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소통의 원천, 밈(Meme)

  • 490호
  • 기사입력 2022.04.28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 조회수 3548

“우리는 깐부잖아.”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대유행 이후 각종 SNS 및 커뮤니티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대사다. 딱히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댓글에 남긴 이 대사에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열광한다. 이처럼 센스 있는 맥락과 타이밍에 사용한 ‘밈’은 그 재치에 자연스레 입꼬리를 올리게 한다. 이번 문화읽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밈의 다양한 일면을 알아보도록 하자.


▣ ‘밈’이 뭐야? 대단한 현상이지!

현대사회에서 밈이란 특정한 문화적 요소를 모방하거나 변형한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는 콘텐츠를 통칭한다. 유행어, 노래 가사, 방송의 장면, 재미있는 사진과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혹은 살짝 변형하여 따라하는 모습을 종종 본 적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콘텐츠들이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밈 현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유행어나 짤방, 클립과 같은 개념으로부터 그것의 복제와 변형이라는 확산의 개념까지 넓힌 것이 바로 밈이다. 한국에 밈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1-2년 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당시 가수 비의 노래 ‘깡’과 일본 정치인의 펀(Fun), 쿨(Cool), 섹시(Sexy)한 기자회견 발언 등 다양한 밈이 유행하며 이 현상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자료가 급증했다.

▲ 무한도전 '알래스카에서 김상덕 씨 찾기' 편


사실 밈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다. 모방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미메메(mimeme)와 생물학 용어 유전자(gene)가 결합해 밈(Meme)이 탄생했다. 밈이 가진 최초의 의미는 ‘모방을 통해 복제되고 전달되는 문화적 요소’로, 음악과 패션의 유행, 의례와 관습, 건축양식 등 수많은 문화를 포함한다. 현대로 접어들어 인터넷이 발달하고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밈은 점차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콘텐츠의 개념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 밈 유행, 오히려 좋아

한국인에게 붙는 다양한 수식어 가운데 해학의 민족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명칭에 화답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러가지 밈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알맞은 타이밍에 기발하게 응용하는 능력을 가졌다. 대부분의 밈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다. 근원지가 개그 프로그램이나 코미디 시리즈가 아닌 이상, 많은 밈들은 처음부터 밈이 되려는 목적으로 세상에 나오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밈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웃음 포인트로 작용해 우리의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2020 서울은 미술관 공공미술축제《I•MEME•U》


서울시 주관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2020년 주제는 바로 밈이었다. 《I•MEME•U》라는 슬로건을 걸고 개최된 이 프로젝트는 온라인 놀이문화가 된 밈처럼 공공미술도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공공미술 역시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이기에 밈이라는 주제는 프로젝트에 더없이 걸맞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K-POP 그룹 방탄소년단의 지민을 밈이 주는 영향력의 긍정적인 유형으로 꼽았다. 상대를 자주 껴안는 지민의 행동이 하나의 밈 현상으로 자리잡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라하는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밈은 개인이 모여 서로 공감을 나누게 하며 그들 간 소통에 유쾌함을 한층 더해준다.


▣ 잘못된 밈 사용, 멈춰!

하지만 밈의 사용이 우리에게 언제나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콘텐츠의 성격을 띠는 만큼 저작권과 초상권 문제로 크고 작은 소란이 있는가 하면 잊힐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확산이 매우 빠르고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밈의 특성상 무분별한 복제와 같이 잘못된 사용을 경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페페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밈의 또다른 오용 사례로는 개구리 페페를 들 수 있다.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종종 사용되는 이 캐릭터는 만화가 맷 퓨리의 <Boy’s Club>에 처음 등장했다. 슬픈 개구리로 유명한 페페는 슬픔 또는 분노를 장난스레 표현하는 그림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애정을 갖고 캐릭터를 그려내던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언젠가부터 페페는 큰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 원흉은 다름아닌 백인우월주의 집단이었다. 그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페페의 사진을 즐겨 사용하는 바람에 차별과 혐오의 상징이라는 불명예를 억지로 떠안았다. 심지어 미국 오리건주에서 13명이 사망한 총기 난사 사건의 범행 예고 글에도 페페의 사진이 이용되기도 했다. 작가는 긍정적인 밈과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페페 그림을 포스팅하도록 ‘페페 구하기(#SavePepe)’ 캠페인을 펼쳤지만 불행히도 다시금 폭력적인 형태로 재생산되었다. 결국 좌절에 빠진 작가가 선택한 최후의 방식은 캐릭터의 죽음이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창조물의 장례식을 그려 페페의 죽음을 세상에 공표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