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 Ga Ga’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 487호
  • 기사입력 2022.03.13
  • 취재 이경서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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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 밤, 지친 몸을 버스에 기대어 집으로 가는 길. ‘지지직’ 소리와 함께 감미로운 목소리가 버스를 가득 채운다. 우리는 그 목소리에 기대어 어떤 이의 사연을 들었고,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같은 주파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를 사연에 한마음으로 공감했다. 좋아하는 디제이가 골라준 노래는 공테이프에 담겨 애청곡이 되었다. 라디오는 오늘의 피로를 날려주었고,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


2022년, 다양한 시청각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우리는 라디오와 멀어져 있다.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다이얼을 돌리고, 테이프에 라디오를 녹음해 들고 다니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라디오를 즐기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말을 걸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이번 문화읽기에서는 오랫동안 청취자 옆을 지킨 라디오 프로그램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살펴볼 프로그램은 매일 밤 10시 5분, 53년째 방송하고 있는 MBC 표준FM 95.9의 ‘별이 빛나는 밤에’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할 정도로, 많은 청소년이 즐겨 들었다. 특히 별밤지기를 포함한 뮤지션들이 팀을 꾸려 공연하는 잼콘서트가 사랑받았는데, 지금은 전설이 된 가수들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DJ를 ‘별밤지기’라고 칭한다. 장수 프로그램에 걸맞게 지금까지 26명의 별밤지기가 거쳐갔다. 그중에서 이문세는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별밤지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무려 11년 동안 별밤지기로 활동했다. 그의 별명이 ‘밤의 문교부 장관’이었을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성덕선이 “문세 오라버니”라고 사연을 보낸 장면은 당시 많은 고등학생의 일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는 작사가 김이나가 27대 별밤지기를 맡고 있다. 매일 진행하는 코너에는 ‘하루 틈’이 있다. 하루 중 가장 진하게 남은 모습이 담긴 사연을 소개한다. 요일별 코너에는 음악 퀴즈, 청취자가 신청한 곡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 고전 같은 노랫말과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 등이 있다. 별밤지기 김이나는 다양한 코너를 선보이며, 약 2년 동안 별밤가족의 밤을 지키고 있다.



다음으로 볼 프로그램은 매일 오후 6시, 32년째 방송하고 있는 MBC FM4U 91.9의 ‘배철수의 음악캠프’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입니다.” 담백한 멘트로 시작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영미권 팝 음악 전문 방송이다.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DJ 교체 없이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팝 음악 전문 프로그램답게 많은 팝가수를 만날 수 있다. ‘시카고’와 ‘비욘세’, ‘두아리파’ 등 한국에 내한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방문했다. 이외에도 2016년과 2021년, 세계적인 팝 가수 ‘아델’의 신곡 라이브 음원이 선공개된 적 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배철수 DJ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거장 팝가수를 아저씨라 부르고, 때로는 음악 평론가 임진모와 티격태격하며, 이삼십대의 새싹 청취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솔직하고 친근한 모습은 영미권 팝 음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더불어 온갖 음악 관련 이야기를 푸는 코너부터 매주 특별한 주제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Sunday Special’까지, 다채로운 음악 코너를 갖추어 많은 청취자를 팝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면, 같은 주파수를 공유하는 것이 마치 한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라디오와 청취자는 서로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라디오는 단순히 청각에 의존한 매체가 아니다. 청각에서 나아가 또 다른 감각을 보여주는 매체이다.


버글스의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s’. 1979년도에 발표된 이 곡은 비디오의 등장으로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이어 1984년에 발표된 퀸의 ‘Radio Ga Ga’. 인생의 희로애락을 가르쳐 준 라디오는 아직 죽지 않았다며, 라디오를 예찬했다.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당시, 사람들은 라디오가 방구석 한켠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디오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록 그 자리가 한켠이더라도 그곳은 많은 청취자에게 안락한 공간임은 확실하다. ‘Radio Ga Ga’의 가사 속, 여전히 라디오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그 한켠을 꾸준히 지킬 수 있길 바란다.


“All we hear is Radio ga ga Radio blah blah Radio what's new Radio someone still loves you…You've yet to have your finest hour Radio”-퀸의 ‘Radio Ga 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