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을 관찰하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

  • 500호
  • 기사입력 2022.10.02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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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테레즈. 이 집에선 조용히 해야지.”


고모의 손에 자란 테레즈는 활발하고 정열이 넘치는 자신의 기질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오랜 시간 그녀의 숨통을 조인 것은 바로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고모와 병약한 사촌 카미유, 그리고 이 집이었다. 우중충한 녹색 벽과 삐걱이는 나무바닥이 맞닿은 구석마다 죽음의 향기가 스몄고 묵직한 고요와 습기만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카미유와의 결혼은 영원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일종의 사망 선고와도 같았다.


이젠 모든 게 끝났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한 남자가 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

장소: 드림아트센터 1관

공연기간: 2022.09.20 ~ 2022.12.11

공연시간: 110분

관람연령: 만 15세이상



창작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에밀 졸라가 선보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과 극본은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여인과 그 남편의 옛 친구인 혈기왕성한 남성이 만나 욕망에 몸을 던지고, 함께 끔찍한 짓까지 저지른 후 결국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 내용이다. 과감한 전개와 점점 고조되는 서스펜스로 여러 번의 영화화를 거친 이 소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2009)>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에밀 졸라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주의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뜻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오직 있는 그대로를 묘사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자연주의 작품들은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에밀 졸라가 자연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테레즈 라캥>이었는데, 그는 이 소설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중략)

나는 해부학자가 시체에 대하여 행하는 것과 같은 분석적인 작업을 살아 있는 두 육체에 대하여 행한 것뿐이다.”



<테레즈 라캥> 초연 무대 (2019.06.18 - 09.01)


이 극은 단순한 권선징악 또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동물적 본능과 기질의 지배를 받는 인물들이 특정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지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원작의 의도를 관객에게 완벽히 전한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타고난 본능에 따라 격정적인 사랑이 금세 증오로 돌변하고, 혼란에 빠지고, 고통받는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변화 양상을 다방면에서 보여준다.


‘나’라는 인간은 어떨까?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살아가는 지금,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 <테레즈 라캥> 공연상세



110분에 소설 한 권을 매끄럽게 담아내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대사와 노래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훌륭한 시청각적 요소다. 소설 속 공간을 그대로 관객 앞에 옮겨 놓은 무대와 인물들의 심리를 나타내듯 위태롭게 깜빡이는 조명도 눈여겨볼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 이제 무대 위 네 명의 인물이 지닌 기질과 본능, 욕망, 서로에 의한 변화를 관찰해보자. 관찰자인 우리 자신은 과연 본능의 지배를 받지 않는 존재일지 생각해 보면서.




해당 기사는 뮤지컬 <테레즈 라캥>과 협력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