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

  • 448호
  • 기사입력 2020.07.26
  • 취재 고병무 기자
  • 편집 김유진 기자
  • 조회수 5352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여러분은 혹시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를 아는가? 1988년에 나온 곡이라 젊은 사람들 중에서는 모르는 이도 많겠지만, 아름다운 노랫말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이다. 위에 적힌 글귀도 이 노래의 가사 중 일부이다. 그 중에서도 포인트는 바로 ‘덕수궁’. 과연 덕수궁 돌담길이 어떤 곳이길래 유명한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것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킹고복덕방>에서 덕수궁에 다녀왔다.


*창덕궁의 역사와 상세 내용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 관리소를 참고하였습니다.

*본 기사 사진의 출처는 문화재청과 덕수궁 관리소에 있습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뒤, 다시 돌아온 곳이 바로 덕수궁이다.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렇게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만, 다들 알다시피 대한제국이 오래가지 못했고, 황제였던 고종이 승하하면서 덕수궁의 위상 또한 줄어들었다.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덕수궁으로 들어가보자.


현재(20.07.21 기준) 덕수궁을 비롯한 궁궐들이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6월 15일부터 휴관을 하고 있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다녀오면 좋을 것이다. 참고로 덕수궁의 원래 개장 시간은 오전 9시이며, 폐장 시간은 21시이다. 덕수궁의 하이라이트인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관람은 사전예약제로 진행되고 있다. 만 25세까지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니, 상황이 나아지면 나들이 겸 한번씩 들러보는 것도 좋다.


  • 대한문

한양이 창대해지리라”


앞서 다녀왔던 궁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바로 정문이다. 덕수궁의 정문 역할을 대한문이 하고 있다. 사실 대한문의 현재 위치가 본래의 위치가 아니다. 정확한 대한문의 위치는 현재 위치에서 도로 앞쪽으로 33미터 정도에 위치해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태평로가 뚫리면서 덕수궁 일부가 잠식되었고, 광복 이후에 궁궐 담장이 밀려나고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대한문이 홀로 떨어져 있던 때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는 궁궐과 어우러진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 문을 통과해서 본격적으로 덕수궁을 돌아다녀 보자.



  • 중화전
  • < 옛날 중화전> 


앞서 말했듯 덕수궁은 고종이 환궁한 곳이고, 이후에 황궁으로도 쓰였는데 그 당시 정전으로 쓰인 곳이 바로 중화전이다. 사실 고종 황제가 처음 정전으로 삼은 곳은 즉조당이었지만, 장소가 협소해서 원활한 업무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중화전을 짓게 되었다. 지을 당시에는 2층 건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1904년 4월경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는 1층 건물로 남아있다. 경복궁에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품계석이 이 곳에도 있다.

<현재 중화전 >


이 곳은 주로 즉위식이나 공식적인 신하들과의 만남을 위해 쓰였고, 외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접견하는 장소로 쓰일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정전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덕수궁의 중심을 잡아주는 곳이다.



  • 함녕전

다음으로 가볼 곳은 함녕전이다. 이곳은 왕의 침전으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된다. 이후 퇴위한 고종이 주로 생활했던 곳이 바로 함녕전이며, 1919년 이곳에서 승하하게 된다. 고종 승하를 기점으로 모두가 알다시피 3∙1운동이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암울하지만 중요한 곳이다.


함녕전과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덕수궁 대화재가 시작된 곳이다. 1904년 함녕전의 온돌방에서 구들을 수리하다가 불이 번졌고, 안타깝게도 점점 화재가 커져 대화재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앞서 보았던 중화전은 물론 함녕전을 비롯한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이후에 다시 중건되었다.



  • 중명전

이 곳은 역사시간에 꼭 배웠을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다. 사실 이곳은 황실의 도서와 보물 등을 보관하는 황실도서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름도 수옥헌이었으나, 덕수궁 대화재가 일어나자 고종이 이곳으로 몸을 피했고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에 외국인클럽 등 민간 영역에서 사용하게 되면서, 내부나 외부가 변형되었고, 2009년부터 문화재청에서 복원 작업을 실시했다. 현재는 실내를 전시장으로 만들어 2010년부터 운영중이다.



  • 정관헌

다음은 정관헌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곳은 조선 역대 왕들의 어진을 보관하고 있던 장소로, 19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축양식이 독특한데, 기둥은 서양의 양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지붕의 모양은 동양의 것으로 덮여있다. 또한 내부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져 있다. 여담이지만 이 타일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외관 장식은 다양한 동식물로 되어있는데, 대표적으로 복을 상징하는 박쥐, 장수를 상징하는 사슴과 소나무 등 상징적인 동식물들을 디자인했다.



  • 석조전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바로 덕수궁의 하이라이트이자, 독특한 건축물인 석조전이다. 다들 덕수궁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석조전의 모습은 한번쯤 봤을 것이다. 동양식의 건축물 사이에서 자리잡고 있는 서양식 건축물로 유명한 이 곳은 영국인이었던 하딩의 설계작으로 1910년 준공되었다. 주로 고관대신이나 외국 사신들을 만나는 용도로 사용했고, 1945년 해방 이전까지는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했다가 유엔 한국위원단이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 주로 전시관의 용도로 사용되다가 2009년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현재는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석조전의 정면 상층부를 보면, 오얏꽃 문양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대한 제국의 건물이었음을 알려준다. 다만 석조전의 경우 1910년에 완공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