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무살

안녕, 스무살

  • 315호
  • 기사입력 2015.01.09
  • 편집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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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정 사회과학계열 14학번

My 20 다 갔어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김예림의 노래 'goodbye 20'은 이러한 가사로 시작한다. 성균관의 많은 내 동기들, 많은 스무살들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스무살'을 보냈을 것이다. 그 많은 우리 스무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을 꼽자면, 위의 노래 가사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드디어' 스무살이 된 우리가 무언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한 해의 끝을 맞이하면서 나는 내년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설레기 보다 허탈하고 우울했다.

입시준비생이었던 작년의 내가 꿈꿨던 스무살이 이런 스무살이 맞긴 한 걸까. 모두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노래는 속삭이는데, 모두 그런 게 아니고 실은 나만 한 걸음 뒤처져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낯선 대학 사회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그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실은 그건 내가 모자라서가 아니었나.

우울감에 휩싸여 있을수록 더욱 나는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고 그 뒤에 남는 것은 내 스무살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학기를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있는 가족들은 그대로였고, 나는 마치 퍼즐 조각처럼 그 분위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난 마치 '열아홉의 나'와 같이, 1년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을까?

학교에 입학했다. 모두가 그러하듯이 3월에 많은 술자리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 모든 자리가 없어지던 4월에는 외로워했다. 대학 사회는 낯설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지만, 그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볼 친한 친구조차 없었다. 공허한 마음으로 동아리 활동을 했다. 6월에는 시험을 쳤다. 여름방학에는 소소한 일탈을 일삼으며 보냈다. 2학기가 되어서도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동아리 활동을 했고, 시험을 쳤다. 그렇게 나는 1년을 끝냈다.

내 한해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한 작은 활동들] 이라는 말로 축약되었다. 14년의 내 활동이 누군가에게 '멋지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근사한 '스펙'이 되진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거꾸로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멋진 활동을 해서 남들이 인정할만한 성과를 냈다 한들 그 한해가 내가 생각한 '스무살'과 같았을까? 내가 토익 990점을 따거나 큰 공모전에서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그게 진짜 내가 꿈꾸던 스무살의 모습이었을까, 그 자체가 내 스무살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다시 나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과연 내가 꿈꾸던 스무살은 무엇이었을까. 1년동안 고작 한 뼘 자란 열아홉 소녀가 스무살이 된다고 해서, 싹 다 변해버리진 않는다. 서류상 성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열아홉의 마음과 몸이 모두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그 순간 바로 대학생의 마음가짐과 생각을 품게 되는 것도 아니란 걸 나는 안다. 나 그리고 우리 스무살들이 바라 왔던건 아니었을까. 열아홉살 선을 넘어서는 순간 꿈꾸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앞으로의 꿈을 스무살이라는 그 한 해에 모두 투영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나는 오히려 편안해졌다. 내가 스무살의 문을 닫으면서 이토록 불안했던 이유는 나 하나가 못하고 뒤처져서가 아니라, 이제 막 이 사회와 만나기 시작한 나의 스무살에 스스로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무살은 '시작점'이지 결코 '도착점'이 아님에도 나는 스무살을 끝낸 지금 이 시점에 내 모든 결론과 성과를 찾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은 20대에 사회로 나아가는 내 첫 해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내 스무살은 분명 멋졌다.

'빛나는 스무살 청춘'. 사회가 스무살에게 붙이는 무거운 가면을 덜어내고 지난 한 해를 돌아봤더니 그 '아무 것'들 이야말로 가장 내 시간을 빛나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나는 거창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도 사소한 것들로 만들어진 올 한해의 시간속에서 행복했기에 내가 빛나는 스무살을 보낸 게 맞다는 걸 알았다.

우리의 스무살이 빛나는 시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시기에 우리가 빛나는 것들을 해낼 수 있는, 해내야만 하는 나이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진정 우리의 스무살이 빛나는 이유는 사회로 나가는 첫해에 맞는 어려움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서 성장하고,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가 빛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의 스무살을 보내면서 우울해 있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20대의 첫 1년을 잘 보낸 것을 축하해, 우리의 스무살은 충분히 빛났어!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