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례 약학대학 명예교수

  • 472호
  • 기사입력 2021.08.11
  • 취재 홍보팀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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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갖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았을 뿐이에요


198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26년 반 동안 우리 대학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젊음의 열정을 바친 김경례 명예교수는 은퇴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예교수로서 은퇴한 것을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 교수는 말한다. “돈은 자유를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못 하잖아요. 이렇듯 그저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충족됐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생각해요.” 이러한 김 교수의 돈에 대한 신념은 김 교수가 우리 대학 약학대학 연구장학재단에 1억 원 기부를 결심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교수 생활 이전, 김 교수는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대학교 병원 약국에서 약사 수련을 받은 약사였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화학자’라는 꿈은 김 교수가 약사가 되고 나서도 버리지 못 할 만큼 큰 꿈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학을 결심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아버지께서는 반대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아버지 말씀엔 무조건 순종하는 사회 분위기였지만 그는 유학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런 김 교수를 보고 아버지께선 결혼을 조건으로 거셨다고 한다. “유학 준비를 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그의 사정을 들어보니 굉장히 공부하고 싶은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유학을 못 간다고 하더군요. 그를 조금만 도와주면 되겠다 생각하고 그와 결혼한 후 약국을 경영하였어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며 동시에 안정성까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에게 약사라는 직업은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약사 생활이 따분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즐거운 일들도 많았지만 아픈 사람들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유학을 가려고 약국을 타인에게 양도할 때도 김 교수는 주위에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꿈에 대한 열정을 갖고 꿋꿋이 나아갔다.


약학(분석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몇몇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중 우리 대학 약학대학에 교수로 발령받아 귀국하였다. 그러나 연구를 수행할 만한 분석 장비와 연구비가 부족해 타 대학교수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거나, 방학 중에는 자비로 지도 교수를 방문하여 실험을 수행하면서 논문도 내고 실험 재료들을 얻어 오기도 하는 등 각종 어려움에 부딪히고 이에 맞섰다. “정말 서러웠었죠. 제가 그 서러움을 알기 때문에 우리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들의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여 다른 기부자분들과 비교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일지 모르지만 기부했어요.”


대학원생들을 가르칠 때 김 교수는 3가지 ‘정’을 강조했다고 한다. ‘정’확도, ‘정’밀도 그리고 ‘정’직이다. “실험을 할 때 정확도와 정밀도는 다릅니다. 정확도는 측정이 실제 값에 얼마나 가까운 지를 나타내고 정밀도는 측정이 반복될 때 결과가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지를 나타내요. 이 두 가지를 항상 유념하고 실험에 임하라고 가르쳐요. 또 다른 하나는 정직이에요. 데이터를 속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분석한 데이터에 0 하나만 더 붙이면 더 빨리 실험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유혹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을 속이면 발전이 없습니다.”


김 교수는 젊은 청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키워드로 ‘열정’을 꼽았다. 조지 워싱턴 카버의 삶을 담은 ‘땅콩 박사’책을 선물로 주며 말했다. “아무리 경쟁 사회라 해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있어요. 개인마다 그런 자리를 찾아야 해요. 땅콩 박사의 열정을 가지고! 사회가 나 자신을 필요로 하도록 만들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만약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정 모르겠다 싶으면 1년 정도 휴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세상을 파악하세요. 우물 안의 개구리를 넘어 세상을 보세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설령 누군가가 길을 닦아주어서 실패 없이 자랐다 한들 넘어지면 끝일 거예요.”


약학대학 교수로서 재직하는 동안 캠퍼스 내에 있는 수련장에서 국선도 수련을 시작한 후 사범 자격증을 얻고 새로 시작하는 동료 교수들을 지도하였다. 또한 정년퇴임 후에도 10년 간 교수들을 지도하는 사범으로 봉사했다. 김 교수는 정년퇴임 전부터 백세 시대를 준비하는 건강 관리법에 관심을 가졌다. 관계되는 자료들을 연구 조사하고 업데이트하면서 건강한 몸 자세, 건강한 호흡법,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강의 자료를 준비하였고, 제자 교수의 초청으로 가을 학기 교양강좌 시간에 강의해오기도 하였다. 올해부터는 암연구재단의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정년 퇴임에 대하여 김 교수는 말한다. “미국인 친구가 은퇴하면서 저에게 말했어요. 정년퇴임을 영어로 하면 re‘tire’ment, 즉 타이어를 새로 바꾸는 일이라고. 누군가는 교수 생활을 열심히 했으니 쉬면서 노후를 즐겨도 된다고 하겠지만 저는 남아 있는 인생에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열정을 다해 제가 이뤄온 것들을 공유하며 다시금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 줄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타이어를 바꾼 거예요.” 김 교수의 타이어가 빛났고 현재도 빛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발견하면 어느 곳이든 그리고 어떤 일이든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임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