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트렌드를 읽다

TV 예능 트렌드를 읽다

  • 384호
  • 기사입력 2017.11.29
  • 취재 정혜인 기자
  • 편집 노한비 기자
  • 조회수 5685

선선했던 가을이 지나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다가왔다. 장미대선부터 지진으로 인한 수능 연기까지, 지난 1년간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를 스쳐갔다. TV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한편, TV 속 예능 프로그램은 각양각색의 소재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중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뷰티, 경쟁,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2017년 TV 예능 트렌드를 읽어봤다.


‘먹방’, 즉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이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먹방’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예전보다 현저히 줄었다. 먹방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재가 뜨고 있기 때문이다. ‘뷰티’ 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막론하고 수많은 뷰티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메이크업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케이블 채널에서 비슷한 유형의 많은 뷰티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다. ‘화장대를 부탁해’는 인기를 끌었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착안한 것이다. 연예인이 평상시에 사용하는 화장품들을 이용해 콘셉트에 맞게 메이크업 대결을 펼치는 포맷이다. 이처럼 음식에서 뷰티로 소재가 점점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겟 잇 뷰티’, ‘팔로우 미’ 등 스타들의 화장품과 화장법을 공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뷰티에 대한 관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비판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외모를 가꾸는 것은 자신의 의지임을 강조하며 예뻐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특히 요즘은 TV뿐 아니라 스마트폰이 발달해 어디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 뷰티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뷰티 유튜버들의 수가 그 실상을 말해준다. 외모를 꾸미고자 하는 욕구는 다양한 곳에서부터 비롯된다.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고 비난하는 수준의 외모지상주의는 근절해야 할 사회적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외모를 가꾸려는 욕구를 비난할 수는 없다. 앞으로 이러한 욕구를 채워줄 뷰티 프로그램들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작되길 바란다.


 지난해 처음 방송돼 올해 시즌2 까지. ‘프로듀스 101’ 아이돌 오디션은 케이블 방송인데 5%를 웃도는 시청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으로 탄생된 아이돌 그룹은 정상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민에게 선택받은 11명을 제외한 다른 연습생들도 각자 소속사에서 데뷔해 갓 신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큰 인기를 얻는다. 이처럼 데뷔 전에 인지도를 얻어 데뷔하고 나서 더 큰 성공을 이루는 많은 연습생들과 중소 기획사들의 바람이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다.

‘아이돌 학교’가 대표적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믹스나인’과 ‘더 유닛’이라는 프로그램은 오디션과 국민 투표라는 포맷이 ‘프로듀스 101’과 비슷해 이를 따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프로듀스 101’의 성공이 컸던 탓이다. 너도나도 ‘프로듀스 101’ 형식을 따라하려고 한다. 각 프로그램에는 데뷔했는데도 인기를 얻지 못했거나 중소 기획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잘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연습생들이 출연한다. 이처럼 아이돌 시장은 점점 더 포화되고 있다. 누군가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떨어져야 한다. 그 누군가가 동료여도 상관없다. 아이돌 경쟁 시장에서는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쟁이라는 포맷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두드러진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은 참가자들이 푸드 트럭 창업을 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가지 관문을 통과한 팀만 푸드트럭 장사를 할 수 있다. 잘되기 위해서는 일단 다른 팀을 눌러야 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관심은 젊은 층에서 꾸준히 있었다. 따라서 푸드트럭과 같은 음식점 창업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 이러한 관심은 경쟁 프로그램의 제작까지 이르렀다. 아이돌 시장뿐 아니라 음식점 시장도 이처럼 포화 상태이다. 매일 이렇게 우리는 수많은 경쟁 프로그램들을 시청하고 그것에 울고 웃는다.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말이 돌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만나 직접 해야하는 ‘연애’를 이론으로 배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새는 이 말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연애를 TV로 배웠어요’로 말이다. 그만큼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연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트 시그널’은 여덟 명의 남녀가 쉐어하우스에서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일과 그 속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패널들은 스튜디오에서 이들의 모습을 담은 VCR을 보고 각자의 감정이 누구를 향했는지 추측하고 이를 맞추면 상금을 얻어가는 형식이다.

‘내 사람친구의 연애’는 연인이 아닌 이성친구들이 출연해 자신의 친구가 다른 이성과 교류하는 모습을 본다. 이는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제작되었다. ‘내 딸의 남자들’은 남자 연예인들이 아빠로서 딸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형식이다. 세 프로그램 모두 방송될 당시 신선하다는 평을 들으며 많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러한 연애 프로그램들을 보며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 속 커플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며 시청자들에게 한 발 다가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제점도 제기되었다. 과연 출연자들이 진심으로 프로그램에 임하냐는 의문이었다. 리얼 예능 프로라는 포장 속에 자신이나 사업을 홍보하거나 방송출연 자체만을 목표로 나오는 태도는 진정성이 없어 시청자들에 대한 기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하트시그널’ 제작진 측은 촬영되는 모습이 100% 실제 상황임을 강조해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들은 연애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일이며 나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을 이용해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 TV 프로그램 속의 사랑이라는 소재는 신선함과 친근함을 승부수로 띄운 2017년의 TV 예능 트렌드 키워드라고 할 만하다.

뷰티, 경쟁,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1년의 TV 예능 트렌드를 정리해봤다.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들의 많은 부분을 케이블 방송사들이 주도해왔다는 점이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도 지상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TV 트렌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내년에는 좀 더 유익하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제작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