회적 규범, 제도 등도 무질서 상태가 되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복식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1740년, 영조는 청금복의 재정비에 나선다. 첫째, 영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경한 일에는 홍단령을 착용하게 했다. 둘째, 영조는 유생들에게 성균관의 공식 행사나 제례가 있으면 청단령 을 착용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유생들에게 국가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흑단령을 착용하게 했다.



<소품>
“조선 생도(生徒)는 모두 연라건(軟羅巾)을 쓰고 청난삼에 사대(絲帶)를 띠고, 우묵하고 신코가 뾰족하며 바닥이 넓죽한 피혜(皮鞋)에 포말(布襪)을 신었다.” 『해동역사 海東繹史』


머리 관련 의복은 첫째, 유건이다. 앞서 해동역사에서 연라건은 이 유건을 뜻하는 것이다. 유건은 학문하는 유생들의 전용물로, 거리 외출시에는 유건이 아닌 검은 색 갓인 흑립을 착용했고 보통 유건은 성균관 안이나 집 안에서만 썼다. 대부분 검은 베나 모시, 무명으로 만든다. 위쪽 좌우에 뾰족하게 귀가 나 있으며 달려 있는 끈으로 턱에 맬 수 있다. 


다음으로, 사대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시대 남자들의 겉옷을 여미는데 사용했던 사대 중 하나인 세조대이다. 가느다란 띠로 가는 실띠의 양끝에 술이 달려 있다. 대개 허리보다는 높게 가슴 부분에 매어 입었다. 

마지막으로, 피혜와 포말이다. 목이 없으면 ‘혜’, 목이 있는 신은 ‘화’라고 한다. 피혜는 목이 없는 신으로, 가죽에 기름을 입힌 신이다. 평상시에 주로 신었다. 여기에 베로 만든 버선인 포말을 함께 신었다.



이 기사는 성균관대학교 소속 산하단체 '청랑'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출처>
유교넷
http://www.ugyo.net/et/dict/dict_view.jsp?sActnMode=dict_actn&DICT_CODE=D001222&sFrstCode=
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유복&ridx=0&tot=18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code=cp0413&index_id=cp04130078&content_id=cp041300780001&search_left_menu=3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http://www.e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