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나를 특별하게 간직하고 싶을 때

  • 488호
  • 기사입력 2022.03.28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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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성을 밟고 선 사람이 곧 80억 명에 이를 예정이다. 끝 모르는 공간 속 작디작은 행성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 마주치고 또 지나치며 셀 수도 없는 인연을 만들어낸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본 인생은 무한한 만남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증가하는 ‘개인’의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나’라는 개인이 갖는 고유성의 실체가 의심스럽다. 나는 과연 특별할까? 단순히 80억분의 1이라는 수치에 불과한 존재가 아닐까? 수많은 이들 가운데서 나를 잃는, 그리고 잊는 일이란 너무나도 쉽지 않을까?


사실 우리들은 이 회의감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여러 행동 양식을 보인다. 이번 문화읽기는 특별한 나를 특별하게 간직하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커스터마이징을 우리말로 풀면 주문제작이다. 이용자의 요구사항에 맞춰 기능과 디자인을 다양하게 변형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만족감과 소장가치를 높여준다. 작게는 이름이나 메시지 각인부터 크게는 재료와 디자인 전반을 달리하기도 한다. 글자 각인은 화장품, 무선 이어폰, 키링과 각종 문구류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요청에 따라 그림엽서를 제작하거나 신발과 액세서리, 핸드폰 케이스를 직접 디자인해 주문하는 것도 커스터마이징의 일종이다.



이색 커스터마이징을 경험하고 싶다면 여기를 주목하자. 독립출판사 ‘대화근처’의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 ‘다다랩’은 고객이 주문서에 적은 문장을 커피와 차, 칵테일로 제조한다. 주문 내용은 인용구, 그날의 기분, 원하는 맛 등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나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음료인 셈이다. 써 내려간 글에 향과 맛을 입히고 잔에 담아 돌려주는 과정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을 다다랩에서는 문장을 번역하는 일이라 칭하는데, 맛 또한 하나의 미적 표현 수단이라는 가게의 모토에도 걸맞다. 나의 언어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 내 감정을 보여줘 – 랜덤 다이버시티(Random Diversity)

기억을 회상할 때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시각과 청각 등의 감각, 그리고 그때의 자신이 느낀 감정이다. 감각을 온전히 재현할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장소를 다시 찾거나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것. 또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꽃의 향을 맡는 것. 하지만 감정은 다르다. 아무리 그때와 동일한 대상을 감각한다고 해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결국엔 잊힌다.



랜덤 다이버시티는 시간 속 사라질 기억들을 보존하는 체험형 전시다. 그곳에서는 감각이 일으킨 감정을 다시금 감각할 수 있는 물질로 환원해준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바로 뇌파 측정과 자체 알고리즘이다. 감정에 따라 변하는 뇌파를 탐지해 알고리즘에 적용하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물질이 출력된다. 현재까지 진행된 전시의 종류는 색 추출, 향 추출, 음 추출이다. 감정의 색과 향을 추출하는 체험에는 사진이 필요하다. 음을 추출할 때는 노래나 말소리, 특정 장소의 소리 등 음성 파일을 준비해야 한다. 머리에 쓴 뇌파 측정 장치를 통해 기록된 감정이 물질로의 변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우리 손에 잡히게 된다. 색과 향은 자그마한 병에 담긴 형태로, 음은 뇌를 안정시키는 핑크 노이즈 CD의 형태로 남는다. 누구든 자신만의 소중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놀라운 경험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 내가 속하는 곳은 – 유형검사 /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

오늘날 MBTI는 인간관계에서 뗄 수 없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나와 타인의 일면을 파악하기에 편리한 도구임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나, 자칫 편협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을 사기도 한다. 사실 이처럼 성격과 기질에 따른 집단의 구분은 예전부터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유흥의 일종이었다. 그것이 과학적인지 아닌지는 그 당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허무맹랑한 혈액형별 성격과 각종 심리테스트들이 그 예시다. 현재는 MBTI와 에니어그램 등 나름 명확한 근거와 기준으로 분류되는 유형검사가 인기를 얻는 추세다. 방구석 연구소나 푸망처럼 MBTI를 기반으로 다양한 테마의 유형검사를 제작하는 자아탐구 플랫폼도 등장했다. 나와 비슷한 다른 이들과 함께 집단을 형성하고 타 유형과 구분되는 특성을 내세우는 모습은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 타인과의 연결을 이루려는 욕구를 보여준다.



퍼스널 컬러는 타고난 신체의 색상으로 정의된다. 단순 피부색을 넘어 모발과 눈동자의 색에 따라 결정되는데, 크게 웜톤과 쿨톤으로 나뉜다. 두 색채는 사계절의 이름을 딴 봄/가을 웜톤, 여름/겨울 쿨톤으로 분류되고 거기에 명도와 채도를 반영한 브라이트, 뮤트 등 더 세부적인 구분도 존재한다. 이러한 분류는 배색 원리를 고려해 최적의 색 조합으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패션과 메이크업에 이용된다. 퍼스널 컬러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시기가 20세기 초인 데 반해 널리 알려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외부에 자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싶고, 스스로를 어떠한 집단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점차 높아지면서 퍼스널 컬러의 인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주는 상담소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관련 서적이 매년 쏟아지고 있는 현상은 개성을 좇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