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시정(詩情)과 노장(老莊) 사상

  • 540호
  • 기사입력 2024.05.24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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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들어가는 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차이점을 찾아보자. 일단 철학 측면에서 보자. 퇴계는 흔히 ‘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라는 이기호발설을 주장했고, 율곡은 ‘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했다고 말해진다. 즉 퇴계는 리를 중심으로 하여, 율곡은 이기지묘(理氣之妙) 사유를 통해 우주자연과 인간세상을 이해했다고 말해진다. 이같은 서로 다른 이기설은 현실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방안에서 차이점을 드러냈다.


철학 이외의 삶과 문예 차원에서 차이점을 찾아보자. 퇴계는 신퇴(身退)를 한 다음 도산에서 비둔(肥遯)의 삶을 살면서 많은 시를 짓고 아울러 여사(餘事)로서 서예에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른바 문예차원에서 윤기있는 삶을 살았다. 율곡은 퇴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에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예차원에서는 퇴계와 같은 ‘시정(詩情[시적 정취])’을 드러낼 여유가 없었다. 이런 정황에서 퇴계가 읊은 시정에 은일(隱逸)적 정서를 긍정하고 동경하는 시어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퇴계 이황하면 성리학의 지경(持敬) 철학을 통한 경외(敬畏)적 삶을 지향한 퇴계상을 떠올린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시정(詩情[시적 정취])’을 통해 본 퇴계는 다른 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퇴계가 노장사상을 이단시하면서 비판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양한 시어(詩語)를 통해 표현된 퇴계의 ‘은밀한 속내’는 그렇지만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이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퇴계가 노장을 이단시하고 배척하기만 했다는 상식을 일정 정도 불식시키는 역할을 하며, 아울러 노장사상에서도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한 퇴계의 ‘열린 학문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은밀한 속내’가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외면이 있다는 것인데, 불경스럽게도 마치 퇴계가 양면성을 지닌 야누스적인 인간인듯한 냄새를 풍긴다. 물론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2. 이단으로서 노장사상


조선조 유학자들의 ‘노장[도가] 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이단시한다는 것이다. 그 학문적 출발은 정도전(鄭道傳)이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유학[성리학]을 국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고자 한 의도에서 출발한다. 정도전의 불가(佛家)에 대한 비판은 ‘석가가 말한 불교의 논리를 잡되게 변론한다[佛氏雜辨]’에 담겨 있고, ‘노불(老佛[도가사상과 불가사상])’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은 이른바 ‘심리기 삼편(心理氣 三篇)’에 담겨 있다. ‘심리기 삼편’에서의 심은 불가, 리는 유가, 기는 도가 사상을 상징한다. 정도전은 결과적으로 유학[성리학]의 리를 통해 불가의 심과 도가의 기에 담긴 사유의 문제점을 깨우쳐 준다는 이른바 ‘이유심기(理諭心氣)’ 사유를 주장한다.


이기론 차원에서 이단에 대한 이같은 인식에 가치론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퇴계다.


사람의 한 몸에는 이(理)와 기(氣)가 겸비되어 있는데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합니다. 그러나 이는 무위(無爲)하고 기는 유욕(有欲)이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자는 기를 기르는 것이 그 가운데 있으니, 성현이 그런 사람입니다. 기를 기르는 데 치우친 사람은 반드시 성(性)을 해치는 데 이르니,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기론 입장에서 유가 성현의 삶과 노장이 추구한 삶의 차이점을 ‘이귀기천(理貴氣賤)’으로 결론을 내린 퇴계는 치국의 입장에서 노장을 이단시한다.


퇴계가 중국 역사, 철학 및 정치 맥락에서 이단관과 관련된 대표적인 발언은 주희가 『중용장구·서』에서 말한 이단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난진(亂眞[‘彌近理而大亂眞’의 준말])’ 사유다. 퇴계가 율곡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단난진’이란 표현을 통해 율곡이 이단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경계의 말을 하기도 한다. 퇴계는 기본적으로 ‘이단은 유가의 도를 해친다[異端賊道]’는 학설을 주장한다.


▲ 이언적(李彦迪) : 퇴계는 이언적에 대해 “闡吾道之本原, 闢異端之邪說. 貫精微徹上下, 粹然一出於正.”이라고 평가한다.


▲ 조광조(趙光祖): 퇴계는 조광조에 대해 “論闢異端, 欲先正本, 素履有聞, 而才足以率世, 英華發外, 而風足以動人.”이라고 평가한다.




치국의 관점에서 노불을 비판한 것은 퇴계가 선조에게 올린 「戊辰六條疏」의 제 4조에 해당하는 ‘도술을 밝힘으로써 인심을 바로할 것[明道術, 以正人心]’을 말한 것에 잘 나타난다. 퇴계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볼 때 우리나라[東方]의 이단의 해는 고려시대를 망국으로 몰고 간 불교가 심한데 그 폐단은 조선조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진단하고 아울러 노장의 허탄(虛誕)함을 문제삼는다. 이에 퇴계는 선비라면 기본적으로 왕도(王道)를 존숭하고 패술(霸術)을 천시하며, 정학(正學)을 숭상하고 이단을 배척하면서 치도(治道)는 반드시 수신에 근본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퇴계는 아울러 이단인 노불(老佛)의 무리가 일상적인 것을 싫증내고 가까운 것을 싫어하는 것과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하고 인식할 수 없는 묘명(杳冥)한 것에서 도를 찾고자 하는 것을 비판한다. 특히 노자는 성리학의 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규정한다. 이런 점을 형이상학 측면에서 리(理)를 허(虛)라고 했을 때의 의미를 통해 노장의 허무의 설과 다름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주자가 말한 “지극히 허[至虛]한 가운데 지극히 실[至實]한 것이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허하면서 실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허가 없다는 말은 아니고, “지극한 무[至無] 가운데 지극한 유[至有]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무하면서 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라는 것을 거론한다. 아울러 이런 점을 알지 못하면  『주역』에서 말하는 ‘형이상(形而上)’과 『중용』에서 거론하는 ‘무성무취(無聲無臭)’를 노장(老莊)의 허무의 설과 같은 것으로 귀결 짓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고 보고, 결과적으로 퇴계 자신이 말하는 허(虛)는 허이면서 실(實)이니 저들의 허가 아니고, 자신이 말하는 무(無)는 무이면서 유(有)이니 저들이 말하는 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단[=노장의 허무의 설]과 차이점이 있음을 밝힌다.

퇴계는 유가의 성인(聖人)과 예법을 중심으로 했을 때는 노자보다는 장자를 더 문제삼는다. 소옹(邵雍)과 장자를 비교하는 글에서 장자가 ‘훼성멸례(毁聖滅禮)’하여 명교에 병통이 된다는 죄를 얻은 것을 지적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울러 장자는 맹자가 말하는 ‘불망불조(不忘不助)’의 학을 보지 못했고, 장자의 ‘리세유물(離世遺物)’ 사유 및 ‘휴지체, 출총명(虧肢體, 黜聰明)’을 통한 좌망(坐忘)은 유학의 경학(敬學)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상과 같은 것은 퇴계의 노자와 장자에 대한 차별적 이해를 볼 수 있는 대목에 해당한다. 즉 퇴계의 노자에 대한 비판은 이단시하는 상징적인 비판을 제외하고는 크게 비판하는 대목은 없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조식(曺植) : 퇴계는 조식에 대해 노장에 빠진 병통이 있다고 하고 또 ‘기이한 것을 숭상하고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尙奇好異]’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 김인후(金麟厚) : 퇴계는 성균관에서 친교를 맺고 있던 방회물표(放懷物表)한 삶을 산 김인후가 초년 시절에 노장 사상에 빠진 적이 있다고 본다.



3. 노장사상에 대한 선택적 채용


이상을 보면 퇴계는 노장사상을 이단시하면서 배척하고 비판한 것만 같다. 하지만 다양한 시어에 나타난 노장 이해를 보면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성균관에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부모 봉양을 내세워 고향 가까운 고을의 수령을 신청하자 이황이 329자의 장편 송별시[送金厚之修撰乞假歸覲仍請外補養親恩許之行]를 건네는데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대 보지 못했나[君不見]? 북해의 곤어(鯤魚)가 천익(天翼)을 펼치고[鯤魚化作垂天翼], 붕새 되어 구만리 바람 헤치며 어디로 갔는지를[九萬搏風竟奚適]. 저 아래 여기저기 뱁새 무리[下有區區斥鷃輩], 오락가락 누릅나무 부딪치며 정말 즐겁다 하는군[搶楡控地皆眞樂].”


이 시에서 운용하고 있는 시어들은 모두 『장자』「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붕새 우화‘와 관련된 어휘들로서, 평소 퇴계가 장자가 말한 사유를 얼마나 체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료다. 양생을 비롯하여 수양 측면에서 주목할 것은 퇴계가 『노자』 10장에서 말한 ‘포일(抱一)’을 통한 은일적 삶을 피력한 것이다.


鑑湖何必勑榮歸 : 감호가 하필이면 빛나는 은퇴를 위로할까만

阿對泉迎舊布衣 : 아대가 채소에 물주며 옛날 포의지사를 맞아주네

但得此心能抱一 : 다만 이 마음이 ‘하나를 껴안을 수[抱一]’ 있다면

不妨漁者與爭磯 : 고기잡는 이와 낚시 바위 다툰들 무슨 상관있으랴


포일이란 용어는 『노자』 10장의 “載營魄抱一, 能無離乎.”과 22장의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두 군데에서 나오는데, 퇴계가 말한 포일은 『노자』 10장에 나오는 포일의 의미를 취한 것이다. 조선조 도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시습(金時習)은 ‘도교의 참된 진리를 닦는다[修眞]’라는 글에서 포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저 양생이란 오래 서 있고 오래 다니고 오래 앉아있고 오래 누워있고, 오래 보고 오래 듣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 그 요점은 세가지를 보존하고 하나를 껴안은 것[存三抱一]에 있다. 세가지[三]는 정, 기, 신이고 하나[一]는 도다.


즉 장생구시(長生久視)하는 양생법의 핵심은 정기신을 보존함과 동시에 ‘도를 껴안는 것[포일]’에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노자의 포일은 “맹자의 구방심(求放心), 석씨의 목우(牧牛)” 혹은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 불가의 ‘만법귀일(萬法歸一)’ 등과 더불어 노자 사상의 특징으로 말해진다. 홍석주(洪奭周)는 자신의 『노자』 주석서인 「정노(訂老)」에서 ‘載營魄抱一’을 ‘연기와 섭생의 요점을 말한 것이다[言煉氣攝生之要]라고 규정하고 있다.


퇴계는 이밖에 “고요하게 비고 희어 방에는 먼지도 없구나[湛然虛白室無塵]”라고 읊는데, 마지막의 ‘허백실’은 장자가 말하는 ‘허실생백[虛室生白]’ 사유를 응용하여 자신의 마음에 한점의 티끌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밖에 자연의 작용에 대해 “자연의 조화는 풀무가 된다[造化爲橐籥]’라는 사유를 말한다. 이것은 『노자』 5장의 “天地之間, 其猶橐籥乎”를 응용한 것이다.


이처럼 퇴계는 때론 노장이 말한 사유를 빌려 바람직한 삶의 한 전형을 제시하거나 양생 혹은 우주론을 이해하기도 한다. 퇴계의 이단관 및 노장 이해를 규명할 때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4. 나오는 말


퇴계는 노자가 강조한 신퇴(身退)한 이후에 비둔(肥遯)의 삶을 추구하였기에 오늘날 우리곁에 위대한 유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상 본 바와 같이 유학 차원의 이성적 삶을 산 퇴계가 아닌 시를 읊고 자연 산수와 서예 등과 같은 예술을 통해 완물적정(玩物適情)의 운치있는 삶을 살고자 한 감성적 퇴계, 그 감성적 차원에서 받아들인 노장철학에 대한 사유가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규명할 때 퇴계의 온 모습이 제대로 들어날 수 있다. 퇴계의 삶과 철학 속 깊은 곳에 노장철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심도 있게 규명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