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는 시선에 담긴 철학(2) :
정선(鄭敾) <간화삼매경도(看花三昧境圖)>
- 585호
- 기사입력 2026.04.14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386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겸재 정선이 그린 〈간화삼매경도〉에는 두 개의 그림이 공존하여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하나는 집안 벽에 걸린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부채에 그려진 그림으로, 그림 속 그림이라는 메타적 구성을 보여준다. 집안 그림은 은거하는 선비가 산속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관폭도(觀瀑圖)’의 전형적 구성을 따르면서도 자연 속에서의 고요한 사색과 내적 수양을 강조한다.
▲ 鄭敾, 〈看花三昧境圖〉
쥘부채의 그림은 강가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을 담고 있는 ‘어부도(漁父圖)’에 해당한다, 두 그림 모두 일상적 삶 속에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은일적 삶을 지향하는 한가로움이 담겨 있다. 몸은 성시(城市)에 얽매여 있지만 이미 마음은 산수에 가 있고 싶은 욕망이 깃들어 있으며, 이처럼 마음속에 산수자연을 들여놓으면 산수가 곁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 두 그림 모두 궁극적으로 선비의 은일적 삶, 즉 자연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내적 여유를 실현하는 삶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경치 묘사를 넘어 철학적·윤리적 삶의 지향을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는 특히 유명화가의 산수가 그려진 족자나 어부도가 그려진 쥘부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기물이 아니었다. 도자기에 가까운 화분과 고급스러운 화분 받침 등과 같은 선비 주변의 기물과 환경은 단순한 부의 과시가 아니라, 마음과 사유를 정돈하고 이상적 삶을 구현하려는 마음가짐과 미적 취향을 보여준다. 이런 다양한 기물들은 모두 선비의 미적 취향, 인격적 품격,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이다.
▲ 鄭敾, 〈看花三昧境圖〉의 방안 〈觀瀑圖〉
2. 꽃과 하나 되기
이제 꽃을 바라보는 행위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살펴보자. 조선조 문신 박상현의 「꽃을 보면서 읊음(看花吟)」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저 꽃의 겉모습만을 사랑할 뿐(世人徒識愛看花),
꽃이 어떻게 꽃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네(不識看花所以花).
꽃 위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치를 살펴야 하니(須於花上看生理) ,
그런 뒤에야 비로소 꽃을 제대로 보았다 할 수 있네(然後方爲看得花) .
이 시는 자연을 감상하는 시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인식 방식 자체를 성찰하는 철학시다. 사람들이 꽃의 겉모습만을 사랑할 뿐,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꽃으로 피어나게 되었는지는 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서 시인은 꽃이 피어 있는 현상적 차원, 곧 소연자(所然者)와 그 꽃이 피어나게 된 근본 원리인 소이연지리(所以然之理)를 구분하며, 진정한 ‘봄’이란 후자에 대한 인식에 있음을 강조한다. 즉 꽃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감상이 아니라,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이치를 통찰하는 데 있다.
이때 ‘생리(生理)’는 단순히 꽃이 피어나는 생장의 측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꽃이 지는 과정 또한 생리의 필수적인 일부이며, 이러한 소멸의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열매가 맺히고 씨앗이 퍼져 다음 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생리는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고 포괄하는 개념으로,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근본 질서를 가리킨다. 이는 곧 일음일양(一陰一陽)으로 대표되는 변화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이러한 생리를 인식하는 일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앎에 이르는 유학적 공부, 곧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꽃을 본다는 행위는 감각적 차원을 넘어, 자연과 존재의 근본 원리를 깨닫는 철학적 실천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 鄭敾, 〈看花三昧境圖〉의 쥘부채의 〈漁夫圖〉
조선조 정조 때 문신인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이 지은 「꽃을 보며(看花)」라는 시도 보자.
사람들은 꽃빛만 바라보지만(世人看花色),
나만은 홀로 꽃의 기운을 보네(吾獨看花氣).
이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니(此氣滿天地),
나 또한 한 떨기 꽃이로다(吾亦一花卉).
앞서의 박상현 시와 같은 ‘꽃 감상’ 주제를 공유하지만, 결론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우주와 인간의 동일성[天人合一]을 드러내는 철학시다. 꽃을 본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는 ‘기(氣)’를 매개로 천지만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상, 곧 만물일체의 관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인식은 천지 사이에 충만한 기를 통해 우주와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파악하는 전일(全一)적 세계관이며, 동시에 자연과 생명의 상호연관성을 중시하는 생태미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시에서 말하는 ‘나만 홀로[吾獨]’라는 표현은 단순한 고립이 아니라, 타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개인적 감각이나 취향에 머무는 인식이 아니라, 보다 깊은 차원의 통찰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태도는 소옹(邵雍:邵康節)이 말한 바와 같이, 자기의 주관과 편견에 따라 사물의 겉모습[所然者]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이아관물(以我觀物)’을 넘어서야 한다. 대신 편견을 배제한 공정한 마음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며, 그 내부에 깃든 이치[所以然之理]를 파악하려는 ‘이물관물(以物觀物)’의 태도가 요청된다. 결국 꽃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적 인식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우주의 질서를 함께 통찰하는 철학적 행위라 할 수 있다.
▲ 鄭敾, 〈看花三昧境圖〉의 ‘작약(芍藥)’
3. 간화(看花)와 격물치지(格物致知)
휘종이 주도하여 편찬한 『선화화보(宣和畫譜)』 권15 「화조서론(花鳥敍論)」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행의 정수는 천지 사이에 순수하게 응집되어 있으며, 음양이 한 번 내쉬면 만물이 퍼져 번성하고, 한 번 들이쉬면 거두어져 수렴한다. 이러한 음양의 운동 속에서 꽃이 피고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 온갖 초목에 드러나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각각의 꽃과 식물은 스스로 형체와 빛깔을 이루며, 비록 조물자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은 아니나, 대자연의 조화를 드러내고 천하를 밝히며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기운을 조화롭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는 음양의 조화로운 운동이 내재해 있다. 천지자연을 이루는 조물주는 어떤 목적이나 의지를 가지고 작용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만물은 스스로 생성되고 스스로 변화한다. 이러한 사유는 노장(老莊)에서 말하는 자생자화(自生自化)의 관점과 맞닿아 있으며, 나아가 곽상(郭象)이 강조한 독화(獨化)와 무대(無待)의 사유와도 깊이 연결된다. 또한 소식(蘇軾)이 말한 ‘수류화개(水流花開)’도 이러한 자연의 자발적 생성과 변화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꽃은 자생자화하며 스스로 형체와 빛깔을 이루는 존재로서, 대자연을 아름답게 꾸미고 그 질서를 드러낸다. 인간은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향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연의 조화로운 기운과 대자연의 생리, 그리고 생명의 근원적 의지[生意]를 체득하게 된다.
청대 화가 추일계는 『소산화보(小山畫譜)』에서 회화의 근본 원리를 ‘조물재아(造物在我)’라는 명제로 제시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지천(知天)·지지(知地)·지인(知人)·지물(知物)의 ‘사지론(四知論)’을 전개하는데, 지천과 지물을 보자.
첫째, 하늘을 아는 것이다(知天): 만물은 하늘에서 생겨나고, 하늘에는 사계절이 있으니, 여름과 가을의 꽃에는 모두 잎이 있다. … 계절에 따라 자세히 관찰하고, 시기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도록 하여 각각 마땅함에 있다. 넷째, 사물을 아는 것이다(知物) : 사물은 음양의 기운을 받아 생겨나며, 각각 치우침이 있다. 양에 가까운 것은 꽃잎이 다섯 갈래로 피고, 가지와 잎은 반드시 마디를 깨고 나와 홀수를 이룬다. 음에 가까운 것은 꽃잎이 네 갈래 혹은 여섯 갈래로 피며, 가지와 잎은 반드시 마디를 마주하여 짝수를 이룬다. 이는 하늘의 도와 땅의 도가 나뉘는 것이다. … 신묘한 이치를 다하고 변화에 통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물을 궁구하여 앎에 이르러야 한다[格物致知].
이 가운데 ‘지물’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으로서 격물치지(格物致知)에 근거한 인식을 강조한다. 특히 ‘지물’에서는 식물이 음양의 기운을 받아 생성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 생장 방식 또한 음양의 편차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양(陽)에 가까운 것은 홀수의 구조를 띠고, 음(陰)에 가까운 것은 짝수의 구조를 띠는 등, 식물의 형상과 구조 속에는 이미 천지의 이치가 구현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형태 관찰을 넘어, 사물의 형상 속에 내재한 원리까지 파악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사계절의 운행과 그에 따른 자연 현상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格物), 이를 통해 사물의 생리(生理)와 생의(生意)를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대상의 본질에 부합하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때 회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음양의 조화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자연의 원리를 담아내는 작업이 되며, 화가는 그러한 창조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 곧 ‘조물주’에 준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하나의 꽃이 피어 있는 상태는 결코 정지된 순간이 아니다. 겉보기에는 고요하고 완결된 형태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여전히 음양의 운동과 기의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꽃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 한가운데 놓인 존재이며, 끊임없는 변화의 한 국면일 뿐이다. 그러나 일상적 인식에 머무는 인간은 이러한 변화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사물의 겉모습만을 고정된 상태로 받아들이기 쉽다. 따라서 꽃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감상이 아니라, 천지대자연의 운동 변화와 그 이치를 통찰하는 형이상학적 인식 행위라 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질서에 자신을 맡기는, 일종의 한가로움과 정신적 여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4. 나오는 말
한 선비가 여름 초입에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 부채로 땀을 식히며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꽃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때의 ‘꽃을 봄’은 단순한 휴식이나 감각적 감상이 아니다. 꽃은 피고 지는 존재이며, 그 생성과 소멸의 과정은 인간의 삶—탄생과 죽음—과 상응한다. 선비는 이러한 자연의 현상을 대상으로 삼아,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방법을 통해 그 안에 내재한 우주 자연의 법칙과 운동 변화를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꽃은 더 이상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매개로 자신과 연결되는 존재가 된다. 즉 꽃의 생성과 소멸을 관조하는 가운데, 선비는 그 변화의 원리에 감응하고 마침내 자신과 꽃, 나아가 자연 전체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감응(感應)은 단순한 정서적 울림을 넘어, 자신의 정신세계와 몸가짐을 바로 세우는 수양의 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꽃을 바라보는 이 순간은 결코 쉼이 아니라, 인식과 성찰이 지속되는 또 하나의 공부의 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꽃을 바라보고 기르는 행위의 수양적 의미는 조선 전기 문인 강희안(姜希顏)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꽃을 기르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마음을 닦고 덕을 기르는 실천적 방법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화분에 꽃을 기르고 돌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 더 이상 일상적인 수양의 방식으로 인식되지 않는 점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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