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남긴 감정의 잔재:
영화 <해피투게더> & <화양연화>

  • 535호
  • 기사입력 2024.03.14
  • 취재 이다윤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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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관통하는 정서라면 단연 ‘사랑’이 떠오른다. 우리가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점은 사랑이 현재 진행형일 때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을 때, 사랑의 기억이 봉인된 순간일 것이다. 이미 사라진 순간들을 추억하며 미처 거두지 못한 감정을 되짚어 보자. 사랑이 남긴 감정의 잔재를 매혹적으로 담아낸 영화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를 소개한다.



| 해피투게더 (1997)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그들은 오로지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고향인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함께 왔다. 그러나 아휘는 항상 제멋대로 떠나는 보영에게 상처를 받는다. 보영은 아휘에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떼를 썼고, 집을 비운 아휘와 전화하기를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아휘는 보영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아휘는 늘 일 때문에 보영을 홀로 두었다. 보영이 자꾸 그를 떠난 건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함께 있으면 외롭고 홀로 있으면 그리운,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의 극단. <해피투게더>는 낯선 공간을 떠도는 두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청춘의 고독과 불안에 관해 이야기한다.


고독의 정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외부인으로서 존재하는 아휘의 정체성에서 드러난다. 아휘는 아르헨티나에 살면서도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 ‘이구아수 폭포는 어디에 있어요?’를 ‘이구아수 어디?’ 정도로 말할 뿐이다. 소통 창구의 부재 속에서 그가 교류할 수 있는 인물은 한정되어 있고 계속되는 고립감은 아휘가 보영을 떠나보낼 수 없게 만든다. (보영과 함께 있는다고 고독을 떨쳐낼 수는 없었지만.) 아휘가 보영을 위해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하는 장면 역시 아휘가 이곳에서 철저히 외부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피자 가게 사장은 아휘가 '모짜렐라 피자'를 주문한 걸 들었지만 일부러 '나폴리탄 피자'라고 잘못 들은 것처럼 행동한다. 피자 가게 알바생도 아휘에게 곧장 피자를 전해주지 않고 기분 나쁜 농담을 덧붙인다. 아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아휘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에서 느꼈을 외로움을 짐작게 한다.


불안의 정서 또한 영화에 가득하다. 사건은 일으키지 않고 관객을 긴장시키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예를 들어, 경마에서 이긴 보영이 마권을 바꿔온다. 보영은 눈에 띄게 기뻐하며 소리를 지르고, 주위에는 수상한 사람들이 서 있다. 보영이 언제 돈을 뺏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면은 전환된다. 이 외에도 아휘가 쟁반에 유리컵을 가득 얹고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아휘가 반드시 넘어지거나 유리컵을 깨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위태롭고 불안하게 진행될 뿐이다. <해피투게더> 속 이러한 정서는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심리적 불안감과도 맞닿아 있다. 각종 위태로운 연출과 정착할 수 없는 공간에 머무는 아휘의 불안정성에는 중국 반환 이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안감이 투영되어 있다.


원제 '春光乍洩(춘광사설)'의 뜻인 '구름 사이로 잠깐 비추는 봄 햇살'처럼 그들에게 행복이란 찰나의 순간, 아주 잠시 머물다 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90년대 홍콩의 청춘들이 겪은 순간의 정서는 2024년의 청춘들에게도 여전히 공감받고 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시대,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랑의 형태 그리고 미묘한 순간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한 영화 <해피투게더>였다.



| 화양연화 (2000) 


첸 부인과 차우는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이사 첫날부터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각자 배우자의 것과 똑같음을 깨닫고 그들의 관계를 눈치 챈다.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고 감정이 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화양연화> 역시 아련한 사랑 그리고 미묘한 감정을 다룬 영화다. 다만 <해피투게더>와 달리 그 사랑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첸 부인과 차우의 사랑은 뜨겁지도 않고, 격정적이거나 거칠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들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아쉬움, 미련 같은 모든 감정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왕가위 감독은 의도적으로 두 주인공의 욕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한다. <화양연화>의 매력은 이렇게 절제된 사랑의 표현방식에 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미장센은 첸 부인의 의상이다. 첸 부인은 늘 치파오를 입는다. 첸 부인이 입는 형형색색의 치파오는 아름답지만, 사실 온몸을 조이고 압박감을 준다. 하숙집 주인들이 밤새워 마작한다는 핑계로 차우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날에도 첸 부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한숨을 내쉰다. 치파오는 그의 불편하고 긴장된 감정, 자신을 강하게 옥죄는 도덕관념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화양연화>는 두 연인의 감정을 대사가 아닌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옛날 사람들은 나무에 구멍을 파서 그 속에 비밀을 말하고는 진흙으로 막았대.” 차우는 친구 아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차우는 캄보디아의 유적지 앙코르와트로 가서 벽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나무가 아닌 캄보디아의 유적지. 왕가위 감독은 왜 이런 변주를 준 걸까. <화양연화>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시기가 오기 직전인 196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다. 혼돈의 시기에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상실과 불안의 정서를 공유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한 연인들이 훗날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돌아보는 느낌을 주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안 되는 인연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고 누구도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는 더욱 여운을 남긴다. 그들의 이야기는 허무하게 끝났지만, 결코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시절은 끝났어도 그들의 사랑은 고고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