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의 차에 깃든 철학적 의미

  • 503호
  • 기사입력 2022.11.15
  • 편집 이수경 기자

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우리가 타인을 만났을 때 흔히 하는 두가지 말이 있다. “언제 식사 한번 하자는 것”과 “차 한잔하자는 것”이다. 식사하는 것이 장소나 음식 종류 등 조금 번거로운 점이 있음에 비하면 차 한잔은 덜 형식적이고 간편하다. 중국문화에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이 상징하듯 차는 동양문인사대부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음료였다. 그런데 누구나 다 마시는 차이지만 누가 마시느냐 하는 것에 따라 차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달랐다. 특히 문인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차 마시는 문화를 일반 서민들이 마시는 차 문화와 다른 점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런 현상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면, 차라는 식물을 통한 음다(飮茶)문화에 내재된 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문인다도풍 형성과 지향하는 미의식


중국문예사를 보면 문인예술가를 직업적인 예술가와 구별하여 차별화하곤 하였는데, 이런 점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화원 화가와 대비되는 문인화가, 공인전각가(工人篆刻家)와 대비되는 문인전각가, 사경서예가(寫經書藝家)와 대비되는 문인 서예가 등을 구분한 것이 그것이다. 우선 이런 사유가 강하게 나타난 시기가 중국 역사에서는 명대(明代)임을 먼저 기억하자. 이처럼 창작자의 신분을 통해 예술가를 구분하는 것에는 인품을 우선시하는 것 및 구별짓기[distinction]하는 사유가 담겨 있다.


동양예술에서는 ‘그 사람과 같다[如其人]’라는 사유를 제기한다. ‘마음의 그림[心畵]’차원에서 서예를 규명하는 서예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은 이런 점을 잘 말해주는데,  다도미학에서도 ‘다여기인(茶如其人)’을 말한다. 아울러 비덕(比德) 차원에서 다(茶)를 규정해 ‘군자여다(君子如茶)’ 등을 말한다. 이처럼 음다문화에서 인품을 강조하는 것이나 군자여다를 강조하는 것은 다(茶)를 단순히 양생이나 건강과 같은 실용 차원이 아닌 일종의 문인들의 ‘문화음료’로 이해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동일한 다(茶)라도 그 다(茶)를 접한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그 맛이나 운치가 달리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문인 다도미학 정립과 문화음료로서 다(茶)를 규명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송대와 명대의 문인 다인(茶人)들은 당대 다인들의 ‘음다수도(飮茶修道)’사상을 진일보 발전시켜 다(茶)에 ‘청(淸), 화(和), 담(淡), 결(潔), 운(韵), 정(静)’등과 유관한 품성(品性)을 부여 한다. 이런 점은 송대에 구양수(歐陽修)와 소식(蘇軾)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시와 화에서 소산간원(疏散簡遠)과 소조담박(蕭條淡泊), 평담(平淡)을 추구한 사유와 관련이 있다. 특히 명대에 이르면 이른바 ‘문인다도풍’이 형성된다. 당대의 음다(飮茶) 유풍은 왕공(王公)이나 조사(朝士) 등의 계층적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송대에 오면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없이 다(茶)를 일상적으로 먹는 쌀과 소금처럼 여겨 더 이상 과거 특수 계층에서 소비하는 음료 혹은 고상한 ‘문화식품’이 아니게 된다. 이런 변화 과정 속에서 문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한 우아하고 담박하면서도 탈속(脫俗)적 삶을 상징하는 ‘문화상징체’로서 다(茶)의 특수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에 명대에 오면 음다(飮茶) 행위와 관련하여 이른바 ‘문인다도’ 혹은 ‘아사다도(雅士茶道)’라는 의식을 강조하게 된다.


다(茶)에서 인품을 특히 강조하는 것은 명대에 와서인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육수성(陸樹聲)이다. 육수성은 『다료기(茶寮記)』에서 ‘전다칠품(煎茶七品)’을 거론하는데, 제일 먼저 ‘인품人品’을 거론한다. 다음 어떤 물이 좋은 물인지를 품평한 ‘품천(品泉)’, 불과 관련된 것을 기술한 ‘팽점(烹點)’, 다(茶)의 진미를 얻기 위한 조건과 관련된 ‘상다(嘗茶)’, 다(茶)를 어떤 환경에서 마실 때 가장 운치가 있는가와 관련된 ‘다후(茶候)’, 다(茶)를 함께 마시는 알맞은 반려를 읊은 ‘다려(茶侶)’, 다(茶)의 다양한 공효성을 말하는 ‘다훈(茶勳)’의 순서를 취한다. 이처럼 음다과정에서 인품을 제일 먼저 강조하는 사유는 다(茶)를 인간화하고 비덕화하면서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이 지향하는 고아(高雅)하고 탈속(脫俗)적 인간상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는 은일(隱逸)지향적 삶으로 나타난다. 이에 문인들은 음다(飮茶)를 통해 자신들이 지향한 삶과 철학 및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 자사호(紫沙壺)
자사호(紫沙壺)에 새겨진 글귀는 ‘바다를 봐야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觀海聽濤]’라는 것으로, 직접 견식을 넓혀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다. 

나라 강희(康熙)제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다. 강희제는 차 한잔을 마시는 순간에도 정치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무일(無逸)의 정신’을 표현한 문구다.


3. 차 문화에 깃든 ‘청(淸)’자와 비덕比德적 인품론


동양문인들은 다를 비덕의 입장에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의인화(擬人化)하여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소식이 「엽가전(葉嘉傳)」에서 다(茶)를 ‘세상을 구하는 선비[濟世之士]’로 의인화하여 이해한 것과 원대 양유정(楊維楨)이 「청고선생전(淸古先生傳)」에서 ‘청풍고절(淸風苦節)’이란 점을 거론하면서 ‘독지군자(篤志君子)’로 비유한 것이 그것이다.


당대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맛이 차가운[寒] 다를 마시기에 가장 적합인 인물로 ‘정행검덕(精行儉德)’한 인물을 꼽은 바가 있는데, ‘한(寒)’ 자가 갖는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다(茶)의 찬 기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전통적으로 ‘한’이 갖는 철학적, 미학적 의미와 연계된 해석이다. ‘냉(冷)’과 ‘한(閑)’은 주로 은자의 은일적 삶이나 탈속적 삶을 상징한다.  육우가 말한 정행검덕은 ‘청’의 범주에서 논해질 수 있다.  

이처럼 다도에서 ‘청(淸)’을 강조하는 것은 명대 육수성(陸樹聲)과 서위(徐渭)가 ‘전다칠류(煎茶七類)’를 말할 때 다(茶)를 함께하는 반려 부분에서 권력, 명예, 재물 등과 관련된 ‘세상의 맛[世味]’을 추구하지 않는 한경묵객(翰卿墨客), 치류우사(緇流羽士), 일로산인(逸老散人), 헌면지도(軒冕之徒) 등을 거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양유정이 다(茶)를 ‘청고선생’으로 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청’ 자와 ‘고’ 자에는 청빈한 삶이나 고오(孤傲)하고 청고(淸高)한 삶과 같이 탈속적이면서 은일적 삶을 살아가는 ‘은일자의 향기 있는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청’은 세속적인 권력, 명예, 재물 등에서 벗어난 맑은 심성, 허정한 마음, 고고한 은일적 삶과 관련이 있다. 당연히 다사(茶事) 활동 중에도 ‘청’이 요구된다. 이처럼 음다(飮茶)와 관련해 ‘다청(茶淸)’은 기본이고 ‘수청(水淸)’, ‘기청(器淸)’, ‘경청(境淸)’을 요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맑은 ‘인청(人淸)’과 심령이 맑은 ‘심청(心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차 한잔 마시는데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같이 다도에서 특히‘청’ 자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속된 것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런 청(淸)자는 ‘한(閑)’ 자와 밀접한 관련을 갖기도 한다. 사실 이처럼 문인들이 추구한 품격 높은 다풍은 모두 ‘차 한잔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상징하는 ‘일상의 바쁜 삶’에서 시간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 한가로움과 여유롭게 향기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무사(無事)에 바탕한 ‘한(閑)’이야 말로 다의 ‘지극한 맛[至味]’를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다품(茶品)의 청고(淸高)한 영성은 수신하고 양성(養性)하는 것, 정조(情操)를 도야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선령(仙靈)과 통하고 참선(參禪)하여 오도(悟道)하는 데 도움을 주고, 아울러 다(茶)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世俗)의 기반을 벗어나게 하는 공효성이 있다. 즉 문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속성이 내재된 음다(飮茶)를 우아한 삶과 탈속적 맑은 삶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동양문인문화에서 차 한잔에 깃든 철학과 미학적 의미다.


4. 나오는 말 : 心茶로서 다(茶)


차 한잔에 깃든 과거 동양문인 다도에 관한 이론을 습득한다는 것은 우리가 음다(飮茶)하는 데 왜 분위기, 장소 및 반려(伴侶)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형식적인 것을 강조하는가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흔히 ‘한복 입고 차를 다려 마시면 – 즉 격식을 차리고 차를 마시면 - 그 차맛이 좋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실제 격식을 차리고 차를 다려 마시면 차 맛이 좋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런 점은 문인들의 음다문화에서 내용과 형식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은 다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동양의 서예, 회화, 음악 등에도 고루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동양문화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양에서의 예술표현은 모두 심(心)을 표현한 것이고 본다. 예를 들면 회화를 사의화(寫意畵, 혹은 寫心畵)라 하고, 서예를 ‘심화心畵’라 하고, 문인정원을 ‘심원(心園)’이라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인들은 다(茶)도 마찬가지여서 다(茶)를 ‘심다(心茶)’라고 여긴다. ‘심다’라고 하면 단순 음용물(飮用物)로서의 다(茶)가 아닌 문화적이면서 철학적인 다(茶)가 된다. 이런 점에서 다는 인품을 갖춘 문인들이 추구한 청한(淸閑)한 삶과 품격 높은 미의식과 연계되었고, 궁극적으로 전통 문인들의 문화식품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오늘날 한잔의 다(茶)를 마시면서 문인 다도철학과 다도미학을 정립해야 할이유이면서 차 한잔에 깃든 철학적 의미다.

▲ 劉松年, 투다도(鬪茶圖)
송대에 오면 차의 색·향·미를 따지는데 공개적으로 어떤 차가 이런 점에서 탁월한지를 서로 겨루는 풍습이 생겼다. 이른바 ‘투차(鬪茶)’[혹은 명전(茗戰)]라고 불리우는 차맛 경쟁이 그것이다. 자신이 끓인 차를 따르는 사람, 그것을 맛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인물 형상이 당시 투차의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투차에서 최종 우승한 차는 최고의 차로 평가받고 아울러 그만큼 시장 경쟁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투차에서 우승하면 마치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좋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