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박물관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 기획전

  • 471호
  • 기사입력 2021.07.13
  • 취재 이채림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 조회수 5949

1946년 개관한 본교 박물관은 시류를 반영한 다양한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왔다. 우리 대학 박물관의 이번 기획전 주제는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이다. 21세기 현대사회의 정보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재가공이 용이해진 미술은 수많은 위작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류에 따라 감식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본 기획전은 한국미술에서의 모방을 재인식하기 위해 진위 논쟁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모방의 스펙트럼을 통한 그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최고의 감식안으로 손꼽히는 ‘오세창’에 주목하여 모방의 가치와 창조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에 대한 소개, 관람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와 더불어 주요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구성

본 기획전은 먼저 감식과 감정, 모방과 위작의 경계에 대한 간단한 개념 정리를 시작으로 한국 감정의 문을 연 위창 오세창(1864~1953)을 기점으로 근대 전환기에 다양한 창작 및 재현 방식을 소개한다. 구체적으로는 위창(오세창) 선생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재조명하고, 교우 및 시승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제시함으로써 한국 근대 미술의 흐름을 ‘창조와 모방’이라는 시각 속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이는 위창 선생의 감식안이 단순히 개인적인 성과가 아니라 과거 추사 김정희의 고증학을 계승하면서 동시대의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한 집단지성의 산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본 기획전은 오세창의 삶과 업적을 조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동시대 서화와 도자 등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풍부한 시각자료를 제공하여 관람의 흥미를 돋운다.


● 감식안

감식은 진위를 가리고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를 말하며, 감식안은 감식을 하는 안목 혹은 식견을 뜻한다. 감정은 위작을 판별하는 행위에서 시작되고, 위작은 상업적 목적 등 이득을 목적으로 복제하는 등 부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조작한 결과물을 말한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진정성과 창의성이고, 분류로는 창작과 모작, 방작으로 구분된다. 모든 창작 활동은 모방에 대한 학습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각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감식의 주안점은 모방이다. 창작의 내부에는 기준이 다양한 모방들이 섞여있고, 모방의 새로운 변형이 질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창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진작과 위작

두 산수화 중 어느 것이 진작이고 어느 것이 위작인지 구별할 수 있는가? 위의 작품이 진작이고, 아래의 작품이 위작에 해당한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감식안을 갖추어야 한다.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 기획전을 관람하다 보면 창조와 모방이 서로 뒤섞이며 서로 순환하는 것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위작에는 빨간 스티커가, 모작이나 방작에는 노란 스티커가 붙어 있어 어떤 작품이 진작인지 짐작해보고, 스티커를 통해 답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창조와 모방의 경계

서양의 미술이 창의적 결과물을 중시하여 모방을 거짓이라는 의미로 위작의 범주에 넣지만, 동양에서는 모방을 창작의 바탕으로 본다. 가령, 모방의 분류 중 하나인 ‘임모’는 기존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과거에는 글씨를 배우기 위해 중국이 왕희지, 안진경, 한석봉, 그리고 김정희와 같은 명필가들의 글씨를 모사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글쓰기 연습장에 쓰인 샘플 글씨를 따라 쓰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즉, 과거의 임모와 필사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교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글을 쓰는 사람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 위작

앞서 언급한 임모와 달리 진작이 아닌 것을 진작인 것처럼 속여서 특정한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위작이다.

위의 작품(“행복”/김구 위작1)은 백범 김구의 글씨체로 쓰인 위작이다. 백범 김구의 글씨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작이 판을 친다. 위작 가운데 1947년 9월 10일에 쓰인 행복이라는 작품은 대표적인 위작이다. 본 작품이 위작이라고 판명된 까닭은 다음과 같다.


낙관은 종이에 진짜로 찍힌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종이에 기름이 묻어 나왔지만 글씨는 인쇄본이기 때문에 종이 뒷면에 흔적도 없이 깔끔하다. 이는 행복이라는 작품이 글씨를 한지에 진하게 인쇄를 한 다음 낙관을 찍어 표구를 한 진품처럼 보이게 만든 위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위창 오세창을 엿보다

오세창은 아버지 오경석에 이어 추사 김정희의 고증학을 계승한 학자이자, 뛰어난 서예가로서 선조부터 수집된 수많은 서화를 정리하며 스스로 터득한 감식안을 바탕으로 서화 협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전문가들과 교류를 통해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한국 서화의 역사를 정리했다.


50대의 오세창은 수장가로서 ‘근역서휘’와 ‘근역화휘’를 완성하면서 기준작의 안목을 갖게 되었고, 60대의 위창은 최고의 서화가로서 ‘예술적 안목’과 함께 조선미술통사를 정리한 근역서화징을 통해 ‘고증학자의 안목’이 발휘되었고, 70대의 그는 근역인수의 정리를 통해 ‘과학적 기준의 안목’을 제시하면서 여러 전문가들의 안목을 결합하는 ‘집단지성의 안목’을 열어주었다. 그 가운데, 박물관이 소장한 <근묵>(34책)은 문인들의 편지인 간찰 총 1136점을 묶어 펴낸 것으로 이는 성균관대 박물관 소장으로 2009년에 영인 번역되어 5책으로 간행되었다. 오세창 나이 80세인 1943년에 엮은 것인데 포은 정몽주부터 근대기 서화가 이도영의 친필까지 600년에 걸친 1136명의 각종 글씨체가 수록돼 있다.


● 오세창의 감정법

오세창은 당시 거의 모든 문화재가 그의 감식을 거치면서 진위 여부가 가려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의 감식가로 알려져 있다. 오세창의 서화 감정법은 1926년 그가 김봉수에게 보낸 편지의 서평에 잘 드러나있다.


서평의 내용을 보면, 그는 먼저 작품의 보이는 서자의 정보를 확인하고 이들의 실재와 현황을 문헌 등을 통해 면밀히 고증하여 작품의 내용과 유래를 자세히 밝히는 한편, 작품이 서체를 자신이 기존에 수집, 정리하여 확인한 그들의 유묵과 대조하여 그 진위 여부를 판정하였다. 이러한 서화 감정법은 추사 김정희 이래의 서도금석학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고, 이후 검여유희강과 같은 서예가들에게 전해진 전통적인 감식안의 구현이었다.  그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판단하였다.  오세창은 작품을 볼 때 그림, 글씨, 낙관과 같은 작품의 외형뿐만 아니라 작가의 창작 의도, 작품 및 작가와 관련한 배경지식 같은 인문학적인 이해 등을 토대로 감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다각적으로 작품을 감정했다. 즉, 서화의 안목 감정은 특출한 안목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지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 서화첩: 근묵, 근역서휘, 근역화휘

오세창은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 권의 중요한 서첩과 화첩을 엮는다. 한 권은 편지글을 중심으로 옛 글씨를 모아 통사적으로 엮은 근묵이며, 또 다른 두 권은 다산 박영철의 요청에 따라 조선시대 서화를 모은 근역서휘와 근역화휘이다. 위창의 서화첩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진작과 위작을 감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묵>

근묵은 고려 말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우리나라 역대 명사들의 필적을 모아 1943년에 완성한 서첩이다. 본교 박물관이 소장한 <근묵>(34책)은 문인들의 편지인 간찰 총 1136점을 묶어 펴낸 것이다. 이는 우리 대학 박물관 소장으로 2009년에 영인 번역되어 5책으로 간행되었다. 그동안 미술사에서 서간은 예술로 취급하기를 꺼려 했는데 근묵을 통해 새로운 가치창출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근역서휘>

오경석은  대대로 물려받은 다량의 서화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고 하며 그 결과물이 근역서휘이다. 근역서휘는 3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왕의 어필을 비롯하여 각계 유명 인사들이 서간, 시축, 문고 부터 중인, 평민의 필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수집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필적은 대부분 서간 등에서 소품들로 선인들의 일상을 살필 수 있는 사회사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근역화휘>

근역화휘는 천, 지, 인 3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67점의 그림이 실려있다. 근역화휘는 조선 초기 안견의 작품으로 전하는 산수화를 비롯하여 신사임당, 이우, 진재해 등 작품이 드문 여러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있다는 점에서 한국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집단지성: 오세창과 그의 친구들

오세창은 많은 예술인과 모여 종종 시회를 가졌다. 오세창과 특히 가까웠던 사람으로는 난타, 이기, 석전 박한영, 성당 김돈희, 관재 이도영, 춘곡 고희동, 육당 최남선 등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한동아집’이라고 부르며 함께 술을 마시고 서화를 즐겼다. 그들은 당시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사적인 이야기,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모두 서화에 능할 뿐 아니라 고서화에 조예가 있는 인물들이어서 오세창의 감식안이 두터워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즉, 오세창의 뛰어난 감식안은 집단지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 동양과 서양의 융합

오세창의 친한 벗 중 한 명인 고희덕은 당대 대가로 알려진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에서 전통서화를 배웠으나 새로운 미술 사조인 서양 미술이 그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와 한국 최초의 서양 화가가 되었다. 그는 전통적인 산수화의 구도나 모티프에 서양의 수채화에 사용된 화법이나 색을 사용하여 원근법을 도입하는 등의 새로운 양식을 고안했다. 이는 동서양의 융합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위 작품에서 보다시피 그의 산수화는 전통적인 동양미술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색채가 나타나있다.


● 자기 

도자기는 중국의 특산물이다. 4세기 전후한 시기에 도기에서 자기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10세기 무렵 고려, 11세기 무렵 베트남, 17세기 일본을 거쳐 유럽에서도 18세기 초에 이르러 처음 제작될 정도로 친 근대사기 세계적인 첨단 제품이었다. 자기의 시대별 변화를 살펴보면 중국 것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해 한국적 특징을 점차 첨가해 나가는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본교 박물관에는 모방과 창조가 뒤섞이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시대에 따른 다양한 자기의 형태를 전시하고 있다.


● 학예사의 한마디

"본 기획전을 통해 자신만의 감식안을 갖추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본교 기획전 <감식안-창조와 모방의 경계>에는 위창 선생의 감식안이 모범적 선례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비중이 크지만 위창 오세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가 남긴 것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감식안을 가꾸어 나가는데 발판 삼았으면 합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감식안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본 기획전에서는 서화를 비롯하여 자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많이 전시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아요~  많이들 오셔서 관람하고 가셨으면 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