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트렌드': 우리는 추억을 구매한다

  • 489호
  • 기사입력 2022.04.13
  • 취재 이경서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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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open run)’. 매장이 개장되기 전부터 길게 줄 서 있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안으로 달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오픈런’은 흔히 명품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최근 동네의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도 특정 상품으로 인한 ‘오픈런’이 나타나고 있다. 약 20년 전, 많은 초등학생의 주머니를 책임졌던 ‘포켓몬빵’이 ‘돌아온 포켓몬빵’이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되었기 때문이다.



‘돌아온 포켓몬빵’은 한 주에 150만 개 이상, 한 달 만에 700만 개 넘게 팔릴 정도로 그 인기가 상당하다. 예나 지금이나 포켓몬빵의 인기에는 빵이 품은 띠부띠부씰(떼고 붙일 수 있는 스티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띠부띠부씰을 사기 위해 포켓몬빵을 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과거에 많은 아이들이 띠부띠부씰만 챙기고 빵은 버리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빵의 종류는 출시 당시와 동일한데, 동봉된 띠부띠부씰의 개수는 1세대 포켓몬을 기반으로 구성된 151개의 스티커에서 8종이 추가된 159개다.


‘돌아온 포켓몬빵’의 소비층은 출시 당시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에는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그 인기가 퍼졌다. 하지만 현재에는 MZ세대들이 SNS에 빵 구매를 인증하거나 품귀 현상 속 빵을 구매할 수 있는 일종의 팁을 공유하며, 포켓몬빵 소비에 열중하고 있다. 첫 출시 당시 500원을 손에 쥐고 달려갔던 아이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어느새 월급을 쏟아부을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이다.


레트로 마케팅: 그때 그 추억 소환

단종된지 16년 만에 그때 그 추억을 소환하는 포켓몬빵이 다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레트로 마케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레트로 마케팅이란 일명 복고 마케팅으로, 과거의 제품을 현재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재현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다. 레트로 마케팅은 몇 년 전부터 방송업계를 비롯해 음악산업, 식품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식품업계에서 MZ세대를 겨냥한 레트로 마케팅을 통해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않은 자 모두를 사로잡고 있다. ‘돌아온 포켓몬빵’도 레트로 마케팅의 사례로, SPC삼립은 어렸을 때 포켓몬빵을 먹었던 M세대에게는 회상의 기회를, 먹지 않았던 Z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제공해 하나의 전략으로 삼았다.


뉴트로 마케팅

레트로 트렌드가 소비 전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레트로 마케팅에서 한 단계 나아간 뉴트로 마케팅도 등장했다. 뉴트로 마케팅은 ‘New’와 ‘Rrtro’의 합성어로 오래된 것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마케팅이다. 레트로 마케팅은 과거의 재현에 초점을 맞추지만, 뉴트로 마케팅은 과거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뉴트로 마케팅에는 전통적인 로고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가 있다. 대한제분은 중장년층과 달리 젊은 세대가 ‘곰표’하면 밀가루를 떠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껴 뉴트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해 전통적인 곰 로고를 활용한 옷, 화장품, 과자 등을 선보였다. 이러한 콜라보 굿즈들은 완판 행렬을 걸으며, 마케팅에 성공했다.


옛것의 변주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곰표’에 이어 ‘하이트 진로’는 소비자의 선호가 가장 높았던 1970년대의 진로병 라벨을 재현해 출시했다. 과거의 진로가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의 ‘진로 이즈 백’ 문구와 함께 귀여운 두꺼비 캐릭터를 앞세웠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자극하고, MZ 세대에게는 독특함과 신선함을 제공함으로써 출시 7개월 만에 1억 병 판매 돌파라는 큰 성과를 보였다.



그렇다면 레트로 마케팅과 뉴트로 마케팅처럼 추억을 소환하는 마케팅이 널리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본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은 더 좋은 기억을 오래 남기는 경향이 있어 자신의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려 한다. 그러한 가운데 청소년기부터 초기 성인기까지의 기억을 가장 좋은 기억으로 간직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회고 절정(Reminiscence bump)’이라고 한다. 현재 기성세대의 초기 성인기를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 마케팅과 뉴트로 마케팅은 이러한 ‘회고 절정’ 현상을 불러일으켜 해당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을 일부 충족시켜준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로 ‘행복했던 순간이 그리워서(63.9%)’, ‘현실이 힘들어서(56.4%)’가 1, 2위에 꼽혔다. 이때, 추억을 소환하는 마케팅은 힘든 사회 속 지친 현대인에게 과거로 돌아간 듯한 효과를 준다. 현실의 문제로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안정감을 전달한 것이다.


더불어 기업의 입장에서는 레트로 마케팅과 뉴트로 마케팅을 통해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할 수 있다. 해당 마케팅을 통한 제품 리뉴얼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다. 소비자들의 꾸준한 수요에 따른 리뉴얼이 많고, 일정한 고객층이 확보돼 있어 안정적인 매출 확보에 용이하다. 이처럼 레트로 마케팅과 뉴트로 마케팅은 소비자와 기업에 이점을 주면서 성공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돌아온 포켓몬빵’의 성공을 단순히 ‘레트로 트렌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양세정 상명대(경제금융학) 교수에 따르면, 스티커를 모으는 행위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어려운 목표와 씨름하는 젊은 층에게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작지만 손쉽게 이룰 수 있는 포켓몬빵 구매에 열광하는 것이다.


성공 요인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약 16년 만에 야심 차게 등장한 포켓몬빵이 큰 성공을 거두고, 뉴트로 마케팅이 사랑받으면서 앞으로 추억을 회상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증가할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유행이 재해석되어 익숙함과 동시에 신선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회고는 좋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복제가 아닌 현대의 흐름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레트로 트렌드가 사랑받고 있는 지금, ‘추억을 팝니다.’라는 전제하에 소비자의 추억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출처
트렌드모니터, ‘각박하고,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현대인들-2015 복고 문화 관련 인식 조사’, 2015. (트렌드모니터 (trendmonitor.co.kr))
곰표 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하이트 진로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