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인사대부들의 놀이문화(Ⅰ)

  • 468호
  • 기사입력 2021.05.26
  • 편집 이수경 기자

글 : 조민환 교수 유학대학원 특수대학원장



◆ 무슨 놀이를 하며 즐길 것인가?


최근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좁은 공간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무엇을 하면서 지내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즐거움이 우리들의 ‘심신 건강’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더 나아가 우리들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가? 이왕 즐기는 삶 속에서 보다 ‘격조 있고 우아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놀이문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요구된다.


◆ 은일(隱逸)적 삶에 나타난 놀이문화 개략

◀ 그림설명 : 김희겸의 산정일장도 : 은사가 막 낮잠 자고 있는 시점을 그린 것이다.


전반적으로 숭아(崇雅) 관념을 근간으로 하여 일상생활의 심미화를 추구한 송대 문인사대부는 학자, 관료, 문사[문인] 삼위일체적 복합형 인재로서, 이들이 추구한 유가와 도가가 상호 공존하는 삶에는 다양한 놀이문화가 나타난다. 그들이 시심(詩心), 사의(詞意), 악정(樂情), 다운(茶韻), 서취(書趣), 화경(畵境)이 어우러진 ‘심원(心園)’ 차원의 원림을 조성하고, 발묵회호(潑墨揮毫), 평서제화(評書題畵), 청금대혁(聽琴對奕), 전명음시(煮茗吟詩), 담선논도(談禪論道), 금석비첩(金石碑帖) 감상, 등림유관(登臨遊觀)하는 아화(雅化)적 삶을 영위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담선논도(談禪論道)’는 ‘현실적 삶의 영역을 벗어난-방외[方外]’ 놀이 문화와 관련이 있고, 나머지는 ‘현실적 삶의 영역-방내[方內]’에 속하는 놀이 문화에 속한다.


숭아와 아화 추구의 놀이문화는 은일(隱逸) 지향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명대 도륭(屠隆)은 『은일적 삶을 살면서 남는 시간에 즐기는 것[考槃餘事]』’에서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16가지 놀이문화를 언급한다. 서전(書箋), 첩전(帖箋), 화전(畵箋), 지전(紙箋), 묵전(墨箋), 필전(筆箋), 연전(硯箋), 금전(琴箋), 향전(香箋), 다전(茶箋), 분완전(盆玩箋), 어학전(魚鶴箋), 산재전(山齋箋), 기거기복전(起居器服箋), 문방기구전(文房器具箋), 유구전(遊具箋)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자료를 통해 문인사대부들이 항상 접하는 16가지 종류의 기물, 도구 등에 대한 감상과 품평 및 선택에 매우 까다롭고 엄정한 기준을 제시하여 고상하고 운치있는 놀이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문인들은 함께 하는 친구 선택도 유별났다. 사람만을 친구로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윤선도(尹善道)가 「오우가(五友歌)」에서 읊은 ‘다섯 친구[水·石·松·竹·月]’를 비롯하여 ‘어려운 시절의 세 친구[歲寒三友:松·竹·梅]’가 있고, 문방사우(文房四友)[紙·筆·墨·硯]도 있다. 그들이 이런 친구들과 놀면서 어떤 즐거움을 누렸을까?


그럼 동양의 문인사대부들은 어떤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을까? 이런 점을 한말 중장통(仲長統)이 ‘내 뜻에 맞는 삶을 살면서 즐긴다[樂志論]’라는 것과 남송 라대경(羅大經)이 ‘고요한 산속, 늦봄 긴날의 하루[山靜日長]’ 등에서 말한 은사(隱士)의 하루를 통해 보자.


▲ 이경윤의 탁족도 부분. 불룩 나온 배는 이 인물이 과거에 부귀한 삶을 살았음을 상징한다.


첫째, 「낙지론」 : 낮과 밤에 행한 놀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낮의 놀이 : 산수 공간에서 산보하고 바람 쐬면서 한가롭게 노님, 탁족(濯足), 낚시와 사냥. ‘무우대(舞雩臺)에서 바람 쐬고 집으로 흥얼거리면서 돌아오기[詠而歸]’


밤의 놀이: 악기 연주를 통한 예술 향유적 삶, 노자의 현허(玄虛) 세계 탐색, 양생을 통한 지인(至人) 경지 추구,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도를 논하면서 우주 밖에서 소요하기.


둘째, 「산정일장」 : 낮부터 해질 무렵까지의 놀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낮잠[午睡], 텍스트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독서, 서화 향유, 음다(飮茶), 산보, 산속 친구들과 수다 떨기, 저녁노을 감상.


「낙지론」에서는 밤의 놀이까지 말하여 총체적으로 은일적 삶을 사는 은사들이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지냈는가를 보여준다. 「산정일장」에서는 송대 문인사대부들의 놀이에 서화가 첨가된 것을 통해 변화된 문화 상황을 보여준다.


이상 거론한 것에서 낮에 행한 것을 유가 차원의 ‘방내(현실적 삶의 영역)’의 놀이문화로, 밤에 행한 것을 도가 차원의 ‘방외(현실적 삶의 영역을 벗어난)’ 놀이문화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 유가 : 숭아(崇雅) 추구의 방내적 놀이


유가처럼 입신양명을 추구하면서 ‘천하를 (천자와 더불어) 자신의 책임으로 여긴다[以天下爲己任]’는 삶에는 한가로운 놀이문화가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아울러 항상 예법을 준수하고 자신의 욕망 표출을 부정적으로 여기면서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둔 ‘홀로 있는 것을 삼가는 것[愼獨]’과 경외(敬畏)적 삶에서의 놀이문화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점에서 곽상(郭象)이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의 ‘신인(神人)’을 ‘성인(聖人)’으로 풀이하면서 “성인은 몸이 나라의 정치판[廟堂]에 있더라도, 그 마음은 산림 가운데에 있다” 라고 한 것에 우아한 놀이문화가 들어갈 여지가 생기게 된다. 이런 사유는 특히 송대에 오면 조정에 있을 때는 유가, 퇴근 이후에는 도가라는 이른바 ‘유도호보(儒道互補)’를 추구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이에 예컨대 낮의 놀이 문화의 상징인 증점(曾點)의 욕기영귀(浴沂詠歸)와 밤의 문화의 상징인 주돈이(周敦頤)의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상징하는 쇄락(灑落) 차원의 놀이문화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놀이문화에서 우리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 거론해보자.


- 증점의 욕기영귀 즐거움


공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말하여 산수공간에서의 친자연적인 삶을 ‘비덕(比德)’ 차원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유가가 지향한 쇄락 차원의 즐거움은 증점이 말한 욕기영귀가 대표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각 하고 싶은 뜻을 말하라[各言爾志]’고 했을 때 증점이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욕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무우대(舞雩臺)에서 봄바람을 쐬다가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나는 증점을 허여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증점의 욕기영귀는 유학자들이 늦봄에 하루를 즐기는 유쾌한 놀이-쉽게 생각하면 봄소풍을 연상하면 된다-를 대표하게 된다. 동진(東晉)시대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를 비롯한 명사들이 회계산(會稽山) 아래 ‘굽이져 흘러가는 물에 술잔을 띠운다[流觴曲水]’라는 것으로 상징되는 ‘난정(蘭亭)에서의 아회(雅會)’는 이런 점을 실질적으로 행한 것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경주의 포석정(鮑石亭)을 연상하면 된다. 이같은 모임 형태는 이후 우아한 모임[雅集] 혹은 시를 통한 모임[詩會]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송대에 소식(蘇軾)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학자, 예술가들의 우아한 모임인 ‘서원아집(西園雅集)’은 그 대표적인 예다.


밤에는 이백(李白)의 ‘「달 아래에서 홀로 잔을 기운다[月下獨酌]」’라는 시에서 보듯 술을 마시면서 둥근달을 희롱하는 놀이를 즐기기도 했는데, 이런 모임과 놀이를 통해 잠시나마 문인사대부들은 일탈의 경계적 유희를 즐기곤 했다.


 그림 설명 :(왼쪽) 정선의 행단고슬도(杏壇鼓瑟圖) : 화면 맨 앞에 악기[瑟]를 무릎에 놓고 있는 인물이 증점이고, 나무 밑에 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공자다. (오른쪽) : 김홍의 〈서원아집도〉 부분


▲ 문징명(文徵明)의  난정수계도(蘭亭修禊图).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정황을 볼 수 있다. 정자의 가운데 앉은 인물이 왕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