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와 율곡의 성인(聖人)적 제왕관
- 557호
- 기사입력 2025.02.13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180
글 :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과거 동양 봉건제 하에서 제왕의 포악무도함에 대해 맹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해 응징할 것을 말하였다. 조선조에는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을 통해 연산군과 광해군이 각각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君)’의 지위로 격하시킨 역사가 있다. 조선왕조 역사상 흥청망청(興淸亡淸)하면서 성군(聖君)되는 것을 거부한 독재 군주인 연산군의 광기는 유명하다.
유가의 정치철학서 성격을 갖는 『서경(書經)』 「고요모(皋陶謨)」에는 “하루 이틀 사이에 만 가지 기틀이 생기니, 여러 벼슬아치들이 일을 저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一日二日, 萬幾, 無曠庶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흔히 이른바 ‘임금이 온갖 정사를 일일이 몸소 보살핀다[萬機親覽(만기친람)]’라는 말의 유래로 거론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다음 정도전(鄭道傳)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후대의 景福宮]’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한다. 이에 정도전은 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의 중심 건물을 ‘사정전(思政殿)’이라 이름하고, 그 이유로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생각을 하면 슬기로워지고, 슬기로워지고 나면 성(聖)이 된다[思曰睿, 睿作聖].’ 하였으니, 생각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활용도가 절대적입니다. 이 전(殿)에서 매일 아침 정사를 보시게 되면 ‘모든 정무[萬機]’를 거듭 모아서 전하께 품달하게 될 터인데, 조칙을 내려 지휘할 때에 더욱더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는 것을 거론한다.
‘만기친람’하는데 심사숙고하여 결정할 것이지 허투루 조칙을 내려 지휘하지 말고, 아울러 슬기롭게 판단하여 정사하면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면서 정도전이 ‘성인으로서의 제왕관’을 제시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퇴계와 율곡이 선조(宣祖)가 성군(聖君)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작성해 올린 실질적인 이유다.
정도전의 사정전(思政殿)에 대한 말 :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대개 임금은 한 몸으로써 높은 자리에 계시오나, 만인(萬人)의 백성은 슬기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불초(不肖)함이 섞여 있고, 만사(萬事)의 번다함은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됨이 섞여 있어서, 백성의 임금이 된 이가 만일에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어찌 일의 마땅함과 부당함을 구처(區處)하겠으며, 사람의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알아서 등용할 수 있겠습니까?
2. 성인으로서 제왕과 광인으로서 제왕
중국역사에서는 위대한 제왕을 성인과 동일시하여 이해한 적이 있었다. 북송대 소철(蘇轍)이 “(중국역사의) 옛날 제왕은 모두 성인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실제 이런 점은 송대에 오면 이른바 요-순에서 시작하여 하(夏)의 우(禹), 상[商(殷)]의 탕[湯], 주(周)의 문(文)-무(武)-주공(周公) 그리고 공자로 이어지는 도통관(道統觀)이 제기되는데, 주공 이전의 인물이 모두 제왕이었다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제왕관에서 주목할 것은 군주가 성인인가 광인인가 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이다. 『서경(書經)』 「다방(多方)」에서는 제왕으로서 성인[聖]을 광인[狂]과 대비하되, ‘성’과 ‘광’을 각각 ‘총명한 인물’과 ‘혼우(昏愚)한 인물’이란 이분법적 등식 속에서 ‘광’을 부정적으로 말한다. 성인의 정치는 애민과 덕치(德治)를 기본으로 함에 비하여 광인의 정치는 자기 멋대로 행하는 방종하면서 포악무도적이다. 이런 점에서 제왕의 올바른 마음먹기와 마음다스림을 매우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성과 광의 간극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제왕으로서 성인이 한 번 마음을 잘못 먹으면 광인이 된다. 이에 “광을 극복하여 성인이 되어야 한다[惟狂克念作聖]”라는 것을 강조한다. 제왕이 성인(聖人)과 같은 완벽한 인간이라면 ‘만기친람’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잘못된 왕의 판단과 정치적 리더쉽은 한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동양역사에는 제왕학과 관련된 다양한 텍스트가 나오는데, 성리학 차원에서는 특히 제왕의 마음 다스림을 강조한다.
동양역사에 나타난 제왕학과 관련된 텍스트를 거론하면 『논어』와 『맹자』를 비롯하여 당대 당태종이 죽은 뒤 사관 오긍(吳兢)이 지은 『정관정요(貞觀政要)』, 제왕학의 교과서로 알려진 북송대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역대 제왕의 구체적 사례를 『대학』과 연계하여 풀이한 진덕수(陳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가 유명하다. 『대학연의』는 조선조 군주가 경연에서 공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타 당대 조유(趙蕤)의 『반경(反經) 혹은 장단경(長短經)』, 명대 만력제(萬曆帝) 교육을 위해 장거정(張居正)이 황제가 거울로 삼아야 할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만든 책인 『제감도설(帝鑑圖說)』도 있는데, 서양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유사함이 있다고 평가받는 『한비자』 등에도 제왕학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이같은 전문적인 제왕학 관련 텍스트가 있지만 조선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와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에도 제왕학 관련 내용이 나온다. 주목할 것은 텍스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왕은 성인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唐太宗과 魏徵 : 당태종이 貞觀之治(정관지치)를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인 것은 위징이 당태종에게 무려 300번이나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던 것이라고 본다. 위징의 직책은 오늘날 감사원장 같은 직책인 諫議大夫(간의대부)인데, 태종은 절대 권력의 폭력성에 제동을 가할 인물로 위징을 선택했다고 한다.
3. 퇴계와 율곡의 제왕관
퇴계는 군왕의 도(道)에 관한 학문의 요체를 도식화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만들어 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학(聖學)에는 강령(綱領)이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히 요긴한 것이 있습니다...임금의 마음은 만 가지 징조가 연유하는 곳이요 백 가지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온갖 욕심이 공격하고 온갖 간사함이 서로 침해하는 곳입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따르게 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을 것이니, 이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옛날의 성군(聖君)과 현명한 왕은 이런 점을 근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조심하고 공경하며 두려워하기를 날마다 하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겨 스승을 정하여 놓고 굳게 간(諫)하는 직책을 만들었습니다.[『退溪文集』 卷之七 「進聖學十圖箚」]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 것인가의 여부다. 이런 점에서 임금은 어느 한때라도 마음을 태만하고 소홀하게 하여 방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퇴계는 『성학십도』를 천도에 근원하여 성학을 설명한 것과 심성에 근원하여 성학을 설명한 것으로 구성하는데, 후반부에 있는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 「인설도(仁說圖)」 · 「심학도(心學圖)」 · 「경재잠도(敬齋箴圖)」 ·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등은 특히 임금의 마음 상태 및 수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聖學十圖』의 순서 : 태극도(太極圖) · 서명도(西銘圖) · 소학도(小學圖) · 대학도(大學圖) ·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 인설도(仁說圖) · 심학도(心學圖) · 경재잠도(敬齋箴圖).
율곡은 ‘군주를 바로한다’는 ‘격군(格君)’에 뜻을 두고 집필한 『성학집요』에서 보다 다양한 내용을 통해 제왕(帝王)의 학문하는 본말(本末)과 정치의 선후(先後)와 덕을 밝히는 실효(實效)와 백성을 새롭게 하는 실적(實跡)에 대해 큰 틀을 제시한다. 저술한 이유를 보자.
가만히 생각건대, 제왕의 학문은 기질(氣質)을 바꾸는 것보다 절실한 것이 없고, 제왕의 정치는 정성을 다해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기질을 바꾸는 데는 병을 살펴 약을 쓰는 것이 성과를 거두고, 정성을 미루어 어진 이를 쓰는 데는 상하(上下)가 틈이 없는 것이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栗谷全書』 卷之十九 「聖學輯要(一):進箚」)
율곡이 제왕학으로 제시하는 핵심은 기질 변화와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인데, 특히 기질변화를 강조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처럼 법치국가를 표방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경우가 아닌 과거 봉건제하에서 제왕의 올바른 기질을 통한 정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율곡은 이에 『성학집요』를 올리는 실질적인 이유를 선조 기질의 부정적인 면을 거론한다. 먼저 선조의 긍정적인 면을 거론한다.
삼가 뵈옵건대, 전하께서는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지혜로우시며 천성적으로 효도와 우애와 공손과 검소함을 지니셨습니다. 성색(聲色)과 이욕(利欲)은 뿌리부터 싹 끊어졌으니, 역사상 견줄 만한 이가 드뭅니다. 이것이 신이 황극(皇極)에 마음을 두고 왕궁[紫闥]에 정(情)을 걸고서, 참다운 덕을 성취하시어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를 따르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이유입니다.(『栗谷全書』 卷之十九 「聖學輯要(一):進箚」)
선조에 대한 율곡의 이같은 긍정적 평가는 사실 수사적 표현으로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실제 선조의 기질과 본 모습은 부정적 평가에 잘 드러난다.
다만 병통을 논하자면, 영특한 기질이 너무 드러나기에 착한 것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넓지 못하시고, 노기(怒氣)를 쉽게 발하여 남과 겨루어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이러한 병폐를 제거하지 않으시면 도에 들어가는 데 방해가 될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부드러운 말을 하는 자가 많이 받아들여지고, 면전에서 직언하여 과실을 지적하는 자는 반드시 거슬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제(聖帝)와 명왕(明王)이 자신을 비워 남을 따르는 도(道)가 아닐 것입니다.(『栗谷全書』 卷之十九 「聖學輯要(一):進箚」)
선조의 병통으로 거론하는 착한 것을 받아들이는 도량의 협소함과 힘으로 타인을 제압하는 사사로운 마음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율곡의 발언이 매섭다. 한비자는 『한비자(韓非子)』 「십과(十過)」에서 “허물을 짓고도 신하의 충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홀로 제 마음대로 하는 독단[過而不聽於忠臣, 而獨行其意]”을 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가 있다.
퇴계와 율곡이 제시한 성인으로서의 제왕상과 관련된 마음 다스림의 강조는 당사자가 받아들이느냐 여부에 따라 공언(空言)이 될 수도 있다는 제한점이 있고, 실제 역사에서는 그같은 현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성제(聖帝)와 명왕(明王)처럼 자신을 비워 남을 따라야 한다는 발언은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4. 나오는 말
중국역사상 암군(暗君) 중 하나로 꼽히는 명대 만력제는 장거정이 있을 때는 마지못해 장거정이 제시한 제왕학을 따르는 시늉을 한다. 장거정이 죽자 만력제는 “장거정이 언관을 억제하고 황제의 총명을 막았으며, 정권을 농단하고 황상의 은혜를 저버리는 불충을 도모했다”라 하고 부관참시를 명한다. 만력제는 능력이 있었지만 평생 ‘신하들의 말에 귀를 닫고 놀고먹는 길’을 선택한 결과 만력제 이후 명은 24년 뒤[1644년]에 멸망한다.
제왕이 성인이 되느냐 광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제왕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늘날 같은 법적 장치가 없는 이상 ‘만기친람’하는 제왕의 마음 다스림과 관련된 다양한 사유가 동양제왕학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문제는 선조의 예에서 보듯, 제왕학과 관련하여 퇴계와 율곡이 아무리 좋은 이론을 제시했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제한점이 있더라도 퇴계와 율곡이 제왕의 성인됨과 관련하여 올린 『성학십도』와 『성학집요』에서 강조하는 ‘마음다스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점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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