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역학관계의 설계자,
게임디자인학과 이재준 교수의 이야기

  • 527호
  • 기사입력 2023.11.13
  • 취재 이채은 기자
  • 편집 김민경 기자
  • 조회수 3147

모바일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저들이 단순히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모바일 게임의 백스테이지에는 게임 디렉터가 있다. 게임 디렉터는 다양한 요소를 배치해 유저들의 재미를 창출하고 역학관계를 창출해 내는, 그야말로 융복합 엔터테이너다.


우리 대학은 2024년부터 게임 디자인학과를 신설했다. 4차 산업형 게임 제작 및 연구 분야의 전문 인재를 양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게임 디자인학과는 4차 산업형 게임 제작 및 연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뿐 아니라, 실무 인재 양성을 위한 긴밀한 산학 협력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11월의 커버스토리는 게임 디자인 학과 교수이자, 최근 출시된 <워킹데드: 매치3>의 디렉터 이재준 교수의 이야기이다. 이재준 교수의 게임 디자인 학과에 대한 비전, 그리고 <워킹데드: 매치3>에 담긴 장치, 그 역학관계로 들어가 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상학과에 재직 중인 이재준 교수입니다. 올해 2학기부터 신설된 게임 디자인학과에서도 교수 겸직을 하고 있고, 컴투스 그룹사의 사외 이사로도 적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최근에는 워킹데드라는 게임을 디렉팅하는 등 게임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게임 디자이너가 최근 각광받는 직업인데요, 게임 디자인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게임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굉장히 다양해요. 놀이를 목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일 수도 있고, 놀이 경험을 설계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게임을 ‘재미를 위한 역학관계의 설계물’이라고 봅니다. 게임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게임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게임의 요소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의 역학관계가 생기거든요. 그 안에서 플레이어가 판단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기도 하죠. 이런 역학적인 관계를 설계하고 재미를 창출하는 것이 게임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게임 디자인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역학관계를 만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요. 게임 디자인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가 아직 연구가 깊게 이루어지지 않은 영역입니다. 어떤 디자인을 했을 때 사용자가 재미를 느끼고, 게임 자체가 성공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이 없어요. 한 번 성공한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이후에 무조건 성공한 게임을 만든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저도 2002년부터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제일 어려운 점은 ‘저도 모른다’는 거예요. 어떤 기획이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지 저도 몰랐던 것 같아요. 오래 일을 하다 보니, 경험을 바탕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저만의 체계가 생긴 것 같습니다.




| 게임 디자인과 게임 디렉팅은 조금 다른 일인데, 게임 디렉팅을 하면서 어려운 점도 디자인과 다를까요?


게임 디렉팅은 거대한 팀 작업입니다. 게임 디자이너, 비주얼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모두가 협업해서 하나의 게임을 만들어 내고, 게임 디렉터가 이 과정을 총괄하는 거예요. 게임 디렉터는 이 상황을 잘 디렉팅해줘야 합니다. 팀 작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갈등 상황이 생기게 돼요. 기획팀에서 제시한 코어 아이디어를 프로그래머가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든지, 비주얼 아티스트의 화려한 작업물이 게임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든지 하는 상황 말이죠. 게임 디렉터는 이 상황을 잘 조정해야 해요. 그러려면 실무적인 경험이 많이 쌓여야 해요. 프로그래머의 요구사항을 기획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하려면 실무적 경험이 쌓여야 하기 때문이죠.


| 게임 디자이너로 오래 근무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과거에는 게임이라는 분야 자체가 아이들의 시간을 뺏는, 별로 좋지 않은 콘텐츠로 인식되었어요. 혹은 시간 낭비로 여겨지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영화, 애니, 드라마처럼 하나의 여가생활, 혹은 미디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게임이라는 분야 자체가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게임이라는 분야도 완전히 산업화되고, 학술적으로도 의미를 갖는 시대가 왔습니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게임 관련 연구나 교육에 대한 수요가 생기게 된 거죠.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일할 때와, 게임 디자이너로 일할 때 둘 다 재밌어요. 게임디자인학과는 실무 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연습 삼아 만들어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네이버웹툰에서 IP를 받아서 게임을 기획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티칭을 위한 피드백’이 오가는 거죠. 반면 회사는 효율을 위한 조직이라 게임 디자인을 위해 피드백을 빠르게 받고, 단정적으로 일을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학생들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재미있고, 회사에서는 제 생각대로 빠르게 결과물을 낼 수 있어서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 뉴욕대와의 공동 프로젝트 작업 모습


성균관대 게임 디자인 학과 학생들은 ‘글로벌캡스톤게임디자인’ 강좌를 통해 IP를 이용한 게임을 디자인한다. 이는 뉴욕대학교와 진행하는 공동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네이버 웹툰의 IP를 얻어 프로토타입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 게임 디자인학과가 우리 대학에 신설되었는데요, 게임 디자인학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게임디자인학과는 대학원 과정에 신설되었습니다. 현재 미국 뉴욕대학교와 함께 네이버 웹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 과가 받은 네이버 웹툰의 IP 7개를 똑같이 뉴욕대학에도 제공하고, 뉴욕대학도 저희와 완전히 같은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게임 기획을 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임 디자인 학과에서 저희 과도 일종의 프론티어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이번 겨울에는 영상학과 학생들, 게임 디자인학과 학생들과 함께 뉴욕에 갈 예정입니다. 뉴욕대학 학생들과 협업해서, 진행된 프로젝트 중 괜찮은 작업물이 있으면 상용화, 창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계획 중입니다.


게임디자인학과는 실체가 있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과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만 보셔도 실무가 병행되고 있고, 창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트랙은 크게 세 개로 나누어집니다. ‘Game for academia’는 게임 리서치, 게임 관련 논문들을 읽고 연구하는 분야이고, ‘Game for industry’는 게임 창업, 비즈니스 사이트 등 기술적인 내용을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Game for change’는 목적성을 가지고 사회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기능성 게임’을 기획하는 트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게임으로 단순히 놀이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 보호에 관한 메시지를 주는 걸 목적으로 하는 ‘serious game’을 기획하는 거죠.




| 게임 디자인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 있을까요?


제가 가르쳐 보니, 게임이야말로 융복합적인 지식 기술 활용의 총체에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디자인, 스토리텔링, 비즈니스 모델 구현 능력까지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신설된 학과이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학생들이 아직 확보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외부 인력을 통해 채우고 있어요. 외부 전문 프로그래머를 수업에 같이 멘토로 넣는다던가, 네이버 웹툰 IP를 가져오는 방식으로요. 우리 대학이 모델로서 많이 참고하고 있는 뉴욕대학은 실무적 교육에서는 전문 프로그래머들, 예술대학 학생들을 팀으로 묶어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학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요.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인재들이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대학이 게임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검증된 교육 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게임 디자인에서는, 숙련된 게임 디자이너를 검증하기가 어려워요. 코딩은 그냥 시켜보면 되는데, 게임 디자이너가 실제로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지 검증하는 데에는 대중의 흥미와 관심도 들어가기 때문이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게임 디자인은 고정적인 대응 매뉴얼이 없는 분야입니다. 이 분야를 우리 학과에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커리큘럼이 만들어진 것이 우리 학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산업계에서도 게임 디자이너가 각광받고 있기에 우리 대학이 게임 디자이너에 대한 검증된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 출처: 성균관대 공지사항



| 최근에 디렉팅하신 게임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더 워킹데드: 매치3’은 어떤 게임인가요?


게임 이름에서도 보이듯, ‘워킹데드’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도 코믹스를 바탕으로 하고 게임 내부에 오리지널 캐릭터가 몇 개 있고, 스토리도 거의 원작 코믹스와 유사합니다. 게임에 맞게 저희가 조금 리터칭도 했지만, 스토리라인 자체는 원작과 강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바일 게임이 통계적으로 7분 내외로 플레이되서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스토리와 세계관을 구축하기가 어려워요. 저희는 유저들이 이미 아는 스토리를 게임으로 느끼면서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결국 유저들이 더 편하게 재미를 느끼기 위해 원작 스토리를 거의 그대로 라이센싱해서, 쓰리 매치 퍼즐을 결합한 RPG 게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퍼즐을 풀면서 게임 안에 등장하는 워커들(좀비들)을 내 캐릭터가 공격하는 게임인 거죠.


게임 안에서 구축된 스토리라인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킹데드 코믹스의 실제 세계관을 차용해서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나 주변 인물들도 확인할 수 있어요.


▲ <더 워킹데드: 매치3>의 3매치 퍼즐 화면 캡처 



| ‘3매치 퍼즐’이라는 개념이 생소한데요. ‘3매치 퍼즐’이라는 게 어떤 장치인가요?


애니팡이나 캔디 크러시 사가 해보셨나요? 그 게임과 같습니다. 3개의 같은 요소를 함께 배치하는 장치를 3매치 퍼즐이라고 합니다. 이 게임은 내 캐릭터가 워커들을 죽이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워커들을 마주쳤을 때 3매치 퍼즐을 맞추면 워커들을 죽일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해요. 맞춰진 퍼즐의 위치에 있는 워커가 죽는 형태로요. 만약에 내가 죽이고 싶은 워커 앞에 맞출 수 있는 퍼즐이 없으면, 유저가 귀찮아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유도탄이라는 장치를 하나 추가했습니다. 퍼즐과 무관하게 이 유도탄을 누르면 그냥 워커들을 죽이게 되는 거죠.


3매치 퍼즐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어요. 시간 제약을 줄 수도 있고, 움직임 제약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 게임의 재미는 ‘유저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감각’이에요. 일반적으로 RPG 게임은, 컴퓨터에 내재된 주사위가 무작위로 돌아가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유저는 자기가 왜, 어떻게 상대를 죽였는지 그 컨트롤 과정을 알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이 게임은 ‘3매치 퍼즐’을 기반으로 하니까, 유저들에게 공격을 직접 컨트롤하고 있다는 감각을 줄 수 있어요. 퍼즐을 통해 유저의 컨트롤 감각이 시각화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게임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진입 장벽이 낮으니,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죠.



| 현재 시장에는 다른 RPG 게임도 많은데요, 이 게임이 가지는 차별점이 있을까요?


저는 이 게임이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 코믹스의 IP를 입힘으로써 어마어마하게 풍부한 스토리텔링과 세계관을 갖췄어요. 실제로 게임에 나오는 대화 내용과 음악은 모두 미국에서 녹음했습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 연주자를 불러서 녹음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풍부하고, 고급 수준의 게임이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유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저는 진짜 이 게임이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4년 10개월간의 긴 제작 과정, 많은 비용이 사용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게임 안에 엔딩 크레딧을 만들었어요. 원래 모바일 게임은 크레딧이 없는데, 저는 이 게임을 애정하는 하나의 작품이라 생각해서 넣었습니다 (웃음).




| 이재준 교수님에게 게임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직업병이랄까요, 저는 이제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는 게 어렵습니다. (웃음) 게임을 하다 보면 기획의 단점들이 보이기도 하고, 디자인 장점들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제게 게임은 ‘애증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게임을 보면 그 뒤에 있는 개발자들의 고난과 밤샘이 떠올라요. 그만큼 힘들지만, 게임 안에서 어떤 문제를 처리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만큼 큰 것도 없어요. 애증의 관계네요.


| 마지막으로 게임 디렉터, 혹은 게임 디자인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게임 기획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물어봐요. 저는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인문/예술 분야에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겸손함’입니다. 내가 기획한 게임의 메커니즘 안에 유저들을 가두려고 하거나, 유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돼요. 사용자들의 피드백이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유저들을 비판하지 말고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해요. ‘게임은 플레이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설계를 받아들이는 대상에 대해 비판하면 안 되고, 대상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객관된 시각과 겸허한 자세를 가지고 계속 수정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이 일을 하기가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