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지만 괜찮아”,
전홍진 교수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

  • 451호
  • 기사입력 2020.09.16
  • 취재 이지은 기자
  • 편집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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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너무 예민해”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예민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듯, 최근 우리 대학 전홍진 교수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알라딘 베스트셀러가 되며 널리 읽히고 있다. 책 소개에 따르면 출간 이후 바로 중국과 타이완에 판권이 수출됐는데, 흥미롭게도 이를 한국을 포함한 극동아시아인들에게 예민성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이렇듯 ‘공통의 관심사’인 예민함을 다룬 전홍진 교수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Q.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덕분에 예민함이 유별남의 범주를 벗어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예민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대학에 들어와서 적응을 잘하지 못해 휴학하거나 학업을 마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진료실에서 자주 만난다. 이들을 가만 살펴보면 예민한 성격이 많다. 학점이 낮게 나오거나 교제 중인 친구와 헤어질 때도 보통 사람은 수일이나 수 주 후 평상심을 차차 되찾지만 예민한 이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들어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꼭 나쁜 것은 아닌데,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자기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예민한 성격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들 중 어떤 부류는 그것을 잘 살려 성공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부적응자가 되어 점점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됐다.


Q. 책에 실린 30-40대 환자들의 사례가 10-20대 환자들의 사례보다 많았던 것 같다특별히 이유가 있나.

10-20대에는 예민한 특성이 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예민성은 대인관계를 맺을 때 주로 나타나는데, 학창 시절에는 힘들면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혼자 지내기 때문에 자기 성격을 뚜렷이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30-40대가 되면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결혼도 하면서 늘 타인과 부대끼지 않을 수 없다. 직장인들이 회사에 가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사나 동료와의 마찰 혹은 긴장관계 때문이다. 이처럼 이 나이대에는 숨어 있던 기질이 나타나 문제 상황들이 생겨난다. 현재의 10~20대들은 이 책에 나오는 30-40대의 사례를 미리 보면서 자기 성향을 어떤 식으로 조정해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Q. “자신이 예민한 것을 빨리 알수록 삶의 방향을 정하고 커리어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스스로의 예민함을 일찍 깨달은 10-20대의 경우 차후 진로 선택을 할 때에도 자신의 예민한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뜻인가.

자신이 예민하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진로 선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예민함은 장점이 될 수도,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민함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통찰력을 주고 남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가 높으면서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라면 새로운 아이템으로 창업을 시도해봐도 좋을 것이다. 남다른 생각으로 대중의 취향을 파악해 성공의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숫자에 민감한 사람이 회계사나 은행원이 된다면 실수 없이 업무를 잘해내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꾸로 만약 대인관계에 예민한 사람이 영업부서나 고객상담실에서 근무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어하며 에너지를 생산적이지 못한 곳으로 흘려보낼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Q. 현대인들특히 청년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을 따라가기도 벅차서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의 예민함을 쉽게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이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어쩌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유명인들이 보낸 청년기보다 지금의 청년들이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은 청년기 때 특히 중요하다. 한번 형성된 대인관계의 태도는 나중에는 바꾸려 해도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능력이나 타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자신의 특성을 무시하고 잘 못 알아차리면 30대 중반쯤 되어서야 자기 능력과 성향을 파악해 뒤늦게 새로운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10~20대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접촉면을 넓혀 나가다보면 자신의 성향이 남과 어떻게 다른지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Q. 일부 예민한 사람들은 책을 읽고 자신이 예민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어떻게든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수 있을 것 같다이런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예민한 성격은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특징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자신의 예민성을 알아차리고 이를 잘 키워나가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다만 예민성의 방향을 조절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작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며, 상대와 대화할 때 차차 자신의 기질을 잘 다스려 대화 내용에만 집중하고 디테일은 신경 쓰지 않는 방향으로 미세하게 조정해가면 된다. 특히 상대는 까맣게 잊어버린 내용을 계속 회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를 망쳐버리기도 한다. 과거의 세부 내용들은 커다란 줄기를 중심으로 기억하고 잊을 것은 잊기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현재에만 집중하면서 끊어내는 연습으로 바뀔 수 있다.

 

Q. 반면에책을 읽고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구나’,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은데나 정도면 심각한 편은 아니구나’ 등으로 위안(?)을 얻는 독자들도 종종 보인다. 의도한 반응인지.

그렇다. 예민성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이 책에서 나온 사례와 같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주위를 보는 시선도 달라질 뿐 아니라 자신을 성찰할 기회도 생긴다. 또 문제가 심각한 경우를 본다면 나서서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잘 모르면 이해가 안 되고 피하게 되지만 알면 알수록 예민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예민한 분들도 큰 위안을 얻을 것이다.


Q. 현시점에서는 코로나 블루’ 때문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바깥 활동이나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려워져 예민함을 잘 관리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까.

대학 시절은 오로지 지식만을 얻는 때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상호 교류 없이 인터넷으로만 강의를 듣는 날이 길어지면 심리적 내상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럴 때 우리가 잘 아는 뉴턴의 예를 들고 싶다. 그가 스물세 살, 케임브리지대학에 있던 시절 런던에도 흑사병이 돌았다. 이때 대부분의 학생은 권태로움을 못 이기며 힘들어했지만, 뉴턴은 수학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매일같이 계산식과 씨름했다. 마침내 이것은 근대 수학과 역학의 밑받침이 됐다. 비슷한 예로, 최근 몇몇 학술지에도 연구자들의 투고 논문 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출판사에 투고되는 원고도 또한 늘고 있다. 이처럼 어떤 이들은 우울에 빠지려는 자신을 북돋워 수학 문제를 푸는 데 몰두하거나 곡을 쓰거나 혹은 글쓰기를 연마한다. 대학생들도 이 시기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미래를 위한 더없이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Q. 끝으로예민한 성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20대에게 위안의 말을 전하자면.

예민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성격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예민한 사람은 자기 가족도 대체로 예민하기 때문에 예민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예민성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예민성이 자기 일에서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 특히 대인관계를 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여기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고 있다면 자신한테 문제가 없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만약 예민성이 심해져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통해 초기에 치료받아야 고생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뿐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통해 자신의 예민성을 조금 평평하게 하고, 주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자세한 정보를 담은 관련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1) 유독 한국인이 많이 보이는 정신적 이상 증상

https://1boon.kakao.com/papervore/mental?from=mtop

2) 예민해서 힘든 사람들을 위한 정신과 의사의 조언 | 예민성, 강박증

https://papervore.tistory.com/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