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르바이트 생활기

나의 아르바이트 생활기

  • 321호
  • 기사입력 2015.04.13
  • 편집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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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르바이트 생활기

이승희 정치외교학과(14)

토요일 오전 5시 30분. 다들 신나는 금요일을 보내고 깊은 잠에 빠져있을 주말 아침이지만, 나는 아르바이트에 가기 위해 아침 공기가 얹힌 무거운 눈꺼풀을 들곤 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과외, 학원, 공부방, 공항, PC방 등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접한 편이다.

 내가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끊임없이 하게 된 것은 부모님과 집안사정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부모님은 나에게 용돈을 알아서 벌어 쓰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원래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편인데다가, 동생도 둘이나 있으니 성인이 된 나에게는 신경을 덜 쓰고 싶으신 마음이셨을 것이다. 나도 이런 마음을 잘 알기에 군말 없이 알겠다고 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한 아르바이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 중 단연 가장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는 여름방학에 했던 인천공항 기내식 세척 아르바이트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아마 대부분 대학생들이 생소하게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하는 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기내식 그릇을 종류대로 분류한 후 세척 기계에 정갈하게 넣고, 세척 기계 뒤에서 그릇들을 받아 빈 박스에 정리하는 일이다. 그릇에 남은 음식물을 손으로 버려야 하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도 직접 옮겨야 하기에 비위가 좋아야 하며, 세척장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진동하므로 귀가 상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그릇과 물이 담긴 박스들을 번쩍 들어 옮겨야 하기에 강인한 체력과 힘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요, 주어진 일이 다하면 바로 새 일을 찾아나서는 부지런함도 필요하다. 게다가 하루 8시간 중에서 저녁시간 및 쉬는 시간 50분외에는 서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내가 이 일을 하며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 받았던 것은 무거운 박스를 옮기는 일도, 더러운 음식물을 치우는 일도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냉대와 또래가 거의 없이 혼자 일하며 느끼는 외로움이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아주머니들은 일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시지 않고, 작은 실수에도 나를 째려보시곤 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일을 하는데, 일 호흡이 맞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잔뜩 찡그린 얼굴뿐이었다.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늘 주어진 할당량을 채워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일만해도 산더미인데 내 일까지 신경써줄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노련한 40~50대 사이에서 젊은 내가 어정쩡하게 일하는 것이 그들 눈에는 참 못마땅했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쉼 없이 일하는 아주머니들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전쟁터 같은 세척장의 상황을 이해 못한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정과 상황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냉대에 눈물이 나고 억울한 생각이 든 것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하는 투정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저 아주머니들도 나만한 아들과 딸이 있을 거잖아. 아들, 딸 생각하며 나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주시면 안되나? 게다가 웃으면서 일하면 덜 힘들 텐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또래 친구들이나 아주머니들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아저씨들과 모여 밥 먹을 때마다 몰래 아주머니 욕을 하기도 했다. 아저씨들은 ‘저 여편네들.. 목소리만 크면 다야?’하며 혀를 끌끌 찼고, 내 또래들은 너무 힘들지 않느냐며 서로에게 신세한탄을 하곤 했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 탓에 내 또래들은 버티지 못해 2~3일 일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고, 항상 일손이 모자라기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왔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실수가 줄어들면서는 내가 새로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일을 가르쳐 줄 수 있게 되었다. 아주머니들과 달리 나는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실수를 해도 화를 내지 않아 나와 함께 일하면 일하기 좋다는 기분 좋은 소리들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 들려오곤 했다. 그럴수록 나를 냉대하고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던 아주머니들에 대한 원망은 더 깊어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180도 달라진 계기가 있었다.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일이 끝나고 퇴근하는 통근버스에서도 혼자 앉아서 가곤 했다. 누군가와 같이 앉는다고 하더라도 몸이 노곤한 탓에 잠에 빠져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일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면서는 통근 버스에서도 옆에 앉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래 친구들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대부분이 잠을 자기 때문에 주로 대화상대는 내가 욕하곤 했던 아주머니들이었다. 나한테 고함을 지르고, 냉대하고, 수시로 째려봤던 그 아주머니들 말이다. 작업복을 벗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만난 아주머니들은 손이 거칠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 아주머니들도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시끄럽고 바쁜 세척장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니, 통근버스에서 나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다. 몇 살이냐 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왔는지,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들을 많이 물어보셨다. 스무 살이라고 하면 놀라는 눈치였고,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두 번 놀랐다. 그중에서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 힘든 상황이라 조금 힘들더라도 학기 중에 쓸 용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곤 했다. 그러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씨가 곱고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이 고되어서 버티기 힘들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도 대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아주머니 자신들의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도 여자가 하기에는 일이 너무 거칠고 힘들지 않느냐고 되물어보면, 언제나 “힘들어도 어쩌겠어, 해야지...” 하는 체념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시고는 했다. 그들도 부양할 가족이 있고 나만한 대학생 아들, 딸이 있는 평범한 어머니들인 것이었다. 나에겐 그저 아르바이트로 잠깐 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에겐 생계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일에 예민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일에 숙달되어온 것이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이셨다. 그제 서야 나를 대하는 아주머니들의 태도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왔다가 금방 떠나버리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일을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이 단순히 비용이 많이 드는 소모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떠나, 정을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자식뻘 되는 학생들이 고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인간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다음날에도,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나를 대하는 방식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고함을 지르고 시종일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다만 변한 것은 그들의 그런 행동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였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어머니의 일터에서 저렇게 힘들게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홀대를 달게 받기로 했다. 나중에는 아주머니들과 친해져서 화내시면 능청맞게 애교를 부리기도 했고, 밥도 같이 먹으며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나의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시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도 우리 어머니께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몰래 욕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이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며 깨달은 것들이 많다. 학교 안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용돈을 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어야 하는 것이 억울했지만 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이 쌓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직접 돈을 벌어 쓰며 용돈을 받을 때와는 다른 돈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내식 세척 아르바이트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쯤 이러한 고된 일을 찾아서 해보는 것도 인생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