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맥주 이야기

우리가 잘 몰랐던 맥주 이야기

  • 385호
  • 기사입력 2017.12.14
  • 취재 신도현 기자
  • 편집 노한비 기자
  • 조회수 6935

최근 영국의 유명 세프 고든 램지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의 맥주 ‘카스’의 광고 촬영 차 방문한 것이다. 고든 램지는 광장시장, 홍대 등 한국의 유명 관광명소를 돌아보는 한편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 등 여러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고 귀국했다고 알려졌다. 맥주 광고 차 한국에 방문한 만큼 그가 한국의 맥주에 대해 극찬하는 모습이 SNS나 TV 상에 자주 비치곤 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고든 램지가 자본주의에 굴복했다”며 놀란 반응을 보였고 “고든 램지가 카스같은 맥주를 좋아한다”며 그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처럼 놀란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오늘 문화읽기에서는 전 세계의 나라 수만큼 다양한 맥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맥주에 대한 평판은 어떨까? 술이라는 음료 자체가 개인적인 기호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SNS나 뉴스 등의 자료를 참고한다면 어느 정도 맥주에 대한 인식을 알아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를 살펴보면 카스를 비롯한 한국 맥주에 대해 사람들은 주로 “물 같다“싱겁다”, “술이 아닌 것 같다”,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의 일종)을 말아먹기 위한 술이다” 등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심지어 이코노미스트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는 2012년 그가 쓴 칼럼에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는 한국 맥주”라고 언급했다. 여담이지만, 2012년 이 글을 쓴 다니엘 튜더는 후에 고든 램지와 한국의 맥주에 대해 트위터로 공방을 주고받게 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한국 맥주가 전 세계적으로도 맛이 없는 맥주에 속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고든 램지는 왜 ‘맛없는’ 맥주의 광고를 찍게 됐을까?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고든 램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든 램지는 영국의 유명 세프로서 과거 한국에서도 불었던 요리방송 열풍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키친 나이트메어’, ‘헬스키친’, ‘마스터 세프 US'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요식업 현장이란 어떤 곳인지 절실하게 알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가진 미슐랭 별(최고의 레스토랑에 주는 일종의 훈장과 같은 개념)은 총 16개에 달한다. 그러나 사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그의 뛰어나고 독창적인 요리 실력도 있지만 과격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말투 때문이다. 수많은 어록을 남긴 그의 ’맛없는 음식에 대한 욕설‘들은 SNS상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며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런 그가 한국 맥주 광고를 찍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국의 누리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카스의 섭외력에 놀랍다는 의견부터 한국 맥주에 대한 그의 시원한 욕 한마디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카스 광고 속의 고든 램지는 삼겹살, 치킨 등과 어울리는 맥주라고 극찬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실망 했고 그가 카스에게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일종의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급기야 ‘자본주의가 낳은 영국 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음식에 관해서라면 큰 자부심을 가진 고든 램지가 맛없는 음식 혹은 음료를 맛있다고 극찬할 리 없었다. 게다가 수많은 레스토랑의 경영주이자 세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수익을 자랑하는 그가 단순히 돈 때문에 카스 광고를 찍진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그가 버드와이저 같은 라거 맥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가 진심으로 카스를 맛있다고 생각해서 광고를 찍었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고든 램지의 취향이라는 라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맥주의 종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크게 에일과 라거, 람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람빅은 벨기에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어 실질적으로는 라거와 에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에일은 맥주를 발효시킬 때 위로 떠오르는 효모(상면발효효모)로 만들어진다. 이런 특성으로 에일은 상면발효 맥주라고도 부른다. 주로 영국이나 아일랜드 등지에서 만들어지는 에일 맥주는 과일과 같은 향긋한 맛과 진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흔히들 말하는 IPA 역시 에일의 종류 중 하나다.

라거는 19세기 중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발효 시킬 때 에일과 반대로 아래로 가라앉는 하면발효 효모로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라거는 하면발효 맥주라고도 불린다. 라거 계열의 맥주는 에일과 달리 과일 향이나 깊은 맛이 없는 대신 부산물이 적어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특징이다. 전 세계의 대부분 맥주가 라거 계열인 만큼 라거는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맥주다. 물론 라거안에서도 만드는 방식에 따라 다시 분류 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카스나 하이트 같은 맥주는 미국식 부가물 라거다. 물처럼 넘어가는 가벼운 맛이 특징인 미국식 부가물 라거는 100% 보리로 만드는 일반 라거와 달리 옥수수나 쌀 같은 곡물을 첨가해 맥주를 만든다.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독일에서는 홉, 맥아, 물 이외의 다른 재료를 사용하면 맥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유럽과 미국에서는 맥아와 홉 이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페일라거의 등장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맥주 회사들은 페일라거에 들어가는 부가물의 비중을 좀 더 높여 맥주를 출시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식 부가물 라거, 혹은 라이트 라거라고 불리는 맥주의 종류다.

라이트 라거는 홉을 가능한 소량만 사용한다. 이는 라이트 라거의 목적 때문인데 홉을 많이 쓰면 쓸수록 과일향과 깊은 맛을 낼 수 있지만 특유의 씁쓸한 맛 역시 추가된다. 깨끗한 뒷맛과 청량감을 중시하는 라이트 라거의 경우에는 맞지 않는 특성이다. 말 그대로 저풍미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라이트 라거는 질이 낮은 맥주일까? 그것은 아니다. 맛이 얇고 깔끔한 맥주이기에 잡미가 발생하면 그대로 돌출되는 특성이 있다. 오히려 에일과 같은 진한 풍미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트 라거를 만들고 유통하기 위해선 대기업급의 설비와 인력이 필요하다.

라거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유통되는데 한국의 맥주가 라거라면 왜 유독 한국 맥주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우리나라 맥주시장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맥주는 오랫동안 독과점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주류 면허라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앞서 말한 라거의 특성때문이다. 라거가 만들기 까다로운 만큼 대기업급의 기술력과 장비가 아닌 이상 시장으로 진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면허와 설비의 문제.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회사들은 왜 라거를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선 기업의 목표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기업의 가장 큰 목표는 누가 뭐라해도 이윤 추구다. 이런 입장에서 에일이라는 선택지는 그들에게 매력이 떨어지는 옵션이었을 것이다. 에일 맥주들이 그렇듯이 진한 풍미와 향은 대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때문에 맥주 회사는 호불호가 갈려 수요가 작은 제품보다 대중적으로 큰 수요가 있는 라거 맥주를 주로 생산하게 됐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독과점이 몇 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질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청량감이 좋고 맛이 좋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같은 제품만 지속해서 사용하면 효용이 감소한다. 이런 때 수입맥주, 라거지만 기존의 한국맥주와는 다른 맛을 가진 라거들 혹은 전혀 다른 에일의 등장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었을 것이다. 지속된 국내 맥주 소비로 인한 미미한 효용과 새로운 제품이 가져온 큰 효용의 차이에서 사람들은 이 차이의 원인이 국내 맥주 맛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곧 종강이 다가온다. 밖에서 마시기엔 추운 날씨지만 시험이 끝나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한 학기 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