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으로 누리는 문화생활, 명동예술극장

만원으로 누리는 문화생활, 명동예술극장

  • 318호
  • 기사입력 2015.02.25
  • 취재 정예원 기자
  • 편집 김예람 기자
  • 조회수 7461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명동은 쇼핑의 메카로 알려진 명소이며 우리학교에서 30분 내로 갈 수 있으니 여러 학우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도 명동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수많은 가게와 노점상으로 한 발 편히 딛기가 힘들 만큼 빽빽한 현재 모습을 보면 그 당시 풍경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명동예술극장은 현재 장충동에 소재한 명동 국립극장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동시에 문화일번지였던 명동의 과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2013년 3월 대형 포털인 네이버는 명동예술극장과 문화나눔을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극장 앞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활용한 벤치를 설치하여 휴식공간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문화생활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네이버 푸른티켓 제도를 개시했다. 네이버 푸른티켓은 청소년들이 쉽게 연극을 즐길 수 있도록 비용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로서 만 24세 이하까지 명동예술극장이 제작한 연극을 만원에 관람할 수 있다. 단 공연일과 좌석등급별로 판매수량이 제한되어 있으니 미리 좌석과 날짜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명동예술극장 회원만 가능하니 극장 홈페이지(http://www.mdtheater.or.kr/ko)에서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

  이 제도를 이용하여 1월 31일에서 2월 16일까지 상연되었던 연극 <어머니>를 관람하였다. 인터넷으로 예매할 때는 좌석 선택 후 할인 적용부분에서 네이버 푸른티켓을 클릭하여 매수만큼 선택하면 된다. R석 티켓 2장을 각 만원씩 2만원으로 결제하였으며 S석은 3만 5천원 A석은 2만원이며 R석은 5만원인 점을 감안할 때 굉장히 가격부담을 줄여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단 청소년임을 인증하기 위해서 티켓을 찾을 때 신분증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연극 <어머니>는 주연 배우인 손숙과 연출가인 이윤택의 15년간 협업으로 유명하다. 1999년 처음으로 주연을 맡을 당시 손숙은 앞으로 20년간 이 작품에 출연할 것을 약속했다. 그녀는 이 작품과 자신의 삶을 같이 했다. 주름을 그려 넣어야 했던 50대에서 극중 주인공의 나이와 같은 70대까지 한국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시나리오 작가인 아들 집에서 지내는 어머니 황일순은 자신의 생을 드라마로 쓰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서로 좋아했던 사람을 떠나고 논 서마지기에 나이 많은 홀아비의 재혼상대로 끌려간다.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는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첫사랑의 아이는 피난길에 병들어 죽고 만다. 남편이 죽을 때까지 남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뼈를 갈아 신주단지에 모시고 살았다. 집안일만 여자가 배울 수 있다는 아버지 밑에서 자신의 이름 하나 제대로 쓸 줄 몰랐다. 죽는 날에야 “황일순. 이젠 내 이름 석 자를 쓸 줄 알아요. 나도 이제 이 세상에 내 이름 석 자 남기고 가요.”라며 삐뚤빼뚤 글자들을 남긴다.

  연극에서 독특했던 장치는 베란다 문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된다는 점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 어머니의 과거 회상이 시작되며 문을 통해 죽은 남편이 그녀를 저승으로 데리러 온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 무대 위에 달린 모니터로 그녀의 이름이 천천히 써지는데 한글을 막 접한 아이의 글씨처럼 서툰 모습에서 연출의 디테일이 느껴졌다.

  소극장 연극으로 유명한 대학로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여러 연극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로에서는 대중적이거나 다소 가벼운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명동예술극장의 연극은 일상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보다는 진지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관객에게 행운일 것이다. 명동예술극장은 연극 전문 공연장으로서 재능 있는 연극인들의 무대를 제공함으로서 잊혀졌던 명동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한다.

  극장은 올 한 해동안 집과 가족, 우리 존재의 뿌리, 그리고 현대인이 상실한 인간 근원적인 소중한 가치들을 무대에 올린다. 늙은 아버지에게 등돌린 아들과 딸들(리어왕/4.15~5.10), 모성을 상실 당한 독재자(문제적 인간 연산/7.1~26),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아버지와 아들/9.2~25), 고아로 자라난 조씨(조씨고아/10.28~11.22), 그리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도 마녀로 몰린 잔 다르크(Saint Joan/12.2~28)까지 작품 속의 ‘문제적 인간’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부모와 고향, 조국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2015 명동예술극장 공연 라인업 소개 참조)

  이번 주말 친구들과 쇼핑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보기 위해서 명동에 들러 보는 건 어떨까. 단돈 만원으로 일상 속에 작은 행복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