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면 기억되는 삶으로 바뀐다

기록하면 기억되는 삶으로 바뀐다

  • 323호
  • 기사입력 2015.05.12
  • 편집 김혜린 기자
  • 조회수 5804

글 : 통계학과 13학번 윤명지

정신없이 과제와 시험에 치여 바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이했다. 친구들도 만나고 책도 읽고 가끔 여행도 다니며 나름 방학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가 묻는다.

"요즘 뭐하고 지내?"
"나? 음...잘 지내고 있어!"

나는 분명 매일매일 무언가는 하고 있고 방학을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방학 동안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그저 "잘 지내고 있어." 라는 추상적인 대답만 나온다. 잘 지낸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뭐하고 지내?" 라는 말은 그저 오랜만에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인사말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다가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기가 시작되면 이러겠지.

"방학동안 뭐하고 지냈어?"
"음...방학동안 한 게 없어!"

바쁜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얻은 장장 2달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무책임한 대답으로 허무하게 넘겨버리다니. 물어본 친구한테도 민망하고 내 자신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워진다. 이것은 비단 나의 문제일 것이다. 하루하루 무언가 하며 보냈는데도 누군가에게 재미있게 들려줄만한 에피소드로 재구성하지 못하는 내 말재주 때문일까. 혹은 그날 있었던 일을 바로바로 말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내 성격 때문일까. 하지만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300프로젝트>라는 책 속에서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다. 바로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300프로젝트> 책 속의 저자는 이렇게 말을 한다.

"기록하면 기억되는 삶으로 바뀐다."

나는 다이어리를 고등학교 때 이후로 이제껏 쭉 써왔고, 매일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왜 들려줄만한 일상이 없다고 느낀 것일까. 다이어리는 '나만의 사적인 기록'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로지 내 위주의 생각들 중심이고 나만 알아보면 되는 기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이어리의 내용들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내 치부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느낌과 생각들을 분명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다른 사람들이 뭐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면 별로 들려줄 일상이 없다.

한편 오늘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보낸다면 어떨까. 공개적으로 블로그에 일상의 기록들을 남기는 것이다. 하루 동안 똑같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이미 하루를 흘려보내고 다이어리에 발생한 일의 느낌을 기록하는 것과 기록을 위해 그 일을 겪는 것에는 큰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기록하고자 하면 그 일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알아보고 기억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루를 보내게 되면 계속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게 되어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치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로 자기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지금 하는 나의 행동들이 남에게 보여진다고 생각하면 남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하고 더 성실하고 알차게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것은 또한 나 스스로 떳떳한 오늘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행동한다면 분명 오늘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블로그 기록의 효과는 단순히 오늘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지금 작성한 기록을 시간이 흘러 나중에 본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경험의 정도도 다르고 생각의 범위가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블로그 기록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므로 그 당시의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객관적인 타자의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면 그 당시의 부족한 점이 보일 수도 있고 그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찾을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일상과 생각들이 하루하루 쌓여 가다보면 블로그는 일종의 인생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 꾸준히 나만의 인생 포트폴리오를 기록하다보면 단순히 "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타인의 물음을 넘어서 "오늘의 내가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뿌듯해할만한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