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의 제왕, <br> 앤디워홀과 마주하다

팝아트의 제왕,
앤디워홀과 마주하다

  • 328호
  • 기사입력 2015.07.28
  • 취재 정예원 기자
  • 편집 김예람 기자
  • 조회수 7841

은빛 가발을 뒤집어쓴 채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정면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 앤디 워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미국 팝아트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팝아트의 제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보색으로 찍어낸 마릴린 먼로나 마이클 잭슨 등 그의 대표작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국내 최초 공개작을 포함하여 400여 점에 이르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 라이브’에서 9월 27일까지 전시된다. 관련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와 캠벨수프캔 시리즈로 뒤덮인 매표소 때문에 전시장 입구를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의 고향인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 워홀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전시회는 5단계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는 ‘앤디 워홀의 생애’, ’상업 디자이너에서 팝아트의 제왕으로’, ‘뉴욕 상류사회의 거울이 되다’, ‘폴라로이드 사진에 매료되다’, ‘죽음과 재앙’의 순서로 제목만으로 해당 전시품을 생각해보게 한다.

앤디 워홀의 본명은 앤드류 워홀라로 1928년 미국 이민자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허약한 체질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영화와 미술,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미술대학 졸업 후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다. 삽화를 실을 때 에디터의 실수로 이름에서 a가 빠졌는데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어 앤디 워홀로 활동했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당시 그가 집착을 보인 것은 슈즈 드로잉이었는데 후에도 그의 작품에서 여러 디자인의 슈즈를 발견할 수 있다. 일러스트에서 회화에 집중하기로 한 워홀은 만화적인 표현방식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지만, 당시 비슷한 방식을 구사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주제를 찾는다. 그 후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를 대량 제작이 가능한 실크스크린기법으로 표현한 캠벨 수프 캔 연작을 통해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 대량생산되어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과 상업영화의 꽃인 할리우드 스타를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그는 일상적인 이미지를 예술 작품의 소재로 제시하며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첫 전시 이후 워홀은 공장을 연상케 하는 은빛 공간의 스튜디오인 ‘팩토리’를 열었다. 작품을 창작하는 공간을 공장이라고 이름 붙인 데서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다시 흔들었다. 1960년대 뉴욕의 유명인사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그들과 함께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를 담은 실험적인 영상과 영화를 촬영한다. 뉴욕 상류사회의 유명인사로 기세등등하던 그는 68년 팩토리를 드나들던 한 여배우의 총격에 쓰러지고 몇 시간의 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이러한 시련에도 그의 창작활동은 더욱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출판되고 있는 잡지 "인터뷰" 외 여러 저서도 출판한다. 특히 상류층과 연예인들은 그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했으며 워홀은 이를 이용해 큰 부를 쌓는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는데 1장의 초상화 요청이 들어오면 그는 표현이 각각 다른 5장의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하여 의뢰인이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것을 보며 모두 사가면 금액을 할인해주겠다는 식으로 모두 판매하는 사업적인 수완을 발휘했다. “나는 상업미술가로 출발했으며 사업예술가로 마치기를 기대한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는 그의 말을 실천한 셈이다. 이외에도 소포 상자 안에 자신의 소품이나 우편물, 호텔에서 훔쳐온 수건 등을 담은 600여 개의 타임캡슐은 그 당시 시대상을 파악하는 데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선호했는데 인물의 특성이 잘 드러나며 실크스크린 회화로 바꾸기가 용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명인 외에도 이름 모를 사람들도 워홀의 피사체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병치레와 치명상을 입힌 피격 사건 등 죽음의 순간을 여러 번 겪은 앤디워홀은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죽음의 이미지는 그의 작품에 핵심적인 주제로 자리잡아 삶의 덧없음(Vanitas)과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순간을 즐기고 만끽하며 살았던 그지만 총기사건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58세에 담낭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인 만큼 앤디 워홀의 전시회는 과거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열렸지만 이번 ‘앤디 워홀 라이브’만의 독특한 포인트가 있다. 먼저 전시회로 이어지는 복도에 여러 소품이 놓인 포토존이 있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행과 함께 여기서 사진을 찍어보자. 작년에 앤디 워홀이 아미가 1000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한 미디어 아트 10여 점이 30년 만에 발견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국내 최초로 공개된 그의 자화상 외 4점은 관람객이 작품이 저장된 컴퓨터를 직접 조작함으로써 관람할 수 있다. 다음으로 외설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영화를 소개하는 어덜트 존이 2층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모니터에 흘러나오는 그의 작품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다. 수십 년 전의 반응을 상상할 수 있다. 아트샵의 맞은 편에 위치한 스크린 테스트 존은 유일한 체험 코너로 워홀이 했던 방식으로 영상을 제작해 기입한 이메일 주소로 무료로 보내준다. 그룹당 3분 정도 소요되지만 조금 기다리더라도 참여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가 쇼핑의 메카인 동대문의 새로운 명소인 DDP인 만큼 쇼핑과 문화생활을 밀접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앤디 워홀의 대표작인 ‘청록색 마릴린’이 900억 원에 팔리고 수천억 원의 규모로 경매가 이뤄지는 등 갈수록 현대인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일반인과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인 가치보다도 고정화된 예술의 틀을 거부한 용기와 자신감이 우리가 앤디 워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전시회는 그와 마주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전시 기간 : 2015년 6월 6일(토) ~ 9월 27일(일)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9시 (입장마감은 오후 8시까지)
- 전시 장소 : 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
- 관람 비용 : 성인(만19세~64세) 15,000원/청소년(만13~18세):12,000원/어린이(만7~12세):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