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 예능 시대와의 작별

1인자 예능 시대와의 작별

  • 387호
  • 기사입력 2018.01.13
  • 취재 이현규 기자
  • 편집 주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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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연예 대상’에 대 이변이 일어났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연예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진행된 ‘2017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은 <미운 우리 새끼> 의 어머니 출연자 4인방에게 돌아갔다. 20%가 넘는 압도적 시청률을 보인 <미운 우리 새끼>에서 어머니 패널들이 보여주는 입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이 연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건 방송 3사 역대 수상자들을 통틀어서 전례가 없는 파격이다. 이러한 이변은 달라진 예능 트렌드가 만들어낸 예견된 이변이다. 1인자들이 중심인 예능이 점차 사라져 감에 따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대상 수상자를 선정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인자들이 예능의 중심이었다. 그들 없는 예능은 상상할 수 없었다. 유재석 없는 무한도전, 강호동 없는 1박 2일, 이경규 없는 힐링캠프는 불가능했다. 이러한 1인자들은 해당 예능에서 절대적인 기여도와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거두었다면, 그 프로그램의 ‘1인자’가 가장 큰 인정을 받았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MBC <무한도전> SBS <패밀리가 떴다> KBS2 <해피 투게더>가 성공했을 당시, 사람들은 해당 프로그램의 1인자인 유재석의 공헌을 압도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이로 인해 그는 절대적인 대상 후보로 군림할 수 있었다. 강호동 역시 마찬가지다. KBS <1박 2일> MBC <무릎팍 도사> SBS <스타킹>의 성공은 그가 없다면 불가능했다고 평가되었다. 그 역시 수많은 대상을 받으며 예능계의 유일무이한 1인자로 자리매김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된 그들의 이름은 방송 3사의 제각기 다른 예능에서도 발휘되었고,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손쉬운 방송 편성과 높은 광고수익 창출이 가능했다. 이 외에도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 대부분은 이경규와 신동엽, 김병만 등 강렬한 ‘1인자’들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기에 연예대상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최강 1인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자 승부였다.



예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인자 예능’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1인자 예능’이 부재한 시대에서, 최고 활약상을 보여준 독보적 1인을 꼽는 것은 어려워졌다. 연예 대상은 여전히 그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예능인에게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그 예능인의 활약이 그 예능에서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일례로 방송인 김구라는 ‘복면 가왕’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좋은 성과에 힘입어 ‘2015 MBC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KBS 연예대상’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방송인 이휘재에게 돌아갔다. <복면 가왕>은 음악 경연 예능으로 해당 방송에서 진행자의 영향력보다는 경연 참가자들의 영향력이 훨씬 큰 예능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마찬가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다양한 출연자가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진행자의 역량보다 출연진 개개인의 방송 능력이 성패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말할 필요도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흥행에 가장 크게 기여한 건 방송인 1명이 아닌 사랑이와 삼둥이로 대표되는 연예인 자녀들이었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들에서 중심을 잡고 출연자들을 조율한 예능인의 공은 크다. 하지만 과거의 ‘1인자 예능’에서는 ‘1인자’가 없다면 그 예능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강호동 없는 무릎팍도사’와 ‘이경규 없는 힐링캠프’는 상상조차 어렵다. 반면 ‘김구라 없는 복면가왕’과 ‘이휘재 없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일부 어려움은 있겠지만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1인자 예능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1인자 예능 전성시대는 과거 예능이 ‘리얼 버라이어티’ 위주라 가능했다. 2006년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돌풍을 일으킨 리얼 버라이어티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캐릭터가 분명한 다양한 인물들이 토크, 도전 등을 행하는 방식의 예능이다. 1인자들은 다양한 인물들이 참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역할을 담당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예능계의 주류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과도한 상황 설정,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관찰 예능’이 주목받았다. 관찰 예능은 2012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2013년 상반기부터는 완전히 예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MBC <아빠, 어디가>와 TVN <꽃보다 할배>, SBS <백년손님>이 대표적인 관찰 예능이다. 관찰 예능은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주제나 소재만 출연진에게 제공한 뒤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 카메라로 담아내는 예능이다. 제작진의 인위적인 설정이 아닌 일상 속 실제 모습을 익숙한 예능인이 아닌 신선한 인물(非예능인, 일반인)을 많이 등장시켰다.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관찰 예능 속에서 1인자들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다. 관찰 예능이 ‘1인자’의 독보적 위치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2017년에도 관찰 예능의 강세는 지속되었다. 싱글 라이프를 소재로 한 예능들이 돋보였다. 전현무에게 대상을 안겨준 MBC <나 혼자 산다>는 인기 웹툰 작가와 모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싱글 라이프를 유쾌하게 풀어내 큰 호응을 얻었다. SBS <미운 우리 새끼>는 허지웅이나 김건모와 같이 예능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의 일상을 일반인 어머니들의 입담과 함께 연출해 인기를 끌었다. 연예인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예능들 역시 돋보였다. 이효리 – 이상순 부부의 제주도 일상을 민박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보여준 JTBC<효리네 민박>은 ‘2017 예능 브랜드 대상’을 수상했다. 추자현 – 우효광 부부 등 다양한 연예인 커플들의 가감 없는 진솔한 일상을 보여준 SBS <동상이몽 시즌2>는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SBS의 ‘효자 예능’으로 떠올랐다. 우리 학교 동문이기도 한 배우 구혜선과 모델 안재현 부부의 소소한 신혼 생활을 담은 tvN <신혼 일기>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외에도 tvN <윤식당>과 채널A <하트 시그널>이 관찰 예능으로서 시즌 2가 기획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예능 트렌드는 언젠가 또 달라질 것이다. 공개형 코미디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관찰 예능으로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어떤 새로운 예능이 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예능이 변함없이 지친 삶 속에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물할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올 한해 새롭게 등장할 예능 프로그램들이 성균관대학교 학우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