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율곡의 차이점[3] : 율곡 기론과 명리(1)
- 578호
- 기사입력 2026.01.02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396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퇴계와 율곡의 차이점에 있어 핵심은 퇴계는 주리(主理) 차원에서, 율곡은 주기(主氣) 차원에서 각각 자신들의 학설을 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인물의 논지는 이후 보는 관점에 따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정약용(丁若鏞)은 「이발기발변(理發氣發辨)」에서 퇴계의 주리는 인심에 초점을 맞추어 맞춘 것이고, 율곡의 주기는 태극(太極) 이래의 이기(理氣)를 총집(總執)하여 공론(公論)한 말이라고 규정하고, 결론적으로 주장한 뜻이나 가리켜 말한 것이 각각 다를 뿐이지 어느 한 분에게 잘못된 것은 없다고 한다.
이런 정황에서 주목할 것은 율곡이 기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한 결과 기론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이른바 인간의 부귀, 수명, 건강 등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주리 차원의 퇴계에는 이런 언급이 매우 드물다. 물론 이같은 기와 관련된 부귀, 수명, 건강 등이 율곡 철학의 핵심은 아니다. 하지만 기론 차원에서 볼 때는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율곡은 기에 관한 다양한 용어를 제시한다. 천지의 기, 천지를 떠도는 유기(游氣)를 비롯하여 진원(眞元)의 기, 호연지기, 오행과 관련된 기[수·화·목·금], 범인의 기, 금수의 기, 정기(精氣)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기에 대한 언급 가운데 인간의 수요(壽夭), 부귀, 개개인의 성향과 관련된 천지의 기와 유기의 청탁(淸濁) 등은 논의의 중심이 된다.
▲ 張載는 太和를 우주 본체로 삼았다. 이런 太和의 太虛 가운데 기가 모이고 흩어지면서 이들이 서로 화합하여 여러 가지의 사물이 이뤄지게 된다.
張載는 태화란 도가 밖으로 드러난 모양으로, 道의 본래 생김새를 太虛라고 불렀다.
2. 유기(游氣)의 청탁과 다양한 인간상
‘떠도는 기[유기(游氣)]가 먼저 음양의 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자.
문: 음양이 순환하여 계속되는 가운데 유기가 출현합니다. 음양의 기는 본래 맑은 것인데, 유기가 생긴 뒤에 비로소 청탁으로 나누어집니까?
답: 음양과 유기는 두 가지의 다른 기가 아니다. 만물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으로 말하면 유기라고 하고, 쉬지 않고 연속해서 도는 것으로 말하면 음양이라고 한다.
율곡이 유기는 음기와 양기가 일음일양(一陰一陽) 하면서 순환하는 가운데 형성된 기라는 점에서 음양과 유기는 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유기의 청탁 유무에 대한 답은 없다. 기타 유관된 질문을 보면 유기에는 ‘맑은 것[淸]과 탁한 것[濁]’과 ‘순수한 것[純]과 잡박한 것[雜]’이 있다.
문: 서재에서 여러 벗들이 서로 강론하기를, “천지의 기는 지극히 통하고 지극히 맑은 데, 유기는 어떤 것은 탁하고 어떤 것은 맑고, 어떤 것은 잡되고 어떤 것은 순수하니 무슨 까닭인가?” 하였다.
답: 천지의 기가 본래는 맑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순환하는 동안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런 까닭에 역시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한 것이다.
위 대답은 김진강이 한 것인데, 율곡도 동의한다. 일 년 사계절 동안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운행하는 동안에 많은 유기가 발생하는데, 유기 자체는 고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즉 유기의 유동성이 갖는 불확정성을 강조한다. 이같은 유기의 유동성에 의한 불확정성에 의해 청탁과 순잡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고르지 않은 것일까?
문: 본체의 기가 이미 맑은데, 그 속에서 나온 기가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여 고르지 않은 까닭을 모르겠다.
답: 비유하면 본래 맑은 물이라도 흔들려 그치지 않으면, 작은 찌꺼기가 저절로 생기는 것과 같다.
이같은 청탁과 순잡이 있는 유기는 이기론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 사람이 태어날 때에 맑은 유기를 타고난 자는 그 리(理)가 또한 맑고, 탁한 유기를 타고난 자는 그리도 탁한가?
답: 그 본체(本體)의 리로 미루어 보면, 맑은 기와 탁한 기의 리가 선(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기를 올라타는 리’로 이것을 논하면, 맑은 기의 리는 맑고 탁한 기의 리는 탁하다.
율곡은 리가 ‘맑은 유기와 탁한 유기’에 모두 적용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본체의 리’와 ‘기를 올라타는 리’로 구분하여 말한다. 본체 차원에서는 모두 맑지만 ‘기를 올라타는 리’의 경우는 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기의 맑고 탁한 것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다양한 가변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 太虛는 張載[橫渠]가 주장하는 氣一元論의 핵심. 태허는 곧 기이며, 기가 모이면 만물이 되고 흩어지면 소멸하는 것으로 설명
유학자들이 명리 차원에서 가장 궁금한 것 하나가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瞽瞍)의 기가 탁했는데 어떻게 해서 성인(聖人= 청기 100%)으로 추앙받는 순임금이 탄생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점과 관련된 율곡과 제자의 문답을 보자.
문: 남녀가 정기(精氣)를 합할 때, 유기가 거기에 합해진 다음에 사람이 태어납니다. 순임금이 태어날 때 아버지 고수의 기는 비록 탁하였으나, 지극히 맑은 유기를 받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것입니까?
답: 그렇다. 대체로 부모의 기는 분수(分數)가 적고 천지의 기는 분수가 많다. 그러므로 고수의 탁한 기가 천지의 맑은 기를 당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순임금이 성인이 된 까닭이다.
북송대 기철학자인 장재(張載)는 “유기가 어지러이 뒤섞이며 합쳐서 형질(形質)을 이루는데, 이것이 만 가지로 다른 ‘인간과 만물’을 나오게 한다.” * 라고 하여 유기에 의한 인간과 만물의 탄생을 말한 바가 있다. 율곡의 답변은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의 차이점을 통해 답변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임금의 부모가 합방했을 당시 천기의 맑은 기가 작동하여 순임금과 같은 청기를 부여받은 인물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즉 천지의 기는 인간 개인의 기에 비해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천기의 기가 많은 인간 가운데 순임금 부모에게만 ‘오로지 주어진 것’인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천지의 기가 인간세계를 두루 살피다가 어느 하나를 선택[순인금 부모]하여 주었다고 하면 천지의 기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게 된다. 천지의 기가 우연히 순임금 부모를 선택한 ‘우연’이란 말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가 둘이 아니기에 가능하다는 입장에서도 율곡의 견해를 비판할 수 있다.
율곡은 이밖에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의 영향력과 제어하는 능력에 대해 최상층과 최하층에 속하는 인물 탄생을 제외하면 중등 이하 인물들의 경우는 부모의 기가 유기를 주도할 수 있음을 말한다.
* 張載, 『正蒙』 「太和」, “游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
문: 사람이 태어날 때에, 평평(平平)한 유기를 타고난 자는 부모의 기가 주도하는 것입니까?
답: 유기가 지극히 맑은 것과 지극히 탁한 것은 부모의 기가 관여할 수 없으나, 중등 이하의 사람은 기를 받은 것이 맑지도 탁하지도 않기 때문에 부모의 기가 마침내 주도할 수 있다.
문제는 중등 이하의 사람을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규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중등 이하의 경우에 부모의 기가 주도할 수 있다면, 당연히 부모로서 맑은 기운을 받고자 할 텐데 그것과 관련된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즉 만약 부모의 주도로 100% 맑은 기운을 가진 자식이 탄생한다면, 탁한 기운을 가진 부모에게서도 공자 혹은 요순과 같은 인물 탄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의문시된다. 이런 점에서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가 어떤 관계성이 있는지를 알아보자.
▲ 〈孝悌文字圖〉. 孝자에는 잉어, 죽순, 부채, 거문고, 귤 등의 도상이 등장한다.
순임금은 거문고를 잘 탔고 효성이 지극했다는 점에서 孝字 가운데 있는 거문고는 효성이 지극한 순임금의 효성을 상징한다.
3.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와 관계
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는 하나다. 아울러 천지의 기는 부모의 기가 없으면 붙을 곳이 없다는 점에서 천지의 기는 항상 부모의 기와 더불어 논해야 한다. 이런 정황에서 천지와 기와 부모의 기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요구된다.
문: 처음 부여받을 때에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는 분수의 많고 적은 차이가 없는가?
답: 천지의 기는 분수가 많고, 부모의 기는 분수가 적다.
분수의 적고 많음에 따라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가 차별화된다는 것은 천지의 기가 갖는 광대함과 다양성 때문이다. 또 다른 질문은 천지의 기와 부모의 기에서 어떤 기가 ‘주(主)’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문: 천지의 기는 지극히 맑고 부모의 기는 극히 탁하니, 어느 기가 주(主)가 되는가?
답: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천지의 기가 주가 된다.
부모의 기와 천지의 기 중에서 주가 되는 것은 천지의 기다. 왜냐하면 천지의 기 자체가 보다 강력하고 광대하기 때문이다. 천지의 기가 주가 된다면 부모의 기로써 천지의 기를 바로잡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천지의 맑은 기가 주가 되어 작동하면,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와 같이 탁한 부모에게서 순임금과 같은 맑은 기운을 가진 성인이 탄생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천지의 기는 유기로서 작동하는데 ‘어떤 경우’와 ‘어떤 정황’에서 고수와 같은 인물에게 작동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연’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태교(胎敎) 차원에서 언급되는 것도 있다.
문: 『소학(小學)』에서 말하는 태교라는 것은 무엇인가?
답: 받은 기가 평평(平平)한 경우는 태교로써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극히 탁한 경우는 태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히 탁하다’는 전제 조건을 붙이지만, 탁한 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태교의 한계성을 지적한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같은 태교의 한계성 때문에 탁한 기운을 바로 잡을 수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인간이 태어날 것인데, 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없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인간은 태아가 극히 탁한 기를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없기에 낳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인간이 탄생하는지를 알 수 없고, 이런 점은 인류 역사의 많은 사건들이 증명하고 있다.
4. 나오는 말
▲ 〈橫渠撤皮〉. 장횡거[張載]가 스승의 상징인 ‘虎皮’를 거둔다는 그림으로 《藝苑合珍》에 실려 있다.
우측에 있는 인물이 張載, 좌측에 두 인물은 二程[程顥와 程頤]이다. 張載가 이정과 『주역』을 논하고 난 다음
“내가 지난날 강의한 것은 도를 혼란하게 한 것이다. 두 정씨[二程]가…주역의 도를 밝게 알고 있어 내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라 하고 호피를 거두고 陝西로 돌아갔다는 고사를 그린 것이다.
율곡이 유기를 중심으로 한 논의에서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유기의 가변성과 불확정성이다. 천지 사이에 떠도는 유기가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부여될 때 어떤 인물에게 청한 기운을 주고 탁한 기운을 주는지에 대한 것이 불분명하다. 따라서 유기의 인간에 대한 적용은 ‘우연’이란 식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율곡은 기가 발하면 리가 그 기에 올라타 주재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는데, 유기가 작용할 때 주재 역할을 할 수 있는 리에 대한 주재성에 대한 것도 불분명하다. 유기를 오늘날 과학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무엇으로 이해 가능한지도 논의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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